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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영정사진으로 아버지를 만난 딸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5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19년06월07일 12시57분 ]

그의 삶이 끝났지만 생전에 그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을 동행합니다. ‘무연고 사망자’라는 이름이 아닌 한 세상을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생생한 현실을 전해줍니다. 죽어서야 들을 수 있는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쪽방에 살았던 무연고 사망자의 지인들과 단절되었던 가족, 그리고 종교단체 봉사자들 ⓒ나눔과나눔
 

쪽방촌 지인들이 준비해온 영정사진

 

나눔과나눔이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하면서 이어진 관계망들이 있습니다. 돌봄, 인권, 웰다잉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사회단체와 관계자들은 서로의 영역을 넘어 교류하고, 추모제를 열거나 협의체를 구성하여 공통의 관심사를 풀어나가는 등의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그중에 쪽방촌 분들은 같은 공간에 살았던 분들의 무연고 장례를 함께 치른 적도 있고, 장례 후 음식 나눔을 통해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왔습니다. 가끔 쪽방촌을 방문할 때면 이웃에 같이 지내던 분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듣게 되고, 혹시라도 무연고자가 되어 공문을 받게 되면 꼭 장례를 함께할 수 있도록 연락을 부탁하시곤 하셨습니다.


2019년 5월 하순 ㄱ님의 무연고 사망자 공문을 받았습니다. 쪽방촌분들이 부탁하셨던 분이셨기에 장례 일정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해당구청 담당자로부터 비록 시신 인수를 포기했지만 자녀분이 장례에 꼭 참석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습니다. 시신인수 포기서에는 “50년여 년을 같이 살지 않았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50년 만에 마주한 아버지의 나이 든 얼굴

 

장례에 참석한 쪽방촌분들은 ㄱ님의 영정사진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오신 분들 중 한 분이 고인과 생전에 각별한 사이였다며 자신이 영정사진을 꼭 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운구가 시작되고 화로에 들어가기 전 서울시립승화원 건물 중앙에서 쪽방촌분들과 ㄱ님의 가족이 만났습니다. 쪽방분들은 기꺼이 영정사진을 가족에게 드렸고, 따님이 ㄱ님의 사진을 안았습니다. 얼굴도 본 기억이 없이 50년이 지나서야 마주하게 된 아버지의 얼굴은 따님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자신과 어린 자식들을 두고 떠난 남편을 향해 아내는 모진 말을 내뱉었지만, 딸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눈물을 보였습니다. 화장이 끝난 후 딸은 아버지의 유골을 유택동산에 뿌리며 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 참석한 교회 지인들 ⓒ나눔과나눔
 

IMF 외환위기에 무너진 가장, 무연사하다

 

무연고 사망자의 공문을 받고 해당 구청 담당자에게 고인에 관한 정보와 함께 장례에 참석할 분들이 계신지 묻습니다. 참석자분들께 연락이 오면 장례 일정을 안내해 드리고, 장례 당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참석한 가족 혹은 지인들을 통해 고인에 대한 생생한 사실을 듣게 되고, 개인의 삶을 넘어선 사회적인 현실을 마주하기에 이릅니다.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IMF’입니다.


5월 중순 무연고 사망자 공문으로 만난 고인 ㄴ님은 형제자매가 있지만 시신 인수 포기로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장례 당일 의전업체 차량 앞에 검은색 옷을 입은 일곱 분이 서 있었습니다. ㄴ님이 생전에 다닌 교회 목사님과 지인분들로 장례식장에 화장 일정을 물어 참석을 했고, 서울시립승화원 직원의 도움으로 의전업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인분들 중 한 분은 ㄴ님이 20여년간 다닌 음식점 사장으로 ㄴ님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ㄴ님은 20여 년 전 서울 강남에서 유명한 영어학원을 운영했고, 자녀들을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 유학을 보낼 만큼 여유롭게 사셨습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에 학원 운영이 힘들어졌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졌습니다. 결국 ㄴ님은 한 번의 실패 후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가족들과 떨어져 한국에 홀로 살다 4월 하순 사우나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어 사망하셨습니다. 자녀들과 형제들이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포기해 ㄴ님은 안타깝게도 무연고자가 되어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지인은 ㄴ님의 유골함을 안고 오열했습니다.

 

아들의 장례에 참석한 아버지(오른쪽) ⓒ나눔과나눔
 

아들을 먼저 보낸 말기암 아버지

 

5월 중순 무연고 사망자 ㄷ님의 공문을 받았습니다. 1972년생으로 마지막 주소가 경기도의 한 동주민센터로 거주지가 불분명했고, 사망 장소는 고시원이었습니다. 구청 담당자는 ㄷ님의 아버지가 장례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화장 일정을 알고 싶어 하신다고 전했습니다. ㄷ님의 아버지는 전화상으로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이고, 몸이 불편해서 장례에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장례 당일 ㄷ님의 아버님은 예상과는 달리 서울시립승화원에 오셨습니다. 암 투병 중이라 몸도 많이 야위었고, 서 있기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장례의식 도중 빈소에 앉으시길 권했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괜찮다며 서 계셨습니다.


“13년 전에 아들에게 이제 너도 컸으니 무위도식하면 안 된다고 충고를 했는데, 그 말이 아들에게 상처가 되었는지 집을 나가 버렸어요. 아들이 먼저 가게 된 게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 말 때문인 것 같아 후회가 돼요.”


아버지의 충고를 듣고 집을 나간 아들은 일정한 거주지도 없이 떠돌다 지난 4월 중순 마지막으로 몸의 누인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자식의 유골을 손수 뿌린 아버지는 장례에 참석한 종교단체 봉사자분들께 “아들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을까 걱정하고 왔는데, 이렇게 많이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인사를 전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면서도 외롭게 보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참 아프고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30년을 모셨지만 장례를 치를 수 없었습니다

 

5월 말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ㄹ님은 마지막 주소지가 서울시의 한 교회였습니다. 구청 담당자는 교회에서 장례에 참석하고 싶다고 전했고, 전화로 일정을 안내하고 장례 당일 지인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제 이모입니다.”


참석자 중 한 분은 고인의 마지막 주소지였던 교회의 목사님이었고, 고인의 조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모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이모님은 어릴 적에 다른 집에 양녀로 보내졌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다른 집에 가서 살게 된 이모는 40대였던 30년 전 조카를 찾아왔습니다. 이모는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때부터 이모님과 함께 지내며 병수발을 들었습니다.


“외부에 나와 있다가 이모님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간 게 여러 번이었어요. 그때마다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모님은 몸이 점점 나빠져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지난 5월 중순 끝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목사님은 서류상으로 이모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기에 장례를 치를 수 없었습니다. 양녀로 들어갔던 집엔 가족이 있었지만 사망 후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고, 결국 시신 인수를 거부해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가족이 아니면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사례는 많은 무연고 장례를 통해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던 이웃과 지인들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법 개정 등을 통해 ‘가족 대신 장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참석하여 수골과정을 참관 중인 교회 지인들과 자원봉사자 ⓒ나눔과나눔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5월 기초생활수급자
박정순, 임종문, 박용기

 

5월 무연고 사망자
한명호, 김영세, 김성관, 박호서, 엄정섭, 박광범, 남태진, 이병진, 남궁옥순, 손기철, 현동우, 김승호, 김한수, 이우승, 이현덕, 김천복, 이희창, 이찬진, 김태수, 이석우, 이우용, 김기열, 박성일, 송윤석, 백철현, 박성호, 양용해, 서춘자, 김정훈, 김영만, 나성안, 오완탁, 김쌍동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여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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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나눔과나눔 장례지원실장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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