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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농성장에서, 1년 전 죽은 권오진을 추모하다
‘고 권오진 1주기’, 지역사회에서의 꿈 앗아간 ‘사회보장 정비방안’
활동지원 24시간→14시간 삭감… 욕창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
등록일 [ 2019년06월18일 15시52분 ]

17일 오후 5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사회보장 정비방안’으로 활동지원시간이 줄어 사망한 고 권오진 씨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영정 사진 앞에는 국화꽃이 놓여 있고, 누군가 고인을 위해 향을 피우고 있다. 영정 사진 속 그는 생전 좋아했던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사진 허현덕
 

박근혜정부 ‘사회보장 정비방안의 후유증’으로 1년 전 죽은 고 권오진 활동가의 1주기 추모제가 17일 오후 5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농성장에서 열렸다. 가평 꽃동네에서 탈시설하여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으로 지역사회에서 꿈을 좇으며 살던 그는 활동지원 시간이 도로 삭감되면서 다시 집에 갇혔고, 끝내는 요양병원에서 삶이 멈췄다.

 

오는 7월, 장애등급제 31년 만의 폐지라는 역사적 순간을 앞두고서도 여전히 ‘활동지원 24시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장애계는 그 싸움의 공간에서 고인을 추모했다.

 

- 꽃동네에서 탈시설… “장애인권활동가가 꿈”이었던 사람, 권오진 

 

20대 중반이던 청년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경추 4~7번이 손상됐다.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1996년의 일이었다. 국립재활원에서 3개월간 재활훈련을 받고, 집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2002년 가평 꽃동네에 입소했다. 꽃동네에서 지냈던 생활을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가면 갈수록 직원들의 불친절함과 인권침해가 점점 심해졌다. 갈수록 인권침해가 너무 심해져 직원들과 많이 다투었다. 수사님이나 팀장한테 시정요구도 많이 했지만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원장수녀님과 신부님에게도 말씀을 드렸지만, 눈으로 보기 전에는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중엔 하도 말하니까 신부님과 수녀님은 시정은커녕 짜증 난다고 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너무나도 안 좋은 것을 많이 봐왔고,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 그래서 나는 퇴소하기로 결심했다.” (‘탈시설 소감문’ 일부)

 

그는 10년이 지난 2011년, 시설에서 나왔다. 30대 중반이었다. 시설에서 함께 나온 오영진 씨와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에 입주했다. 2014년에는 임대아파트를 얻어 혼자 생활했다. 같은 해 그는 인천시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그때의 생활을 ‘자유’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장애인권활동가가 목표이자 꿈이라고 했다.

 

“자립생활을 하다 보니 몸은 불편하지만 자유스러웠다. 그래서 앞으로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고 싶었다. 시설마다 있는 장애인들에게 찾아가서 자립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새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앞으로는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큰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 그것이 내 꿈이다.” (‘탈시설 소감문’ 일부)

 

2016년 2월, 불행이 닥쳐왔다. 박근혜정부의 ‘사회보장 정비방안’이었다. ‘사회보장 정비방안’은 사회보장기본법 26조에 근거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유사·중복 사업을 정리하는 것으로, 당시 복지부는 지자체에서 추가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중앙정부에서 하는 것과 유사·중복이라며 지자체 복지사업을 가로막았다. 그 결과 인천시가 추가 지원하던 활동지원시간이 중단되면서 그의 활동지원시간은 하루 24시간에서 14시간으로 줄었다. 10시간이나 줄어든 활동지원시간은 전신마비인 그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야간순회서비스 방문이 빈 시간을 채운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온몸에 욕창이 생겼다. 2018년 5월 5일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몇 주 후 요양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했다. 2018년 6월 17일 권오진 사망, 향년 47세였다.

생전 권오진 씨가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아서 쓴 ‘탈시설 소감문’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고 권오진을 추모했다. 일부는 소리없이 울었고, 일부는 통곡했다. 노동가수 지민주, 이혜규 씨는 노래로 고인의 넋을 달랬다. 지민주 씨는 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민들레처럼’을 부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 “우리는, 권오진은, 정부를 향해 ‘죽을지도 모른다, 살려 달라’고 외쳤다”

 

인천에서 함께 활동했던 활동가들은 여전히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인천시에서 사회보장 정비방안을 내세워 ‘활동지원 24시간’을 하루 14시간으로 줄이자, 권오진 씨와 함께 1인 시위에 나섰던 유명자 민들레장애인야학 활동가는 눈물을 머금고 고인을 추모했다. 낭독은 활동지원사가 대신했다.

 

“보고 싶은 오진 오빠, 오빠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아직 믿어지지 않아요. 활동지원 24시간을 받았더라면 오빠가 우리 곁을 일찍 떠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하늘나라로 떠난 오빠. 그래서 우리는 동료들과 함께 활동지원 24시간 쟁취 투쟁을 하고 있어요.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할 거예요.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 응원해주세요. 명자가.”

 

고 권오진 씨의 죽음을 계기로 인천시는 2018년 하반기부터 활동지원 24시간 시범사업을 다시 운영하고 있다. 인천시는 현재 10명 지원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최소 30명에서 최대 50명까지 24시간 지원 확대를 약속했으나,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활동지원이 제공되지 않는 한 ‘또 다른 권오진’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임수철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인천시청 앞에서 함께 투쟁했던 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권 동지는 늘 활동지원 24시간이 없으면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이야기했고, 사회보장 정비방안이 결정된 후 인천시청 앞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살려 달라’고 절규하듯 외쳤다”며 “박근혜정부 때는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정권이 바뀐 후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활동지원 24시간 지원을 공약했음에도 임기 중반이 지났으나 여전히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다시 모일 때는 ‘함께 쟁취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동섭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한 손에는 국화꽃을 들고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사진 허현덕
 

- “권오진은 살해당한 것이다, 또 다른 살해 벌어지기 전에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 돼야”

 

현재 중앙정부는 여전히 활동지원 24시간 지원을 하지 않은 채 지자체에 책임을 미루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추가 지원으로 24시간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 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활동지원 24시간이 보장되지 않으니 여전히 수많은 중증장애인이 ‘감옥같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14일,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종합서비스 조사표’로 많은 장애인의 활동지원 시간이 깎인다고 항의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수중에 100만 원이 없어 몇천 명씩 죽어가고 있다. 나라가 일일이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느냐’며 ‘이해해달라’는 거였다”며 “한 나라의 복지를 맡고 있다는 장관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발언이 나올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예산을 핑계로 장애인을 토끼몰이하고 있다”며 “고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기보다 더욱더 마음을 다잡고 투쟁에 임하자”고 독려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이날 추모제가 열린 세종문화회관 앞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농성장이 있는 곳이다. 오는 7월 1일, 31년 만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지만 그만큼의 충분한 예산 반영이 이뤄지지 않자 장애인들은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14일째(17일 기준) 농성 중이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활동지원을 판정하는 종합조사표에서도 고인이 그토록 바라던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또한 예산 때문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생전 고인이 말했던 ‘시설은 감옥’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현재 탈시설 자립생활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인의 죽음은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라면서, 또 다른 타살을 막기 위해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즉 예산 확대를 요구하는 이유다.

 

“활동지원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관계가 더 이상 시혜와 동정으로 유지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첫발이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입니다.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반드시 종합조사표에 반영되도록 투쟁합시다. 그것이 권오진 동지의 뜻을,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그의 뜻과 꿈을 이어갑시다.”

 

이날 활동가들은 고 권오진 씨의 영정에 국화 한 송이를 놓으며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추모제 참가자들이 영정 사진 앞에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지민주 씨가 고 권오진 씨의 넋을 기리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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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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