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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폐지’의 다른 이름
‘자연증가분에 그쳤다’는 비판받은 올해 예산, 복지부는 내년에도 ‘딱 그만큼만’
등급제 폐지의 다른 이름은 ‘시설 신규 입소 금지와 시설 폐쇄’ 되어야
등록일 [ 2019년06월28일 18시23분 ]

- 활동지원서비스 탈락에서 시작된 등급제 폐지 투쟁, 또다시 반복?

 

7월부터 도입되는 종합조사표로 현재 장애인 당사자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삭감'이다. 이에 대해 25일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방안’ 브리핑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서비스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겠다”면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는 복지부 또한 활동지원시간이 삭감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일종의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 보건복지부

 

2010년 복지부의 장애등급 재심사로 등급 하락이 활동지원서비스 박탈로 이어졌고, 그것이 장애등급제 폐지 싸움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이번 등급제 개편으로 인한 활동지원시간 삭감 및 탈락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복지부는 서비스 수급 삭감이나 탈락을 ‘최소화’할 것이 아니라 아예 없도록 해야 하며, 이러할 때 당사자들의 염려는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이렇듯 7월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는데 온통 활동지원서비스 이야기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활동지원밖에 없으니 모두가 활동지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7월에 복지부는 일상생활영역(활동지원, 장애인거주시설, 응급알림e, 보조기기)에서 등급제를 없애고 새로운 판정체계인 종합조사표를 도입해 서비스 이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으나, 4개 항목 중 종합조사표를 통해 서비스 수급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것도 활동지원뿐이다. 그렇기에 복지부는 나머지 3개 서비스(장애인거주시설, 응급알림e, 보조기기)에 대해선 종합조사표를 어떻게 적용할지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14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사회보장위원회를 점거했을 때 복지부와의 면담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을 불과 보름 앞두고서 말이다.

 

- ‘자연증가분에 그쳤다’는 비판받은 올해 예산, 복지부는 내년에도 ‘딱 그만큼만’

 

25일 브리핑에서 복지부는 내년도 장애인 예산이 올해보다 5200억 원 증액(19%)된다고 밝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브리핑 서두에서 ‘예산이 부족하다’는 장애계의 목소리를 의식해 “장애인 예산이 정부의 전반적인 예산 증가 속도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브리핑 후반에는 “7월 1일부터 23개 서비스의 대상이 확대되지만 이중 예산이 대폭 증가될 것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진실’을 실토하기도 했다.

 

내년도 5200억 원 증액은 ‘자연증가분에 그쳤다’고 비판받은 올해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정도다. 그렇다면 복지부가 밝힌 장애인 예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장애인 복지예산이 다른 예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그야말로 ‘상대적 기준’일 뿐이다. 올해 장애인정책국 예산은 2조 7825억 원으로 작년 2조 2213억 원에 비해 25%가량 늘었다. 이중 활동지원예산이 6906억 원에서 1조 34억 원으로 3127억 원 늘었으니, 증액된 예산 대부분은 활동지원서비스에서 발생했다. 이로써 2019년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정책국 예산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자연증가분일 따름이다. 활동지원 예산을 구체적으로 뜯어보자. 복지부는 활동지원 대상자 수를 2018년 7만 1000명에서 올해 8만 1000명으로 1만 명 늘리고, 월평균 지원시간 109시간은 동결시켰으며, 단가도 최저임금 인상분만큼만 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1만 명 증가’라는 대상자 수조차 기만적이다. 2017년 2월 기준으로 실제 활동지원 수급자 수는 이미 8만 1000명을 넘겼으니, 복지부는 현실을 무시한 채 예산 장부상의 숫자만 전년보다 높여 마치 늘어난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실제로는 현실의 수급자 수조차 따라가지 못함에도 말이다. 이번 기자브리핑은 이러한 복지부의 기만적 태도를 또다시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31년 만의 장애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하지만 정작 예산 투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투입은커녕 정부는 증가하는 장애인 복지예산을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한다. 마치 9년 전, 장애등급을 이용해 서비스 수급을 억제했던 것처럼, 이제는 신규서비스를 이용하면 기존 서비스를 차감하는 꼼수를 부린다. 발달장애인의 경우가 그렇다. 장애부모단체의 끈질긴 요구로 올해 성인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주간활동서비스가 새롭게 도입됐다. 이는 학교 졸업 후 갈 곳 없는 성인 발달장애인이 활동지원 바우처를 이용해 지역사회에서 낮시간을 보내는 서비스다. 이를 위해 하루 8시간은 보장되어야 하는 데 최대 이용 시간이 5.5시간밖에 안 된다. 이조차도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면 활동지원시간을 차감한다. 그야말로 ‘둘 중 택1’ 하라는 의미다. 이러한 방식이 고착된다면, 앞으로 신규서비스가 도입된다고 해도 복지 총량은 늘어나기 어렵다. 지금처럼 말이다.

 

이렇게 예산 확대를 요구하면 복지부는 기획재정부 탓을 한다.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예산 승인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27일, 장애인들은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사기 행각”이라면서 기획재정부 서울사무소가 있는 서울지방조달청을 찾아갔다. 그러나 조달청은 예산 확대를 촉구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을 경찰 방패로 막고 사지를 들어 끌어냈으며, 이 과정에서 활동가 1명은 연행되기도 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소속 활동가들이 27일 장애인 복지예산 확대를 촉구하며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기획재정부 서울사무소) 기습 점거를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가로막혔다. 사진 박승원

 

- 등급제 폐지의 다른 이름은 ‘시설 신규 입소 금지와 시설 폐쇄’

 

장애계에서 누누이 이야기해왔듯, 이제까지 장애인들은 ‘마이너스 100’의 삶을 살아왔고 이제야 서서히 ‘0’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아직 다가가는 중이니 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마이너스’ 상태다. 중증장애인은 여전히 버스조차 타기 힘들며, 학교 입학을 거절당하기도 한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이 자기 부모에게 죽임당하는 삶,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강제수용되는 삶. 이것이 ‘2019년 장애인들의 삶’이다.

 

복지부가 브리핑을 한 25일, 문재인 대통령도 SNS에 "일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이제까지 장애등급제는 각기 다른 장애 특성과 가구환경, 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고려하지 못했다며,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 개개인에게 필요한 맞춤형으로 장애인 서비스 지원 체계의 틀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맞춤형 지원이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기에 “단숨에 제도를 개선하기란 쉽지가 않”다고도 했다. 한꺼번에 탈바꿈할 수 없음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는 탈시설을 공약해놓고 7월에 도입하는 종합조사표에서 장애인수용시설을 ‘일상생활서비스’라며 이용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말했듯 장애인이 “일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장애인을 분리·배제시키는 거주시설을 없애고, 그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서비스를 마련하고 확충하는 일이다. 애초 장애계가 요구한 장애등급제 폐지의 본질은 장애인 복지 중심축을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바꾸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등급제 폐지는 단순히 판정체계를 갈아 끼우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등급제 폐지의 다른 이름은 ‘시설 신규 입소 금지와 시설 폐쇄’다. 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나의 일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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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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