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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 수심원이 하는 말
수용소 다크투어, 정신질환자 수용시설 ‘장항 수심원’ 방문
이러한 장소를 남겨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등록일 [ 2019년07월09일 21시10분 ]

과거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이었던 장항 수심원 내 여자수용실. 사진 박승원


충남 서천군 장항읍 송정리 유부도에는 과거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이었던 장항 수심원이 있다. 유부도는 행정지역상으로는 충남에 속하나 지리적으로는 전북 군산에 더 가까운데 실제 군산항 근처에서 낚싯배를 타고 5분가량 들어가야 한다. 장항 수심원은 92년부터 97년까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총 네 차례에 걸쳐 끔찍한 인권침해 실태가 폭로되면서 97년 11월 보건복지부에 의해 긴급 폐쇄됐다.

 

지난 6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진행하는 ‘수용소 다크투어’로 장항 수심원에 다녀왔다. 시설 폐쇄 후, 정부와 지자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덕에 수심원은 놀라울 만큼 과거 모습을 솔직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공간은 폐쇄 당시 이들이 얼마나 다급하게 문을 닫았는지 짐작케 했다. 바닥에 구겨진 채 떨어진 교회 달력은 97년 11월에 멈춰 있고, 사무실에는 시설운영일지, 치료대장, 간호기록 등이 책상과 땅바닥 여기저기에 쌓여 있었다.

 

디귿(ㄷ)자로 지어진 2층짜리 회색 건물은 넝쿨로 뒤덮여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먼지가 한 웅큼 콧구멍으로 들어와 숨이 막히면서 어렴풋이 녹슨 시간의 냄새가 났다. ‘여자수용실’ 어느 방 벽면에는 “자조 자립 자위 1970년 1월 1일 대통령 박정희”라고 쓰여 있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74년도에 지어진 수심원에 그보다 앞선 시간의 명패가 걸려있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지 않았다. 박정희 시대의 억압적 규율이 지배하는 공간의 상징으로서, 그것은 오히려 잘 어울렸다. 그 명패 맞은편에는 ‘일과표’가 있었는데, 그 일과란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약 먹고 청소하고 일광욕하고, 점심 먹고 일광욕하고 청소하고, 저녁 먹고 약 먹고 9시에 자는 것이었다.

 

장항 수심원 내 화장실. 변기 가림막이 무릎 높이밖에 되지 않는다. 사진 박승원
장항 수심원 목욕탕. 당시 사람들은 천장 위에 달린 파이프를 통해 빗물을 받아 씻었다. 사진 박승원

 

수심원 2층으로 올라가면 강당이 있고, 강당 반대편 문을 열면 탁 트인 옥상이 있다. 옥상에 서면 드넓은 하늘과 논밭, 그리고 바다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때 들이닥치는 것은 해방감이 아닌 소름끼침이다. 이 작은 건물을 벗어나도 사면이 바다인 이 섬을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는 섬 전체가 수용소였구나.

 

97년 11월, 수심원이 폐쇄되어서야 그들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들 삶 자체가 폐쇄된 상태였다. 수심원에 갇혀 있음으로써 “외부 세계와 문화적·정신적 교류가 끊긴”, 이미 폐쇄적 삶을 살던 사람들은 유부도를 벗어난 후에도 삶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삶의 폐쇄는 시설 폐쇄와 같은 물리적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갇힌/닫힌 삶’은 그들 삶을 규율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권력의 작동에 의한 것이었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의 눈초리로 굳어진 상태였다. 2016년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진이 수심원 폐쇄 이후 생존 가능성이 높은 청년 75명을 추적한 결과, 27명이 행방불명되고 16명이 사망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중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었다.

 

유부도에 있는 장항 수심원. 사진 아래쪽에 ⊔ 모양의 건물이 장항 수심원이다. 사진 박승원
 
시설 문제는 단지 문제 시설을 폐쇄한다고 멈춰지는 게 아니었다. 시설 문제는 여러 얼굴로 변형되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정신질환자의 오늘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는 수심원이 폐쇄되던 97년 11월에서부터 얼마나 나아왔는가. 시설 폐쇄가 끝인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듯,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나아졌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와 같다. 살아있는 한 이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따라서 이것은 동시대의 문제다. 과거를 되짚는 행위는 현재와 끊임없는 긴장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러할 때 이 장소를 남겨 둔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공간의 장소성이 과거를 증명한다. 그곳에 배어있는 매캐한 냄새가, 탈출하기 위해 뜯겨나간 쇠창살이, 무릎 높이만큼 올라온 변기 가림막이, 샤워하기 위해 빗물을 받았다던 목욕탕 긴 쇠파이프가 말을 한다. 빛바래고 뜯어진 벽지가, 안이 아닌 바깥에 달려있는 방문 걸쇠가 말을 한다. 다리조차 놓이지 않아 낚싯배를 타고 간신히 들어가야지만 닿을 수 있는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이, 그 물리적 위치가 사회로부터의 배제를 증명한다. 장항 수심원이라는 건물 자체가 역사에 대한 증언이다. 그 장소성을 온몸의 감각으로 마주하는 다크투어의 의미도 바로 그 지점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장항 수심원 복도 끝 쇠창살 사이로 햇살과 초록 넝쿨이 들어 왔다. 사진 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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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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