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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과 휴식 없는 삶, 불투명한 미래… 지속불가능한 활동가들의 현실
박종필 추모사업회, 2주기 맞아 ‘활동가 건강권’ 논의하는 포럼 개최
‘보다 나은 사회 꿈꿨지만 나의 미래는?’ 신체적·정신적 건강 위협받는 활동가들
등록일 [ 2019년07월28일 17시30분 ]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박종필 추모사업회(준)가 지난 24일 추모포럼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를 서울 종로구 노들야학에서 열었다. 포럼에 참여한 한 활동가 너머 건강권 향상을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활동가들의 답변(주2일 휴무 보장 및 월급 증액, 휴식, 활동비를 충분히 지급할 수 있는 재정 안정 등)이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활동비와 과로한 노동, 불투명한 전망.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겪는 현실이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누군가는 질병으로 죽음을 맞기도 한다. 2년 전, ‘차별에 저항한 영상활동가’ 박종필의 죽음은 그러한 현실을 새삼 일깨웠다.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박종필 추모사업회(준)(아래 박종필추사)는 24일 활동가들의 건강권을 고민하는 추모포럼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를 서울 종로구 노들야학에서 열었다.

 

고인은 다큐멘터리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실직노숙자’(1998) 연출을 시작으로 ‘끝없는 싸움-에바다’(1999), ‘장애인이동권 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2002), ‘노들바람’(2004), ‘시설장애인의 역습(2009)’ 등을 통해 장애인권운동 현장을 지키는 든든한 기록자였다. 2015년 8월부터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2기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잠수사’ 등을 찍고,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후에는 목포 신항에서 ‘416 가족선체기록단’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기록했다.

 

20여 년 가까이 영상활동가로 빈곤, 장애운동, 세월호 현장을 지켜온 고인은 2017년 7월 28일, 만 49세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간암 말기 통보를 받은 지 한 달만이었다. 급작스러운 죽음에 동료 활동가들은 ‘돈도 안 되는 영상작업과 과로한 일정 때문에 건강 돌볼 시간이 없는 삶이 그의 죽음을 앞당겼다’며 통탄했다.

 

이번 포럼은 그러한 고민 속에서 꾸려졌다. 조한진희 박종필추사 집행위원장은 “박종필추사는 활동 중에 죽음을 맞이한 활동가 한 명의 죽음을 기리는 것을 넘어, 또 다른 활동가들의 죽음을 막고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활동이 가능한 환경 조성을 위해 이번 포럼을 기획하게 되었다”면서 “포럼으로 활동가 건강권 이슈가 사회적으로 환기되고, 논의의 물꼬가 트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포럼은 활동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건강을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지를 다양한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돌아보고, 활동가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 실천 사례를 짚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박종필 추모사업회(준)가 지난 24일 추모포럼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를 서울 종로구 노들야학에서 열었다. 사진 강혜민
 

- 고통을 개인의 책임으로 해석하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조직 문화 필요해 

 

이날 기조발제를 한 조한진희 박종필추사 집행위원장은 지속가능한 활동 환경을 위해 아픈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해석하지 않는 문화, 아프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문화, 쉼이 권장되는 문화, 잘 아플 권리가 보장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활동가 중엔 건강을 위해 운동하지 않는 자신을 탓하거나 규칙적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잦은 야근과 투쟁 사안에 따라 주말도 없이 일하는 활동가 입장에서 이는 극히 어려운 일”이라면서 “건강을 개인이 노력하면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사고는 박종필의 죽음 앞에서도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실제 박종필 죽음의 원인 중 하나로 사람들은 그가 술을 즐겼다는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이에 대해 조한 집행위원장은 “이는 사실이지만 술을 많이 마실 수밖에 없었던 여러 환경은 휘발된 채 술을 줄이지 못한 나약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선후가 전도된 것”이라면서 “술과 담배를 줄이는 것은 삶의 환경 개선 속에서 가능한데, 환경 개선 없이 혹은 환경적 요소를 누락시킨 채 개인의 의지만을 강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활동가들은 건강이 손상되어도 말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조한 집행위원장도 2009년 팔레스타인 현장 활동 과정에서 독성물질 노출로 건강이 손상된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를 말하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그는 “보수언론들이 운동사회에 가할 비난, 다른 활동가들이 가질 염려와 미안함 등으로 말하기 어려웠다”면서 “다른 활동가들도 자신보다 더 힘든 당사자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다들 아프고 힘든데 아프다고 말하는 게 동료들 힘만 빼는 것 같고, 어차피 대안도 없기 때문에 말을 삼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바로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활동가들이 아프게 되는 현실은 파악되기 어렵고 결국 변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적절한 쉼이 없는 삶이 신진 활동가들 진입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면서 “지속가능한 활동 환경은 활동가 한 명 한 명의 건강, 복지, 인권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함께한 활동가들, 자연스레 고통 흡수하면서 ‘정신적 고통’ 호소

 

국가폭력이나 성폭력 등 고통스러운 현장에 직간접적으로 연대하면서, 활동가들은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을 위협받기도 한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의 경우가 그렇다.

 

이 사무국장은 지난 10년간 용산참사 피해생존자들의 곁을 지키며,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활동을 해왔다. 2009년 1월에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355일 만에 당시 사망한 철거민 5명의 장례를 치르게 됐을 때, 이 사무국장은 “활동가들도 심리치유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들어왔으나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활동가들이 겪은 내상은 당사자들에 비하면 별거 아니며, 오히려 이전보다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치유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상황은 그 후에도 지속됐고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이 사무국장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싸움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곪아진다는 걸 느낀다”고 밝혔다.

 

“유가족분들이 그런 이야기 많이 해요. ‘다 잊고 살고 싶다.’ 그런데 저는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제안하는 입장인데 그때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럴 때면 ‘내가 없으면 유족분들은 다 잊고 살 수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2016년에 김석기(용산진압 책임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가 경주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유족분들과 낙선 운동하러 내려갔어요. 유족들이 상복 입고 피켓 들고 다가가니 그걸 본 김석기가 용산참사 진압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데, 유족분들은 오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참사 이후 6년 만에 김석기를 처음 대면한 거였어요. 그때 엄청 많이 후회했어요.  운동적으로 당연히 해야 해, 라고만 생각했지… 굉장히 괴로웠어요. 잊고 살 수 있다면, 저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잖아요. 유족분들도 잊고 살고 싶다면서도 점점 잊혀질까 봐 무섭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도 용산참사 운동을 기획하는 게 부답스럽기도 해요. 시간이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응답하지 않는 국가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 게 상처를 더 곪게 만들어요.”

 

운동 기획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내부 갈등 조절이었다. 참사 피해자들은 결코 동일한 욕망으로 묶여있는 단일 집단이 아니다. 용산참사 피해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용산4구역 유족과 연대 유족, 유족과 생존자, 용산 4구역 철거민들과 유족 등 각자가 처한 입장으로 이해관계는 조금씩 달랐고,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이를 조정하는 것은 활동가의 몫이었다.

 

이 사무국장은 “외부의 국가폭력 가해자에 대한 투쟁보다는 내부의 갈등과 이해다툼을 봉합하거나 이해시키려는 과정, 보상 등 협상 이행과 관련한 이해다툼을 조정하는 게 활동가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면서 “나는 활동가인가, 해결사인가, 농담처럼 ‘내가 인권활동을 하는 건지, 이권활동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국가폭력은 지난 10년간 피해자들과 내게 내밀하게 작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피해자들이 갖는 고통, 트라우마, 분노, 원망 등이 고스란히 내게도 흡수됐다. 주변 사람들은 너무 애쓰지 말라고도 하는데 ‘나라도 애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결국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년의 활동을 인정받으면서 내가 해결사가 아닌 활동가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거다”라고 토로했다.


- 저임금에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맞이한 40대 이후의 삶… 제도 바깥의 대안도 고민해야

 

나영 성과재생산포럼 활동가는 이렇게 소진되는 구조 속에서 맞이하는 40대와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그는 얼마 전 8년 6개월 동안 활동했던 단체에서 퇴직했는데, 재정이 어려웠던지라 퇴직금은 받지 못하고 한 달치 활동비(120만 원)를 퇴직금으로 대신 받았다. 다행히 이는 삭감 전 활동비였고, 실상은 월 80만 원의 활동비만을 받으며 활동해온 터였다. 이처럼 활동가들이 받는 급여는 통상 월급이 아니라 ‘활동비’라고 불린다.

 

나영 성과재생산포럼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러한 명칭에 대해 나영 활동가는 “활동가의 활동비는 노동과 성과에 대한 대가라기보다는 활동이 어느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재생산 비용에 가깝다”면서 “게다가 활동비는 회원들의 후원금, 프로젝트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어 이를 받는 활동가들은 또 다른 부담과 의무를 지니게 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후원을 통해 안정적 재정 상태를 꾸릴 수 있는 단체 자체가 소수이기에 매월 급여 성격의 상근활동비를 받는 활동가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연차가 쌓일수록 실무 역량이 쌓임에도 불구하고 모아놓은 돈은 없고 전망은 불투명하며 몸은 아픈 40대가 되었을 때,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활동에 깊은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

 

나영 활동가는 이러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의 중요성을 짚으면서도 제도 바깥의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6년 한국에 온 멕시코 활동가들이 소개한 ‘활동가 자기돌봄 원칙’을 소개하면서 “이는 개인이 노력한다고 될 문제만은 아니며 이 원칙의 중요성을 조직이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활동가 자기 돌봄 원칙 ]

1. 자신의 몸이 요구하는 것들을 존중하라.
2. 자신만을 위한 커뮤니티를 찾아라. (자기돌봄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3. 당신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것들을 제한하라.
4. 트라우마가 되는 경험들을 피하라.
5.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라.

 


나영 활동가는 “당장에 모든 이슈를 쫓아가야 하고 100% 헌신하여 운동의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활동가 자신과 조직 사이에서 계속해서 악순환될 때, 활동가들은 지속가능한 역량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된다”면서, 이러한 자기돌봄 원칙을 바탕으로 한 별도의 커뮤니티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그 공간에서는 활동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나누고 삶에 필요한 자원을 나누는 것이 주가 된다”면서 “제발 모든 단체와 조직들이 활동가 역량보다 그들 삶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우리는 좀더 적극적으로 우선순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 “활동가도 노동자다” 시민단체 내 ‘노조 결성’도 하나의 방법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활동가들의 건강과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대안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노동자이자, 활동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시민건강연구소는 이를 위한 방법으로 조직 내 노조를 만들었다. 시민단체로서는 드문 일이다. 시민건강연구소는 2012년 7월 11일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시민건강연구소 분회를 설립했다.

 

서상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노조 설립은 사회적 연대 차원이 가장 컸고, 두 번째는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였기 때문이며, 향후 연구소 규모가 커질 것에 대비한다면 민주적 조직 운영을 위한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고 설립 목적을 밝혔다. 노조 설립 당시 상근인력은 2명이었지만, 현재는 상근인력 5명에 비상근직원은 1명이다.

 

서 연구원은 “우리가 일하는 환경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건강권 보장은 어렵다”면서 노조 활동의 결과로 대체 휴무제, 주4일제 도입을 이뤄냈다고 밝혔다. 그는 “연구소도 야근이 굉장히 많은데 주 40시간의 법정 근로 시간을 지키기 위해 매주 수요일을 공식 휴무일로 지정했다”면서 “주말이나 공휴일에 단체 공식 행사로 집회를 갈 경우 대체휴무일을 가진다. 임금 등 다른 수당을 지급할 수 없는 대신 휴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 또한 업무 특성상 휴무일에 개인이 일하는 것이 아예 없을 수는 없으나 이를 위해 대체휴무를 신청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서 연구원은 “그럼에도 공식적 제도가 있는 것은 중요한데 우리가 의식적으로 쉬려고 노력하는 가이드라인이 되기 때문”이라면서 “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노조가 있다”고 강조했다.

 

- 심리치유와 경제사회적 지원위한 단체 꾸려지기도… ‘통통톡’, ‘동행’ 등 소개

 

이날 포럼에서는 당장 활용 가능한 방안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활동가들의 심리치유를 지원하는 ‘심리치유네트워크 통통톡(아래 통통톡)’과 경제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한 ‘공익활동가 사회적 협동조합 동행(아래 동행)’이다.

 

(왼쪽에서부터) 오현정 와락치유단 상담지원가, 여진 공익활동가 사회적 협동조합 동행 활동가. 사진 강혜민
 

통통톡은 2016년 7월에 출범하였으며, 쌍용차 정리해고자 심리치유를 위해 2013년 설립한 ‘와락’을 포함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결합하고 있다. 통통톡은 노동자와 사회활동가의 마음돌봄을 위한 개인 상담 지원, 장기투쟁 및 파산으로 인한 실업, 직장괴롭힘 등으로 고통스러운 노동자들의 심리적 위기에 개입하는 활동을 한다.

 

오현정 와락치유단 상담지원가는 “노동자의 경우, 농성 등으로 집단적 요청이 있는데 사회활동가는 그룹에서 요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음을 돌볼 때, 상호연결감을 회복하고 조직에 대한 신뢰감을 확인하면서 건강한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 “활동가들의 역량 강화교육에 심리지원 프로그램이 필수적으로 포함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비용이 문제라면 통통톡에 문의해달라”면서 “무제한적인 자원을 갖고 있지는 않아 즉각적 도움은 어려울 수 있으나 기다림을 함께할 수 있으면 지원 가능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동행은 저임금과 과로, 전망 부재 속에서 떠나는 활동가들을 돕기 위해 2013년 만들어졌다.

 

여진 동행 활동가는 “2013년 10월 활동가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설문조사했을 때, 위기 시 지원 가능한 안전망에 대한 욕구가 컸다. 이를 기반으로 동행의 사업 계획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동행은 질병이나 사망, 상해시 지원뿐만 아니라 상호부조사업을 통해 활동가들의 경조사를 지원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동행은 경제안전망기금 사업으로 경제적 위기 시 낮은 이율로 긴급 생활 자금 대출도 한다. 여진 활동가는 “주거보증금, 누적된 가게 부채 대출과 함께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의료비 지원이다. 갑작스러운 수술로 의료비가 높게 나올 경우, 카드 대출이나 고이율의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불안정한 가게 경제로 이어진다”면서 “빈곤과 불안정한 생활에 의한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저리의 대출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조한진희 박종필추사 집행위원장은 “활동가들이 사회의 미래는 고민하지만 우리 삶의 미래는 고민하지 못하는 게, 나의 미래를 불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운동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 당장 직접적 대안이나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다만, 아프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훨씬 건강이 좋아진다고 한다”면서 “오늘 자리는 활동가 건강권 논의가 잘 되지 않는 현실에서 약간의 물꼬를 트는 자리였으며, 향후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라운드테이블을 꾸려보겠다. 조직 내에서도 이러한 고민을 이어나갔으면 한다”며 네시간 30분가량 이어진 포럼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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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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