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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는 말, 우리는 왜 하지 못할까?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 ①
지금 여기 활동가의 건강권
등록일 [ 2019년07월29일 11시34분 ]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박종필 추모사업회(준)는 지난 7월 24일 활동가들의 건강권을 고민하는 추모포럼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를 열었습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활동비와 과로한 노동, 불투명한 전망 등은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겪는 현실이나 이제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국가폭력 등 고통의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은 피해당사자와 함께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활동하지만 정작 자신의 미래는 꿈꾸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에 비마이너는 ‘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논의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하며, 추모포럼에서 발표된 글들을 기획 연재합니다. 

 

또한, 비마이너에서는 8월 31일까지 ‘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자유기고를 받습니다. 게재되는 글에 한 해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며, 필요시에는 익명 투고도 가능합니다. 글은 비마이너 메일(beminor@bemino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_ 편집자 주


- 활동가 건강권 포럼을 제안하며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여러 이유로 건강하기 쉽지 않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열망 속에서 일상적으로 과로하거나,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연대하다가 고스란히 고통을 흡수하기도 하고, 조직 문화에 극도로 실망하면서 정서적 손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영상활동가 박종필은 간암 선고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질병이 활동 과정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을지라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활동가들이 활동 과정에서 심장마비나 급성질환으로 사망하거나, 질병을 얻어 투병 생활을 하거나, 몸이 아프지만 적절한 치료를 미루며 활동을 이어간다. 어쩌면 육체적이든 정서적이든 건강한 활동가가 드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활동가들이 중증진단을 받거나 사망했을 때만 잠시 ‘활동가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시적으로 상승할 뿐, 적극적으로 논의가 진전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활동가 건강권’ 논의가 필요함에 대해 운동사회 내 이견은 없겠으나, 조직들은 각자의 현안만으로도 늘 허덕이게 된다.

 

안개 낀 강가 앞. 물기 어린 나무바닥 위에 빨간색 후드옷을 입은 사람이 등을 보이고 앉아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이에 박종필추모사업회에서는 활동 중에 죽음을 맞이한 활동가 한명의 죽음을 기리는 것을 넘어, 또 다른 활동가들의 죽음을 막고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활동이 가능한 환경 조성을 위해 활동가 건강권 포럼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번 포럼을 통해 활동가 건강권 이슈가 사회적으로 환기되고, 지속가능한 활동 구조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논의의 물꼬가 조금씩이나마 더 트이기를 기대한다.

 

- 질병의 개인화

 

활동가들과 건강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건강을 위해 헬스나 요가 같은 운동을 하지 않는 자신을 탓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혹은 불규칙한 나쁜 생활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잦다. 하지만 사실 출퇴근 사이 짬을 내서 헬스장에 가거나,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지키는 것은 활동가의 조건에서 극히 어려운 일이다. 대체로의 활동가들은 야근이 잦고, 투쟁 사안에 따라 주말도 없는 일이 빈번한데 이런 현실에서 규칙적인 생활과 헬스장은 엄청난 정신승리 속에서 가능하다.

 

이렇게 ‘건강을 개인이 노력하면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사고는 박종필의 죽음 앞에서도 드러났다. 장례식장에서는 그가 술을 줄이지 못해서 죽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슬픈 목소리에 담겨 떠다녔다. 그가 술을 많이 마셨던 것은 사실이지만, 술을 많이 마실 수밖에 없었던 여러 환경은 휘발된 채 술을 줄이지 못했던 나약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선후가 전도된 이야기다. 통상 빈곤할수록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현실은 자원이 적은 이들에게 술과 담배가 저렴한 위안이자 힘겨운 현실을 잠시라도 대응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말한다. 많은 활동가들은 빈곤층에 속하고, 술과 담배가 가장 손쉬운 휴식, 취미, 위안의 수단이라는 점은 안타깝지만 우리의 현실이다. 사실상 술과 담배를 줄이는 것은 삶의 환경 개선 속에서 가능한데, 환경의 개선 없이 혹은 환경적 요소를 누락시킨 채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은 한계가 명백해 보인다.

 

- 건강 손상과 말하기의 어려움

 

적지 않은 이들이 활동 과정에서 건강 손상을 겪는다. 건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뚜렷한 이유가 있는 급성부터, 하나의 원인으로 규정할 수 없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건강손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각자 자신의 질병 이력과 활동 역사를 대조해 보면 길고 긴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나의 경험을 몇 가지만 열거해 보자면, 25년 전 단식 농성을 하며 갖게 위장병은 긴 세월 고통을 낳았지만, 모두 다 아프고 힘들었기 때문에 침묵하게 됐다. 13년 전 농성장에서 중증장애인 동료를 활동보조 하다가 삐끗한 허리는 지금까지 고질적인 통증을 만들고 있지만, 그 동료가 미안해할까 봐 말하지 못했다.

 

이후 다소 심각한 건강손상은 10년 전에 발생했다. 2009년 팔레스타인 현장 활동을 하러 갔을 때, 3개월 차부터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후 몇 년간 지속해서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과 비정상적 증세가 나타났다. 이를 두고 의료인들은 팔레스타인 현장 활동 과정에서 독성물질에 노출된 것 같다고 말했다(팔레스타인은 점령이 장기화되면서 독성물질에 의한 희귀 난치질환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된다). 이후 몇 년간의 투병 생활이 있었고 지금은 투병과 완치 경계의 몸으로 산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 과정에서 건강이 손상됐다는 말을 하기 어려웠다. 운동사회에 가해질 수 있는 비난(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들은 현장 연대 활동을 떠나기 전, ‘본 현장 활동은 온전한 개인의 의지와 선택이며 어떤 위험이 발생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라는 자필 서약서를 조직과 지인들에게 보내 놓는다. 이는 향후 발생할지 모를 위험과 보수 언론 등의 공격을 대비해 조직과 운동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다른 활동가들이 가질 염려와 미안함 등의 감정 앞에서 말하기는 주저되었다. 결국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여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쿠프리 깟둠’ 마을에서 매주 열리는 불법 유대인 정착촌 반대집회 중. 맞은 편에 보이는 주홍색 지붕이 유대인 정착촌이다. 사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각각의 이유가 있다. 어떤 활동가들은 건강이 안 좋아서 힘들다고 말하기에는 자신보다 더 힘든 ‘당사자들’을 떠올리며 말을 꺼내지 못한다. 혹은 자신보다 더 힘든 조건에서 활동하는 다른 활동가 동료에게 미안해서 말할 생각을 못 하기도 한다. 건강이 안 좋다고 말하면 동료가 더 많은 일을 떠맡게 될까 봐, 다들 아프고 힘든데 아프다는 말을 굳이 하는 게 미안해서, 어차피 대안도 없는데 동료들 힘만 빼는 것 같아서 등등 각각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말을 삼킨다. 우리가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공감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만든 결과는 무엇이었나 돌아본다. 우리가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을수록, 활동가들이 아프게 되는 현실은 파악되기 어렵고 결국 변화되기 어렵다.

 

- 치료비와 안전망

 

다들 활동가로서 곤궁한 삶을 ‘선택’했지만, ‘아프면 어쩌나’라는 불안 한 자락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나의 경우도 지난 십 년 사이 목돈이 들어가는 수술이 몇 차례 있었고 생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빚을 지지 않을 수 있었다. 동료들이 현금부터 농산물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있었고, 때로는 나의 건강 조건에서 가능한 ‘알바’를 연결해 주기도 했다. 동료들의 도움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살 수 있었다. 동료들의 의리가 안전망이자 복지제도였던 셈이다.

 

또한 일부 의료비와 관련해서는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지원(여성재단 여성운동 활동가 수술비 지원 사업, 일부 병원들의 활동가 검진 사업 등)에 의존했다. 이런 제도들은 통상 서류 심사를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의 경우는 다행히 지원에서 떨어진 적 없으나, 주지하다시피 선별적 복지는 필연적으로 사각지대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조직에 속하지 않은 개인 활동가들이나, 상대적으로 활동 이력이 적은 청년 활동가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도 있고 위축감에 지원 자체를 주저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무상의료 투쟁을 열심히 하자라는, 올바르지만 다소 맥 빠지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알다시피 무상의료 세상이 완성되기 전에 무수히 많은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아플 것이고,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음으로 떨어질 수 있다. 더 이상 동료들을 맥없이 질병과 죽음으로 잃을 수 없다. 지금 여기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해서 찾아야 한다.

 

조한진희 박종필추모사업회 집행위원장이 지난 24일 활동가 건강권을 다룬 ‘박종필 추모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정서적 건강과 안녕

 

활동가들은 여러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연대하면서 그 고통을 직간접적으로 흡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국가폭력이나 성폭력 등 다양한 현장에 연대하면서 정서적 고통과 상처를 입기도 한다. 견디기 어려운 분노, 해소되지 못하는 고통은 정서에 남는 독성물질이 된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활동이 바쁘다는 이유로 정서적 치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외에도 정서적 건강은 조직 내외의 문화에서도 온다. 활동가의 삶이 강퍅하고 곤궁하더라도 그나마 나은 건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고, 그 안에서 혈연을 비롯한 어떤 관계도 뛰어넘는 ‘관계’와 ‘신뢰’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점점 그마저도 회의적으로 느껴진다는 이들이 많다. 한국 사회의 강도 높은 불안과 분노 그리고 높은 자살률로 상징되는 헬-조선 현실은 운동사회도 예외일 수 없는 듯하다. 열패감 속에서 갑질, 혐오, 차별이 강화된 사회라고 하는데, 운동 사회 안에서도 다양한 괴롭힘과 따돌림으로 고통받는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회단체에서 조직 내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당하는 사례들은 기본적으로 조직 내 민주주의의 문제겠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 지금 여기의 연결

 

사실 운동사회라는 단어는 굉장히 광범위하고, 활동가라는 정체성도 복잡하다. 특히 활동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각자의 사상, 가치, 신념, 세대, 문화에 따른 정체화가 다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최근 자각한 씁쓸한 현실은 이런 모습이었다. 여전히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 많은 활동가들은 저녁 없이, 주말 없이 치열하게 헌신적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요구에 의한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고 그 안에서 ‘만족’을 느끼며 활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적절한 쉼이 없는 치열함이 존경을 받을 수는 있으나, 신진 활동가들의 진입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활동해 왔는데 오히려 지속가능한 활동과 활동가 재생산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속가능한 활동 환경은 활동가 한명 한명의 건강, 복지, 인권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한 것이다. 한 번에 세상의 변혁이 완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운동이라는 것은 거대한 이어달리기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다음 이어달리기 주자를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지속 가능한 활동 환경을 위해 아픈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해석하지 않는 문화, 아프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문화, 적절한 쉼이 권장되는 문화, 잘 아플 권리가 보장되는 운동 사회 조직문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미국의 사회역학자 리사 버크만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망이 두터울수록 건강하다고 한다. 조사를 해보니, 사회적 관계망의 연결 정도에 따른 사망률이 1.8배에서 2.7배가량 차이 났다고 한다. 연결될수록 건강해진다는 의미다.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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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진희 박종필추모사업회 집행위원장 iingmodo@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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