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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운동의 지향과 공동체의 일상은 어떻게 만나고 있나요?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 ⑥
은사자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등록일 [ 2019년08월06일 17시27분 ]

고 박종필 감독 2주기를 맞아 박종필 추모사업회(준)는 지난 7월 24일 활동가들의 건강권을 고민하는 추모포럼 '사회운동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를 열었습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활동비와 과로한 노동, 불투명한 전망 등은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겪는 현실이나 이제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국가폭력 등 고통의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은 피해당사자와 함께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활동하지만 정작 자신의 미래는 꿈꾸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에 비마이너는 ‘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논의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하며, 추모포럼에서 발표된 글들을 기획 연재합니다.


또한, 비마이너에서는 8월 31일까지 ‘활동가 건강권’에 관한 자유기고를 받습니다. 게재되는 글에 한 해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며, 필요시에는 익명 투고도 가능합니다. 글은 비마이너 메일(beminor@bemino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_ 편집자 주


- 운동의 지향과 공동체의 일상이 만나는 지점, 조직문화 점검하기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아래 상담소)는 작년 한 해 활동을 통해 ‘시민사회단체 성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니까          이/가 직접 만드는 조직문화’라는 워크북을 만들었다.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었던 ‘조건’이 무엇인지, 조직이 용인하고 허용해온 건 무엇인지를 살펴볼 때 성폭력 사건이 보다 정의롭게 해결 가능하기에 조직문화의 관점에서 성폭력을 풀어보고 싶었다.

 

이런 고민은 꽤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인데, 2012년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토론회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공동의 가치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고 어느 정도 자발성을 가진 구성원이 모인 결사체라는 점에서, 공동체 내 성폭력은 다른 성폭력과는 다른 고통을 초래하고 다른 해결 양상을 보였다. 성폭력은 ‘사건’이기 이전에 조직의 남성 중심적 문화의 누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건 이후 어떤 조직문화로, 어떤 공동체로 나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해왔다.1) 또, 2016년 말부터 이어진 #○○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로 ‘성폭력이 가해와 피해자 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공동체 문화를 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에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토론회 자료집도 읽었다. 그런데 나아가서 ‘어떻게 문화를 점검하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할지 어렵다’라는 상담전화를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공동체로부터 몇 차례 받게 되었다. 종종 ‘성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라는 이름의 강의를 요청받기도 했으나, 조직문화는 소위 ‘전문가’가 진단해주고, 솔루션을 주는 형태로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이 고민할 때 변화한다고 생각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찬찬히 조직문화를 점검해볼 수 있는 도구인 워크북을 만들게 되었다.

 

지난 6월 24일 박종필 추모포럼에서 발언하는 은사자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사진 강혜민
 

-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에게도 몫이 있다

 

워크북 작업을 위해 시민사회 단체에서 활동하고 조직문화를 고민하는 11명의 활동가를 인터뷰하였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 공동체와 조금씩 합을 맞춰가고 있는 사람, 공동체 조직문화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으로서 새로운 구성원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 등 다양한 ‘경험치’를 가진 다양한 연차의 공동체/구성원을 만나고자 하였다.

 

11명의 인터뷰이 중에는 민우회 1-2년 차 활동가도 포함되어 있는데, 2명의 활동가가 섭외된 데에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워크북을 만들면서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조직문화는 무엇이라고 느끼는지 우리 이야기부터 해보자며 두 차례 내부 집담회를 진행한 바 있다. 이야기를 신나게 하던 중 새삼 상담소 활동가는 이미 최소 3년, 길게는 17년 동안 활동을 해온, 민우회라는 공간이 익숙해진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당시 1-2년 차 민우회 활동가와도(민우회는 3개의 사무처 팀, 2개의 부설기관으로 이뤄져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해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1-2년 차 활동가가 감지하는 것에는 상담소 활동가가 느끼는 조직문화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한 인터뷰이는 “무엇이 낯선지에 대한 이야기는 자꾸 들어야 되죠. 평소에 불만이 있고 할 말을 못 했던 사람들도 말을 하는 과정 속에서 얘기가 정리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듣는 기회를 갖지 않는다면 그런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을 거예요.”2)라고 말했다.

 

즉, 모두에게 몫이 있는 것이다. 말을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의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

 

“신입활동가가 뭔 얘기를 했는데 기존 구성원들이 어떤 집단성을 형성해가지고 되게 방어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면, 잘 풀리지 못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 같거든요. 그 활동가의 얘기에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조직문화에서 되게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워크북, 38p)
“나한테 익숙한 거라도, 다른 사람이 낯설게 느끼는 게 무엇인지 듣고 일단은 ‘그럴 수 있겠다’까지 하는 것, 그걸 잘해야 돼요.” (워크북, 52p)

 

말하는 사람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또, 스스로도 이 조직 구성원으로, 조직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다른 구성원과 함께 이야기 해야 한다.

 

“문제제기 하는 사람이 조직과 자신을 분리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해요. ‘나도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이다’를 아는 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하더라구요. 기존의 문화가 맞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지켜보고 조금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자기 몫이라는 게 항상 있으니까. (...) 얘기를 하는 사람도 얘길 할 때 ‘이 조직이 안 들을 것이다.’라고 방어벽을 치고 얘기하지 말고 처음엔 얘기를 그냥 다 해봐요.” (워크북, 53p)

 

이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변화가 가능하다.

 

- 조직문화, 시민사회단체도 일반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 페이지에(이하 대나무숲) 올라오는 글의 대부분은 조직문화 혹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어떤 이유로 조직을 떠나는지 말해줄 애정조차 떨어졌다는 활동가, ‘이렇게는 일 못 해요’라고 외치는 활동가. 이 조직에서는 더 이상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킬 수 없어서 떠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대나무숲에 올라온다.

 

페이스북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 갈무리
 

시민사회가 무엇인지는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일반 기업과 차이를 찾아본다면 시민사회는 ‘정의(justice)’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11명의 인터뷰이를 인터뷰하면서, 시민사회단체 조직문화와 일반 기업의 조직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시민사회단체도 여전히 담배 이슈가 이야기되고, 다과는 여성 활동가의 몫으로 여겨진다. 회계, 조직 운영과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팀에는 여성 활동가가 주로 배치되고 남성 활동가는 주로 정책이나 사업을 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우리는 다르다’, ‘회사와는 다를 것이다’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에서 조직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구성원은 더 어려움을 겪는다. 문제제기 하는 것이 ‘조직’에 대한 문제제기로, 조직이 공유하는 ‘가치’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질까 문제제기를 꺼리게 되고, 그러한 상황 자체에 또 어려움을 느낀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있는데, 조직에서조차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을 마주하기도 한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만난 반가움은 잠시, 구성원을 동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속에서, ‘시키는’ 일을 단순히 처리하는 실무자로만 기능하게 두는 조직문화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 보고자 한 문제제기에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지쳐간다.

 

조직문화를 점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말 아니었다. 민우회도 올해 조직문화 점검을 하고 있는데, 그 활동을 하며 새삼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조직문화 점검 활동을 ‘성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라고 이름 붙였다가, 저렇게는 왠지 어딘가 완벽히 성평등한 조직문화라는 게 있고, 거기를 향해 달려 가야 하는 느낌이라 다소 압박스럽다(!), 조직문화 점검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인데 ‘만들기’로 끝나니 만들고 나면 끝나는 거 같다, 이런 이야길 나누다 ‘조직문화 스트레칭’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들 이 활동에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이야기 해봤다. 놀랍도록 가지각색인 여러 활동가의 기대를 들으며 조직문화를 점검하는 의미를 찾았다. 옆에 있는 동료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시간 내어 확인하는 시간의 귀함을 깨달았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할 시간을 내지 않으면 말하기 쉽지 않다. 크게는 조직문화 점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침에 출근해 인사할 때부터 회의 안건지를 만들 때, 점심을 먹을 때, 누군가 실수했을 때, 손님이 왔을 때, 퇴근을 할 때까지. 출근부터 퇴근까지(혹은 퇴근 이후에도) 조직문화가 작동되고, 그렇기에 매 순간 점검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상 속에서 때마다 잘 챙겨봅시다’라고 하면 바쁜 활동과 현안 속에서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운동의 지향에, 바쁘고 정신없이 활동하는 현실에, ‘에이, 그래도 좀 다르지 않을까’ 마음을 비집고 올라오는 목소리에 기대지 않는 것이 (어렵지만) 필요하다.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향해 갈 때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고, 조직에 오래 남아 활동가로 살아갈 수 있다.

 

지향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내 안에, 나와 동료의 관계 속에 녹아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 꾸준히 살펴봐야 한다. 조직문화는 이미 만들어져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가진 공동체도 언제, 어떤 순간 ‘무너질지’ 모른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에게 몫이 있음을 알고 고민할 때 조직문화는 변화하고 갱신될 수 있다.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시민사회 공동체 안과 밖에서 활발히 토론될 수 있길 바란다.

 

 

*     *     *

 

1)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2012, 9p-10p
2)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시민사회 성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 워크북: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니까        이/가 직접 만드는 조직문화’(아래 워크북), 2018,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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