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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사 대안학교②] ‘농인은 수어로 소통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하는 곳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수어를 배우면서 비로소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하다
등록일 [ 2019년08월20일 11시24분 ]

김주희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아래 소보사) 대표교사는 2006년부터 수어 공부방을 열어 농학생들을 가르쳤다. 농학생들은 농학교를 다니면서도 소보사를 찾아왔다. 소보사 공부방은 주택 반지하, 교회 골방, 심지어 패스트푸드점 한켠을 전전하면서도 명맥을 유지했다. 소보사 공부방에서 공부했던 농학생들은 어느덧 소보사 대안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김 대표교사는 공부방 시절 어느 곳을 가든 ‘수어가 제1언어인 농학생에게 수어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파했다. 그런데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느냐?’의 물음에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7년 직접 대안학교 ‘소보사’를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어로 소통이 이뤄지고 수업을 하는 곳, 서울 북쪽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소보사에 다녀왔다. 소보사 방문기를 두 편에 걸쳐 보도한다.

 

* 이 글에서는 농인과 청각장애인, 청인 개념을 분리하여 사용했다. 농인(聾人)은 한국수화언어법에 따르면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청각장애인은 의학적 관점을 내포한 정의로, 병리학적으로 청력에 손상이 있는 사람들을 칭한다. 청인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 기사 ]
① 농교육 현장에서 농학생이 설 곳은 어디인가?
② ‘농인은 수어로 소통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하는 곳

 

소보사 벽면에 ‘농인=우리는 수화로 말하고 눈으로 들어요’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사진 허현덕
 

- 수어를 배우면서 비로소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하다

 

일반적으로 언어를 습득하는 나이는 만 2세부터다. 그러나 농인의 경우, 제1언어라 할 수 있는 수어를 접하게 되는 시기가 천차만별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수어를 금지당하거나 경험하기 힘드니, 농인들 중 상당수는 수어를 농학교에 다니면서, 혹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접하게 된다.

 

“언어 습득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는 법인데, 농학생들은 구화로 소통하기까지 5~6년이라는 긴 시간을 허비해요. 그러다 보니 자신의 언어가 없는 시간이 매우 길어요. 저는 농인은 어릴 때부터 수어에 노출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공와우수술을 했더라도 수어로 언어능력을 향상시켜야 해요. 농인 아이들이 수어를 접했을 때, 신체활동으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언어를 담당하는 뇌가 활성화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답니다. 그만큼 농인은 자연스럽게 수어를 언어로 인지하게 된다는 거죠.” (김주희 소보사 대표교사)

 

그래서인지 농인들은 일단 수어를 접하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고, 사고의 깊이가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배우는 것처럼 농인들은 수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요. 전 초등학생이 돼서야 수어를 배웠어요. 주위에 수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부모님은 수어 쓰는 걸 싫어했고요. 학교에 들어가니 선배들이 수어를 잘하더라고요. 기숙사에서 생활한 덕분에 수어를 제대로 배우게 됐죠. 수어를 배우니 순간적으로 시야가 넓어졌어요. 신세계였어요. 수어를 하면서 비로소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죠. 수어를 배우기 전의 제 생각은 잘 떠오르지 않아요.” (유현주 소보사 교사)

 

유현주 소보사 교사는 소보사 공부방에서 수어로 공부하고 소통하면서, 그동안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동안 의사소통이 잘 안 됐을 때 자신의 탓으로 돌리던 태도에서 벗어났다. 소보사 공부방부터 대안학교까지 9년째 교사 일을 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농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김주희 선생님을 만나고 농체성과 수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막혔던 것이 확 열렸어요. 농인 친구들에게 이곳에 와서 지식을 얻고 내 삶, 농인으로서의 삶,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서 이후의 삶은 본인들의 선택이지만요.” (유현주 소보사 교사)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소보사 사람들의 모습. 사진 허현덕

북한산 속에 자리잡고 있는 소보사 학교의 모습. 사진 허현덕

 

김주희 대표교사는 대부분의 농학생들은 화조차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구화로 청인과 같은 의사소통에 도달하려는 노력은 늘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만났던 농학생들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못했어요.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했기 때문이에요. 자신은 늘 말을 잘 못 하고, 말을 잘 알아듣지 못 하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이니까요. 자신을 그저 ‘청각장애로 배우는 게 어려운 사람’이라고 칭했어요. 그러다 소보사에서 수어로 공부를 하다 보면 이곳에서는 모두 이해가 되는 내용이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스스로 묻게 되죠. 그제야 수어가 있었다면 자신이 더 행복하게 학창시절을 보냈을 거라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어요. 나 지금까지 뭐했냐고,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다고… 이런 아이들에게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기엔 어른으로서 너무 부끄럽잖아요…” (김주희 소보사 대표교사)

 

유현주 교사는 이것이 오디즘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오디즘(Audism)이란 청능주의로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청인들이 농인보다 우수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수어를 기피하는 것이다. 청인 중심의 사회에서 농인들은 억압된 상황에 압도되어 청인 위주의 사고를 가지게 된다. 가정에서 수어를 금지당한 농인들은 밖에서도 수어 쓰기를 꺼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을 비하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가 언젠가는 청인 사회에 통합돼야 하기 때문에 구화로 소통해야 한다고, 필요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구화를 쓰는 것 자체가 자신의 장애를 잠재우고 극복하고, 말하려고 애쓰고, 잘 들으려고 애쓰는 거잖아요? 물론 잔존 청력이 매우 좋아서 구화를 익히고 청인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 전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너는 지금부터 청각장애인이 아니야. 비장애인처럼 살아야 돼’라고 하는 건 전혀 다른 것 같아요.” (김주희 소보사 대표교사)


- 수어를 부끄러워하면서 농정체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김주희 대표교사는 고교시절 농인과의 교류를 계기로 수어를 배웠다. 당시 또래 농인 친구들이 ‘자신은 농인인 게 부끄럽고, 대학 진학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말이 굉장히 의아했다고 떠올렸다. 그때 정체성 확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농인인 것을 부끄러워했어요. 그런데 반면 어디를 가든 수어를 사용하고, 농인인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친구도 있었죠. 수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친구는 삶을 개척하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게 남달랐어요. 그때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게 된 것 같아요.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김주희 대표교사는 1999년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농인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농인들이 쓰는 수어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농인 어르신들을 따라다니며 수어를 새롭게 배웠다. 김 대표교사는 농인 어르신들은 한글은 모를지언정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가까스로 수어를 잘하게 되고, 농인 학생들을 만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많은 학생들이 인공와우 수술을 했는데, 구화도 잘 안 되고 수어도 잘 안 됐던 것이다. 대화 자체가 힘든 지경이었다.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인공와우와 통합교육이 농인 아이들의 소통에는 더 어려움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수어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2006년부터 소보사 공부방을 차렸어요. 그때부터 수어로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연구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농교육학이나 농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가 없어서 외국의 사례를 많이 참고했어요. 제가 농인은 아니지만, 농인이 어떻게 배워가는지에 대해 아는 농교육 전문가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김주희 소보사 대표교사)

 

유현주 교사는 농정체성이 단순히 수어를 쓴다고 확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농인이라는 것을 당당히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농인인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우리는 어딜 가든 통역사를 당당하게 요청합니다. 일부 농인 중에는 겉으로는 농정체성이 있다고 하는데, 청인 앞에서는 구화만 하려고 하고 수어 쓰는 것을 창피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이런 농인은 진정한 농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수어를 쓰지 않으면서 농인이라는 정체성을 차용하기만 한다고 진정한 농인이라고 할 수 없죠.” (유현주 소보사 교사)

 

소보사 학교의 시간표인 ‘하루 흐름’, 학기 시작할 때 학생과 교사가 함께 짠다. 사진 허현덕

 

- 우리는 소보사에서 농정체성을 지키고 지내고 있습니다

 

무너진 농교육에 대한 위기의식은 농사회의 오랜 고민이다. 일찍이 2006년 수어중심의 대안학교인 등대농학교가 문을 열었다. 등대농학교에서는 수어를 제1언어로 하고 한국어 읽기·쓰기를 제2언어로 하는 이중언어 교육이 이뤄졌다. 등대농학교는 농교육 대안학교를 농사회에 제시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농사회의 많은 지지에도 재정난을 이겨내지 못 했고, 3학기만 운영되고 2007년 폐교했다.

 

그리고 2017년 소보사 대안학교가 문을 열었다. 농교육 대안학교에 대한 김주희 대표교사의 굳은 의지로 세워진 소보사는 학비도 다른 대안학교보다 적고, 입학금도 없다. 지역사회 차원에서 소보사의 교육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바자회를 열고 후원해주는 덕에 간신히 운영을 이어나가고 있다. 운영비 대부분은 학생들의 교재비와 체험학습 등으로 쓰인다.

 

소보사는 학생과 교사가 학기 시작 시점에 함께 교육과정을 짠다. 따라서 매 학기마다 교과목이 바뀐다. 주말에 있었던 일을 나누고, 숲 체험을 하고, 노작을 하고, 개별연구 주제를 정해서 연구하고, 책을 읽는 모든 게 교과목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공부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는 데 최적화된 환경이다. 텃밭을 가꾸고, 식물과 동물을 벗 삼아 생활한다. 수어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눈다. 청인이 언어유희를 즐기듯 수어 유희를 즐긴다.

 

미인가 대안학교이기에 정규교육 과정을 따르지 않고, 그럴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김주희 대표교사는 강조했다. 다만 대학진학을 위한 학력인정 검정고시반을 따로 두고 있다.

 

소보사 대안학교의 마지막 일과는 언제나 반성과 칭찬의 시간이다. 교사 3명과 학생 3명이 둘러앉아 오늘의 공부는 어땠는지, 하루 일과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아침에 정한 ‘오늘의 주인공’에게 목표만큼 잘 대해주었는지, 그리고 칭찬하고 싶은 사람을 지목해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교사와 학생들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소보사 학생과 교사들의 모습. 사진 허현덕

 

소보사는 수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수어로 말하고 생각하도록 한다. 농문화를 지키고, 이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농정체성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농인만의 고립된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반짝반짝어린이집에는 청인 아이도 입학할 수 있고, 수어를 할 수 있는 청인 교사도 2명이다. 학생의 부모도 소보사 공동체의 일원이다.

 

소보사를 세운 김주희 대표교사는 청인이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청인이 농인 위에 군림하려고 만든 단체가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견고한 농정체성과 농교육관에 ‘고집스러운 단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김주희 대표교사는 농인이 자신의 언어로 소통하고 공부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실천하는 곳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소보사는 농정체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농정체성을 전하고, 배우는 그런 학교가 됐으면 해요. 농인이 지극히 ‘정상’인 학교. 수어만 쓴다면 배우고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없는 공간. 농인 아이들이 여느 아이와 같이 울고 싸우기도 하고, 재밌게 놀면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이요.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처럼 ‘소리가 듣는 것만이 아니라 보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소리를 보는 사람들이 바로 농정체성을 지닌 농인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언어가 수어라는 사실을 소보사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요.” (김주희 소보사 대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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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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