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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취약계층의 불평등한 여름 나기 “주거환경 개선부터 논의돼야”
주거취약계층의 환경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단편적·지엽적 폭염 대책 ‘도움 안 돼’
비정적 주거 개선과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 대책 마련해야
등록일 [ 2019년08월26일 17시05분 ]

2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폭염으로 인한 주거취약계층의 온열질환 현실과 건강권 인권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허현덕

 

전 세계적으로 온난화와 기온상승의 추이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 발생빈도가 2050년에는 2~6배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9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폭염을 재난으로 추가했다. 이에 따라 14개 중앙부처 및 지자체가 참여하는 범부처 대책이 마련됐다. 그러나 현재의 폭염 대책은 정부부처 간 업무 연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파편적이고 지엽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런 가운데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쪽방, 여인숙,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에서 사는 주거취약계층 중심의 폭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은 주거가 취약한 만큼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폭염 대책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주거취약계층의 ‘불평등한 여름 나기’ 실태를 짚고, 이들의 생존권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2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폭염으로 인한 주거취약계층의 온열질환 현실과 건강권 인권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서형수·윤소하 국회의원과 2.18안전문화재단, 빈곤사회연대, 반빈곤네트워크, 인권운동연대 등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 주거취약계층의 환경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단편적·지엽적 폭염 대책 ‘도움 안 돼’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대표적인 폭염 정책인 선풍기 나눠주기, 에너지바우처 제도, 무더위쉼터는 주거취약계층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비적정 주거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쪽방’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아스팔트 열기, 빌딩 에어컨 열기 등으로 열섬 현상이 일어난다. 대부분 노후된 건물에 있어 단열기능이 없으니 벽이나 옥상, 천장, 복도 등 어디에서도 열기가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낮에 데워진 열기가 밤에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폭염에는 쪽방 외부보다 내부의 온도가 훨씬 높다.

 

황승식 서울대보건대학교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찜통 같은 쪽방에서 거주인들은 선풍기 하나로 폭염을 이겨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쪽방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 사용은 더위를 식히는 데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황승식 서울대보건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무더위 가이드라인에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만 틀어놓고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질식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는 지자체와 기업에서 주거취약계층에게 매년 선풍기를 나눠주고 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다.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 소장은 “쪽방에 에어컨 설치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전기세, 누진세, 전기용량의 한계, 건물파손의 우려로 건물주의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에어컨을 설치하더라도 좁고 밀폐된 쪽방의 특성상 더욱 습해지고, 온도가 지나치게 낮아 생활에 불편이 따랐다”고 설명했다.

 

쪽방 거주인들은 에너지바우처 제도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바우처는 △국민행복카드 △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 요금 자동 차감 등 두 가지 방식으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쪽방은 공과금을 포함해 월세를 내는 경우가 많고, 냉·난방기구가 없거나 건물주의 사용 규제로 제도를 활용하지 못 한다. 이에 장민철 소장은 “에너지바우처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저소득층과 주거취약계층에 냉·난방용품을 대여하고 설치, 수리 지원 사업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따라서 에너지바우처 대상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현재 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을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자로 제한하고 있는데, 에너지 소비의 최종 단계가 주거라는 점을 고려해 주거급여 수급자도 대상자로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더위쉼터’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현재 전국 은행, 주민센터 등에서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쪽방 거주인들은 이용하지 않는다. 황승식 교수는 “대구 쪽방촌 거주인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한 결과 무더위쉼터 이용이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다고 생각해 이용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무더위쉼터보다 오히려 병원 입원에 대해 거부감이 덜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동현 상임활동가 또한 “무더위쉼터가 폭염 난민과 이재민을 양산하고 있다”며 “사람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내세운 정책이라지만 매년 같은 대책을 내놔서는 안 되고, 무더위쉼터가 근본적 해결책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 비정적 주거 개선과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 대책 마련해야

 

따라서 진정한 폭염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비적정 주거지에 최소한의 주거·안전 기준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비적정 주거로 인해 발생하는 폭염 문제는 ‘적정 주거로의 개선’과 ‘적정 주거로 이주’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모든 비적정 주거지에 대한 주거기준을 수립하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상임활동가는 ‘서울형 고시원 주거기준’은 강제력이 없고 고시원에 한정돼 무용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영국의 ‘다중주거시설에 대한 허가제도’, 미국의 ‘SRO에 대한 건축 기준’처럼 벌금 부과 등 강제력을 띤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지침에 따라 매입·전세임대주택 공급량의 15% 선까지 끌어올리고, 신청서상의 △병역 여부 △수입 대비 저축액 비율 △알코올 의존 여부 등을 체크하는 차별적 조항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은 주거취약계층의 폭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실태조사와 통계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현재 우리나라는 온열질환자와 온열로 인한 전체 사망자 통계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장민철 소장은 “대부분의 온열질환자가 병원에 가기 전에 다른 질병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빈곤층의 경우는 만성질환이 폭염으로 인해 심각해져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실제 수치보다 적게 잡히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라며 ‘초과사망자 산출’을 대안으로 내놨다. 초과사망자는 폭염 기간 동안 발생한 사망자 수가 평년의 사망자 수보다 몇 명이 더 발생했는지를 산정하는 것이다.

 

황승식 교수는 “현재 정부의 폭염 정책이 사후 처방에 가깝다”며 “폭염이 발생하는 7~8월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데이터만 구축해도 매년 발생하는 온열질환자와 사망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데이터와 통계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온열질환 통계보다 더 기초적인 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사망 일시와 사망 원인 등에 대한 통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현재 복지부가 노숙인 사망실태를 파악하고 있지만, 사망 원인 등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 더욱이 노숙인생활시설과 홈리스, 쪽방주민의 사망실태는 누락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신뢰할 만한 사망실태를 파악해야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다”며 “이들의 사망 시기와 원인을 파악하면 폭염과 같은 계절 대책 마련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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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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