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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65세 넘었다’고 활동지원 신청 못해… 좌절된 탈시설의 꿈
마로니에 8인이 떠난 김포 향유의집, 거주인 52명 중 11명이 ‘만 65세 이상’
주거지원 돼도 활동지원 없어 자립생활 포기 위기에 처한 김영수 씨
등록일 [ 2019년09월09일 17시55분 ]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은 2007년 법인 이사회가 해산되고, 2009년 장애인권단체의 추천자로 공공이사회를 구성했다. 2013년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재단 향유의집으로 명칭을 새롭게 했다. 사진 허현덕

 

고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설장애인의 역습(2009)’ 첫 장면은 ‘마로니에 8인’이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을 떠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로니에 8인과 배웅하는 직원들, 남아 있는 거주인들은 눈물을 보인다. 지난 3일 그곳을 찾았을 때 시설 밖의 모습은 그때와 다름이 없었지만, 내부는 밝고 환한 그림으로 분위기를 달리한 게 눈에 띄었다.

 

설립자와 그 일가의 횡령 범죄가 있었던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은 2007년 법인 이사회가 해산되고, 2009년 장애인권단체의 추천자로 공공이사회를 구성했다. 2013년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재단 향유의집(아래 향유의집)으로 명칭을 새롭게 했다. 향유의집 이사진들은 시설 정상화를 넘어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향유의집에는 52명의 거주인이 남아 있다. 이 중 20명은 올해 12월 서울시 지원주택 입주 공고에 지원할 예정이다. 지원주택은 거주시설에서 퇴소하여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공공 임대주택으로, 기존의 자립생활주택과 달리 일상지원서비스도 함께 제공되며 주택 소유를 장애인 당사자로 하여 주거 안정성을 높였다. 이러한 계획대로라면 향유의집에는 올해 말부터 30여 명의 거주인만 남게 된다. 법인은 남은 거주인도 단계적으로 자립생활을 추진하여 이르면 내년에 향유의집을 폐쇄할 방침이다.

 

남은 거주인들은 평균 22년 이상 향유의집(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살았다. 매우 긴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만 65세를 넘긴 거주인도 11명이다. 그런데 이들의 나이 듦이 자립생활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69세가 된 김영수(가명) 씨는 다른 거주인처럼 지원주택으로 자립생활을 꿈꿨지만 포기했다. 기존 활동지원서비스(아래 활동지원) 이용자의 경우, 만 65세가 넘으면 활동지원이 끊기고 노인장기요양보험서비스(아래 노인요양)로 강제 전환되는 것도 문제지만, 김 씨처럼 만 65세가 넘으면서 활동지원을 신청조차 할 수 없다. 노인요양은 받아봐야 하루 최대 4시간 밖에 안 된다. 전신마비인 그에게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다.

 

향유의집에서 김영수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24시간 활동지원이 된다면 어떻게든 바깥에서 살고 싶다”며 “10년 전 마로니에 8인과 함께 시설에서 나오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 “여기에 죽을 때까지 살기로 결심하고 들어왔어요.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그는 1991년 10월 27일, 살던 집 옥상에서 추락해 경추 4~5번 사이가 골절됐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수술도 받았지만,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다. 그 뒤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손끝으로 힘이 전달되지 않아 손도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러다 1992년 7월 4일 현 향유의집에 입소했다. 그리고 27년이 흘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시설에서의 첫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한 방에 5~6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고, 여름이었는데 선풍기 하나로 버티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처음 왔다고 문밖에서 시설 직원들이 내 얼굴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수군거리는 게 다 들려 왔어요. 그때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랬어요. 그때가 41세였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오래 살아 있을 줄은 모르고요.”

 

당시 이곳은 김 씨의 친구들이 전국을 수소문해 찾아낸 시설이었다. 서울에 있는 시설보다 넓고 공기가 좋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거주인들에 대한 처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모든 면에서 많이 좋아졌어요. 이사장 바뀌기 전엔 반찬부터 형편없었어요. 언젠가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 새우젓이 후원으로 들어왔는지, 그 짠 것을 반찬으로 주는데 정말 못 먹겠더라고요. 요즘은 그때에 비하면 좋아졌어요. 고기도 자주 나오는데, 이제 입맛이 없어 한 번씩 집어먹고 끝나요.”

 

고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설장애인의 역습(2009)’의 한 장면. 영상 캡처

 

- “김진수, 황정용 그 친구들 나갈 때 무리해서라도 따라 나갈 걸 그랬나 싶어요”

 

마로니에 8인은 2009년 6월 4일, 베데스다요양원을 떠났다. 그의 술친구였던 김진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과 지금은 고인이 된 황정용 씨도 그때 시설에서 나왔다. 김 씨는 당시 함께 따라나서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김진수가 나가자고 나가자고 그렇게 하는데, 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까 안 나갔어요. 이렇게 오래 있을 줄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나갔을 텐데 말이에요.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까 했는데, 징그럽게도 길게 살아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김 소장은 동갑내기 친구로 최근까지 그를 찾아 자립생활을 권유했다. 지역사회 정착금과 여러 가지 지원책을 제시하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자립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향유의집 측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24시간 활동지원을 대체할 서비스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지원주택 설명회를 듣고 나가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만 65세 이상은 활동지원을 못 받는다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더라고요. 깨끗이 포기했어요. 집만 주면 뭐 합니까. 꼼짝도 못 하고 집에만 있으라면, 죽으라는 소리밖에 안 되잖아요?”

 

서울시 지원주택이 마련된 4곳의 지역 중에는 김 씨가 젊은 시절을 보낸 곳도 있다. 언제나 그리웠던 그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설렘은 순간 절망으로 바뀌었다. 더욱이 오는 12월에 옆방 친구도 지원주택 입주 신청을 한다고 하니 마음이 더욱 심란하다.

 

“그 친구 나가면 직원들밖에 말동무가 없어요. 나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은데, 내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그리고 갈수록 몸 기능이 떨어져서 휠체어를 타면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어요. 길면 1시간이고 짧으면 40분이에요. 사고 때 골절된 무릎 때문에 발도 저리고. 골절된 목이 아프기도 하고… 그래도 24시간 활동지원이 된다면야 어떻게든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까 포기할 수밖에요.”

 

김영수(가명) 씨가 거주하는 방의 모습. (왼쪽) 침대와 텔레비전, 선풍기 등의 소형가전이 있다. 한 뼘 정도 창문이 열려 있다. (오른쪽) 벽에 걸린 달력에는 담당 직원의 스케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진 허현덕

 

-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별 서비스’ 불가능한 시설의 시간

 

현재 김 씨 혼자 거주하고 있는 방에는 침대와 텔레비전, 선풍기 등의 소형가전이 놓여 있다. 벽에는 큼지막한 달력이 걸렸다. 달력에는 ‘D1, D2’라는 단어가 쓰여 있고, 날짜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D1은 담당 직원이 오전 8시~오후 7시까지, D2는 오전 8시~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는 것을 뜻한다. 동그라미는 담당 직원의 당직일이다. 김 씨는 담당 직원의 스케줄에 맞게 은행 업무와 외출 등을 계획해야 하기에 직원에게 표시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유의집 관계자는 “직원 1명당 2명 이상의 거주인을 담당해야 하는데, 직원 휴무일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직원 1명당 7~8명을 담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거주시설에서 아무리 개별화를 노력해도 현실적으로는 개인의 삶을 지지하고 지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1명의 직원이 여러 명의 목욕, 용변처리, 세수, 방 청소, 식사 지원 등을 맡아서 한다. 따라서 김 씨가 목욕을 하는 날이면 옆방 거주인은 다음날 목욕을 해야 한다.

 

김 씨의 하루 일과는 단조롭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목욕을 하면 오전 시간은 그냥 지나가 버린다.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사이에 한 시간가량의 산책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때가 김 씨의 유일한 바깥나들이다. 나머지는 한 뼘 정도 열린 창문 밖으로 누워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다.

 

“하루에 한 번만 동네를 나갈 수 있어요. 봄에는 봄꽃 피는 곳에 가고 가을에는 가을꽃 피는 곳으로 가서 구경하죠. 그렇게 꽃 보면서 조용히 바람 쐬고 있으면 아주 시원하고 좋아요. 농부의 자식이라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서 그런지 벼 익고, 콩 익어가는 거 보면 마음이 편안해요. 뒤쪽으로 가면 논이 있는데 가을에 가면 벼가 익어가는 게 참 볼만하죠. 그쪽에 직원 한 분이 사시는데, (김)진수가 있을 때는 같이 한 번씩 들르곤 했어요. 계시면 좋고, 안 계셔도 좋고(웃음).”

 

거주인들이 저녁 식사를 마친, 7시가 되면 당직자 1명을 제외하고 직원 모두가 퇴근한다. 그때부터 거주인들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김 씨는 대부분의 저녁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면서 보낸다고 했다. 사소한 일로 직원을 부르는 것이 미안해서 선풍기도 혼자서 끄고 켤 수 있도록 노끈을 연결해놨다.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시설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직원이 저녁 식사 시간을 알렸고, 우리의 대화는 그대로 중단됐다.

 

“밥 먹으러 가야겠네요. 직원들 7시에 퇴근하니까 늦어지면 안 돼요. 직원들이 일지도 써야 하고 할 일이 많아요.”

 

그는 되도록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직원의 스케줄에 따라, 시설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삶을 살았다. 그 삶은 익숙해졌지만, 결코 좋아할 수는 없는 삶이었다. 그저 ‘다른 방법이 없어’ 체념하고 살았던 것뿐이다. 이제 겨우 자립생활의 길이 열렸지만, 65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그에게는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다.

 

“나가면 자유시간이 많아지잖아요. 낮에도 나갈 수 있고, 밤에도 나갈 수 있고. 내가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나이 먹었다고 나가지도 못해요. 나라에서는 지원주택으로 자립생활하라고 하면서, 65세 넘었다고 마음 놓고 시설을 나가지도 못하게 해요. 우리 같은 사람은 여기서 죽으라는 건지….”

 

활동지원이 제도화되면서 중증장애인들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즉, 현재의 ‘만 65세 연령 제한’은 중증장애인들에게는 ‘탈시설 연령제한’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시설 안에 있는 장애인들에게는 시설 밖을 나가는 문 자체가 폐쇄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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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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