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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시대의 악령들을 애도하기
[기획연재]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장애해방열사 9인의 삶을 기록하기에 앞서
등록일 [ 2019년09월26일 19시07분 ]

[편집자 주] 열사가 존재하기 위해선 그의 말에 응답하는 존재들이 있어야 한다. 열사의 말을 유서로써 손에 쥐고 체제 변혁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말이다. 진보적 장애운동에는 여전히 그러한 투사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매년 열사 추모제에서 열사의 생과 죽음, 열사가 남긴 말을 통해 자신을 조직하고 옆에 있는 자를 조직하며 운동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열사는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그러함에도, 장애해방열사들에 대해서는 파편적 정보만 있을 뿐 현재까지 정리된 이야기는 없다. 기억되기 위해 ‘이야기되어야 함’을 상기한다면, 열사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또한, 열사의 삶을 서술한다는 것은 승리자의 관점이 아닌, 억압당한 이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새롭게 기술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9년 하반기 비마이너는 장애운동의 물적·정신적 토대를 만든 장애해방열사 아홉 분의 흔적을 찾아 기록하는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를 기획 연재한다.

 

ⓞ [서문] 시대의 악령들을 애도하기
① 김순석(1952~1984.9.19) 장애인 이동권 등에 항의하며 유서 남기고 자결 _ 정창조
② 최정환(1958~1995.3.21) 극악한 노점단속에 항의해 서초구청에서 분신 _ 강혜민
③ 이덕인(1967~1995.11.28) 노점단속에 항의해 인천 아암도에서 망루 투쟁 중 의문사 _ 최예륜 
④ 박흥수(1958~2001.7.23) 장애운동에 헌신하다 질병으로 사망 _ 정창조
⑤ 정태수(1968~2002.3.3) 장애운동에 헌신하다 심근경색으로 사망 _ 홍은전
⑥ 최옥란(1966~2002.3.26) 기초생활수급권, 이동권 투쟁 중 심장마비로 사망 _ 김윤영 
⑦ 이현준(1965~2005.3.16) 장애운동 중 활동지원사가 없어 수면 중 사망 _ 여준민
⑧ 박기연(1959~2006.6.2)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 중 철로에 뛰어내려 자결 _ 박희정
⑨ 우동민(1968~2011.1.2)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 등에 헌신하다 질병으로 사망 _ 홍세미

 

* 글의 순서는 필자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유서 없이 남겨진 유산

 

나치 점령기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시인 르네 샤르(René Char)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지난 싸움의 경험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유산은 우리에게 유서 없이 남겨졌다.” 반파시즘 인민 전선의 형성과 함께 찾아온 자유의 경험이 향후 어떻게 계승되어야 하는지 알려지지도 않은 채, 한낱 퇴물로 전락해 버릴 것을 염려하여 한 말이었다. 물론 이후 세계는 살아남은 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경험을 상속받을 것이다. ‘지나간 일’은 ‘없었던 일’이 아니며, 망각조차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유서가 첨부되지 않은 유산이란 쉽게 제 갈 길을 잃는 법이다. 이후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누구 손에 쥐어져야 하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보물은 후대에까지 그 진귀함을 보존하기 힘들다. 실제로 나치에 대항한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자마자 이 경험은 신기루마냥 자취를 감춘 듯 보였고, 샤르의 비감한 예언은 어김없이 현실이 되었다. “내가 살아남는다면, 이 중요한 시절의 정취와 결별해야만 하고, 이 보물을 버려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

 

막연한 의무감에 이번 ‘장애해방열사 기록’에 참여한 내게도 유사한 비통함이 찾아왔다. 저항과 자유의 경험을 이 세계에 새겨놓은 열사들의 삶과 죽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낡은 유산 더미 사이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는 것만 같아서였다. ‘열사들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세련된 톤의(그러나 그마저도 이제는 진부해진) 메아리와 함께. 현재까지도 열사들에게 자신의 유서를 낭독할 수 있는 자리가 남겨져 있다면, 그곳은 기껏해야 극소수 운동권들의 습관적 의례가 반복되는 장소쯤일 것이다. 혹은 오래전에 전선에서 이탈한 ‘전직’ 투사들의 자부심을 존속시키는 추억의 한 구석쯤이 아닐까?

 

1989년 11월, 정태수 열사, 최옥란 열사(뒷 줄의 두 사람)가 장애인문제연구회 울림터 회원들과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심신장애자복지법 개정 등 양대법안 제·개정을 촉구하며 신민주공화당사를 점거,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살아생전 내내 국가에 저항해 온 그들 뒤로는 “이곳을 거쳐가는 자여, 조국은 너를 믿노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진제공 장애해방열사 단
 

나는 열사 전통을 과거와 똑같이 복원하자는 제안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기획일뿐더러, 전통을 오늘날 싸움의 장소에서 더 생생한 방식으로 갱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약하기도 한다. 다만 열사의 흔적들은 흐릿한 형태로나마 여전히 이 세계에 새겨져 있으며, 그렇다면 산 자들은 거기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열사가 시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이기 때문이다. 즉 그의 죽음은 단순히 ‘자살’, ‘타살’, ‘병사’ 등으로만 표현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과거 한 시대의 진실을, 그러므로 그 시대를 계승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진실을 담고 있다.

 

한편으로 열사는 자신의 저항을 아직 끝내지 못한 채 죽은 자다. 따라서 그는 죽은 후에도 후손들이 자신의 싸움을 이어갈 것을 촉구하며, 당대에 대한 자신의 복수가 성공하지 않는 한, 그리고 자신이 싸워온 법, 혹은 체제가 변혁되지 않고 지속하는 한, 끊임없이 이 세계로 되돌아올 것이다. 한 철학자의 말을 표절해 보자면 “시체는 아마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푸닥거리가 믿게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라진 자는 항상 그를 쫓아내려는 곳에서 법을 넘어서는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나타나며, 그것의 출현은 무가 아니다.”2)

 

흔히 말하듯 산다는 것이 타자들과 주어진 관계를 겪어내면서 새 관계망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라면, 생기를 잃은 모습으로나마 지금도 산 자들과 관계를 갱신해가고 있는 열사들이야말로 정말 여전히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즉 열사는 죽어서도, 더 정확히는 죽었기 때문에 계속 이 세계를 살아간다. 그럼에도 열사들의 목소리가 힘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산 자들에게 더 이상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여력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열사, 승리자들의 역사에 제동을 걸다

 

지난 시대, 열사의 유령들은 산 자들과의 조우 속에서 질긴 싸움의 전통을 형성해 왔다. 70년대 중반 청계피복노조 야학 교사들이 ‘애국자’들에게 부여되던 ‘열사’라는 호칭을 가져와 ‘전태일 동지’를 ‘전태일 열사’로 호명하면서 시작된 이 전통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와 자본에 맞선 싸움의 기폭제가 되어 왔다.

 

특히 열사 계승 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80년대 중반 이후, 열사가 완수하지 못한 싸움을 이어받아 완수하는 것은 언제나 전사들의 당면 목표였다. 공산권이 붕괴하고, 노태우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촉발된 91년 ‘분신정국’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막을 내린 후에도 이 전통은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후 열사 전통은 체계적으로 의례화되기 시작했고, 마침 다양한 분야로 분기된 저항 운동들 각각은 자기 진영 나름의 독자적인 열사 계승 전통을 형성하기도 했다.

 

다른 운동 진영들보다 열사 추모를 의례화하는 게 좀 늦긴 했지만(2002년) 진보적 장애인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운동의 역사는 언제나 ‘열사가 전사를’, ‘죽은 자가 산 자를’ 투쟁의 길로 인도해 온 과정이었으며, 이는 노동생존권 투쟁, 이동권 투쟁,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투쟁, 탈시설 운동 등 끊임없이 새로운 싸움들로 이어져 왔다. 비교적 안정된 형태로 남겨진 현재 장애운동의 물적·정신적 토대 역시 열사들의 미완성된 싸움을 완성하기 위한 실천들 속에서 구성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13년 3월 26일 열린 장애해방운동가 합동추모제. 장애해방운동가 영정 앞에 하얀 국화가 놓여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의 진실을, 그러므로 실은 과거의 계승자인 이 시대의 진실을 담고 있는 삶과 죽음들이 지금처럼 존재감 없이 남겨져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그간 억압받아 온 자들의 저항사를 이끌어 온 유산들이 이렇게 생생함을 잃은 채 흐릿한 흔적들만으로 연명하게 내버려 둬도 되는 것일까?

 

세 명의 노동 열사가 분신 또는 자살을 택한 지 얼마 안 된 2003년 11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은 열사 전통에 종언이라도 고하듯 이렇게 말했다.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열사들이 꾸준히 증가했던 것은 급격히 진행되던 신자유주의화의 흐름이 당대 민중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단순히 운동 진영이 과거의 투쟁 방식을 진부하게 반복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학생 열사들의 죽음을 ‘자살 전염’이라 비난하며, 민중들로부터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법을 배우라던 91년 김지하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때보다 ‘더 민주화된’ 21세기에도 민중들은 예전처럼 계속 죽어갔던 것이다.

 

소위 ‘촛불혁명’을 거친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 장애인, 노동자, 농민, 빈민들 역시 목숨 걸고 저항하지 않더라도, 이 사회의 각종 억압들 탓에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지 않나. 탈북민 어머니와 장애아동의 아사, 50대 장애여성의 고독사, 치매 노모와 중증지체장애인 형을 살해한 후 자살한 동생, 비정규직 발전노동자 김용균의 죽음과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의 죽음, 용산참사 철거민의 자살, 그리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그 수많은 죽음들까지.

 

저항하지 않고 살아가더라도 생명을 빼앗기는 시대에 목숨을 건 저항을 멈추라는 것은 곧 도래할 자신의 파국에 맞선 싸움을 그만두라는 요구일 수 있다. 하물며 싸울 수 있는 수단이 자기 목숨밖에 남아있지 않은 이들, 그렇게라도 싸우지 않는다면 좀처럼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더 그러하지 않겠는가. 목숨을 건 싸움이 비극적이며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러한 죽음을 양산하는 사회의 시스템을 먼저 변혁해야 한다. 죽음을 양산하는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목숨을 건 투쟁 방식의 폐기만을 요구하는 것은 이 야만의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무엇보다 이 요구가 위험한 것은 이 시대가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가 없는 평온한 시대라는 환상을 확산시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환상은 억압받는 자들에게 이 시대는, 아니 사실 지나온 모든 시대는 ‘비상사태’였고, 이대로 역사가 흘러간다면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은폐한다. 즉 열사들이 겪었던, 그리고 그들이 맞서 싸우고자 했던 억압받는 자들의 파국적 운명들은 이 세계를 이대로 놔둔다면 미래에도 계속 반복될 것임을 효과적으로 감춰낸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마따나 희망이란 정말로 과거로부터 도래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과거의 것들을 지금껏 응대해왔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책임져 간다면, 우리는 비극으로 점철된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산 자들의 의식 속에서 망각과 함께 비-존재로 전락해 가고 있는 과거 억압받는 자들의 경험을 구원하고, 그것을 새로운 싸움의 전통으로 되살리는 것은 미래에 동일한 파국을 맞이할 이들을 구원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즉 승리자들의 야만스러운 개선 행렬을 멈춰 세우고, 지금 억압받는 자들의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복수의 정신을 현 정세에 맞게 되풀이하는 것 말이다.

 

‘수난서사’를 넘어서 ‘누군가의 서사’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침 오늘날 한국 사회는 유난히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인다. 현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역사적 사건들이나 인물들을 활용하여 주어진 국면들을 돌파해 왔으며, 극우 세력을 포함한 야당 역시 유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광장에는 어느덧 첨예한 기억 투쟁의 전선이 그어졌고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수난서사’에 대한 공감 능력의 습득은 진보 시민들의 필수 교양이 되었다. 심지어 민주화 열사들, 일제시대 열사들 중 일부조차 그들이 살아생전 갖고 있던 급진성이 소거된 모습으로나마 틈틈이 대중들을 사로잡고 있지 않나.

 

그러나 이 역사 과잉 시대는 ‘기억해야 할 것’과 ‘망각해야 할 것’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을 그어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불안감을 안겨준다. 현 체제가 위험하지 않다고 인정할 만한 것들만이 엄격한 검열을 뚫고서 ‘기억해야 할 것’의 영역에 들어서고 있으며, 반대로 승리자들의 역사적 정당성을 위협하는 것들은 도리어 더 어둠에 파묻히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장애해방열사들이 이 시대 담론장에 생생한 모습으로 귀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별로 위안이 되는 사실은 아니지만, 장애해방열사의 유령들이 그나마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건 민주 정권이 들어선 90년대 후반 이후 도리어 증가한 노동, 빈민 열사들이 그들 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쯤일 것이다.

 

이 역사적 편파성은 사실 이 시대만의 특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역사란 언제나 과거에 대한 편집권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 즉 사회의 물질적 힘을 장악한 승리자들의 관점에서 쓰이고 활용되니 말이다. 사실들조차 그들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고, 죽은 자들이 남겨놓은 유산의 정체도 쉬이 조작된다. 진실과 상관없이 그들에게 정당성을 제공해 주는 것들은 구원자 또는 순교자의 형상으로 변모하고, 그들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것들은 악령 또는 역귀의 형상으로 변모한다. 그래도 악령 또는 역귀 취급을 받는 것은 그나마 낫다. 어떤 이들은 이 매력적인 타이틀 한 번 떠안아 보지 못한 채, ‘기록할 필요가 없는 자들’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러한 역사의 최대 피해자는 권력의 귀퉁이로 밀려난 삶을 살았던 이들일 수밖에 없다. 이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운동 진영 내부에서조차 다소 곁가지로 밀려나 있던 장애인들은 어떠한가. 아무리 그들의 삶이 시대의 진실을 잘 드러내 준다 할지라도, 살아생전 그들이 겪어낸 비루한 지위와 비가시성만큼, 역사도 그들을 초라하게 취급할 뿐이다. 장애인들은 역사 속에 거의 기록되지 않을뿐더러, 기록되더라도 그저 승리자들의 선량함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역사 서술이 장애해방열사들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것이 장애인 ‘개인들’의 서사를 지워내고, 기껏해야 오직 하나로 묶인 ‘장애인’의 불쌍함만을, 즉 그들의 일반적인 수난서사만을 부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난이라는 서사의 틀을 통해 그려지는 것은 결국 가해자들의 모습뿐, 피해를 입은 이들의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폭력을 통해 피해자라는 위치에 강제적으로 놓이게 된 이들은 다시 피해자의 위치에 고정된다. 이 ‘피해자의 피해자화’는 그들이 지녔을 다양한 가능성들을 봉인한다.”3)

 

그러나 장애인 개인들은 단순히 피해자이기만 한 게 아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공통적으로 수난을 겪어낸 이들일지언정, 단순히 수난을 겪은 자의 일반 서사만으로 환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펼쳐 왔다. 하물며 장애해방열사들의 삶을 단순히 수난서사로 소급할 수 있는가? 어떤 열사들은 살아생전에도 스스로가 이 체제에 대한 악령 또는 역귀가 되고자 했고, 죽어서도 산 자들 사이로 끊임없이 되돌아와 그러한 꿈을 이어가고 있다.

 

“400만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복수해 달라.”(최정환 열사) “혁명, 혁명하라.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그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덕인 열사) “살아있는 자 조직하라.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정태수 열사의 정신에 대한 박경석의 해석)라는 목소리들이 간헐적으로나마 여전히 산 자들 사이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처럼.

 

2012년 정태수 열사 10주기에 묘역을 찾은 장애해방운동가들.

 

시대의 악령‘들’을 애도하며

 

나는 지금 장애해방열사들을 이상화하려는 게 아니다. 수난서사를 넘어선 ‘저항서사’가 갖춰야만 하는 일반 도식을 만들어낼 생각도 없다. 그러한 도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실은 열사들 각자의 삶이 가진 독특성에 대한 모독이다. 장애해방열사들에 대한 파편화된 기록들을 검토하고, 그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산 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러한 생각은 한층 더 강해졌다. 열사들은 다들 서로 다른 나름의 한계를 가진 인간이었으며, ‘장애인’이라는 정의로도, ‘열사’라는 호명으로도 오롯이 환원할 수 없을 다양한 삶과 죽음을 살아간 이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사실 자체가 오늘날, 열사 애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이게도 누군가에겐 비통함을 안겨주는 전통의 쇠퇴는 그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의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장점이 있다. 물론 이는 전통을 아예 무시하거나 파괴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산 자들이 기존 전통을 더 풍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열사 전통도 마찬가지다. 이 전통은 날이 갈수록 쇠퇴해 가고 있지만, 열사들 각자의 서사를 어떤 도식에도 끼워 맞추지 않은 채 그려내, 기존 전통을 갱신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열사의 유령들을 더 생생한 모습으로 지금 여기에 소환하는 애도 전통도 함께 시작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슬픔의 배설로서의 애도와 다르며, 죽은 자를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애도와도 다르다. 다시 말해 이 애도는 죽은 자에 대한 그리움을 명목 삼아 그를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실연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살아생전 완벽한 사람이었다는 환상, 그의 길이 무조건 옳았다는 환상을 되새김질하며 그의 길을 똑같이 반복할 것을 다짐하는 애도도 아니다. 이러한 태도들은 유령들을 더 이상 관계를 갱신해 나가지 못하는 죽은 존재자, 즉 한낱 박제로 남겨둘 뿐이다.

 

그러나 열사의 독특한 인격들과 대화를 나누고 현 억압에 함께 맞서 싸워가며 수행되는 애도는 죽은 자들과 동지로서, 논쟁자로서, 벗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애도다. 여전히 이 세계에 현존하지만 현존하지 않는 자로 여겨지는 이 기묘한 존재자, 즉 유령이라는 이질적인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애도, 기록되지 않았던 삶들 하나하나를 발굴하여 조건이 바뀐 이 시대에 그것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애도. 이러한 애도만이 열사의 유령들로 하여금 변화된 이 시대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들을 생산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며, 따라서 열사들이 계속 생생한 모습으로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악령들을 소환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간 기록되지 않은 자들을 지금 여기에 생생한 모습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현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환상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령의 생생한 출몰과 함께 그간 은폐되어 온 야만스러운 과거의 진실이 폭로되고, 그러한 과거로부터 정당성을 확립하고 있는 현시대가 실은 온갖 억압과 착취 속에서 승리를 일궈낸 시대라는 진실이 폭로된다. 하물며 지금 여기에 되살리려 하는 것이 이 세계의 변혁을 위해 싸워 왔지만, 즉 승리자들의 체제에 대한 악령이 되고자 했지만 아직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이들의 삶과 죽음이라면?

 

야만의 역사에 제동을 걸고 이 시대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악령‘들’은 더 이상 ‘하나의 목소리를 가진 악령’일 필요가 없다. 열사들이 복수의 악령‘들’로 나타날 때, 지금의 싸움은 더 풍부한 내용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며, 이 시대에 더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 나아가 악령‘들’이 곳곳에 산재한 채 각자의 싸움만을 이어가지 않고, 이 야만의 시대 전체, 승리자들의 역사 전체에 맞선 공동 전선에서 함께 연대하여 싸워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이 장소에는 산 자들도 열사의 유령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논쟁을 벌이고 공통의 실천을 결의할 수 있는 정치적·역사적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이 장소에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은 서로 다른 복수의 정신을 나누며, 그 정신의 교류 속에서 승리자들의 역사에 맞선 단결된 싸움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장소는 이 세계에 없는 장소, 결코 도래하지 않을 이상향, 유토피아가 아니며, 지금 여기에서 언제든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장소다.

 

유령들이 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열사들’이라는 ‘유령들’이. 이제 살아남은 자들은 결단해야 한다. 이 유령들을 이 시대에 공포를 안겨 주는 악령들로 살아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유서 없이 남겨진 유산, 한낱 박제로 남겨둘 것인가.

 

*            *            *

 

1) 한나 아렌트, 『과거와 미래사이』, 서유경 옮김, 푸른숲, 2009, 10쪽 재인용.
2)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그린비, 2014, 193쪽 참조.
3) 후지이 다케시, 「무명으로 돌아가기」, 『한겨레』, 2017. 4. 3.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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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msophist1@gmail.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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