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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여성인 내가 글을 쓴다는 것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장애운동으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나의 자유
등록일 [ 2019년09월30일 21시59분 ]

김상희 씨가 한손 키보드를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 사진 박승원

 

나의 첫 글쓰기


처음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날이 있다. 비 오는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께서 앞집에 사는 내 또래 친구를 우리집에 초대했다. 그 집 할머니와 친구였던 할머니는 집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비 맞고 있는 친구를 그냥 둘 수 없었다며 나랑 잠시 놀라고 데리고 오셨던 것이다. 한참 그 친구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앞집 할머니가 별안간 내 방문을 벌컥 열더니 그 친구의 손목을 사정없이 낚아챈 채 집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리고선 동네가 떠내려가듯 고래고래 소리쳤다.


“할머니가 곧 올것인디, 왜 그 집에 갔노! 그 집에 가서는 병신이랑 왜 어울리고 있노!”

 

이 소리를 들은 나의 할머니는 앞집 할머니와 한바탕 싸우셨고, 이 싸움은 엄마들 싸움으로 번져 결국 가족 싸움이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나는 앞집 사람들과 싸워 준 가족이 고맙지 않았다. 싸움의 근본적 원인이 ‘내가 장애를 가졌기 때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큼 상처를 받았는지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이날 나는 나의 장애에 대해 생각하며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나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처음 일기장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글을 써나갔다. 내 나이 열 살 무렵이었다.

 

중증장애를 가진 내게 유일하게 주어진 재능?

 

학교에 다니면서 칭찬받을 때가 있었다. 방학 때면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 중에 일기쓰기(지금 생각하면 일기를 숙제로 내주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가 있었는데 숙제를 잘 해왔던 나는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았다. 선생님들은 ‘나중에 일기를 모아서 책으로 내라’는 말씀도 해 주시며 ‘작가가 돼라’고 하셨다. 선생님들은 힘겹게 나를 돌보는 어머니에게 공부를 중단시키지 말고 작가로 만들라는 조언도 틈틈이 해 주셨다.
 
돌이켜보면, 중증의 장애를 가진 나에게 유일하게 발견된 재능이 글쓰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들 말씀처럼 나는 글을 썩 잘 쓰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한글을 기초부터 배운 게 아니라서 맞춤법이 약했고, 특별히 표현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다. 좋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감이 떨어졌다. 내가 읽은 책 속에는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표현력으로 무장된 글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나는 도무지 그런 멋진 글을 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중1 무렵, 더는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면서 나는 더이상 작가에 대한 꿈도, 글을 쓰는 행위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투쟁이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은 장애여성운동을 시작한 2003년, 그러니깐 23살 무렵부터다. 아무도 관심 없는 나의 삶에 대해, 장애여성으로서 겪어온 차별의 경험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글쓰기 자체가 장애여성운동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고 싶었다. 한 번도 글쓰기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었던 나는 큰 용기를 내어 비장애인 위주로 운영되는 문화센터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등록하기 전에 많은 걱정을 했다. 정규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내가 글쓰기 수업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장애인 단체 쪽에서만 활동해온 내가 비장애인 중심의 분위기를 견뎌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가득했지만 일단 저질러 보기로 했다.

 

그러나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비켜나간 일이 없듯 나의 걱정과 고민은 첫 글쓰기 수업에서 현실이 되었다. 강사는 가장 눈에 띄는 나를 애써 외면하며 수강생들에게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시켰다. 내 차례가 되자 강사는 말했다.

 

“거긴 쉬는 시간에 이름을 메모로 적어서 줘요. 글은 적을 수 있죠?”

 

순간 나는 모욕감에 휩싸였고 맥이 훅 빠졌다. 강사는 나의 음성 언어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채 뇌병변장애로 인해 강직된 몸과 전동휠체어에 탄 모습만 보고 순식간에 말을 전혀 못 할 것이며 글 적는 것도 어려운 사람으로 나를 판단했다. 그런 강사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났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마음 상태와 다르게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항의할까도 생각했지만 내가 항의해봤자 내 말은 그들에게 언어로 전달되지 않고 괴성으로만 들릴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나를 옹호해 줄 사람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바로 문제제기를 못하고 중간에 나와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문화센터 홈페이지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리며 환불 요청을 했다. 다행히 사과와 환불을 받아냈다. 이후 나는 괜한 오기가 생겨 장애인권운동 겸 다른 글쓰기 수업 몇 개를 등록하여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강사와 수강생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어딜 가도 똑같았다. 그래도 그렇게 오기로 다녔던 글쓰기 수업에서 글쓰기 기초를 배우며 예전보다는 글쓰기 실력이 조금씩 나아진 것 같다. (오랫동안 내 글을 읽었던 주변인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ㅎㅎ)

 

규범적 환상을 깨는 수단으로서 글쓰기

 

지금까지 나는 다양한 곳에 글을 기고하며 꾸준히 무언가를 써왔다. 많은 글을 써왔지만 여전히 글을 잘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릎을 탁! 칠 정도의 표현력을 가진 것도 아니며 특별히 뛰어난 관점이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경험을 고민으로 풀어내며 주저리주저리 쓸 뿐이다.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의 피드백도 각양각색인데, 공통된 의견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사생활 얘기가 너무 많고 가족에 대해 안 좋게만 쓴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대부분 나는 웃고 넘어간다. 내 글에서 그 부분만 읽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관점의 폭이 그 정도이기에 굳이 애써 설명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게 쉽진 않다. 글은 자신을 오픈하는 행위이고 사람들은 글을 읽는 순간부터 글쓴이에 대해 본인만의 기준으로 가치 판단을 하며 글 바깥의 모습마저 규정하려 한다. 그러한 사람들의 시선과 말을 들으면서 솔직히 위축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글 쓸 때마다 자기검열에 깊숙이 빠져들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중증장애를 가진 내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행위가 글쓰기이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언어장애를 가진 내게 사람들은 충분히 소통할 기회를 주지 않으며, 내가 말하기 전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대한다. 그들은 내 머릿속 생각마저 잘 안다고 착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글쓰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활동지원도 필요 없는, 그리하여 내가 유일하게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영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나의 글에 비장애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한 환상을 깨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일부 ‘과도한 사생활 노출’이라고 평가받기도 하는 나의 드러냄은 사회가 멋대로 재단해 온 어떠한 이미지 혹은 환상에 대해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나의 의도된 글쓰기이다. 특히 사람들에게 가족은 늘 화목해야 하고 따뜻해야 하며 헌신을 기반한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중증장애인에게 대부분의 가족은 그렇지 않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가족 안에서 겪은 차별에 대한 말하기는 나와 같은 사람을 일부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가족 안에서 차별받고 존중받지 못한 경험에 관해 쓸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인권운동이고, 상처에 대한 치유이기도 하다.

 

사실 글쓰기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글쓰기에는 엄청난 에너지와 때로는 고통이 동반된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짜릿한 해방감을 맛보게 해 주는 수단이기에 글을 안 쓸 수는 없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바람도 생겼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 그 글들이 단단하게 굳어진 정상성 중심의 사회를 마침내 바꿔낼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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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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