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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바깥으로 밀린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 한자리에
가난한 우리의 역사말하기 ‘살아왔습니다’, 성미산마을 극장에서 열려
“가난한 사람이 목소리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목소리로 연대해야”
등록일 [ 2019년10월21일 14시50분 ]

가난한 우리의 역사말하기 ‘살아왔습니다’ 문화제가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 주최로 16일 저녁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열렸다. 사진 박승원
 

가난한 이들의 삶을 함께 이야기 나누는 ‘살아왔습니다’ 문화제가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아래 조직위) 주최로 16일 저녁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열렸다.

 

조직위는 “대개 ‘빈곤’은 비극적 사건과 단편 뉴스로만 세상에 알려진다. 또 무수한 자수성가 성공 신화 뒤로, 가난은 무능하고 게으른 개인의 실패일 뿐이라는 편견 또한 존재하는 것 같다”라며 “빈곤을 바라보는 협소한 시선으로부터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를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주최 배경을 밝혔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언론에서 가난한 이들의 죽음에 관해 많이 다루지만, 그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뿐이다”라며 “해당 사건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개별특성을 가졌는지 관심을 가지고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는 조은별 김포장애인자립샌활센터 사무국장, 여성 홈리스 자스민,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 등 네 명이 모여 빈곤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조은별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 “그동안 내 삶은 ‘수급자인 나와 아닌 전부’로 분리되는 기분이었다”

 

가족과 수급자로 살다가 얼마 전 탈수급을 하고 부양의무자가 된 조은별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그동안 ‘수급자인 나와 아닌 전부’로 분리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초등학교 1학년 무렵 급식비 지원을 받으려고 할 때였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이런 거 부끄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집이 가난해서 그럴 뿐’이라고 외쳤다”라며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건 싫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친구들은 내가 교무실에 불려갈 때마다 무슨 일인지 묻곤 했다. 하지만 ‘몰라도 된다’라며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수급자인 사람은 반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했다”라고 말했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는 ‘소득이 잡히지 않는 일’을 찾아 헤매야 했다. 소득이 잡히면 그만큼 수급비에서 깎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가 한 고깃집에서 일할 때였다. 당시 고깃집 사장님은 소득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연말에 소득신고를 하여 소득이 잡히면서, 그는 반년 만에 알바를 그만둬야 했다. 그는 “그 때문에 가족들의 수급비가 50만 원 깎이고 말았다. 동사무소에 가서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다’라는 각서를 쓰고 나서야 기존의 수급비를 다시 받을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현재 김포센터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돈을 벌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가족들과 지금처럼 같이 살 경우, 그는 가족들의 부양의무자가 되어 그의 소득에 따라 가족의 수급비가 삭감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의 ‘자립지원 특례’로 소득 기준을 완화하여 적용받으면서 다행히 가족들의 수급비는 깎이지 않고 있다. 조 사무국장은 “이제 나는 수급자가 아닌 게 너무 좋다. 그동안 나와 엄마 그리고 여동생까지 가족 구성원 3명이 100만 원으로 생활했지만, 이제 나 혼자서 그보다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특례는 만 18세 이상 34세 이하의 취∙창업 자녀가 있는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권)자 가구를 대상으로 5~7년간 보장한다. 조 사무국장은 2022년 1월에 해당 특례가 종료되기에 앞으로가 걱정이다. 그는 “내가 돈을 벌면서도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건 3년 전 생긴 이 특례조치 덕분이다. 특례가 끝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떨어져 따로 집을 구해 살아야 한다. 아마 안 좋은 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라면서 “만약 가족들과 같이 살면 내가 번 소득으로 인해 가족들은 수급에서 탈락한다. 대안이 필요한데 지금으로서는 모르겠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다”며 무거운 마음을 토로했다.

 

여성홈리스 자스민 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2층 구석에서는 발언자 목소리를 관객에게 문자로 전하는 문자 통역사가 타자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 ‘홈리스 티’ 내면 안 되는 여성홈리스의 삶

 

전 재산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는 여성 홈리스 자스민 씨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성 홈리스는 남성들에 비해 성폭행 등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보니 ‘홈리스 티’가 나는 것부터 숨겨야 한다. 여성 홈리스는 속옷 등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구할 데가 없어서 전전긍긍해야 하고, 대부분의 홈리스 지원기관은 남성을 대상으로 해서 여성은 갈 곳이 없다. 속옷 하나가 아쉬워 빨고 말리고 다시 입다 보면 어느새 짐은 불어나 있다. 그러나 지원기관은 변변치 않고 짐 맡길 곳조차 없으니 ‘홈리스 티’는 더 나게 된다.

 

자스민 씨는 “남자들은 양말도, 속옷도 몇 번 쓰고 버리던데 여자들은 그걸 죄 빨아서 말리고, 이고 지고 별나게 다닌다. 나도 배낭 하나 덜렁 메고 다니면 어딜 가도 대우받을 텐데”라고 한탄했다. 이어 “서울역 사물함은 화요일까지, 영등포역 사물함은 오늘 저녁까지, 다시서기는 오전 중에 가지 않으면 짐을 모두 빼버린다고 했다. 놓을 데가 없는데 자꾸 가져가라고 연락만 온다. 일부러 핸드폰을 보지 않는데도 머릿속이 시끄럽다”고 토로했다.

 

성추행도 여성 홈리스가 겪는 폭력 중 하나다. 자스민 씨는 “얼마 전에는 어떤 남자가 날 좋아한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내가 동서남북에 짐을 두고 다니니 그 짐을 보고 나보다 먼저 그곳에 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그를 피해 난 아무 잘못한 것도 없이 도망을 다닌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윤 씨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다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사진 박승원
 

- IMF 여파와 사고로 꺾인 삶, 거리에서 쪽방으로, 그러나 또다시 내쫓겨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매일같이 함께 식사했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홈리스 당사자 고 윤양호 씨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양호 아저씨는 화순 출신으로 74년도 서울에 올라와 중화요리 기술을 배워 77년부터 중국집 주방장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IMF 때 중국집에서 반년 이상 월급이 연체되고, 결국 급여 떼이고 가게가 폐업하면서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성분과도 헤어지게 된 거예요. 설상가상으로 오토바이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면서 중국집 일도 못 하게 됐어요.” 

 

그런 윤 씨가 홈리스행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부터였다. 남대문 쪽방에 들어간 후로는 기초생활 조건부수급자가 되어 자활사업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헤어졌던 여성과도 다시 만나게 됐다. 그는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을 비롯해 홈리스 인권 활동에 열성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윤 씨는 ‘2015년 10월 31일까지 쪽방을 나가라’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는다. 이 상임활동가는 “건물주는 ‘안전진단 결과 위험하다’는 핑계를 댔지만, 재개발에 따른 이주 보상을 해주지 않기 위한 속내였다. 예고된 날짜가 되자 물과 전기를 끊었다”라고 전했다.

 

윤 씨는 모두 쫓겨난 4층 쪽방 건물에서 끝까지 버텼지만, 결국에는 그 역시 나가야 했다. 132개월간의 남대문 쪽방 생활을 마치고 그가 향한 곳 역시 다시 쪽방이었다. 이 활동가는 “양호 아저씨는 서울역 뒤편 월 25만 원짜리 쪽방으로 이사했지만, 그곳에서 지낸 지 두 달여 되던 2016년 1월, 쪽방 문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쫓겨났던 남대문 쪽방 건물자리에는 이제 28층짜리 빌딩이 들어섰다. 당시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주변 구도심의 낙후된 도시기능을 회복하고, 가로 및 상권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 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 “가난한 사람이 목소리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목소리로 연대해야”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인 한종선 씨는 현재 국회 앞에서 700일 넘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공소시효와 소멸시효가 지나 한 씨를 비롯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은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한종선 씨는 가난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씨는 “내 삶을 되돌아볼 때 ‘가난하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왔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제3자들은 공감의 언어로 당사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며 그 자리에 머물게 할 뿐”이라며 “막상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손 떼고 가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도 스스로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같은 피해자들이 모여 자기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헤매는 부분이 있을 때 서로 바로잡아줄 수 있다. 그게 바로 ‘연대’라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자주 만들어지면 좋겠다. 이번 문화제 이름이 ‘살아왔습니다’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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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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