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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휴식의 흐릿한 경계, ‘신경노동’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신경노동에서 생존하기 위한 서로 돌봄의 연대
등록일 [ 2019년10월30일 16시51분 ]

한 경비노동자가 식사시간에도 일이 생기면 식사를 중단하고 일하러 가야 한다는 이야길하면서 자신의 일이 “신경노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MBC 뉴스 화면 캡처

 

“식사하다가도 나갈 일 있으면 나가야죠. 신경노동이에요.”  

 

10월 19일 뉴스에서 들은 어느 경비노동자의 말이다. (관련 기사: “부촌의 민낯…경비원 월급 올려달랬더니”) 이는 계약서상 24시간 격일제로 일하면서 주간 7시간 30분, 야간 7시간인 무급 휴게시간이 실제 노동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계약 조건임을 짧고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는 자신의 노동을 ‘신경노동’이라고 말했다. 그의 의도를 추측해 보면, ‘쉬는 시간’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내내 신경 써야 하는 노동’이라서 ‘신경노동’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여기서 나는 쉬다가도 상황에 맞추어 언제든 일어나 움직여야 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떠올랐고, 생각은 계속 뻗어 나갔다.


자본주의에서의 시간은 종종 노동과 여가로 나뉘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날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이는 대체로 노동이 여가의 시간에 침투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도 온라인 메신저로 업무를 지시하는 일명 ‘카톡 업무지시’도 신경노동의 요구이고, 사실상 출근도 퇴근도 없이 항상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는 프리랜서 노동자도 일종의 신경노동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료/소방/경찰 노동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내 신경 써야 하는, 그래서 쉬지 못하고 공과 사의 구분이 사라지는 신경노동.


신경노동은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휴식을 박탈한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자다가도 언제고 일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신경노동은 그 자체로 개인의 몸과 마음에 만성적인 긴장 상태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는 모든 곳에서 만병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스트레스’를 극대화한다. 이는 신경노동자에게 새로운 질병을 부여하기도 하고, 원래 아픈 사람들이 몸을 관리하기 어렵게 하기도 한다. 나 같은 만성질환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신경노동에 관한 생각을 이어가다가 「사회운동활동가 건강권 포럼」 자료집에서 읽은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저녁은커녕 주말조차 없는 것처럼 지내고, 일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삶. 휴식의 시간을 운동에 모두 반납한 삶. 한 활동가의 “휴식이란 […]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이라는 한 마디는 사회운동이 얼마나 고강도의 신경노동인지 보여 준다. 이번에는 나의 일상을 돌아본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고, 수시로 오는 연락 때문에 ‘유령 진동’을 느끼고, 수업시간에도 필기 대신 성명서나 항의 이메일을 작성하며, 언제나 문제를 바로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대학 내 아픈 활동가로서의 일상.


앞서 언급한 자료집에 수록된 ‘번아웃 증후군 테스트’에서 나는 기준 점수를 가볍게 넘겼다. 놀랍지는 않았다. 단지, 마찬가지로 자료집에 수록된 이야기처럼, 나는 어쨌든 학교와 집에서 겪는 내 고통을 일상 내내 거리에서 국가와 맞서는 ‘더 힘든’ 당사자나 다른 활동가들의 고통과 비교하면서 사소하게 여기려고 애썼다는 사실과 새삼스레 마주하게 되었을 뿐이다. 나의 고통은 신경노동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내가 학내 활동으로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기에 이를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편한 휴식 없이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학내 활동도 신경노동과 흡사한 면이 많다.


꼭 학교 안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잠깐 쉬러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 어느 카페에 들어가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차례대로 했다. ‘점자유도블록이 없네, 턱이 많네, 계단이네, 소리가 울리네, 복도가 좁네, 두유 옵션이 없네, 엘리베이터가 없네, …’ 그러나 이는 ‘활동가’만의 경험이 아니다. 지금의 일상이 투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의 문제점들을 목격하게 된다. 내가 특별히 술자리 문화를 개혁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음주 문화의 부조리함을 내 크론병 때문에 알게 된 것처럼, 앞서 언급한 카페의 문제점들을 누군가는 자신의 몸 때문에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싸우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때와 장소를 못 가리는 프로불편러’로 취급받게 된다. 이런 신경노동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임에도.


경비, 장애인 활동지원 등 휴식과 노동의 경계가 흐릿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그 노동환경이 제대로 파악되고, 적절한 대가가 지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경노동 때문에 생기는 건강의 문제는 산업재해라는 이름으로 공적으로 논의되고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소수자와 활동가가 겪는 신경노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쉬거나 놀 때조차 낮은 접근성과 혐오표현, 성폭력을 ‘조심’하고 ‘피하며’ 살아가거나 이에 맞서 싸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래서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 있는 이들의 일상은? 우리는 누구도 이런 종류의 신경노동을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며 살아가지만, 사회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라서, 활동가와 소수자는 신경노동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어렵다.


어떤 종류이든, 신경노동 속에서 우리는 정작 자기 자신을 보살피지 않게 된다. 자기 돌봄은 어렵다. 우리는 그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자꾸만 자신의 고통을 상대화하여 낮춘다. 이렇게 신경노동의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는 자기 돌봄으로 나아가기 위한 ‘서로 돌봄’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종류의 신경노동이든, 신경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인식은 그 일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경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내 만성질환의 경험을 사소하게 여기고 나 자신의 몸을 의심할 때 가장 나를 안정시켜 준 건 자신의 몸을 비슷한 방식으로 의심해 본 친구였다. 우리는 질병의 경험을 나누며 서로의 아픔을 긍정해 주며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이처럼 곁에 있는 이의 ‘사소한’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고통의 경험을 나누는 예민한 사람들의 연대가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덜 힘들게 일하고, 싸우고,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아픔을 존중하고 보살피기에 아프면서도 외롭지 않고, 변화를 향한 의지와 자신의 몸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아프고 사려 깊은 신경노동자들의 공동체를 상상해 본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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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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