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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에 대한 ‘친밀한 폭력’, 통계로는 보이지 않아
장애여성 인권상담 내용 중 가해자 대부분이 ‘친밀한 관계’
장애여성에 대한 일상적 통제와 폭력, 관계의 맥락 파악하는 제도 절실
등록일 [ 2019년11월01일 17시20분 ]

장애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의 주된 가해자는 누구일까? 장애여성공감이 지난 2년간 진행한 장애여성 인권상담 브리핑에 따르면 장애여성의 인권상담 내용의 가해자 대부분은 일상  속 가족, 애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 내의 사람들이었다.

 

장애여성공감은 ‘친밀성과 통제: 장애여성 피해 경험 재해석’을 주제로 지난 2년 동안 진행했던 장애여성 인권상담 현장의 이슈를 나누고 고민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10월 31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피해 경험을 다시 해석하면서도, 장애여성에게 요구되는 피해자의 위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장애여성공감은 지난 10월 31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친밀성과 통제, 장애여성 피해경험 재해석”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이가연

 

- 구체적 통계로 잡히지 않는 친밀한 관계 속 차별과 폭력

 

장은희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지난 2년 동안 진행한 장애여성의 인권상담 현황에 대해 브리핑했다. 그동안 접수된 장애여성 인권상담 내담자의 장애유형은 지적장애>뇌병변장애>지체장애 순으로 높았다. 이에 대해 장 활동가는 “특히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관계나 경험의 부재를 이용한 차별이나 폭력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비해 공공기관이나 기존의 상담 영역이 적절한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장애여성의 인권상담 내용으로는 폭력에 관한 내용이 32%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독립생활이 19%, 차별 및 인권침해가 14%로 뒤를 이었다. 가해자와 행위자의 관계로는 직계가족 및 연인, 동거인 등 제3의 인물보다는 친밀한 관계 내 사람들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올해 접수된 상담 중에는 ‘차별 및 인권침해’ 상담이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장 활동가는 “관계성에 기반한 경제적 착취가 흔했는데, 가족이나 애인이 수급비를 착취하거나 사회서비스 부정수급 혹은 핸드폰 사기 및 대출사기의 형태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또한, 노동 현장에서 “장애인 직업훈련장에서의 노동착취, 장애를 이유로 한 최저임금 미준수 등 일터에서 동료라는 것이 인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따돌림이 많았다”고 전했다.

 

장 활동가는 “가족, 애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은 구체적인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폭력의 피해자로만 대상화되는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고, 가시화되기 어려운 일상 속 장애여성의 차별 및 인권침해 사례를 지원하고 분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은희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가 지난 2년동안의 장애여성 인권상담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 “우리 엄마는 내 연애를 왜 성폭력으로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장애여성은 일상적인 통제에 노출되어 있다. 엄마, 선생님, 그리고 활동지원사로부터 연애라는 사적인 영역까지 허락받아야 하고, 휴대폰 패턴을 공유하지 않으면 낯선 이로부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언제든 휴대폰도 압수당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유진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우리 엄마는 내 연애를 왜 성폭력으로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한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장애여성을 둘러싼 보호 집단의 ‘보호’가 어디까지 개입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경험의 부족으로, 낯선 관계에서 손쉽게 친밀함을 느끼는 당사자의 부족함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왜 장애여성에게만 위험하다고 하는지’ 질문하는 동료와 가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여성에 대한 일상적 통제는 개인의 연애와 사생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여성공감에 접수된 인권상담 중에는 일터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통제의 내용도 다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장애인 보호작업장은 ‘근로능력이 낮은’ 혹은 ‘직업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의 공간이 보호의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장애를 이유로 최저임금의 적용제외를 인정하는 ‘최저임금법’은 장애인에 대한 일상의 통제를 보호라는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제도화시킨 대표적 조항이다.

 

유 활동가는 “분명 노동의 공간이지만 장애여성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것을 요구받으며, 때로는 산만하다는 이유로 벌을 받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접수된 상담 중에는 한 사업장에서 7년 이상 일했지만, 업무숙련도를 이유로 청소와 같은 단순 업무만 배정되고 연차사용을 제한당하는 등 동료들의 명령과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진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가 장애여성의 다른 삶의 전략 말하기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 애정이라는 친밀성에 기반한 경제적 착취, 고스란히 장애여성 몫으로

 

애정이라는 친밀성에 기반한 경제적 착취 또한 장애여성에게는 빈번한 일이다. 애인이 진 빚이 장애여성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장애여성이 돈 갚을 것을 독촉하면 애인은 ‘사랑한다면 기다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 ‘월급 받으면 갚겠다’, ‘배가 고픈데 밥 사 먹을 돈도 없다’, ‘지금 사고가 났는데 너무 아프다’ 등의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룬다. 그때 장애여성은 힘들어하는 애인을 안쓰러워하는 나머지 "갚지 말라"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동의일까? 장애여성공감 측은 자발적 동의라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유 활동가는 “실제 상담을 해보면 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 그로 인한 고립감, 조금만 더 있으면 다 갚아준다는 회유와 설득, 원가족에 대한 불신,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절함 등을 떠올리며 복잡한 감정과 상황 속에서 발화된 문장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며 “그러나 이러한 장애여성의 발화는 맥락과 의도가 사라진 채 받아들여진다”고 비판했다.

 

그뿐만 아니라, ‘애인의 핑계’는 장애여성의 취약성에 기반한 의도적 회유와 착취임에도 결국 이를 증명하고 설명해야 하는 책임은 온전히 장애여성에게만 남겨진다.

 

최현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가 말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 ‘관계의 맥락’ 파악하는 법과 제도 절실


최현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또한 유 활동가의 지적에 동의하며 “당사자를 직접 만나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질문하고 맥락을 드러내는 일이 법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나아가 최 변호사는 “친밀함은 상대방을 통제하는 정당한 사유로, 피해자에게는 저항하지 못하거나 관계를 단절하지 못하는 사유가 된다”면서 “사건 처리에 있어서도 피해를 사소히 여기고, 피고인을 가볍게 처벌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그는 형법 제51조 중 양형 참작 사항에 ‘피해자와의 관계’가 포함된 점을 언급하며, “여전히 법원은 낯선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을 더 가볍게 처벌한다”라고 밝혔다.

 

특히 “장애여성에 대한 지속적인 돌봄 노동에 지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사고 정도로 이해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출발점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법률이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진아 활동가는 앞으로의 제도적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2016년 영국 정부가 발표한 ‘여성 및 소녀 대상 폭력 근절을 위한 정부 전략’을 언급했다. 해당 보고서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장애여성의 욕구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고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보고서에서는 개개인의 경험과 욕구에 따른 대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동체의 책임과 참여를 묻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대해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는 “영국에서는 경찰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위험성 조사표를 통해 관계 내의 강압과 통제의 맥락을 주요하게 파악한다”면서 “경찰이 바쁘다는 이유로 사건의 맥락을 파악하려 하지 않거나 남성을 치료하여 건강한 가족으로 복귀시키려는 국내의 방식과는 대조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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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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