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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1056명 ‘동성부부 권리’ 요구하며 인권위에 집단 진정
법적 배우자로 권리 누리지 못하는 동성부부, 주거∙의료∙직장 등 차별 심각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입원∙수술 보호자로 인정도 못 받아’ 발만 동동
등록일 [ 2019년11월13일 23시16분 ]

성소수자 1,056명이 동성혼∙파트너십 권리를 요구하며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정인 소성욱(왼쪽) 씨와 김용민(오른쪽) 씨가 마이크를 번갈아 가며 발언하는 모습. 사진 박승원
 

“저는 제 동반자가 배우자로서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길 희망합니다. 우리는 관계를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싶습니다. 이런 상황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많은 동성커플이 겪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성소수자 1056명이 동성혼∙파트너십 권리를 요구하며 13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집단 진정했다.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아래 가구넷)는 13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에서 동성부부와 커플은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경제적∙사회적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라면서 진정 배경을 설명했다. 

 

피진정인은 대한민국 정부와 각 부처의 장, 국회의장,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다. 가구넷은 정부와 국회의장에게는 성별과 관계없이 혼인이 가능하도록 민법 개정 등 입법적 조치를 취할 것, 각 부처에는 동성부부 및 커플에게 의료, 건강보험, 주거 공급, 직장 복지 등에 관한 제도 개선 권고 등을 인권위에 요구했다. 

 

성소수자 1,056명이 동성혼∙파트너십 권리를 요구하며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박승원
 

 - ‘신혼부부 주거 대출’에서 배제되는 동성부부, 신혼집 못 구하고 다시 원룸으로 

 

진정인 김용민 씨와 소성욱 씨는 2013년에 만나 올해 5월 결혼식을 올린 게이 부부다. 그러나 신혼집 구하기가 어떤 부부보다 힘들었다. 동성부부는 현재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하니,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상품도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용민 씨는 “한국에는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여러 대출이나 주택 제도가 존재하지만, 거기에서 동성부부는 철저히 배제당하고 있다”라며 “이성부부 친구들이 신혼부부전세자금 대출로 신혼집을 마련해 사는 모습을 보면 박탈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신혼집을 구하지 못하고 결혼하기 전부터 지내던 서울의 한 원룸에서 거주하고 있다. 김 씨는 “현재로선 둘이서 지내기에 턱없이 비좁은 원룸밖에는 선택지가 없다”면서 “보증금을 함께 내지만, 주거 명의도 한 사람 이름으로밖에 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이에 가구넷은 “‘주택자금을 공동으로 분담하지만, 주거를 한 사람의 명의로 했다’고 답한 이들 가운데 다수가 주택자금 대출을 한 대출 명의자로 주택 명의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동성부부를 향한 차별과 배제의 벽은 보험제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조에 따르면 법률혼 또는 사실혼 관계인 이성커플은 건강보험상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성부부는 여기서도 배제된다. 김 씨 또한 “나는 4대 보험을 들 수 있는 직장에 다녀 건강보험 상 직장가입자이지만, 내 남편은 지역가입자로 내지 않아도 될 보험료를 더 내는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있다”라고 전했다.

 

이런 불평등 속에서 김 씨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는 “한국 장례법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나 결혼법상 배우자가 아니면 장례절차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라며 “심지어 혈연 가족이 없으면 내 남편은 무연고자 처리가 된다. 한평생을 함께 한 내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현실의 벽 앞에서 더 큰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라며 개탄스러워 했다.

 

가구넷이 6월 한 달 동안 한국에 거주하는 동거동성 커플 3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동거동성커플 주거∙의료∙직장∙연금 등 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 참여자의 25.7%는 본인 또는 파트너가 직장가입자이지만 상대방이 지역가입자로 별도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39.4%는 지역가입자인 사람이 직장가입자의 부양에 의존하고 있는데도 피부양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인권위에 ‘동성혼∙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성소수자 1,056명 진정서’를 제출했다. 오른쪽부터 왼쪽 방향으로 진정인 김용민, 소성욱, 장서연, 윤화영 씨다. 사진 박승원
 

- 동성커플, ‘병원에서 입원∙수술 보호자로 인정도 못 받아’ 발만 동동  

 

윤화영 씨와 장서연 씨는 13년째 함께 사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30대 후반인 2007년에 만나 50대인 현재까지 함께 지내며 반려견 3마리와 함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법적으로 관계를 인정받지 못했기에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가 날 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장서연 씨는 “만약에 내가 아프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의식이 없게 될 때,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돌봐줄 사람은 내 파트너다. 하지만 법적으로 배우자로서의 권리가 없기에 병원에서 나와 관련한 사항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라며 “이성커플은 간단히 혼인신고만 하면 가능한 일을 왜 우리는 할 수 없는가”라고 분노했다.

 

동거동성커플 가운데 ‘수술 또는 입원으로 병원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42.1%를 대상으로 의료 관련 차별 경험(중복응답)을 조사한 결과 ‘입원(63.4%) 또는 수술 동의(56.9%)와 관련해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또한,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료 정보나 환자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응답도 42.2%에 이르렀다.

 

24살 게이 아들을 둔 엄마이자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 비비안 씨는 법적으로 동성혼을 보장한다면 성소수자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은 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비안 씨는 “우리 아들은 청소년기에 7년 동안 자기부정을 하며 힘겹게 시간을 보낸 뒤 21살에 부모인 내게 어렵게 커밍아웃했다”라며 “그렇지 않아도 청소년기에는 남과 다름을 인지하고 생활하는 게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회가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부정하고 혐오하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동성혼이 인정되고 파트너십이 만들어지면 숨어있는 성소수자들이 좀 더 활발하게 커밍아웃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사자들과 함께 진정서를 함께 제출한 백소윤 변호사는 “이미 21개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되었고 올해 5월 아시아 최초로 대만이 동성혼을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했다”라며 “일본에서는 도쿄 시부야, 세타가야 구를 포함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파트너십등록제도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백 변호사는 “한국은 세계 OECD 국가에서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조차 동성커플을 승인하는 어떠한 제도도 두지 않은 몇 개 남지 않은 국가 중 하나다”라면서 “이번 진정으로 인권위가 동성혼 및 파트너십 관계를 사회제도에서 포섭해야 할 필요성을 직접 살펴보고, 이를 차별로 인정하여 제도 개선을 권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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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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