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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던 동료지원가 스스로 목숨 끊어 
한 달에 장애인 4명, 5회씩 상담해야 하는데… 고작 ‘월 65만 원’
장애인 업무 환경 고려 않는 실적 위주 사업… 장애계 ‘터질 게 터졌다’
등록일 [ 2019년12월09일 17시27분 ]

고 설요한 씨가 동료지원가로 활동했던 모습. 사진 여수IL센터


여수에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던 설요한(25세, 뇌병변장애) 씨가 과도한 업무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증장애인 맞춤형 일자리사업’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낮, 설 씨는 여수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설 씨는 오전 10시경, 오는 10일에 있을 동료지원가 사업 점검 준비를 위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오경 점심을 먹는다며 사무실을 나간 설 씨는 오후 1시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아파트 14층에서 투신한 사실이 경찰을 통해 확인됐다.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여수IL센터) 측에 따르면, 고인은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면서 가족에게 평소 “월급은 적은 데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 게다가 10일에 있을 사업 점검을 앞두고 지나치게 많은 서류작업이 몰려 더욱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 한 달에 장애인 4명, 5회 상담해야 하는데… 고작 ‘월 65만 원’

 

2016년 2월 여수 한영대 사회복지과를 졸업한 설 씨는 지난 2018년 4월, 여수IL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여수IL센터는 그의 첫 직장이었다. 여수IL센터 측은 “대학 졸업 후 여기저기 구직을 했는데 잘 안 됐다고 한다”고 밝혔다. 당시 설 씨는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회복지사 1호봉’을 적용받아 월 170여만 원가량의 월급을 받았다.

 

박대희 여수IL센터 소장은 “센터 동료상담가는 동료상담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도 운영해야 한다. 성실히 일하기는 했으나 하루 8시간 근무하는 것에 대해서는 힘들어했다.”면서 “그러한 상황에서 ‘본인은 지역 장애인들과 상담하는 것만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며 동료지원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동료지원가가 되면 급여가 굉장히 적어진다고 설명했지만 본인이 해보겠다고 하여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설 씨는 올해 4월부터 고용노동부에서 시작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에 참여해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게 됐다. 동료지원가 제도는 고용노동부가 2019년 4월부터 연말까지 진행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 중 하나다. 동료지원가는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비경제활동 인구이거나 장기 실직 등의 상태에 있는 중증장애인을 발굴해 동료장애인을 지원·조력·옹호하는 업무를 한다.

 

그러나 시범사업이 진행되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동료지원가는 본인과 같은 유형의 장애인을 만나 한 달에 4명씩, 1년에 총 48명의 참여자를 만나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료지원가가 직접 사업에 참여할 장애인을 일일이 발로 뛰면서 발굴해내야 한다. 그러나 참여자를 발굴하더라도 실적을 채우기가 어렵다. 한 달에 참여자 네 명을 5회씩 총 20회 만나야 하지만, 동료지원가 또한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업무속도나 작업환경의 고려 없이 주어진 업무실적을 따라가기 매우 버거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설 씨는 4월부터 약 8개월간 일을 하면서 지각 한번 없을 정도로 성실히 활동했다. 그는 11월 말 기준으로 여수지역 중증장애인 40명을 발굴해 개별 상담을 하고, 장애인 자조 모임을 결성해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4월부터 월평균 25회 상담과 이에 따른 상담일지 작성, 월 1회 이상 주간·월간 사례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월급은 월 60시간 기준으로 65만 9650원에 불과했다.

 

이러한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은 기이한 사업구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동료상담가가 ‘한 달에 4명*5회 상담’하는 것을 기준으로 월 80만 원(내담자 한 명당 20만 원)의 인건비를 책정해놨다. 그런데 80만 원에는 4대 보험에 대한 기관 부담금과 자부담, 퇴직적립금, 슈퍼바이저, 사업운영비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를 떼고 나면 중증장애인이 한 달에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설 씨처럼 65만 9650원에 불과하다. 장애인고용공단이 기관에 사업비를 통으로 준 후, 이를 집행하게 하니 월 60시간을 넘는 초과 노동을 해도 추가임금 지급은 불가능하다. IL센터 또한 매년 공모사업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에서 운영비를 지원받는 상황이니 동료지원가의 추가 노동에 대한 인건비 지급은 어려운 것이다.

 

고 설요한 씨가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면서 작업한 업무 파일. 사진 여수IL센터


- 장애인 업무 환경 고려 않는 실적 위주 사업… 장애계 ‘터질 게 터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설 씨는 오는 10일 이뤄지는 사업 점검을 앞두고 야근까지 해가며 방대한 서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박 소장은 “설 씨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부서 직원들이 도와줄 정도였다”면서 힘든 상황을 전했다. 박 소장은 “고용노동부는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이라며 만들었지만, 정작 장애인은 과도한 업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면서 “반드시 동료지원가 사업이 개선되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이어 박 소장은 “설 씨의 죽음에 대해 전남도청, 장애인고용공단 전남지사, 여수시 등에 다 알렸다. 오늘(9일) 고용공단 전남지사에서 센터를 방문했는데 ‘올해 시범사업 후 개선해나가려고 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유가족 또한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라며 “다시는 이 같은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노동청에 산업재해를 요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 싸워달라”고 여수IL센터에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 씨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동료지원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전국 IL센터는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는 참담한 분위기이다. 한 IL센터 소속 활동가는 “이까짓 것을 (중증장애인 노동의) 희망이라고 보고 내달린 중증장애인의 현실이 너무 서럽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이와 관련해 전국 IL센터의 협의체인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는 오는 11일 오후 2시에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설 씨의 추모제와 함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 지원 사업 전면 개편을 요구하는 장례 투쟁을 할 예정이다. 한자협은 “노동을 통해서 잘 살아 보려고 했건만, 정부는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적 위주의 잘못된 제도 설계로 결국 한 활동가의 목숨이 앗아갔다”며 대대적인 투쟁을 선포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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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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