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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동료지원가, 정부의 과도한 실적 압박 끝에 사망… 장애계 ‘분노’
고용노동부 ‘중증장애인 일자리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고 설요한 씨, 장례식 엄수
실적 못 채우면 월급 토해내는 기이한 사업구조… “또 다른 희생자 막아야 한다”
등록일 [ 2019년12월11일 21시39분 ]

박대희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있다.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는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했다. 사진 박승원
 

지난 5일, 여수에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던 고 설요한(25세, 뇌병변장애) 씨가 과도한 업무로 인해 힘들어하다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가운데 장애계는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에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제도 개선을 위한 예산 확대 투쟁을 선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11일, 오후 2시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장례식을 열었다. 이날 장례식에는 설 씨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정부의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제도에 분노한 수많은 장애인들이 참여해 고인의 죽음을 추모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장례식을 열었다. 고 설요한 씨의 영정사진 앞에 국화 꽃이 놓여져있다. 사진 박승원
 

25살 뇌병변장애인 설 씨, 실적 압박에 홀로 320개 서류 작업
실적 못 채우면 월급 토해내는 기이한 사업구조… “또 다른 희생자 막아야 한다”

 

설 씨는 올해 4월부터 시작한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해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설 씨는 죽기 전까지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인 40명을 발굴해 개별 상담을 하고 자조모임을 결성해 지원했다. 이 상담은 중증장애인의 취업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12월 10일에 예정되었던 사업 점검을 앞두고서, 설 씨는 지난 실적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업무와 실적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장례식 사회를 맡은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 대외협력실장은 설 씨가 얼마나 많은 서류작업에 시달렸는지 설명했다. 그는 “설 씨는 일하는 동안 40명의 장애인을 만났는데, 한 사람당 8개의 서류를 마련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설 씨는 총 40명의 중증장애인 참여자를 발굴하면서 실적을 채워야 하는 동시에 홀로 320개의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중증뇌병변장애 동료지원가인 설 씨가 실적을 채워가면서 각종 행정서류, 상담일지 및 자조모임일지 등을 작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만장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사진 박승원
 
게다가 동료지원가가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그를 고용한 위탁기관은 연말에 이미 지급한 월급을 고용노동부에 토해내야 한다. 박 대외협력실장은 “그러나 이러한 기이한 구조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월급이 아니라 수당’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라며 비판했다.

 

고용노동부는 연초에 동료지원가 사업비를 위탁기관에 통째로 준다. 위탁기관은 월급제 형식으로 동료지원가에게 월 80만 원(참여자 4명*5회 상담 기준)을 지급한다. 즉, 중증장애인 당사자는 월 80만 원을 받고서 스스로 참여자 발굴을 해가며 월 20회(년 240회) 상담을 하고 각종 서류 작업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말에 이러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위탁기관은 동료상담가에게 줬던 월급을 환수해 고용노동부에 다시 토해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줬던 월급을 다시 뺏는 것은 불가능하니 위탁기관으로서는 동료상담가에게 실적 채우기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전장연은 “동료지원가를 지원하는 업무, 동료지원가가 달성하지 못하는 실적에 대한 모든 책임을 위탁기관에 전가하는 구조”라고 분노했다.

 

그러나 동료지원가 입장에서는 설상가상으로 80만 원을 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 씨는 월 60시간 기준으로 4대 보험 등을 제외하고 65만 9,650원에 불과한 월급만을 받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업무에 초과 근무를 해야 했다. 설 씨는 자살한 당일(5일)에도 점검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평소 출근 시간보다 일찍 사무실에 나왔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최용기 한자협 회장은 “고용노동부에 중증장애인의 생산성을 따지는 것이 아닌 환경, 유형, 특성을 고려한 일자리로 개선할 것을 내내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 핑계를 대며 ‘바꿀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면서 “내년에 개선하자고 고용노동부와 암묵적 합의를 했지만, (중증장애인에게) 벅찬 일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년을 기약했던 무책임한 행동들이 너무나도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설 동지는 너무나도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겨우 25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일하다가 얼마나 큰 심리적 압박을 받았으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며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장례식에서 이삼헌 씨가 추모굿을 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지역 장애인들에게 칭찬이 자자하던 사람이었는데…” 동료 장애인들 통곡

 

이날 장례식에는 설 씨가 활동했던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여수IL센터) 박대희 소장도 참석해 참담한 심경을 토했다.

 

“요한이는 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씩씩하게 ‘네’라는 대답을 참 잘했습니다. 대답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밝고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지역 장애인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밝고 씩씩했던 요한이가 최근 점검 준비를 하면서 가족에게 힘든 점을 토로했지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조금만 더 힘내자고, 내년에는 괜찮아진다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힘내라고 말한 내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정도로 나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박 소장은 치밀어 오르는 울음에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어 그는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더 이상 요한이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끝까지 싸워달라고 당부했다”라며 “장애인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에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는 그날까지 함께 투쟁하자”고 외쳤다.

 

이창준 전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고 설요한 씨의 영정 앞에 헌화하며 흐느껴 울고 있다. 사진 박승원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도 실적 압박 시달려,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이날 장례식에는 동료지원가 사업과 마찬가지로 중증장애인일자리사업인 ‘장애인인식개선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탄진 장애인식개선교육강사도 참석해 정부 정책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강사는 “나 또한 한 달에 10번 교육을 해야 월급 1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데, 많은 기업이 동영상이나 팜플랫 배부 형식의 장애인식개선 교육으로 대신하고 있어 횟수를 채우기 어렵다”면서 동료지원가와 마찬가지로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현실을 고발했다. 이어 “장애인식개선교육에 전념해야 할 강사와 중개기관들이 실적을 채우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영업에 나서고 있다. 교육받을 기관 발굴도 직접 해야 해서 부담이 막심하다”면서 “분야는 다르지만, 동일한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에서 일했던 동지의 죽음이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 장례식에 참석한 한 장애인이 “근조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지원”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박승원
 

설 씨의 죽음으로 전장연을 비롯한 장애인단체들은 이날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선포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중증장애인 취업지원사업이 죽음의 컨베이어벨트가 되었다”며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정식으로 면담을 요청해서 중증장애인의 기준에 맞는 일자리 제도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자”며 투쟁을 결의했다.

 

이들은 △동료지원가(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전면 개편 △문화예술, 권익옹호 활동에 대한 공공일자리 직무 인정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 교육 제도 전면 개편 △2022년까지 장애인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 폐지에 대한 정부 계획 △고용노동부 중증장애인 일자리 예산 확대 등을 담은 정책요구안을 이날 고용노동부 장애인고용과에 전했다. 

 

장례식을 마친 뒤 장례행렬은 기획재정부가 건물주인 나라키움 저동빌딩까지 행진한 뒤 도로점검을 하고서 그곳에서 분향소를 차린 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에는 나라키움 저동빌딩 내 ‘기획재정부 끝장 투쟁’ 농성장에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분향소를 설치했다.

 

장례 행진을 마친 뒤, 나라키움 저동빌딩 앞에서 추모제를 지냈다. 사진 박승원

 

故 설요한 동료지원가 약력


- 1995년 5월 16일생 (뇌병변, 중증장애)
- 2016년 2월 여수 한영대 사회복지과 졸업
- 2018년 4월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
- 2019년 4월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동료지원가 채용
- 2019년 12월 5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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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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