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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기회비용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등록일 [ 2020년01월03일 19시08분 ]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 언스플래시

12월 24일, 기말 보고서를 조금 이르게 마친 후 친구와 놀았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는 산타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었다. 식당에는 크리스마스 기념 디저트가 있었다. 사람이 가득한 나머지, 대화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 신촌 거리를 걸었다. 사방에 불빛이 가득했다. 와플을 파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는 어묵을 개시했다. 호떡과 붕어빵이 곳곳에 보인다. 코트가 가고 패딩이 왔다. 정신이 하나 없다. 여기에 울려 퍼지는 캐럴까지.

 

Pick a merry old Christmas tree, so lovely
(즐겁고 오래된 크리스마스트리를 골라요, 너무 사랑스러워)
The joy this time it brings to you
(즐거움, 바로 이 순간이 당신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겨울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다. 24일에는 친구와 학교에 있는 트리를 보러 갔다. 정말 컸다. 사람을 몇 명은 쌓고도 남을 정도였다. 트리 옆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키와 트리의 키를 비교하니 10m는 가뿐히 넘을 것 같았다. 친구는 거리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데에 개당 수십만 원이 든다고 말해줬다. 사람 키를 조금 넘는 것들이 그렇게 비쌀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학교 안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생각했다. ‘저기에는 얼마가 들었을까?’ 학교가 공개하지는 않아서 알 수는 없다.  학교는 그 비싸고 높은 트리 앞에서 마치 예배를 드리듯 찬송가와 캐럴을 부르는 점등식을 진행했다.


버스를 타고 집 앞 정류장에 내렸다. 앞에 한 택시가 멈췄고 아빠, 엄마, 아들, 딸로 이루어진 어느 4인 가족이 내렸다. 정장 입은 아빠와 드레스 입은 엄마의 옷차림과 여유로운 웃음, 너무나 전형적인 가족 구성을 보고 나는 그들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무례하게도 전형적으로 넘겨짚었다. 택시를 탄 이유는 가족끼리 술을 마셨기 때문이리라. 이 동네 근처에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기에 적절한 전형적인 레스토랑이 없으니, 택시비도 왕복 25,000원에서 30,000원은 나왔을 것이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 가벼운 걸음걸이.


25일에 나는 아빠와 함께 마트에 갔다. 계산대에 줄을 섰다. 앞의 사람은 환타 두 병과 포장된 음식을 계산하고 있었다. 17,000원 정도를 결제하는 소리가 들렸다. 묻지 않았으나 그는 두 딸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작고 안으로 굴러 들어가는 것 같았다. 걸음은 빨랐지만 가볍지 않았다. 무례하게도, 나는 그의 크리스마스를 조용히 넘겨짚었다.


단과대마다 등록금이 다르긴 하지만, 천만 원이면 두세 명의 등록금 전액을 지원할 수 있다. 비용 문제로 설치되지 않은 경사로는 몇 개였던가. 이동식 경사로는 가격이 내려갔는데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내가 24일 하루 동안 길에서 본 트리는 몇 개였을까. 찾아보니 2m 내외의 트리는 개당 20만 원 내외였다. 10m~20m 사이의 트리는 견적을 따로 내야 한다. 5m~10m 높이의 대형 트리 가격은 장식 여부와 종류에 따라 100만 원 내외부터 제품에 따라서는 2000만 원을 넘기기도 했다. 학교 트리 앞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서 찾고, 사진 속 사람의 키와 대강 비교했다. 10m를 안 넘을 리는 없었다. 2020년 기준 최저임금은 8,590원이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계속 불을 켜 놓으니 전기세도 나가겠지.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 언스플래시

 

원래도 연말에 예산이 낭비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숫자를 찾고 적어 보니 별로 관심 없던 겨울의 난데없는 축제가 싫어졌다. 물론 축제 덕분에 거리의 많은 상인은 크리스마스 특수의 이익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그 거리를 편히 즐길 수 없는 이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무언가를 선택하면서 포기한 다른 것 중 가장 큰 것을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이 크리스마스트리들의 기회비용은 무엇일까. 등록금? 생활비? 가장 큰 것을 고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삶과 삶을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여름에 설치한 그늘막을 크리스마스트리로 꾸미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기에 비용이 줄었을지 기대해 보았지만, 그마저도 개당 80만 원에서 200만 원이 든다는 소식에 나는 조용히 기대를 접었다.


You’re the angel on the top of my tree
(당신은 내 트리 꼭대기에 있는 천사예요)
Singing to the spirit above
(저 높은 곳의 영혼에 노래를 부르며)
Sing your heart out with all of your love
(당신의 사랑을 모두 담아 진심으로 노래 불러 봐요)
Santa’s coming for us
(산타가 우리를 위해 오고 있으니까요)

 

다시 학교 안의 거대한 트리를 떠올린다. 강남역 8번 출구 앞의 철탑은 저 트리보다도 높은 25m라고 하더라. 철탑 앞에도 거대한 트리가 세워졌다. 학교 안의 트리, 거리의 트리, 철탑 앞의 트리는 거리의 많은 이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기분은 소중하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트리는 누군가가 따뜻하고 포근하게 내년을 기대하도록 해 줄지 모른다.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앞에서 사진 찍는 이들의 행복과 추억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다수가 행복하게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동안 그 따뜻함 속의 온도 차이, 그리고 따뜻함의 바깥을 생각해 볼 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어떤 삶 위에 세워지고 있나. 트리 꼭대기에 천사 대신 사람이 보인다. 우리는 누구에게 온 마음을 다해 노래해야 할까. 하늘일까, 사람일까. 산타는 누구에게 오는가, 캐럴은 누구를 위해 울리는가. 크리스마스의 기회비용은 무엇인가.

 

* 기사 속 가사는 Sia의 ‘Santa’s Coming for Us’라는 곡의 가사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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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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