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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신자유주의는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영화 ‘미안해요 리키’, 켄 로치 감독
등록일 [ 2020년01월08일 18시04분 ]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리키가 택배공장 안에서 바코드 찍는 기계를 손에 들고 있다. 그의 뒤로 수많은 택배 박스가 쌓여 있으며, 양쪽에는 택배 운송 차량이 세워져 있다.
 

코카서스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지만 밤이 되면 간이 다시 회복되는 프로메테우스의 무한한 형벌은 익히 알려져 있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이 신화를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자에 대입하여 해석했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지만 실은 프로메테우스처럼 묶여 있으며, 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는 주체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제2의 자아라고 보았다. 즉 프로메테우스와 독수리를 자기착취의 관계로 본 것이다.

 

지속해서 민중을 위한 영화를 작업해온 사회파 감독 켄 로치는 2016년 황금종려상을 받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한 시민의 존엄성을 상실시키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9년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로 돌아온 켄 로치는 한 사람의 평범한 노동자가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손으로 피폐화시키는 과정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신자유주의가 피폐화시키는 삶

 

영화 주인공 리키는 오랫동안 비정규직, 일용직, 계약직 노동자로 근무했다. 이러한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불만을 가진 리키는 자신의 성실함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일을 원했다. 결국 “나 혼자 일하고 내 사업을 하고 싶어요.”라는 말과 함께 프랜차이즈 계약관계를 맺고 가맹점 택배사업자로 일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이제 노동유연화 현상을 넘어 긱경제(gig economy, 디지털 노동 플랫폼을 통해 노동자와 기업을 연결하고 노동자는 임시직 형태로 일하는 현상)로 나아갔다. 영화에서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의 ‘기계’이다. 가령 택배를 배송할 때 기계에 수령자의 서명을 필수로 받아야 하며, 심지어 리키가 택배 차량을 잠시만 비워도 그 기계는 스스로 체크를 한다. 가시적이며 물리적인 외부의 억압은 사라졌지만, 그리고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이제는 일하는 공간과 일하지 않는 공간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피고용인에서 ‘자기고용주’라는 그럴듯한 위치가 되었지만, 오히려 근무시간은 하루 14시간, 주 6일로 확대되었다. 물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일한 만큼 가져가는 일종의 성과제라는 명목은 분명하지만, 자기고용시스템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이 통제하도록 만든다. 가령 빠른 배송이 걸려 있는 택배의 경우 조금만 늦어도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영화에서는 그 압박감이 소변을 담는 패트병으로 묘사된다), 휴가를 사용하는 경우 대체근무자도 노동자 자신이 구해야 하며(결국 구하지 못하면 본사에 큰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근무 중 사고가 일어나도 산재처리가 되지 않는다. 자신이 노동자이자 곧 고용주가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용 당하는’ 임시직에서는 그 알량했던 노동자의 권리조차 전적으로 사라진다. 가장 서글픈 것은 불합리한 노동구조와 달리 자기착취에서는 어떠한 불리함도 쉽사리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리키의 부인인 애비는 호출형노동계약(zero-hour contracts, 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임시직) 상태에 있는 이른바 돌봄노동자이다. 그녀의 고용상태 또한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으며, 시간 외 수당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열악하고, 불안정한 근무조건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가족공동체를 와해시킨다. 서비스이용자에겐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면서, 시간에 쫓겨 정작 자신의 자녀에겐 식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게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영화에서 묘사된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더욱 공고화되는 자기착취

 

켄 로치는 ‘본질은 결국 착취’라고 언급한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고용주들에게 압박당하는 것에서 본사와 에이전트에게 압박당하는 거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착취는 자기착취로 공고화되고 있다. 리키는 자발적으로 열심히, 그리고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한다. 그 어떤 외부의 명령이나 강제, 감시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결국 자기 파괴적인 상태에 처했을 때 저항은 부재된다. 자기착취는 저항의 의지조차 앗아간다. 가령 리키는 “나는 실업수당 따위는 받지 않는다. 정당하게 일한 돈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실업수당을 얻기 위해, 가짜로 이력서를 낸 다니엘에게 다그치는 다른 노동자의 말과 연결된다. “왜 일하지 않고 놀면서 수당이나 받으려는 거냐.” 약자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니는 것도, 반대로 강자에게 어떤 제약을 가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이제는 박살 났다. 일하지 않고 복지수당을 받는 것은 죄악의 표상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제 사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모든 것은 너의 잘못, 개인의 부도덕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지배는 허상적인 자유 뒤에 숨어 있다. 허황된 자유는 모든 저항을 잠식시킨다는 점에서 강력하다.

 

자기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한 ‘성찰’과 ‘연대’의 힘

 

우리는 무엇에 맞서서 저항해야 할까? 억압을 행사하는 타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긱경제, 제로아워노동, 플랫폼 노동 등은 언뜻 정당해 보이며, 시스템의 문제는 없다고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어쩌면 더 자기착취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영화 마지막에 리키는 여전히 택배 차량 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못하며,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다.


영화를 통해 켄 로치는 계속해서 보여준다. 관계의 단절이 자기착취를 가속화시키는 촉매제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 속 리키의 관리자는 이런 말을 한다. “네가 택배를 하다가 다치든 죽든 상관없이 그들은 자신이 주문한 택배가 언제 오는지, 안전하게 도착하는지를 더 관심 있어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분열된 사회에서는 사람이 고장 나면 버리고 ‘다른 것’으로 교체해버리면 되는 소모품이 되어 버린다. 가령 영화 설국열차에서 어린아이가 열차의 부품이 되어 돌아가는 장면은 보다 직설적으로 이를 표현한다. 리키의 부인 애비가 일하는 환경도 유사하다. 규정에 의해 서비스이용자와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러한 관계의 단절은 수많은 원칙(매뉴얼, 프로토콜, 규정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영화는 계속해서 그 관계를 비춘다. 관객으로 하여금 하나의 부품이 아닌, 단순히 소모되는 택배 배달부가 아닌, 한 명의 시민이자 평범한 노동자인 ‘리키’로 볼 수 있게 말이다. 택배를 문 앞에 놓고 갈 때 붙이는 종이에 써진 ‘쏘리 위 미스드 유(Sorry We Missed You)’라는 감성적인 메시지를 상업적으로 외면해버리는 것이 아닌 진정한 호소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영화 중간 리키가 어린 자녀인 라이자와 함께 택배를 배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택배를 받는 소비자는 태도가 달라진다. 바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얼굴 없는 부품과 같았던 택배 노동자도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관계의 복원과 연대. 이제는 신자유주의라는 명백한 적 아래 연대해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다. 파리지옥,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지만 더 깊이 빨려드는 리키를 보면서 그것은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리키가 혼자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다면 같이 밟아주어야 한다. 한병철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사회에 책임을 지우고 따져 묻는 대신 자기 자신을 탓하게 만든다. 이런 계급으로부터는 어떠한 정치적 행동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너무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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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 강사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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