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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대표의 사과, 우리 ‘상처’가 문제인가?
상처보다 정치적 주체성에 대한 무시가 문제다
등록일 [ 2020년01월17일 12시42분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장애인 비하 발언이 문제되자 16일 “(자신의 발언) 결과로 여러가지 상처를 줬다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SBS 뉴스 영상 캡처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좀 약한데, 후천적 장애인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이 며칠간 논란이 되었다. 결국 그는 사과했다. “인용이었다 하더라도 장애인분들에게 상처가 될 말이었다.”고 했다. 그저 하찮은 문제 제기로 취급하는 이들이 많으므로 그의 사과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과 표현이 꽤 익숙하다. “장애인”, “상처” 등을 키워드로 검색해보았다. 장애비하 발언에 대한 여러 사과 기사들이 나왔다. 작년 9월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신장애인 비하로 비판을 받자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사과했다. 2018년 제천시 공무원은 뇌병변 장애인 운전기사에 한 발언이 문제 되자 “해당 장애인에게 깊은 상처를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역사가 긴 표현인데, 2005년 진해시의원은 여성장애인의 출산과 양육에 대해 비하하는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자 “중증장애인들을 무시하거나 우롱하고자 한 마음은 아니었다”면서 “상처를 받았을 회원들께 깊은 사죄를 드린다”고 했다.

 

장애를 비하하는 발언을 듣고 자기 존재가 가치 없게 평가된다는 생각에 우리는 심리적인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누군가는 크게 받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정말 문제의 핵심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이해찬 대표의 발언에 어떤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 표현에 마음을 ‘다치기’ 보다는, 그러한 표현을 자기검열 없이 내뱉는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시야에서 장애인들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에 ‘분노’하는 것이다.

 

범죄조직이 아닌 이상, 한국사회에서 어떤 집단이 공식적으로 정치인에게 이런 취급을 당하는가? 이를테면, “충청도 사람들은 의지가 약한데..”와 같은 표현이 정치권에서 나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심리학자가 그러는데 변호사들은 돈만 밝히지만 약사들은 돈을 덜 밝힌대요”라는 말도 떠올리기 어렵다. 물론 머릿속으로 사람들은 이런 류의 편견 또는 스테레오타입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몇 가지 속성으로 집단의 특성을 분류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런 표현을 내뱉지 않으려 애쓰며, 정치인들의 경우 특히 민감하다. 그럼에도 유독 장애인은 이러한 집단적 비하 표현의 대상이 자주 된다.

 

우리는 상처가 나서 아픈 것이 아니라,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않았기에 분노한 것이다. 이런 류의 사과문에 언제나 등장하는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상처를 줘서 죄송하다”는 말에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관대한 어른의 목소리가 녹아있다.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로 장애인을 규정한다. 장애인을 정치적 협상, 설득, 협력, 타협, 대등하고 공정한 투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분노한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는 사과문은 같은 태도를 그대로 반복한다. “내가 보호하고 잘 돌봐줘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구나”라는 말은 정치적 주권자를 향한 반성과 화해 제안의 태도가 아니다. 

 

동등한 정치적 주체 간의, 주권자와 정치인 간의 관계에서 발생한 갈등에 대한 사과문이라면 위로와 달래기가 아니라 반성에 기초한 상대 주권자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여야 하지 않을까? 정치권의 경쟁자인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 한쪽이 커다란 실수로 상대방을 불쾌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해보자.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쪽에서는 어떤 말을 할까? 우리가 야당을(여당을) 존중하지 못했다. 반성하겠다. 개선책을 마련하겠다. 우리의 악수를 받아달라. 함께 더 나은 정치를 하자. 진정으로 상황을 개선하고 싶은 사과문이라면 아마 이런 표현들이 담길 것이다. “자유한국당 대표님께 상처를 줬다면 미안합니다”라고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여 여당이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하다못해 형식적인 개선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야당은 자신들을 시혜적으로 대하는 태도라며 더 반발할지도 모른다.

 

우리 일상의 언어습관 자체에는 누적된 장애 비하의 의미가 여럿 담겨있다. 장애를 젠더나 인종, 지역과 같은 정체성을 이루는 중립적 속성으로 보는 대신 치료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도 현재 50대 이상의 정치인들에게는 익숙한 것이어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때로 비하 표현이 담긴 말을 내뱉어도 실수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물론 이해찬 대표의 말은 정황을 이해하려 해도 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발언이 논란이 되어도 다시 반복되고, 비판은 무시로 일관하고, 사과가 이뤄져도 위로나 달래기에 그칠 때, 장애를 가진 우리는 주권자로서 우리가 진지한 존중을 받는다고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되어, 분노한다.

정치적 주체, 주권자에 대한 비존중을 사과하고 자신들의 정치 세력이 품어야 할 동등한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화해와 타협의 손을 내미는 사과문은 어때야 할까? 정치권이 답할 질문이다. 장애인이라고 규정된 인구집단을 정치적 돌봄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정치권력의  파트너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21세기 민주주의 시스템을 운영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라는 클래식한 장애 비하를 난발한 박용찬 자유한국당 대변인에게 말하고 싶다. 장애를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립적 속성으로 보는 인식은 세계적으로 점점 보편적이며, 20세기 중반 이후 시작된 장애인인권 운동과, 그 결과 형성된 국제적인 인권규범으로(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7조 등) 공식화되었다. 21세기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 이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몸이 불편하다고 장애인이 아니다.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이 장애인이다”라는 말은 “피부가 검다고 흑인이 아니다. 마음이 검은 사람이 흑인이다”라는 말처럼 터무니없다. 자유한국당원을 지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자유한국당에 속했다고 다 자유한국당원이 아니다. 마음이 삐뚤어지고 정치적으로 부당한 짓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유한국당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라며 준엄히 꾸짖는다면, 대변인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대변인은 상처를 받기보다는 우선 분노할 것이며, 자신의 정당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은 상대방 정치 세력에게 맞서고 싶을 것이다. 21세기에 살라.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비마이너 출범부터 함께 했지만 1년에 글 두 개 쓰는 게으른 칼럼니스트.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을 썼다. 법, 장애, 예술에 관심을 두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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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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