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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은 없다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등록일 [ 2020년01월28일 19시54분 ]

나는 크론병으로 인해 신체검사에서 5급을 받아 군대에 가지 못했다. 내가 자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또 모르지만, 내 앞에 놓인 ‘모범적인’ 선택지는 보통 ‘면제’라고 부르는 ‘제2국민역’과 치료 지원 사업이었다. 여기서 후자는 질병 등의 사유로 현역 복무가 어려운 이들에게 치료를 지원해 주고,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크론병은 아직 치료법이 없기에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었다.

 

요즘은 아니지만, 20대 초반에 한창 입대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시기에는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겉보기에 멀쩡한데’ 군대는 안 가니까. 나는 “신의 아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상황을 어떻게든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아파서 결석한 수업의 교수님께 메일을 쓰듯이 나는 병의 원인과 증상부터 지금 상태까지 의료기록을 읊기 시작한다. 들으면 대체로 충격과 공포로 당황하는 ‘희귀’ ‘난치’ ‘원인불명’ ‘면역’ ‘염증’ 같은 말은 꼭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서 항상 고민했다. 나는 왜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였을까? 누가 요구한 적도 없는데. 그건 설명이 아닌 해명이었다.

 

지난 1월 22일, 변희수 하사가 육군 전역심사위원회의 전역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KBS 뉴스 영상 캡처

 

최근 한 군인이 강제 전역을 통보받았다. 그는 여성이지만 ‘남성 군인’으로 복무해야 했다. 자신이 선택한 적 없는 몸에 의해 자신이 아닌 정체성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아니 생존하고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성별을 밝혔다. 전우들의 격려와 응원을 가득 안고, 소속 부대의 지지를 받으며 용기를 냈다. 여성인 그는 수술 후 남성 군인이 아닌 ‘여군’으로 복무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온갖 기준을 들이밀며 그를 가로막았다. 함께 생활할 여군들을 갑자기 ‘걱정’하기도 했고, 여자임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정작 그가 근무하던 여단에서는 그가 복무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검증이라 쓰고 의심이라 읽는 일련의 폭력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전투 능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몸의 일부를 제거했다는 이유로 이미 입대와 복무 전반에 걸쳐 입증된 그의 신체적 능력을 재차 확인하려 들었다. 전역했다가 다시 시험을 보라며 경력단절을 강요했다. 그의 몸은 의심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어느 언론사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가짜 소수자의 횡포”라고 제목을 붙인 기고문을 그대로 실었다.


몇 년 동안 고민하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설명이라고 착각했으나 해명이라고 직감하고 있던 나의 행동들은 나의 질병과 약한 몸이 잘못이라는 생각에서 나왔다. 그러나 나는 잘못하지 않았고, 나의 몸은 잘못이 아니다. 그저 어쩌다 ‘복잡 치루’가 생겼고, 관련해서 진단을 받다가 그것이 크론병 때문이었음을 발견했을 뿐이다. 원인도 모른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크론병 환자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이 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그 군인의 말이 맴돈다. 아직 군은 트랜스젠더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고.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군대에 대해 이런 생각을 안 해 봤던 것은 나에게 너무 당연했지만, 내가 하고 싶던 일들도 몸 때문에 포기했다. 그게 나의 몸에 맞게, 나의 몸과 함께 살아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나의 몸을, 통증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몸이 잘못이 아니라면, 나는 왜 내 몸을 근거로 원래의 진로를 포기했을까. 왜 ‘이런 몸’이라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요구받은 적도 없이 해명했던 이유와 같았다. 주변인들뿐 아니라 나에게도 내 몸은 잘못이었다. 그래서 어딘가 심각하고 불행해 보이는 말을 꼭 덧붙이며, ‘멀쩡해 보이는’ 나도 사실은 아픈 사람이라고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군인은 자신이 선례가 되어 이미 있는 성소수자 군인들과 앞으로 올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게 군대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훌륭한 여군이 되어 끝까지 최전방에 남아 나라와 국민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 군인의 이름은 변희수 하사다. 변 하사와 함께 생활하고, 그를 지지하고 응원한 전우들을 보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군대는 성소수자 색출이 버젓이 일어나던 집단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믿을 수 없이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었다. 변 하사를 만나기 전에 그의 전우들이 트랜스젠더에 관해, 성소수자에 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변 하사의 존재가, 변 하사의 용기가 전우들의 용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성소수자를 색출하던 집단 안에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분명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내가 내 질병 때문에 진로를 포기했다고 말했을 때, 한 분은 “들어가서 버티고 바꿨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그 말이 다소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내가 원한 미래와 나의 몸을 연결하여 제대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크론병 있는 변호사, 크론병 있는 검사, 크론병 있는 군인, 크론병 있는 인류학자, 크론병 있는 … 상상도 안 해 보고 나는 이미 여러 길을 포기했고, 당연히 못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직장에 들어가서 나의 질병을 밝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말 사람들은 나를 그저 소외시킬까, 아니면 어떻게든 나와 함께하려고 노력할까. 어쩌면 나의 용기와 존재가 그 공간을, 사람들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직업을 갖고 싶은 크론병 환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포기한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나부터 나의 몸을 부정하고 의심했기에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플 때 응당 받아야 할 편의나 이해를 구할 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불쌍한 아픈 사람’의 모습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편견에 들어맞는 소수자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편견의 압박은 삶을 압도할 만큼 강력하다. 하지만 변 하사는 ‘여자처럼’ 보여야 한다는 압박에 전면으로 도전했다. 어릴 때부터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고, 자신이 군인으로서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 말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꿈을 설명했다. 그건 용기였고, 증명이었다.

 

이제야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잘못이 아닌 무엇을 해명할 수는 없다. 몸에는 잘못이 없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말라. 몸에 대한 해명은 없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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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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