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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는 방법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홍성훈
등록일 [ 2020년02월19일 14시06분 ]

우리사회는 장애인을 성적 주체로 보지 않는다. 무성적 존재, 혹은 일방적 피해자로 바라볼 뿐이다. 장애인은 사랑의 주체에서도 박탈된다. 이들의 사랑은 ‘불완전한 이들이 만들어낸 감동 스토리’로 소비된다. 사회는 장애인의 사랑과 성을 연결하여 사유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를 한 사람의 삶의 서사 속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랑과 성과 욕망은 인간 관계의 자장 속에서 일어난다.

 

대만의 저널리스트 천자오루는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 돌봄노동자, 활동가, 특수교사 등을 인터뷰하여 장애인의 사랑과 성을 담은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강영희 옮김, 사계절출판사)을 펴냈다. 비마이너는 이 책을 매개로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애인 당사자와 발달장애인 어머니, 오랜 시간 발달장애여성의 성에 대해 고민해온 활동가의 글을 총 다섯 번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글을 통해 거세된 욕망의 언어가 한국에서도 섬세하게 피어오르길 기대한다. _ 편집자 주

 

①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_ 변재원

②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는 방법 _ 홍성훈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천자오루 지음, 앙영희 옮김, 사계절출판사) 표지 이미지 ⓒ사계절출판사
 

참견의 끝판왕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다니던 학교가 집과 떨어진 곳에 있어 어머니의 차를 타고 등·하교를 해야 했다. 나는 차를 타자마자 병든 닭처럼 졸았고 어머니는 그러거나 말거나 운전석에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날의 이야기 주제는 시댁살이였다. 어머니는 시댁에 한 번 갔다 오면 자식 중 한 명은 앉혀 놓고 당신의 시댁살이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나는 퀭한 눈으로 어머니의 넋두리에 졸음 반, 귀찮음 반 고개를 주억거렸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을 앉혀 놓고 시댁의 흉금을 터놓는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대꾸할 반응도 떠오르지 않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날도 뻔한 레퍼토리를 예상하면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단어가 내 귀에 걸렸다.


“그 색시가 어디서 왔다고 했더라? 응 그치, 베트남. 베트남에서 왔다고 했어. 하하하”


어머니는 ‘베트남’이라는 나라 이름을 대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웬 베트남? 뻔하디뻔한 레퍼토리에서 생소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호기심이 동했다. 나는 몸을 슬금슬금 운전석 옆으로 기울였다. 어머니의 이야기인즉슨, 전날 시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러 시댁에 건너갔더니 웬 낯선 외국인 여자가 쭈뼛쭈뼛 서 있었단다. 제사 준비로 모든 식구가 온 집안을 떠들썩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만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붙임성 하나는 남 부럽지 않은 어머니가 갓 부친 동그랑땡을 들고 다가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집안 식구가 돼 있었는데 머나먼 고향을 떠나와 나의 오촌뻘 되는 친척과 혼인신고를 마친 후였다. 어머니는 처음으로 외국인과 나눈 긴 대화가 인상적이었는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읊었다. 그러다 슬쩍 내 눈치를 보고 나를 떠보았다.


“아들, 베트남에서 신붓감 찾는 건 어때? 직접 보니까 예쁘고 참하더라. 하하하.”


내 나이 열여덟이었다. 어머니는 고작 열여덟 살밖에 안 된 자식에게 국제결혼을 권유한 것이었다. 방심한 틈을 타고 훅 들어온 말에 이렇다 할 반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쨉을 깔짝깔짝 날리다가 급기야 급소에 어퍼컷을 꽂고 말았다.


“안 될 거 뭐 있나? 넌 그냥 가만히 누워 있으면 아내가 네 위에서 알아서 씨를 받아 가겠지.”
“……”


그때 내가 느낀 심정은 몸 안에 있는 정자를 모조리 뺏긴 기분이었다. 세상에, 자식의 성생활까지 참견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민망하다 못해 순간적으로 발가벗겨진 것처럼 수치심이 들었다. 아침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내보인들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외려 나 혼자 성생활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에 얼마간 자부심이 있었다(그 당시 성생활이란 늦은 밤 가족들 몰래 자위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어머니가 불쑥 끼어 들어와 애써 쌓아놓은 공든 탑을 무너트려 놓은 것이다.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온기를 나누는 섹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후사(後事)를 대비해(?) 밤마다 이부자리에서 허리 운동을 틈틈이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당신의 아들은 다 계획이 있다고, 일일이 참견하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다. 그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설령 내가 외국인 여성과 국제결혼을 한다고 해도 배우자의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가 쉽게 오해하는 것과 달리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낯선 국적의 사람과 낯선 나라에서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소위 이주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 우리는 종종 그들에게 ‘가난’이라는 빨간 딱지를 붙여 놓고는 그들에게 어떤 욕망이 있는지, 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주여성을 바라보는 주류의 시선은 그들의 삶을 최대한 납작하게 만든다. 또한, 만약 내가 ‘장애여성’이었더라도 어머니는 내게 그러한 ‘농담’을 했을까?


어머니는 농담조로 말했겠지만, 그 농담에 담긴 함의들은 쉽게 웃고 넘길 수만은 없었다. 나는 눈을 치켜뜬 채 마음속으로 어머니에게 이 말을 무수히 되뇌었다.


‘선 좀 지키시죠?’


그렇다고 어머니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때부터인지 어머니는 나와 똑 닮은 손주 하나를 키워보고 싶다며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손주라는 녀석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 즉 비장애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았지만, 한편으로 천천히 고개 드는 서운함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어머니의 마음 한 귀퉁이에서 끝내 맞춰지지 않을 퍼즐 조각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여덟 살 이후로 제대로 땅바닥을 딛고 일어서지 못하는 내 다리를 보면서 무슨 감정이 들었을까? 또 어떤 방식으로 그 감정을 토닥거렸을까? 다른 이의 감정을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 감정선만큼은 쉬이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이런저런 감상 따위에 빠져 시무룩해 있는 동안 어머니는 또 다른 비수 하나를 내 등짝에 꽂았다.


“너 지난달 카드 쓴 거 보니까 인터넷으로 죽 주문했더라. 설마 그 애한테 보낸 건 아니지?”
“…… (맞아)”
“맞다고? 엄마는 죽을 듯이 아파도 거들떠보지 않더니만. 이래서 아들 새끼는 키워봐야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야. 아이고 이 미친놈!”


당시 나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한 여자아이와 ‘랜선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두 살 정도 어렸는데 지방에서 살고 있어 우리는 채팅으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하루는 그 아이와 통 연락이 닿지 않아 종일 걱정하고 있었는데 늦은 밤이 되어서야 문자가 왔다. 몸이 아파서 학교와 아르바이트도 못 가고 집에서 끙끙 앓는 중이라고 했다. 그 아이가 보낸 ‘ㅠㅠ’라는 이모티콘에 나는 그만 울적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기차표를 끊고 싶었지만, 비정하게도 세상은 우리의 연애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때 가족과 동거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주어진 활동지원시간은 8시간이 고작이었다. 설령 내가 기차를 타고 간다고 해도 얼굴만 살짝 보고 다시 서울로 와야 했다. 이거 뭔 현대판 견우와 직녀도 아니고…….


하지만 돌이켜 본다면 사실은, 그건 한낱 변명에 불과했다. 나는 그 아이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휠체어를 탄 내 모습을 본다면 그 아이는 뭐라고 할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떨어졌다. 맞다. 나는 비겁하다면 비겁했다. 대신 나는 ‘아빠 카드’를 내세워 자상한 면모를 어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그 아이의 집으로 죽을 보내 놀라게 해줄 요량이었다. 일종의 서프라이즈 이벤트라면 이벤트랄까. 그때만 해도 인터넷에서 음식을 주문한다는 것이 생소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도 선구자는 있기 마련인지라 나는 인터넷을 이 잡듯이 뒤져 홈페이지에서 주문받아 배달하는 죽집을 찾아냈고 죽 종류를 골고루 섞어 그 아이의 집으로 보냈다. 얼마 뒤 죽을 배달받은 그 아이는 하트가 무수히 담긴 문자를 보냈고 나는 며칠간 허파에 바람 들어간 사람처럼 실실 쪼갰다. 그렇게 달달하게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불행히도 이 이야기의 엔딩은 새드엔딩이었다.


당연히 나는 죽 선물을 ‘아빠 카드’로 결제했는데, 한 달 뒤 카드 명세서가 눈치 없이 팔랑거리며 날아와 어머니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카드 명세서를 본 어머니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에게 물어봤는데 앞에서 본 것처럼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길길이 날뛰었던 거고. 어머니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문자질만 한다면서 나의 연애를 못마땅해하고 있던 찰나였다. 신용카드 명세서는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의 무기처럼 어머니의 손에 착, 달라붙었다. 그 후 어머니는 몇 년간 나와의 싸움에서 자신이 불리해지면 ‘지 에미는 쳐다보지도 않고 애인만 챙기는 후레자식’이라는 철퇴를 휘두르곤 했다. 나는 피눈물을 머금으면서 다음번 연애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비자금으로 하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나의 랜선 연애는 별 탈 없이 시작되었던 만큼 별 큰일 없이 끝나버렸다. 고3이 된 나는 입시 준비에 바빴고 점점 그 아이와 연락하는 횟수가 뜸해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이별을 맞이했다. 남은 것이라곤 ‘후레자식’이라는 사자후 섞인 욕설뿐이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 ‘삐까 뻔쩍하게’ 연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 믿음은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선을 넘는 방법

 

단언컨대 대학교는 나에게 있어 가장 안전한 공간이었다. 캠퍼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최소한 나의 장애를 근거로 차별하지 않았다. 비장애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공부하기 위해 처음으로 투쟁하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캠퍼스를 휘젓고 다녔다. 항상 곁에는 나를 지지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교감하며 한 발짝씩 성장했다.


동시에 마음속에선 허전한 구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좀처럼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언어장애가 있어 남에게 떠벌리지 못할 거라는 ‘편견’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나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보였다. 사람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의 절반은 연애에 관한 것이었는데, 또 그중의 절반은 여사친(여자사람친구)들의 차지였다. 내가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만나는 상대방이 왜 그런 식으로밖에 행동을 못하는지 자주 물어왔다. 찌질함 하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나는 그들의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 공감만으로도 절반 가까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줄수록 내 고민은 점점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만났던 거의 모든 사람은 나를 보고 편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달갑게 느껴졌지만, 편하다는 것 말고 다른 매력은 찾아볼 수 없는, 점점 밋밋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하루에도 기분이 수시로 바뀌어 변덕이 심하고 가슴에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욕망이 드글드글 끓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나에게서 편한 느낌‘만’ 받을까? 나는 어떤 이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다가갈 순 없을까?

 

사람들과 나 사이에는 경계선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 경계선은 ‘예의’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았다. 나는 그 경계선 안에 있는 한 안전했다. 하지만 그 안전한 공간에서는 나의 매력을 보여줄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문득 한 번쯤 누군가 경계선을 넘어와 나의 못 볼 꼴도 봐주고 좀 참견해주었으면, 은근슬쩍 바랐다. 어머니의 참견에 그렇게 몸서리쳤음에도, 한편으로 그것을 열망하고 있었다니. 이렇게나 나는 모순적인 인간이었다.

 

운동장에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경계선 끝에 테니스공이 살짝 걸쳐 있듯이 놓여 있다. 사진 픽사베이
 

수많은 영역 중에서도 사람들과 나의 경계선이 절대 포개질 수 없는 영역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과 사랑에 관한 영역이었다. 몇몇 지인들은 나와 별의별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러한 주제로 바뀔 것 같으면 입을 닫아버렸다. 일명 ‘색드립’(성에 대한 농담)에 대해서라면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의 흐름은 다른 주제로 넘어가 있었다. 그게 내심 서운했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불편한’ 질문을 받고 싶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 말이다.


“너도 ‘그거’하니?”


한번은 과 선배와 술을 먹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선배는 어느 순간부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선배에게 편하게 말해도 된다는 싸인을 보냈고, 선배는 나에게 어떻게 성욕을 해결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선배의 질문이 불쾌했다기보다는 외려 기분이 좋았다. 선배에게는 내가 그저 ‘장애인’이 아닌 울퉁불퉁한 욕망을 가진 한 인간으로 보였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나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긴요? 손을 위아래로 바쁘게 놀리죠.”


선배는 내 손을 유심히 보더니 “그게 가능해?” 되물었고 나는 또 한 번, “이상하게도 그때만 되면 제 손발이 척척 말을 듣더라고요”라고 받아쳤다. 우리는 불판 위 고기가 저절로 뒤집힐 만큼 크게 웃어넘겼다.


그 술자리 이후 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내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일종의 객기(?)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작년 2019년에는 성소수자 장애인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많은 관객들과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를 나눴고, 비마이너에 「나의 S 다이어리」를 기고해 나의 섹스 라이프를 이야기했다(나의 체감상 그 두 편의 글은 내 지인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나를 포함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맞는 걸까? 다른 장애인들은 어떤 사랑을 나누고 어떻게 섹스를 하지?


그러다 우연치 않게 타이완 저널리스트 천자오루가 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사계절, 2020)을 만났다. 놀랍게도 책에는 여태껏 지극히 개인적으로만 여겨졌던 나의 성과 사랑에 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마치 초면인 사람이지만 죽이 잘 맞아 그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떠는 것처럼 나는 그 이야기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달며 책에서 소개된 사람들과 소통했다. 천자오루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는 타이완 장애인들의 다양한 성, 그리고 사랑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타이완 역시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관한 영역에 수많은 경계선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각자의 고민을 안은 채 온몸으로 밀고 나가고 있었다. 특히 장애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들을 다룬 챕터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장애인과 여성 혹은 성소수자라는 겹겹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사회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 거침없이 몸을 던진다. 그리고 저자 천자오루는 그 과정을 담담한 문체로 옮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성과 사랑만큼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 영역은 보기 드물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성과 사랑만큼 공론화가 되지 않는 영역도 찾기 힘들다. 만약 장애인의 몸을 둘러싼 경계선에 대해 말하고 이를 넘어서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나는 이 책을 망설임 없이 권하고 싶다. 끝으로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장애여성의 말을 옮겨본다.

 

“모든 사람의 신체에는 한계가 있어요. 자신의 신체를 바꾸어 장애를 돌파하려 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해야 해요. 도움이 필요할 때 구할 수 있게요. 지금의 저는 예전보다 저 자신을, 제 몸을, 제 휠체어를 더 사랑해요. 무엇보다 제게는 내 아이와 가족을 변함없이 사랑할 힘이 있고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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