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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공문 한 장’으로 탈시설 출구 봉쇄?
복지부 “시설 퇴소 시 본인 의사 확인해야”… 의사표현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더 나은 서비스’ 기준으로 퇴소적격성 절차 마련해야
등록일 [ 2020년02월19일 13시34분 ]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는 지난 1월 6일 17개 시‧도에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의 퇴소 시 절차 준수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은 다시 17개 시‧도에서 기초지자체로, 기초지자체는 관할 장애인거주시설에 같은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장애인거주시설로 보낸 공문 내용. 사진 익명의 제보자 제공
 

“정부가 장애인탈시설 정책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방향성 잃은 정부의 장애인탈시설 정책과 철학 부재에 장애계의 탄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정부의 지지부진한 탈시설 정책에서 나온 한 장의 공문으로 더욱 심화됐다.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는 지난 1월 6일 17개 시·도에 ‘장애인거주시설(아래 거주시설) 이용자의 퇴소 시 절차 준수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은 다시 17개 시·도에서 기초지자체로, 기초지자체는 관할 장애인거주시설에 같은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 공문은 ‘장애인 당사자의 시설 퇴소 의사가 명확할 때에만 퇴소가 가능하며, 의사 확인이 불가능할 때는 가족이나 대리인의 확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는 언뜻 타당해 보이나 두 가지 맹점이 있다. 하나는 현재 시설 거주인의 상당수가 의사확인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시설에서 더는 돌봄이 어려워 강제퇴소시키는 상황과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탈시설에 대한 구분 없이 이를 적용함으로써 사실상 탈시설 출구를 봉쇄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 복지부 “시설 퇴소 시 본인 의사 확인해야”… 의사표현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공문에는 ‘거주시설 이용자의 퇴소는 장애인의 사망, 원가정 복귀, 시설 전원, 장애인의 요구 등의 사유로 이루어질 수 있으나, 시설 퇴소 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장애인 본인의 의사이며 이용자 본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부족할 경우에는 이용자의 보호자, 법정대리인 등이 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장애인 본인 의사나 보호자 법정대리인이 결정하지 않을 경우 ‘장애인복지법’상의 금지행위로 ‘장애인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라고 규정하고, 아울러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행정처분도 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다.

 

현재 거주시설 장애인의 80%가량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이는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공문대로라면 더 좋은 환경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장애인이라도 당사자의 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면 시설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가족이 없는 발달장애인은 의사결정을 조력하는 공공후견인제도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공공후견인제도를 이용하려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결정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경우, ‘최대 이익의 원칙’이나 ‘최소 제약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ㄱ 기관 관계자는 “시설에 들어올 때 대부분 장애인 당사자들의 자기결정권은 없다시피 했다”며 “그동안은 자기결정권을 묻지 않다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기회가 왔을 때 자기결정권을 우선에 놓는다면 탈시설을 추진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장애인에 대한 돌봄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가족은 시설에 장애인을 강제입소시키고, 시설 입소와 함께 가족 관계는 사실상 단절된다. 그런데 현재 방침은 그동안 관계가 단절됐던 가족들에게 그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ㄴ 기관 관계자 또한 “사실상 거주시설 장애인과 원 가정은 왕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설 폐쇄를 앞두고 시설장애인이 탈시설을 한다고 하면 가족이 나타나서 반대하는 일이 빈번하다”며 “활동지원이 되고, 더 좋은 주거환경이라고 해도 가족이 반대를 해 자립생활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어떤 게 시설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한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탈시설-자립생활이 장애인당사자에게 해를 끼치고 정서적 학대 행위로 해석할 여지를 주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시설 이용절차’ 과정. 그러나 ‘시설 퇴소절차’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캡처
 

- “복지부 퇴소적격성 절차 마련하지 않고, 거주시설에 책임 떠넘겨”

 

공문에서는 ‘최근 거주시설에서 이용자 본인 또는 대리인의 동의 절차 없이 퇴소를 하거나 전원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공문 발송 배경을 밝히고 있다. 복지부에 확인한 결과 실제로 가족과 거주시설 직원으로부터 강제 퇴소에 관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해 공문을 발송한 것은 아니라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신규호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사무관은 “강제 시설 퇴소에서 오는 인권침해 사례를 막기 위한 지침 개정을 추진하던 중에 다시 한번 거주시설 측에 지침을 상기시키기 위해 공문을 보냈다”며 “복지부가 이러한 공문을 보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지침에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공문이 복지부의 책임 전가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거주인에 대한 인권침해 등 문제가 발생한 시설로 지정돼 탈시설을 추진하고 있는 ㄱ 기관 관계자는 “(복지부는) 이미 장애인복지시설 사업 안내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 시설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존중, 인권침해 대응을 위한 취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복지부가 퇴소 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예방책임을 거주시설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부 거주시설에서는 도전행동 등으로 거주시설에서 더는 돌봄이 어려운 경우, 장애인을 강제퇴소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거주인을 내쫓는 듯한’ 강제퇴소와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생활을 위한 시설 퇴소, 즉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으로서의 시설 퇴소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이를 변별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거주시설에 입소할 때는 입소적격성 절차를 따르지만, 퇴소할 때는 온전히 시설장이나 직원의 판단으로 퇴소가 이뤄진다. 퇴소 절차의 부재는 상반된 환경으로의 시설 퇴소에 대해 같은 법적 근거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따라서 탈시설을 추진하고 있는 기관의 관계자는 탈시설하는 장애인의 거처와 맞춤지원 등을 고려해 퇴소적격성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강제퇴소와 탈시설-자립생활을 변별할 최소한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신 사무관은 “정부가 탈시설 정책을 지양하겠다는 의도를 공문에 담은 것이 아니다”라며 “2월 중으로 퇴소적격성 절차를 담은 공문을 다시 내려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정부의 장애인탈시설 계획, 체감도는 0퍼센트

 

탈시설 추진 기관에서 정부가 보낸 한 장의 공문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지지부진한 정책 이행 때문이다.

 

정부는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년)’에서 첫 번째로 ‘지역사회 삶이 가능토록 복지·건강 서비스 지원체계 개편’을 꼽았고, 그 안에 장애인탈시설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정부 정책에 ‘탈시설’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해 장애계는 정부의 정책 의지에 큰 기대를 걸었다. 또한 지난해 4월 15일 장애인단체 간담회에서 포괄적이기는 하더라도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및 탈시설 기본방향’을 내놓기도 했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2년까지 주거의 공공성 강화를 통한 탈시설 기반 구축 및 법제화를 추진하고, 2026년부터 시설 추가입소를 제한하는 등 탈시설 확산과 제도화를 목표로 삼는다. 구체적으로는 △탈시설 개념 정립, 탈시설지원센터 설치·운영 근거 마련, 탈시설 지원을 위한 국가 및 지자체의 의무 명시 등을 담은 장애인복지법 개정 △탈시설지원센터 중앙(2019년까지), 시·도별(2020년부터)로 설치 △새로운 거주서비스 유형 개발 △재가 장애인에 대한 주택지원 강화 등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 중 어떠한 계획도 이행되지 않았으며, 정부는 탈시설 예산을 단 한 푼도 책정하지 않았다. 정부의 탈시설 정책 의지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지적에 복지부 관계자는 탈시설·탈원화를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티케어를 노인 중심에서 장애인으로 점차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6월부터 제주시와 대구 남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도 장애인탈시설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선도사업에 대한 의견을 청취해 다른 지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모델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신 사무관은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꾸준히 논의하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 탈시설 정책 계획이 더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속도의 문제일 뿐 정부 정책 방향이 바뀔 일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가 제시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년)’ 중 탈시설에 관한 내용. 이중 이행되고 있는 계획은 없으며, 관련 예산 책정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캡처

- “미국의 탈시설 정책 본받아 세밀한 탈시설 정책 펼쳐야”

 

복지부의 계획에 장애계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숙경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탈시설 정책은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현재로서는 그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탈시설의 의미와 장애인당사자의 의사표현의 어려움, 시설 복지서비스 상황을 고려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미국의 옴스테드 판결이나 홈엔커뮤니티베이스주거서비스 기준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옴스테드 판결(1999년)은 시설 거주에 대한 의사표현의 유무가 아니라 더 나은 서비스를 선택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다. 미국의 탈시설-자립생활운동이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변화하는 데 이바지한 판결로 평가받는다. 판결에서는 정당하지 않은 시설 격리는 미국장애인법(ADA)에 의해 차별에 해당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

 

이런 흐름 속에 미국은 지난 2014년 홈엔커뮤니티베이스주거서비스 기준(아래 HCBS 기준)을 마련했다. 이 기준에 미달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2019년부터 재정지원을 중단했다. HCBS 기준은 △보다 넓은 지역사회에 통합 △지역사회에 대한 완전한 접근 지원(통합된 환경에서의 고용, 지역사회 생활 참여 등) △당사자의 주거환경 선택 △개인의 존엄, 사생활 및 존중, 강압과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권리 보장 등이다.

 

박 교수는 “탈시설 과정에서 탈시설 기관의 직원이나 부모로부터의 민원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라며 “현행법이 시설 중심으로 짜여 있기에 탈시설을 진행할 때 혼란스럽고, 현행법을 위반하는 일이 충분히 발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탈시설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이런 문제는 정부가 반드시 해소해야 할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현행법을 고려하면서도 당사자가 의사소통이나 가족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 또한 고려해야 한다”며 “그 중심에는 더 나은 형태의 주거와 지원, 장애인의 삶을 두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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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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