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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제까지 ‘장애인의 성’은 ‘장애남성의 섹스’ 이야기였다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수겹의 젠더 불평등과 장애차별 있는데… ‘장애인’의 성과 사랑?
등록일 [ 2020년02월27일 14시47분 ]

우리사회는 장애인을 성적 주체로 보지 않는다. 무성적 존재, 혹은 일방적 피해자로 바라볼 뿐이다. 장애인은 사랑의 주체에서도 박탈된다. 이들의 사랑은 ‘불완전한 이들이 만들어낸 감동 스토리’로 소비된다. 사회는 장애인의 사랑과 성을 연결하여 사유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를 한 사람의 삶의 서사 속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사랑과 성과 욕망은 인간 관계의 자장 속에서 일어난다.

 

대만의 저널리스트 천자오루는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 돌봄노동자, 활동가, 특수교사 등을 인터뷰하여 장애인의 사랑과 성을 담은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강영희 옮김, 사계절출판사)을 펴냈다. 비마이너는 이 책을 매개로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애인 당사자와 발달장애인 어머니, 오랜 시간 발달장애여성의 성에 대해 고민해온 활동가의 글을 총 다섯 번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글을 통해 거세된 욕망의 언어가 한국에서도 섬세하게 피어오르길 기대한다. _ 편집자 주

 

①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_ 변재원

②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는 방법 _ 홍성훈

이제까지 ‘장애인의 성’은 ‘장애남성의 섹스’ 이야기였다

 

- 장애여성인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번 서평을 제안받았을 때 부담감이 매우 컸다. 나에게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란 주제는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성과 사랑이 특별한 무엇도 아니고 일상에서 늘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한데 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까, 생각도 했다. 성과 사랑이 일상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인 내가 이 주제를 대놓고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게 선뜻 용기가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내 안에서 정리되지 못한 경험과 고민이 뒤섞여 있어서 어떤 내용과 언어로 내보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 글을 쓰기까지 혼자 몇 주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에는 나의 성적 욕망을 파격적으로 써볼까? 또 어떤 날에는 나의 구질구질한 연애담을 분석해 보는 내용을 써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머릿속에 한가득 담고 차일피일 글쓰기를 미루었다.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을 썼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상상도 하면서 말이다.

 

아마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너무나 쉽게 환원시키는 사회에서 나의 글은 희롱의 대상으로 치부되어 자극적인 내용으로만 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노출있는 옷을 입으면 ‘성적으로 무척 개방된 여성’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도 성에 대한 나의 또 다른 편견이자 통념일 수도 있지만, 실제 내가 노출있는 옷을 입었을 때 통제적 언어와 성희롱을 들은 경험이 있는지라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천자오루 지음, 앙영희 옮김, 사계절출판사) 표지 이미지 ⓒ사계절출판사

 

- 내게 몸의 변화는 생존의 위기로 다가왔다 

 

사실 나는 성과 사랑을 생각했을 때 그리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어느 날,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교사가 갑자기 내 등을 슥~ 만졌다. 순간 깜짝 놀라서 교사를 쳐다보니까 그는 귓속말로 “너 아직 브래지어 안 했니? 어머니한테 말씀드려서 빨리 구입해서 착용해라”라고 말했다. 나 역시 몸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걸 감추고 싶은 마음뿐이라서 애써 모른 척하던 중에 남에게 먼저 들켜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나는 어머니에게 브래지어를 사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가족밖에 없었던지라 몸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가 두려웠다. 가족들 역시 나의 신변 보조를 하면서 몸의 변화를 모를 일이 없었을 테지만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자란다는 것은 돌봄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존의 위기의식이었던 같다.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선천적 중증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애슐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키가 자라고 몸무게가 늘어나자, 부모는 시애틀 병원 의료윤리위원회를 설득하여 여성 호르몬을 주사해서 성장을 억제시켰다. 동시에 자궁과 가슴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게 하였다. 결국 애슐리를 키 135센치미터에 몸무게 29킬로그램의 체형에 가둬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이 같은 내용을 읽으며 만약 한국에도 이런 시술과 수술이 있었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장애인들이 그 대상이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많은 거주시설에서 강제 불임 수술이 가해졌지만, 성장 억제까지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아무런 제재 없이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서 이야기되는 것

 

나는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란 카테고리 생산이 불편하다. 이런 카테고리가 더욱더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 어떠한 특별함을 갖고 있고, 다르게 다뤄져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성과 사랑을 누려야 하며 일생일대 과업처럼 느끼게 만든다.

 

지금껏 내가 봤던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수많은 영화에 나왔던 특성 중 하나가 성관계 여부가 인간의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다뤄진다는 점이다. 섹스를 못 하면 죽어서도 억울한 일이라는 것이다. 국내 영화를 넘어 외국 영화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모두 하나같이 장애인 성에 관한 내용은 장애남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주로 영화는 남성은 무조건 성기가 발기되고 사정을 해서 정자를 배출해야만 ‘진짜 남자’이며, 여성과 성기결합의 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완전한 남자’가 될 수 있다는 공통된 메시지를 건넨다. 섹스를 통해 자신이 남성임을 자각했다고 말하는 주인공 장애남성들의 말들은 간증처럼 들린다. 이것은 영화에만 나오는 말들이 아니다. 현실에서 많은 장애남성들이 자신을 증명해내는 방식이기도 한 것 같다.

 

- 장애여성이 섹스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여성들도 섹스의 경험이 자신이 여성임을 인식하게 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을까. 여성에게도 섹스는 성적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상대와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섹스를 원하지 않을 때도 섹스해야 할 때도 있고, 이성애 섹스에서는 언제 상황이 폭력적으로 변할지 모르는,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장애여성들 중에 상대와 권력 관계에서 취약한 경우라면 섹스는 성적인 즐거움도 아니며 자의식을 느낄 수 있는 수단도 아닌 사랑이란 가면을 쓴 성적 착취인 성폭력이 될 수 있다. 장애여성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동의’는 단어의 뜻처럼 명쾌하게 사용될 수 없다. 놓인 상황과 관계 깊이에 따라 동의 여부는 아무런 힘이 없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장애여성에게 섹스가 필요 없다거나 성적 욕망이 적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성/여성에 따라 성욕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적 욕구의 차이는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개개인의 욕구 비중에 따라 다르다. 다만 젠더 불평한 사회에서 여성이 성적 욕구를 언어화해서 표현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있다. 여성이 본인의 성적 욕망을 말했을 때 남성중심의 사회는 여성의 말을 굴절시켜 희화하거나 희롱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들 중에 자신의 성적 욕구 혹은 경험을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뒤에 따라붙는 건 ‘여자가 너무 밝힌다’ ‘○○같은 X’ 등의 폭력적인 말들이다. 마치 여성이 성적인 주체가 되면 남성중심의 젠더 균형이 휘청거리기라도 할까 봐 부정적인 말을 쏟아붓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탐구하고 상상하며 실현의 기회를 주체적으로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발밑에서부터 있던 용기를 있는 대로 끌어모아야 가능할 것이다.

 

-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란 카테고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에서 장애여성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소아마비 장애여성 ‘후이치’의 인터뷰를 읽었다. 어딘가 모를 통쾌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욕구에 숨김이 없었고 사랑을 담백하게 생각했다. 인터뷰어가 통념적인 질문을 할 때면 명쾌하게 깨며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말했다. 그녀가 가진 성과 사랑에 관한 생각에 어느 부분에서는 매우 동의가 되어 읽으면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느 나라에서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기도 하였다.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하나의 범주로 묶었을 때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의 정체성만이 성과 사랑에서 걸림돌로 작동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어도 사회적 자원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성과 사랑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장애유형과 장애정도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래서 젠더 불평등과 장애 차별이 끊임없이 발현되는 사회 안에서 어떤 기준에 도달해야만 ‘정상적인 성’이라고 여겨지는 무수히 겹겹이 쌓인 통념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린 계속 ‘장애인의 성과 사랑’ 같은 문제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성의 무한한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인간을 바라보는 매력 기준에 대해 폭넓게 바라볼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만 우리는 조금 더 진전된 고민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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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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