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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남성중심적 휴머니즘의 세계에 대항하는 SF 상상력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여성, 장애인, 그리고 사이보그, 포스트-휴머니즘의 대안적 주체들
[연재] 노들장애학궁리소 ‘마이너의 서재’
등록일 [ 2020년03월04일 13시25분 ]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장애인운동단체의 진지인 ‘대항로’에 있으며, 장애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궁리’를 통해 장애를 규정하는 근거에 대해 바닥까지 따져 묻고, 장애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온갖 삶의 형식을 부수어나갈 운동의 지혜와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강좌, 세미나, 차담회 형태로 해 오던 궁리 외 또 다른 방식을 궁리하다가 연구자들이 매달 돌아가며 장애와 관련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로 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상성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담으려 한다.

 

발터 벤야민은 “중요한 작품은 장르를 세우거나 아니면 장르를 지양하는 작품이며, 완벽한 작품에서 그 둘은 합치한다”고 말했다. SF(Science Fiction) 장르에 대해서 김초엽의 소설이 그렇다. 김초엽의 소설은 기술 결정론에 입각한 근대 SF 장르를 지양하면서 ‘사회적 모델’에 따른 탈근대 SF 장르를 세웠다. 사회적 모델이란 ‘장애학’에서 장애를 생물학적 손상으로 정의하는 ‘의료적 모델’을 비판하며, 사회적 구성물로 장애를 정의하는 인식 모델을 지칭한다. 김초엽의 소설은 과학 기술에 독자적 발전 논리가 있고 기술의 발전이 사회를 바꾼다는 기술결정론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요인에 의한 과학 기술의 형성과 그 인간학적 효과를 성찰케 한다. 이제 SF 장르에서 관건은 어떤 과학 기술을 상상하느냐가 아니라, 과학 기술이 어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출현하고,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가이다. 김초엽의 SF는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의 관점에서 과학 기술의 사회적 의미를 탐구한다.

김초엽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지

우생학적 유전공학과 장애인, 그리고 사랑과 투쟁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우생학적 유전자 검사/변형 기술과 장애인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가까운 미래 간편한 유전자 편집 기술이 보급되어 누구나 집에 실험실을 차려 놓고 유전자 변형 시술을 할 수 있다. 릴리 다우드나는 인간 배아를 맞춤 디자인해주는 유전자 해커다. 릴리는 고객이 원하는 유전체로 개조된 배아를 인공자궁에 착상, 양육 로봇으로 길러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때 의뢰인 현관에 배달해주는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릴리가 인간 유전자 개조 사업에 뛰어든 것은 자신의 장애 때문이다. 릴리의 부모는 가난해서 산전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았고, 릴리는 얼굴에 얼룩을 남기는 유전병을 갖고 태어났다. 안면 장애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릴리는 유전적 결함이 없는 인간을 만드는 일이 선행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수많은 척수장애인들이 황우석 인간 체세포 복제 실험을 응원했던 것과 연속된 미래다. 
 
릴리의 활약으로 ‘설계된’ 아이들이 한 세대를 이룰 만큼 많아졌다. 사람들은 그렇게 개조된 아름답고 건강한 인간을 ‘신인류’라 통칭했고, 캘리포니아 대지진으로 황폐해진 서부는 비개조인들이, 동부는 신인류가 분리되어 산다. 마흔 살이 된 릴리는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 릴리는 자신의 클론 배아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아름다움, 지성, 호기심과 매력을 모두 갖춘 배아를 제작, 인공자궁에 착상 시켜 길러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유전적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의뢰된 아이였다면, 그런 배아는 폐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건 릴리 자신의 아이고 그 아이의 결함은 릴리 자신의 유전성 안면 장애다. 릴리는 아이를 폐기하는 것이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로써 나는 태어날 가치가 없었던 삶임을 증명하는가?’ 릴리는 나에게서 스스로를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원치 않았던 존재로 태어난 릴리.

 

릴리는 장애를 가진 자신의 삶을 증오했지만, 자신의 존재까지 증오하지는 못했다. 결국, 자식이자 클론에게 태어날 가치가 없다는 낙인을 찍지 못했다. 릴리는 클론 배아를 냉동시키고,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모두 폐기한 채 종적을 감추었다.

 

릴리는 ‘올리브’라 이름 붙인 아이에게 장애 없는 몸 대신 장애(에 대한 인식) 없는 세상을 주고자 지구를 떠난 것이다. ‘마을’이라 불린 그 지구 밖 세상은 얼굴에 흉측한 얼룩이 있어도, 질병이 있어도, 팔 하나가 없어도 불행하지 않다. 지구 밖 마을의 신인류는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나 결핍에 대한 인식이 없는 유토피아, 그걸로 족할까? 릴리가 죽고 난 후 올리브는 ’마을‘에 대한 어떤 의구심 때문에 릴리의 흔적을 찾아 지구로 온다. 지구에서 올리브는 릴리 이전부터 있었지만 릴리의 우생학적 유전공학이 한층 심화시킨 장애인 혐오를 경험한다.

 

아가씨 그 얼굴은 어떻게 된 거요? 네? 마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눈빛으로 올리브를 보고 있었다. (…) 그 정도의 큰 결함이라면 스크리닝에 분명히 잡혔을 텐데.

 

개조인들이 사는 동부와 비개조인들이 사는 서부는 인종주의로, 계급적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비개조인들은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 올리브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지능이 낮거나, 외모가 흉측하거나, 키가 작고 왜소하거나, 병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차별과 모멸 속에서 릴리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올리브는 차별의식이 없고 자의식이 강한 ‘델피’를 만난다. 저렴한 개조 시술로 예술적 감성은 풍부하나 다른 태생적 결함을 가진 델피는 그녀를 억압하던 부모를 떠나 서부로 와서 유전자 지문을 바꾸는 시술을 했다. 부작용으로 한쪽 귀가 거의 먼 장애를 가진 델피는 서부의 비개조인뿐 아니라 로봇과도 편견 없는 동료애를 나누었다. 올리브는 델피로부터 릴리 다우드나의 일생을 전해 듣고, ‘마을’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올리브는 ‘마을’에 돌아와 자기가 들은 역사를 기록한다. 10년 후 올리브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 델피와 함께 ‘분리주의’에 맞서 싸우는 삶을 살다 델피 옆에 영원히 잠든다.

 

올리브는 지구로 돌아가면서 ‘마을’에 순례의 관습을 남겼다. 마을의 아이들은 성년이 되기 전 시초지 지구로 1년 동안 순례를 떠난다. ‘마을’의 유래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일 것이다. 지구에서 아이들은 편견과 차별과 배제를 경험할 것이고, 릴리가 지구를 떠나 ‘마을’을 건설한 뜻을 알면서 성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순례자 중 일부는 항상 마을로 돌아오지 않고 지구에 남았다. 올리브가 델피를 만났듯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마을’의 아이들은 기계 자궁에서 태어나 유성생식을 하지 않기 때문인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몰랐다. 결핍과 고통과 갈등의 시초지에서 그들은 사랑을 배우고, 사랑하는 사람이 받는 억압에 맞서 함께 싸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상과 맞서는 일이기도 하므로.

 

김초엽의 SF는 미래를 상상한다는 느낌보다 현재를 그린다는 느낌을 준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어떤 과학기술이 발명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게 아니라 과학 기술이 구현된 현실은 현재형으로 묘사하고 과학기술의 발명과정은 회고하는 것이다. 이 소설도 ‘마을’의 소녀 ‘데이지’가 울고 있는 한 순례자를 보며 의구심을 품는 현실을 현재형으로, 올리브와 릴리의 이야기를 기록된 과거로 서술한다. 그럼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과학 기술의 발명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집중시킨다. 데이지와 올리브, 그리고 릴리의 현실에 동화될 즈음 우리는 또 다른 현재, 독자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를 다시 보게 된다.

 

산전 기형아 검사, 인공와우 수술 등의 과학 기술은 장애가 있는 삶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듯하지만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장애가 있는 몸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장애를 정의하는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발상은 오늘날 장애인 운동의 방향타가 되고 있다. 또한,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보다 현실의 모순을 타파해 가는 싸움이 더 중요하며, 그 싸움의 동력은 사랑에 있다는 작가의식은 가히 철학적이다.

 

별빛이 쏟아지는 우주 아래 한 사람이 서 있고, 얼굴은 하늘을 향해 있다. 사진 Greg Rakozy on Unsplash

감정의 물성과 죽은 자들의 도서관, 그리고 여성의 삶

 

과학 기술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는다. 유전자 변형, 가상현실처럼 인간의 신체나 감각의 내적 한계를 넘는 방향이 있는가 하면, 외계 탐사나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처럼 인간의 삶을 바깥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향이 있다. 인간 유전자 변형을 다룬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와 함께 전자에 속하는 작품은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이다. 「감정의 물성」은 감정을 조형화한 상품이 개발된 현실을 그린다. 비누, 향초, 패치 등의 일상용품에 기쁨, 침착, 평온, 공포, 우울, 분노를 느끼게 해주는 향정신성 약물을 넣은 것이다. ‘공포나 우울,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의 물성은 왜 소비될까?’ 하는 의문을 중심으로 소설은 오래된 연인 관계, 결혼을 강요하는 부모와의 갈등, 청소년들의 집단 폭행 사건 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감정의 물성이 특히 여성에게 의미화되는 양상을 묘사한다.

 

「관내분실」은 죽은 자들의 마인드를 보관하는 도서관을 상상한다. 이 마인드 도서관은 수십조 개가 넘는 뇌의 시냅스 연결 패턴을 스캔하고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망자의 생전 기억과 사고 패턴을 데이터화해놓은 곳으로, 유족들은 도서관에 와서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망자와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런 기술적 현실 속에서 소설은 여성의 경력 단절, 산후 우울증, 모녀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인덱스가 지워져 ‘관내분실’된 엄마와 그런 엄마의 마인드를 다시 불러오기 위해 엄마의 생전 흔적을 더듬는 화자의 이야기는 오늘날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할 뿐 아니라 “세상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지 못한” 무연고 사망자들의 쓸쓸한 장례식을 떠올리게 한다.

 

외계인, 그 놀랍고 아름다운 우리 안의 타자

 

「스펙트럼」은 외계 지성체와의 만남을 그린 작품이다. 초소형 광자 추진체를 단 우주선으로 외계 탐사를 하던 ‘희진’은 조난 중 외계 행성의 생명체들을 만난다. 그들은 인간의 먼 친척 같은 신체를 갖고 있으며, 이족보행을 하고 무리 생활을 하며 도구와 언어를 사용한다. 그들 중 ‘루이’라 이름 붙인 이는 유독 ‘희진’에게 호의를 갖고, 보호한다. 흥미로운 점은 짧은 수명으로 ‘루이’가 죽고 난 후 또 다른 이가 루이와 동일한 역할을 맡고 똑같은 태도로 희진을 돌본다는 거다. 마치 루이가 환생한 것처럼. 소설은 “루이의 선량함을 생각할 때면, 나는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작고 단절된 마을을 상상한다”고 했는데, 어쩌면 티벳불교의 환생을 믿는 라다크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모델이 아닐까?

 

「공생가설」은 외계 지성체와 지구인의 관계를 훨씬 더 내밀한 것으로 그린다. 수만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온 ‘그들’은 지구인의 뇌 속에 거처하며 선량한 양육자처럼 아기에게 윤리와 이타심을 가르친다. 인간의 유아기 망각은 ‘그들’이 7살 무렵 기억과 함께 인간의 뇌를 떠나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재가 발견된 건 뇌과학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단분자 추적 이미징 기술을 이용해 활성화된 뉴런의 패턴을 읽고 피험자의 사고 내용을 언어 표현으로 옮길 수 있게 된다. 그 실험을 하던 연구팀은 아기들의 사고 내용을 직접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욕구 표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윤리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다들 거기에 잘 계신가요? 아냐 우리가 살아가야 할 것은 여기야” 같은 고차원적인 대화를 엿듣게 된다. 반면, 태어나자마자 상자 속에서 양육 로봇에 의해 길러진 아이들은 “배고파” “졸려” “무서워” 같은 욕구 표현만 했으며 윤리의식과 이타심을 전혀 함양하지 못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구분하는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바깥에서 온 것이라는 이 놀라운 주제의식은 인간의 본질 규정으로부터 정상성을, 정상성으로부터 비정상성, 특히 장애를 정의한 근대 휴머니즘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김초엽의 소설에서 외계 생명체에 대한 태도는 따듯하다. 그것은 인간의 표준,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난 지구 안의 타자들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상상력일 것이다.

 

인간의 뇌 속에 공생했다가 7살 무렵 떠나는 외계 생명체는 단 한 명의 아이 ‘류드밀라’에게서는 떠나지 않았다. 고아인 류드밀라의 간절한 염원과 예술적 표현 능력 때문에 ‘그들’은 류드밀라의 머릿속에 남아 오래전 폭발해 버린 고향 행성의 모습을 기록하게 했다. 「스펙트럼」에서 지구로 돌아온 주인공이 외계 생명체에 대해 가진 감정도 그리움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역시 우주 개척 시대 수만 광년 떨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우주 탐사와 다른 신체 탐사, 여성, 장애인 그리고 사이보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우주 항공 시대 여성 기술자가 겪는 가족과의 이별을 다뤘다면,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우주 항공 시대 여성 비행사가 겪는 사회적 차별을 다룬다.

 

주인공 ‘가윤’은 웜홀 터널을 통과하는 첫 번째 우주선 비행사로 선발된다. 워싱턴 센터의 정밀 신체검사 과정에서 가윤은 이전에 실패한 우주선의 비행사였던 ‘최재경’과의 친분관계를 추궁받는다. 최재경은 우주 비행사로 선발됐지만 발사 직전 이탈하여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윤은 엄마와 동거하는 최재경을 가족이자 ‘영웅’으로 여겨왔다. 최재경을 본받아 터널 우주비행사가 된 가윤은 최재경이 발사 직전 우주로 가지 않고 대신 바다로 뛰어든 이유를 더듬는다. 그러면서 가윤은 채경에게 쏟아졌던 사회적 차별을 알게 된다.

 

최재경이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당시 나이가 마흔여덟 살이었다. 만성 전정기관 이상 소견도 있다. 근육과 골밀도도 표준 신체에 미달하는 마르고 작은 체형인 데다 이미 한 차례의 임신과 출산을 겪은 동양인 여자라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 논란이 커졌다. 사람들은 어떻게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이 최재경과 같은 부적절한 인물로 선발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재경을 제외한 다른 비행사들은 항공우주국 본부 출신의 백인 남성이었다. 대중의 비난은 공정한 선발을 위해 항공우주국이 처음 도입한 인공지능 스택마인드와 성별, 인종 쿼터를 향했다.

 

웜홀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특수 캡슐에 탑승한 상태에서도 극도의 높은 중력가속도, 급격한 온도 변화, 외부 압력 변화를 버텨야 했다. 인간이 터널을 지나는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체를 개조하는 과정이 도입됐다. 체액을 나노 솔루션으로 대체하고, 약한 장기들을 인공장기들로 교환하며, 마지막에는 피부와 혈관을 교체하는 과정이다. 최재경은 이 사이보그 그라인딩에 매료됐다.

 

네. 물론 우주 저편도 기대가 되지만… 그것보다는, 저는 일단 인간을 넘어서고 싶어요. 우리의 몸은 너무 한계가 많죠. 특히 제가 딸 서희를 가졌을 때는,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얼마나 많길래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니까요.

 

사이보그 그라인딩 후 압력 시험을 위해 심해 잠수 훈련을 하면서 가윤은 기묘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가윤은 최재경이 우주가 아니라 바다로 뛰어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구 저편 다른 우주에 대한 궁금증보다 여성의 몸에 부과된 생물학적, 사회적 제약을 떨치고 바다 깊이 다른 존재로 살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던 것이다.

 

여기서 기술은 젠더적 성격을 드러낸다. 지구 바깥으로의 외계 탐사 기술이 남성적, 정복적 성격을 띤다면, 사이보그 신체 변형 기술은 여성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된다. 인간 신체의 표준이 백인 남성의 신체로 호명되는 현실에서, 인간의 사이보그적 변형이 여성에 친화적인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인간의 표준에 근거해 장애인으로 분류된 사람들 역시 사이보그적 변형과 포스트-휴머니즘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다. 여성, 장애인, 그리고 사이보그는 김초엽의 SF 상상력이 찾아낸 포스트-휴머니즘의 새로운 주체들이다. 그 상상력은 남성중심적 휴머니즘이 지배하는 현실에 날카롭게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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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lizom@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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