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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요한·문중원을 죽음으로 떠민 노동 현장, 무엇이 문제인가
‘노동자의 죽음을 부르는 현장을 증언한다’ 증언대회 열려
장애인 동료상담가 고 설요한, ‘장애인의 문제’ 아닌 ‘노동의 문제’로서 다뤄
등록일 [ 2020년03월04일 18시24분 ]

4일 오전 10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 주최로 열린 증언대회에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각종 현장에 대한 증언이 쏟아졌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제까지 노동 현장은 늘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왔다. 단 한 번도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언급되지 않았다. 마음 아픈 자리지만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씁쓸하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고 설요한 씨의 죽음으로 촉발된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문제가 ‘장애인의 문제’로만 다뤄져 왔던 현실을 넘어 ‘노동의 문제’로서 이야기되었다. 4일 오전 10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 주최로 열린 증언대회에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각종 현장에 대한 증언이 쏟아졌다.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한국마사회 문중원 경마기수,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고 박선욱·서지윤 간호사,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의 죽음과 함께 중증장애인 노동자 고 설요한 씨의 이야기가 나왔다.

 

설 씨는 지난 2019년 12월 5일,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고인은 2018년 4월부터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여수IL센터)에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으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로 일했다. 이 일자리는 장애계의 오랜 요구로 만들어진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였다.

 

하지만 애초 장애계의 요구와 달리 비장애인 기준에 맞춰 실적 중심으로 짜였다. 이 때문에 설 씨는 월 60시간 기준으로 65만 9,650원의 임금을 받고, 한 달에 4명의 참여자를 발굴해  5번씩 만나 상담하고 각종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사업수행기관인 여수IL센터는 그의 임금 일부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반환해야 했다. 이러한 압박감 속에서 고인은 지도점검일을 앞두고서 센터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민폐만 끼쳤다”는 문자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현재까지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문애린 대표는 “지방의 경우, 휠체어 탄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여 서울보다 이동권이 더 제약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한 달에 장애인들을 네 명, 한 사람당 다섯 번씩 만날 수 있겠는가”라면서 현재 고용노동부가 요구하는 기준은 중증장애인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는 “우리는 ‘비장애인 중심의 실적 일자리’가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현 상태와 환경을 고려한 권리 중심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고용노동부에 요구해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지만 시범사업이니 우선 시행하고 차차 고쳐나가자’고 했다”라면서 “‘중증장애인은 일할 능력이 안 된다’고 하는 현실 속에서 일하는 것 자체만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문제점이 죽음으로 드러났다. 이 일자리는 장애인에게 죽음의 일자리였다“며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문 대표는 “과도한 실적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동료지원가를 비롯해 장애인은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라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다”라면서 “이는 정부가 제대로 된 예산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동료지원가 일자리를 월급제로 전환하고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표는 “기존 일자리 환경과 평가 기준을 유지한 채 장애인에게 일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은 철저히 비장애인 기준의 관점”이라면서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직종을 장애인의 속도를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권리 중심의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직무로 △장애인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을 통한 비장애인 인식 개선 △장애인인권교육(인식개선교육)을 요구했다.

 

4일 오전 10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 주최로 열린 증언대회. 사진 강혜민

 

이 외에도 작년 11월 마사회의 비리를 폭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에 대한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고광용 부산경남경마공원 지부장은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문중원 기사를 포함해 7명이나 죽었다. 그러나 이 죽음은 빙산의 일각일뿐이다”면서 “과거에는 모두 마사회에서 직접 고용했으나 93년 개인마주제 도입 후, 간접고용으로 전환돼 목소리를 낼 여지도 사라졌다. 말 관리사나 기수는 조교사의 눈치를 보고, 조교사는 마주와 마사회 눈치를 보는 다단계 구조는 기수들을 억압한다”고 말했다.

 

고 지부장은 “기수와 말관리사들은 종속적 위치에서 안정적 소득뿐 아니라 신체적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상금 여부에 따라, 조교사가 고용한 말관리사에 따라 소득이 다르다”면서 “무한경쟁체제를 도입해 상금을 몰아주는 승자독식구조로 일부 기수는 높은 임금을 받지만 성적이 좋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내몰린다. 기수들은 이기기 위해 부당지시를 수용하고 그 결과 부상의 위험을 안고 아무리 아파도 말을 타게 된다. 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으로 산재 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면허권, 징계권, 면허갱신권, 마사대부심사권 모두 마사회가 갖고 있는데 마사회는 기수들은 개입사업자라며 문중원 기수 죽음에 대한 책임도 없다고 한다”면서 “마사회는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고용노동부는 기수노조에 대한 설립허가증을 발부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오후 1시, 마사회 문중원 열사 부인 오은주 씨는 정부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증언대회 사회를 맡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는 “개별사건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함께 읽어내어 돌파해야 할 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왜 분노를 표현하고 저항할 수단이 죽음밖에 보이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바로 그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라면서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연대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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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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