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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중심 세계의 질병 난민
‘질병과 함께 춤을’ 연재를 시작하며
등록일 [ 2020년04월01일 15시40분 ]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질병과 관련한 감정을 찾아보고 있다. 사진 혜영
 

질병과 함께 사는 삶은 건강 중심 세계에 의해 지워져 있다. 질병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 그래서 숨기고 싶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빈곤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은 ‘구호’로서라도 동의되지만, 아픈 게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는 것은 좀처럼 동의받지 못한다.

 

건강이 스펙이 된 사회에서 질병은 자기 관리의 실패가 됐기 때문이다. 빈곤은 게으름의 결과이고 질병은 자기관리의 실패다. 물론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가난할수록, 나쁜 주거 환경일수록 더 많이 깊게 아프다는 건강불평등 현실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주변에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인스턴트 좋아하고 운동 안 하고 담배 피워서 아픈 거라고 재빨리 진단하고 지적하는 것에 익숙하다. 결국 아픈 몸들은 자신이 잘못 살아서 아프게 됐고, 민폐를 끼치고 있다며 눈치를 보게 됐다. 이처럼 질병의 개인화가 심화된 사회에서 아픈 몸들은 자책감에 포박된다.

 

최근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상황에서 목격하고 있듯이, 질병은 생의학적 실체일 뿐 아니라 사회·정치·문화를 관통하는 장이다. 특히, 확진자나 의심자들은 주변에 죄송해하며, 바이러스뿐 아니라 차별과 혐오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다. 코로나-19 증상이 회복·완치되어도 혐오와 배제의 경험은 오래도록 깊이 남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질병 윤리가 얼마나 남루한지 새삼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다.

 

물론 코로나-19 같은 전염성 질환이 아니더라도 평소 질병 경험자들은 다양한 차별에 놓여있다. 지난 1월 성공회대 청소 노동자가 암 진단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해고되었다.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의사 소견서도 제출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질병 경험자들을 인터뷰해 보면 어릴 적 소아암 이력이 고용 시장에서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때로 본인이 기업주라도 ‘흠집 없는 몸’을 찾을 거라며, 운명이나 팔자 탓을 하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직장, 학교 및 다양한 공간에서 질병과 고통이 자주 의구심 앞에 놓이거나,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일도 흔하다. 그럼에도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진정 현황(2018년 기준)을 보면, 병력(病歷)에 따른 차별은 2%에 불과하다. 이를 질병을 둘러싼 차별이 실제로 매우 적다는 의미로 해석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는 차별을 겪는 당사자들이 아프니까 어쩔 수 없다는 내면화된 인식의 결과로 보인다.

 

- 질병과 함께 사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

 

이런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건강권운동 혹은 보건의료운동이 있어왔다. 이 운동 속에서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이 확대될 수 있었고, 건강불평등을 줄여 갈 수 있는 정책들이 입안되어 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정책 중심 운동 안에서 질병과 함께 사는 이들의 삶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했다. 연구자들의 텍스트로는 존재했으나,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말할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았다. 질병과 함께 사는 당사자들의 삶은 여전히 비가시화되어 있다 보니, 질병을 둘러싼 차별에 대한 우리사회 의식은 매우 협소하다. 무엇이 ‘질병 차별’인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다양한 의제가 발굴되거나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의료 정책은 오랫동안 진일보했으나 그에 비해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의식은 답보 상태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제 사회에 필요한 것은 아픈 몸들의 목소리다. 아픈 몸들의 삶을 통해 사회는 무엇이 질병을 둘러싼 차별인지, 질병이 얼마나 많은 복합적 필요를 요구하는 장인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질병과 함께 사는 삶을 사유할 수 있게 되고, 건강 중심 세계의 사고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마침내 질병과 인권에 대한 보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담론을 시작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픈 몸들은 자신의 질병 경험을 말하기 쉽지 않다. 아픈 몸들은 건강과 효율이 정의(justice)가 된 사회에서 ‘몸 둘 바를 모르겠는 몸’, 혹은 ‘몸 둘 바가 없는 몸’이 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몸 둘 바 없는 존재들은 언어가 없어서 몸 둘 곳을 갖지 못하지만, 몸 둘 곳이 없어서 언어가 없는 이들이기도 하다. 건강 중심 세계의 질병 난민들이라는 의미다.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진행한 연극워크샵에서 몸의 통증과 느낌에 대한 지도를 그리고 있다. 사진 혜영
 

- 불안과 자책의 언어가 아닌, 고유한 존재의 언어를 만들다

 

그래서 아픈 몸들에게 자신의 언어를 만들 공간이 필요하다. 몇 해 전 나는 몸이 아픈 동료들과 함께 잘 아플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소수자들의 인권이 확장된다는 것은 소수자들의 언어가 확장된다는 것이라는 문제 의식 아래, 지난 1년여 동안 질병 경험을 언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건강중심 세계에서 우리의 질병이 준 두려움과 슬픔에 대해, 좌절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각자 삶의 변곡점마다 나타나고 사라지거나 남아있던 질병들에 대해 말했다. 이후 책을 읽고 토론을 했으며 연극워크샵을 통해 자신의 몸을 새롭게 만나보기도 했다. 비로소 이 과정을 통해 우리 경험을 표현할 언어를 하나씩 찾아갈 수 있었고, 막연한 감정을 구체적인 단어로, 그 단어들을 모아 문장을 깁고 글로 만들어 갔다. ‘질병과 함께 춤을’에 연재될 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몸과 질병 경험을 기록하고 재해석해낸 흔적이다.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품고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을 진행했다. 이를테면,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프고 만성질환을 하나쯤 개성처럼 달고 산다. 그럼에도 모두 건강중심세계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볼 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에 아픈 몸들이 이토록 많은데 왜 건강한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아픈 몸을 보면서 ‘부족’하고, ‘열등’하다고 낙담만 하는 것일까? 질병과 함께 사는 삶의 불안은 생명체로서 필연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건강 중심 세계를 벗어나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 지긋지긋한 불안과 조금이라도 이별할 수 있을까? 사회는 우리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여기까지는 질병이고 저기까지는 건강이며 여기부터는 장애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종종 우리 몸 안에서 질병, 건강, 장애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이것을 과연 언어화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이 문제적인 아픈 몸은 건강중심 사회에서 ‘실패한 몸’이 아닐 수 있을까?

 

우리는 질문 속에서 정답을 얻기보다 자신을 좀 더 인정 할 수 있었다. 질병 속에서 유동하는 우리의 아픈 몸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효율적이고 표준화된 몸과 전혀 맞지 않으며, 그래서 쓸모없는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쓸모를 입증할 의지가 없다. 오히려 아픈 몸을 열등하고 혐오스럽다고 규정하는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각자에게 내면화되어 있는지 찌질하게 고백했다. 질병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의연하게 살아가는지가 아니라, 질병이 주는 불안함에 잡혔다가 놓여나기를 얼마나 수없이 반복하는지 말했다. 몸 안에서 질병, 건강, 장애가 서로 진동하며 연결되거나 충돌하고 있었고, 현재의 우리는 다만 그 경험을 묘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갈등, 혐오, 설렘, 불안, 기쁨, 긴장, 희망, 통증의 과정을 면밀히 드러낼 용기가 생겼다. 아픈 몸을 배제하는 건강중심 사회에서 아픈 몸이 사는 세계를 밀도 높게 드러내는 것, 이게 우리의 저항이다. 우리는 불안과 수치를 ‘극복’하지 않고, 단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아픈 몸에 대한 수치심을 사회가 함께 걷어 내길 바라고, 건강을 향해 달리는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다른 몸과 삶을 누락시키는 것을 다 함께 그만두길 바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픈 몸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을 사회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자책감으로부터 멀어지고, 차별에 순응하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면서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픈 몸은 자기 관리에 실패한 결과가 아니고, 자책감은 아픈 몸들의 것이 아니다. 자책감은 기울어진 건강운동장, 건강불평등을 만든 사회에 넘겨주자. 우리는 아픈 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사회를 향해 계속 우리의 문제적 몸의 경험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건강세계의 시민권이 아니라, 질병세계가 고유하게 인정되길 바란다.

 

‘낭독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웹자보
 

<낭독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참여자 모집

 

<낭독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아픈 몸들이 자신의 질병서사를 펼치는 장이다. 판단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나누며 연결되는 것을 중시하는 플레이백 시어터(Playback Theatre) 정신에 기반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무대에 올려진다. 워크숍을 통해 몸으로 언어를 확장시키며, 환대 속에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은 아픈 몸들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이 무대를 통해 아픈 몸들이 자신의 불안, 절망, 희열, 갈등, 좌절을 검열 없이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질병과 함께 춤을’ 구성원들은 질병 경험을 풀어내며 불안 속에서 느낀 해방감을 다른 아픈 몸들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낭독극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 신청 http://bitly.kr/LaFVCGfB

 

# 글쓴이 소개
조한진희(반다) _ 여성, 장애, 질병, 전쟁 관련 운동을 하며 살고 있다. 요즘은 아픈 몸들을 조직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도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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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진희(반다)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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