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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어머니의 일상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4월29일 16시27분 ]

누군가의 꿈

 

그녀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아들․딸이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해서 집 한 칸을 마련해서 오순도순 모여 사는 것이 꿈이었다고. 그러나 스무 살 무렵 딸은 조현병을 얻었고 아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힙합 댄스를 추기 위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딸이 아팠을 때 그녀는 하루 종일을 울었다. 의사는 그런 그녀를 위해 우울증약을 처방했지만 듣지 않았다. 딸이 퇴원한 후에는 새벽마다 잠자는 딸을 깨워 새벽기도에 가고 산을 올랐다. 그리고 외쳐 보라고 했다. 이제 딸은 자유라고.

 

그러나 딸과 그녀는 물과 기름처럼 달랐고 사사건건 딸과 그녀는 부딪혔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왜 나의 작은 꿈 하나 이루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든 걸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꽃덤불 너머를 보는 사람

 

나의 어머니 이야기다. 정신장애인문화예술단체 안티카를 휴직하고 나서 나는 밤과 낮을 바꿔 살았고 이상하게도 어머니도 생활 리듬이 바뀌었다. 그래서 새벽이면 우리는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가 많이 창피했지. 생활에 찌든 모습 그대로를 그 사람에게 보이고 말았으니.”

 

한참 생활에 치이고 있을 때 어머니의 첫사랑이 어머니를 찾아왔었다. 처녀 적에는 마르고 조용하고 깔끔하던 어머니는 그즈음 살이 찌고 자기도 모르게 입이 험해져 있었다. 어머니를 왜 찾아왔는지 그는 말하지 않았고 이후 다시 어머니를 찾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고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그와의 사랑이 그렇게 끝나버린 것에 대해 내내 속상해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을 후회했다. 친구의 오빠였던 아버지를 만난 것, 그리고 아버지가 조현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극빈의 가난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던 것, 나중에 외국에서 독학으로 유학 중인 외삼촌이 어머니 혼자 한국을 떠나오라고 했을 때 가지 않았던 것, 자신까지 이 아이들을 버리면 이 아이들의 미래는 없을 거라는 절박함, 그리고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키워보리라 다짐했던 것들, 그리고 딸의 조현병.

 

나는 내 속에 있는 상처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청소년기에 심한 폭언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던 어머니, 내게 침을 뱉던 어머니, 그래서 증오의 방식으로밖에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었던 나의 모습까지.

 

어머니에게 있던 것은 이런 소박하던 꿈이었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았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수긍하게 되었다. 알 수 없을 수밖에 없다고. 세상이 보여주는 꽃덤불 너머를 보는 눈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든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새들이 함께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 새들이 고요하던 하늘을 자유롭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픽사베이
 

타인의 고통

 

최근 수전 손탁의 『타인의 고통』을 읽었다. 손탁은 사진이 객관적이라는 일반의 통념을 뒤집으며 우리는 사진 뒤에 숨어 있는 컨텍스트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의 맥락을 알고자 하지 않는 단순한 연민은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지 않으며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의 내전과 같은 인류의 비극들을 언제나 타인의 고통으로 남겨둘 것이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노라고. 그런데 그것의 대가가 이런 삶 정도라면 나는 너무 억울하다고 말이다. 성실하게 살면 당연히 행복한 미래가 보답처럼 오리라는 기대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가난한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병을 이겨내리라고 생각했던 딸은 여전히 아프고 자신의 꿈은 신기루에 불과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를 원하고 그래서 자기계발에 열심인 세상이다. 그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는 것을 주문처럼 외우며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일본의 사토리 세대가 보여주듯 우리나라도 이미 신분 상승의 길은 끊어지고 주어진 가난을 받아들이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자기 위안하며 살아가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개인의 자원으로 환원하는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수많은 관계에 대한 성찰이고 그 관계의 변화로 자신의 삶을 변화 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어머니는 각자도생으로 삶의 행복을 이룰 수 있으리라 꿈꿨지만 자신을 가로지르는 관계망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고 집을 사고 풍요를 즐기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사회에 관해 공부하고 같이 살아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말했다.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돼.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 얘기나 꺼내는 거지. 일하다 보면 정치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어?”

 

세상의 새들에게

 

안티카에서 일했던 1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 나에게는 번아웃이 왔다. 더 이상 관계들을 성찰하지 못하고 일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그것은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만난 여성 활동가들을 통해 각성된 것이다.

 

지난해부터 故 김용균 님의 추모 사업회에 함께하고 故 문중원 열사의 비극적인 죽음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 일하는 여성들을 만나고 홈리스 인권에 지속적으로 연대하는 이들, 일주일에 닷새를 일하지만 토요일이 되면 크고 작은 집회에 반드시 참석하는 이들, 관계의 교차성을 사유하고 굳은 근육을 풀어가며 연구에 매진하는 이들, 늘 환대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장애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아도 세상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 관점 세우기를 잊지 않는 이들…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만난 이들과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서, 나는 내가 너무 안온한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의 이웃들에 연대하지 못하고 당장의 업무에 지쳐 나만의 작은 꽃덤불을 만든 것이다.

 

‘질병과 함께 춤을’ 구성원들과 함께했던 연극워크숍에서 동료가 내 손을 잡아주고 있다. 사진 혜영
 

내게는 일 년의 휴직 기간이 있다. 그 기간 동안 지금의 이 시대는 어떠한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변혁은 무엇인지, 연대란 무엇인지 배워가고 싶다. 그리고 우정과 사랑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우고 싶다. 그래서 다시 돌아갈 때는 구체적인 관계 안에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사람이고 싶다.

 

어머니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쩌면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 시대에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경주마의 눈을 가리고 오로지 앞으로만 달리게 하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의 해방을 꿈꾸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나의 행복, 나의 안온, 나의 기쁨만을 찾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에는 함정이 있다. 자연스러움은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 거기에는 역사적․사회적․정치적․경제적 이데올로기들이 촘촘히 숨어 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비판이 필요하고 그것은 지금 당장 무엇을 소유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을 얻는다면 우리는 홀로 노력했던 것보다 더 평등하고 해방된 세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삶의 변화이기에 앞서 모두의 삶의 변화가 될 것이다.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에의 꿈.

 

날개만 있다면 가보고 싶어. 넓고 높고 더 먼 저곳에 - 김민기의 ‘날개만 있다면’. 사진 픽사베이
 

새로운 관계성 안으로

 

어머니와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던 새벽을 생각한다. 한집안에 살면서도 이렇게나 대화가 부족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요즘 어머니는 지인이 선물하신 『에릭식톤 콤플렉스』를 어렵게 읽어 나가시며 이명박과 박근혜가 그리 좋은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계시다. 경제 성장의 신화에 열광하시던 예전의 어머니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오랜 상처 뒤에 어머니의 작고 불행했던 삶을 바라보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내가 직접 보았고 감동했던 이들과의 시간이 존재한다. 우리가 만날 때 우리는 그런 관계들을 창조해 내며 우리라는 공동체를 이룬다. 그리고 어딘가에 새처럼 높이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늘 고마운 마음이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선물과도 같은 생이 있다는 것에.

 

이제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더 이상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들었고 서로의 아픔을 이해했다. 내가 느낀 것이 자신의 극심한 불행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지키고자 했던 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분투였다면 어머니가 내게서 느낀 것은 언젠가부터 아무 말 없이 자기 일에만 몰두하던 딸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개발독재 시대 민중의 쓸쓸한 자화상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옛 상처를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성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나는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들을 본다, 소녀들을 본다, 여성들을 본다. 그리고 그 삶들을 타인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으려 책을 펼치고 글을 쓴다.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 수많은 새들의 비행을 떠올리며 감사한다.

 

이제야 겨우 나는 타인의 손을 잡아주려 떨리는 손을 조심스레 건네고 있는 중이다. 함께 날아오르기 위해.

 

글쓴이 소개

목우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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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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