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09월30일wed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조미경의 장애 그리고 페미니즘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서로의 존재를 일깨우는 다른 몸들의 이야기
[칼럼] 조미경의 장애 그리고 페미니즘
등록일 [ 2020년05월15일 14시06분 ]

- 장애와 나이 듦, 변화하는 몸

 

오늘도 어김없이 한참을 뒤척이며 겨우 잠이 들었다가 한두 시간 만에 다시 깨기를 반복한다. 한 자세로 오래 있기 힘들어 밀려오는 통증으로 자세를 바꾸는 순간, 코와 밀착되어야 할 인공호흡기 마스크에 틈이 생겨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면서 경보음이 울린다. 다급히 인공호흡기 공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다시 마스크를 코에 밀착시킨다. 그리고 호흡기 사용으로 바짝 말라 죄어오는 입안의 통증을 없애기 위해 물을 마시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잠이 달아난다. 달아난 잠을 다시 붙들기 위해 애를 쓴다. 창밖은 어느새 밝아오고 피곤은 가시지 않았지만, 나의 하루가 또 그렇게 시작되었다.

 

밤에 잘 때 사용하는 호흡기. 사진 제공 조미경
 

최근 몇 년간 장애 심화와 나이 듦으로 몸이 급격히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십몇 년 동안 매일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2, 3일 외출을 하는 것도 각오와 도전이 필요한 몸이 되었다. 몸의 변화는 외출만이 아니라 하루에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현저히 줄어들게 하여 나의 하루는 짧아졌다. 하루하루 전과는 다른 몸을 실감하며, 쉽지는 않지만 몸의 변화에 오늘도 적응 중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는 어제와 동일하지 않고, 내일은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늘 새로운 하루이다.

 

물론 언제나 낭만적이지는 않다. 어제보다 휠체어에 올라가기 힘들어지고, 들리던 소리들이 들리지 않게 되고, 글씨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게 되고, 숨 쉬는 게 좀 더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어제의 나의 몸이 그립고 우울감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기 위한 고된 작업이다. 하지만 동시에 변화된 몸과 삶의 방식은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을 일깨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골형성부전증이란 장애로 후천적 청각장애가 생기면서 이 사회가 얼마나 음성언어 중심인지, 청각장애인들이 얼마나 사회적 배제와 고립감을 느끼며 살아가는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숨쉬기’는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위로 여겼지만, 심화된 척추측만증으로 밤마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숨쉬기’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노력해야 되는 의식적인 행위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운동으로 비유되는 ‘숨쉬기 운동’은 살기 위한 가장 치열한 운동이며,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 쉬듯이 끊임없이 의식하고 쟁취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모든 몸은 다르다. 그리고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같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구의 몸이든 조금씩 변화하고 매일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 그러나 강박적으로 젊고, 건강한 몸을 추구하고, 몸에 대한 정상성과 위계가 견고한 사회에서 질병, 장애, 나이 든 몸, 그리고 비정상으로 낙인찍히고, 사회적 자원과 권력을 가지지 못한 다른 몸들은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어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존재를 부정당한다.


몸이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기능이나 외형의 다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변화된 몸은 이전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사회구조와 환경을 새로이 인식하게 하고, 나의 위치와 정체성과 관계를 변화시킨다. 다른 몸들이 경험하는 세상은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다르고 변화하는 몸들의 이야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코로나19 재난, 배제된 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재난에 빠졌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공포일 수 있지만 재난으로 인한 삶의 위협과 위기의 정도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체감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 코로나19의 사태를 통해 현 사회에서 배제되고, 차별당하고, 존재의 존엄성이 존중되지 않는 이들은 누구인가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 사망자를 애도하는 얼굴 없는 영정사진 11개가 국가인권위원회 계단에 놓여있다. 그 앞에는 국화꽃 한 송이씩 놓여있다. 사진 박승원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규모의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자 자원의 한계를 이야기하며 호흡기 질환자와 같은 기저질환을 가진 자나 고령자, 중증장애인들보다도 완치가 가능한 젊고, 건강한 이들을 우선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선택적으로 치료가 시행되고 있다는 기사와 글들을 접하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치료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은 단지 치료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쓸모를 다했거나 당초 쓸모없다고 규정된 생명은 쓸모 있는 다른 생명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자원 분배는 사회적 쓸모에 따라서 우선순위가 정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 관련 글 : “살 사람만 치료, 80세 이상은 어렵다” 이탈리아 충격 증언, 중앙일보, 2020.03.13 / 앨리스 웡, “나는 살기 위해 산소호흡기가 필요한 장애인이다. 펜데믹 동안 나는 쓸모없는 존재인가?”, VOX,  2020.4.4)

 

이러한 결정에서 ‘쓸모의 기준은 무엇이고, 누구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며, 쓸모가 왜 생명의 가치 기준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빠져있다. 호흡기 질환자이면서 고혈압이라는 기저질환을 가졌고 중증장애가 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치료 대상에서 제외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사회가 요구하는 쓸모의 기준에서 미달 판정을 받은 나는 평생을 일상적으로 사회적 배제를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억울한데 죽음마저도 사회적 타살을 당할 수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또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평생 기약 없이 시설에 갇혀 사는 것이 쉽게 용인되는 사회에서 20년 넘게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서야 겨우 폐쇄병동에서 나올 수 있었던 청도대남병원 정신장애인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공적마스크 구매는 코로나19 감염 위기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어임에도 건강보험증과 외국인 등록증을 제시할 수 없는 이주민, 학교에 다니지 않아 학생증을 제시할 수 없는 청소년들은 ‘자격 미달’로 이를 구매할 수 없었다. 문제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나서야 방침을 바꾼 이 상황은 이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 누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제외된 생명은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다른 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수없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었던 다른 몸들은 재난 상황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이 사회에 드러나지 않았기에 이들이 겪는 문제도 가시화되기 어렵다.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다른 몸, 서로의 존재를 일깨우다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은 몸을 통해 내가 어떤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표현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삶을 이어가고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또는 존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세상에 귀하고 존엄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나 또한 이 사회에 몸을 담고 살아가기 때문에 종종 내일 나의 몸이 어떻게 변할지 두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내가 느끼는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직면하며, 오늘의 변화와 감각에 집중하고, 몸을 통해 경험되는 희로애락을 다른 몸들과 소통하고 싶다. 서로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다른 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칼럼을 시작한다. 

 

조미경의 장애 그리고 페미니즘


장애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장애여성운동 현장에 몸을 담고 있다. 중증의 골형성부전증으로 익숙하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통증과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일상을 좌충우돌 살아가는 중이다.

올려 0 내려 0
조미경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몸에 대한 통제, 그 환상 넘어
죽음은 가장 먼저 시설의 문을 두드렸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프린트하기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댓글, 욕설과 혐오를 담은 댓글, 광고 등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으니 댓글 작성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몸에 대한 통제, 그 환상 넘어 (2020-06-30 12:5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