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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다는 것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5월20일 15시16분 ]

잠깐 찾아오는 평온

 

대체로 혼자 있을 때 나는 조용하고 침착하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혼자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는 시간이다. 어둠을 밝혀주는 불빛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고 고요한 가운데 책장 넘어가는 소리는 눈이 쌓일 때처럼 순백의 기쁨을 준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드물다. 대개는 무슨 일이 있거나 아니라면 누워 잠을 자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요컨대 집중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은 계획하고 반성하지 않은 채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아니라면 더 최악인 경우도 있다. 말을 하다가 말을 잇기가 어려울 정도로 호흡이 가빠지는 때가 있는데 이때는 주변 사람들도 이상하다고 느낄 만큼 증상이 확연하다. 이렇게 될 때는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 때이거나 아니면 많은 시간을 깨어서 다른 사람과 계속 함께 지낼 때 그렇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카페인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했을 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럴 때는 물을 마시면 도움이 된다. 물을 마시거나 잠시 기분을 바꿔보는 일을 하지 않으면 호흡이 가빠져 얼굴이 붉어지고 보기에도 딱한 모습이 되어 버린다. 선천적으로 쉽게 불안해하고 긴장하는 편이 아닌가 한다.

 

누구에게나 늘 손안에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선물하고 싶다. 사진 픽사베이

 

불안한 시간의 위태로운 균형

 

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아는 사람과 통화를 하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린 적이 있다. 통화를 하기 힘든 정도였는데 우연히 지하철 출입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어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건 내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비참하지 않은데… 라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순간적인 자각이 들자, 나는 곧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통화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갔던 것은 어쩌면 자긍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예전의 나는 형편없는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거의 십여 년간을. 자고 일어나 먹고, 자고 일어나 먹고를 반복하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를 학대하고 괴롭혔다. 그리고 사람들과 단절되어 작은 방에서 괴로움만을 곱씹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장애인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었다. 너무 혼자였던 시간이 길어서였을까.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종종 사람들 앞에 나서야 했고 그때마다 심한 가슴 떨림을 경험했다. 다니고 있는 문학회에서도 나의 글을 발표할 때 너무 떨어서 한 친구는 킥킥, 웃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성적인 단어와 접할 때도 비슷한 긴장을 경험한다. 맥락과 관계없이 성적인 것을 연상시키는 것 앞에서는 극심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문제를 해결한 후에 휴식하세요

 

이곳저곳 터져 나온 밀짚 몸을 가진 허수아비처럼 생활에서 이렇게 툭툭, 터져 나오는 불안과 긴장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를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십 대 이후 병을 앓게 되면서 나는 자꾸만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다.

 

얼마 전부터 한 가지 시도를 해 보고 있다. 깨어 있는 시간을 늘리고 그 시간을 책을 읽는 시간처럼 단정하고 정돈되게 보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차분하고 고요한 모습으로 생활하는 나를 상상해 본다.

 

어머니의 집안일을 도와 드리고 아버지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며 사람들에게 따듯한 사람. 그런 소박한 사람이 내가 바라는 나이고 나의 자긍심이다―이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정신이 맑게 개고 내가 경험하는 불안과 긴장이 다시 엄습해 오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런 자긍심이 커질수록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가족과 이웃에게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어쩌면 이것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은 아닐까?

 

증상은 단지 어떤 신체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생애사와 환경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활을 의식적으로 만듦으로써 나는 나의 불안과 긴장에 대처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나에게는 많은 경우, 그 불안과 긴장은 나를 출구 없는 환청과 망상으로 이끌곤 했다.

 

『센서티브』라는 책을 보면 증상이 일어날 때는 되도록 쉬어 주되 그 증상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고 증상이 지시하는 문제들을 다 해결하고 났을 때 다른 일을 시작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나의 증상은 주로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편견이나 미움과 분열, 그리고 그것에 연루되어 있는 나의 죄의식과 자책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으므로 나는 아플 때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 조용하고 어둑한 방 안에서 어떻게 난맥 같은 상황에 평온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를 상상한다. 처리 못한 감정과 생각을 정돈하고, 잊고 지냈던 위기들에 대처하면서 마치 알람시계처럼 위험한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증상을 돌보며 숙고하고 지혜를 얻는 것이다.

 

그런 수련을 하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조금씩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보다 넓은 사회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끌어주고자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 많은 것들에 감사하기도 하는 요즘이다.

 

그것이 지하철에서 스쳤던 나의 모습, 불행에서 회복되어 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모습이 얼마간 진실했기에 나는 금방 불안을 이겨내고 차분하고 밝아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인가요?

 

꿈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해해주고 격려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혼자만의 꿈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그 꿈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 진정으로 변화하는 듯하다. 나의 존재가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면, 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이겨나가며 눈물을 배우고 따스하고 포근한 이해 속에서의 친밀한 웃음을 동시에 배우며 우리는 성장하는 듯하다.

 

나는 묻는다.

-너는 누군가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니?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사랑을 실천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들여다보고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잘 생활해 나가리라 다짐해본다. 내가 진실해질수록 내 주변의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삶의 지혜가 쌓여 누군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도움이 되는 손길이 되고 싶다. 그러나 도움은 흔하지만 진정한 도움은 드물다. 우리들 모두는 자신의 관점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에 어떤 말이나 행동도 진정한 도움이 되기까지에는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어간다.

 

내 앞에 불행에 빠진 이의 상황을 살피고 그가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늦은 밤, 스탠드를 밝힌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바라는 내가 온전히 숨 쉬고 있다. 배려하고 차분히 돌보아주며 손을 맞잡아 주는 내가.

 

때로 욕심에 눈이 어두워질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등불을 생각하고 그 등불이 밝히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이의 발걸음을 생각한다. 사박사박. 조용한 소리. 그렇게 드러나지 않게 누군가의 밤길을 밝히는 작고 소박한 등불을 그릴 때, 나는 진정한 내가 된다. 그리고 증상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 맑게 갠 정신으로 저녁을 맞을 수 있을까? 사진 픽사베이

 

너와 나 -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아마도 앞으로도 오래 나는 사람들 앞에 서면 떨릴 것이며, 갑자기 숨이 가빠오기도 할 것이며, 환청과 망상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서 있는 나 자신을 응시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흰 불빛의 날들이 이어질 때, 어쩌면 나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모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해 있는 ‘대공황’에서 가진 재산이 많아 용케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에 안도하는 사람이길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를 함께 견디며 그곳에서 희망을 일구어가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나의 장애가 나를 황무지에 있는 사람이 되게 했다면, 나의 꿈은 이 황무지를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무들이 울창하고 샘이 흐르고 우물이 고이며 새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비참 속에 살며 비참 속에서의 꿈들을 함께 그려가고 싶은 것이다.

 

삶은 매 순간 절망과 두려움을 이기고 그것을 희망과 긍지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이기에 밤을 새운 나의 독서와 탐색도 어두운 밤을 이기고 새벽을 맞이하듯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긴 꿈의 밤이 지나 사람들이 땀 흘려 노동하는 한낮의 희망이 되기 위해 꿈의 하늘 저 멀리에 있는 별빛을 따보려 손을 높이 든다.

 

글쓴이 소개
 

목우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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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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