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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법 개정안 국회 통과…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농성장 떠나 집으로
20일, ‘배상 조항’ 삭제 뒤 국회 통과 “배·보상은 특별법 형태로 구체화할 것”
국회 앞 형제복지원 농성장 927일 만에 해체… 진상규명 통해 억울함 풀어야
등록일 [ 2020년05월21일 20시11분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마침내 통과하자 다음날인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과거사 피해 생존자 및 유가족들이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농성장 또한 927일 만에 해단했다. 최승우,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이가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아래 과거사법) 개정안이 어제(2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마침내 통과했다. 이로써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을 포함한 과거 국가 폭력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를 다시 꾸릴 수 있게 됐다. 

 

20대 국회 끝자락에서 극적 합의·통과… ‘위원 수 축소·조사 기간 단축·비공개 청문회 등’ 야당 수정 의견 반영   

 

과거사법 개정안은 2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극적으로 통과했다. 

 

20대 국회가 끝나가도록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던 최승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가 지난 5일 어린이날 국회 의원회관 출입문 지붕 위로 올라가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면서 재논의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마침내 최 씨가 국회 의원회관 지붕 위에 올라간 지 사흘 만인 7일, 여야는 20대 국회에서 과거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여야가 합의한 과거사법 개정안은 기존 발의안보다 크게 축소됐다. 행정안전위원회(아래 행안위)에서 올해 3월에 이미 마련된 과거사법 여야 합의수정안에는 미래통합당(아래 미통당)의 수정의견이 다수 반영됐다. 

 

당시 미통당은 진화위 위원의 수를 9인으로 축소하고, 위원의 구성을 대통령 지명 1인, 국회 선출 8인(여야 각 4인)으로 변경하도록 요구했다. 기존 과거사법 합의안에는 진화위 위원 수가 현행법과 마찬가지로 15인(국회 선출 8인, 대통령 지명 4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미통당은 진화위의 조사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조사 기간의 연장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도록 요구했다. 또한 개정안에서 진실 규명을 위한 가해자 청문회를 신설했지만 미통당의 요구대로 비공개 진행으로 수정됐다.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과거사법 개정안이 재적 290표, 재석 171표, 찬성 162표, 반대 1표, 기권 8표로 통과됐다.
 

예산 문제로 배상 조항 삭제? 이미 과거사법이 아닌 특별법 통해 다루기로 합의한 사안

 

위와 같은 수정 내용을 골자로 여야가 과거사법 개정안을 통과하기로 합의했지만, 본회의를 코앞에 앞두고 야당이 또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야당은 과거사법 개정안 중 피해자 및 유가족 배상을 위한 제36조를 두고 4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정부가 감당하기 어렵다며 해당 조항을 반대했다. 이에 본회의를 사흘 앞둔 17일,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김성원 미통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만나 해당 조항을 삭제하고 통과시키기로 다시 합의했다.  

 

배상 조항에 대해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야당이 예산문제로 반대하는 내용은 이미 작년 10월 22일 행안위 회의를 통해 개정안에서 제외된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10월 22일에 있었던 제8차 국회 행안위 회의록에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제36조의 내용에 대한 일부 수정의견을 내면서 “예산 당국과 협의한 끝에 국가적 책임을 분명히 한다는 측면에서 ‘배상’이 들어가지만 ‘보상’의 경우에는 기본법 보다 특별법의 형태로 다시 제정해 구체적 기준을 정해야 한다”라며 ‘보상’을 제외하는 의견을 내었고 수정의견이 통과됐다. 

 

즉,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선언적 의미로써 제36조에 ‘배상’ 문구를 남겨두었을 뿐, 예산의 문제가 오가는 ‘보상’은 과거사법이 아닌 특별법을 통해 다루기로 이미 합의한 것이다. 나아가 안경호 사무국장은 “야당이 예산 문제를 거론하며 제36조의 삭제를 주장하자, 언론뿐 아니라 피해자들 또한 해당 조항이 삭제되면 마치 배·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라고 꼬집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과거 국가폭력의 피해생존자 및 유가족들이 국가폭력으로 인해 돌아가신 고인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농성장 떠나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과거사 사건, 다른 아픔 마주하겠다” 

 

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 날인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과거사 피해 생존자 및 유가족들이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농성장 또한 927일 만에 해단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사건 등 수많은 국가폭력의 피해생존자 및 유가족과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이 모여 함께 눈물을 흘렸다.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이번 과거사법 개정안이 미흡하더라도 법이 만들어져서 진실규명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둔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 만들어진 부랑아 수용소다. 해방 이후에는 경기도가 운영권을 이어받아 폐쇄되는 1982년까지 직접 운영했다. 이유 없이 끌려온 4,700여 명의 소년들은 불법감금, 강제노역, 가혹행위 등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으며, 일부는 선감도에 암매장 당하기도 했다. 

 

국가폭력의 또 다른 피해자인 서산개척단 사건의 피해생존자들도 참석했다. 정영철 서산개척단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입이 있어도 말도 못 하면서 억울하게 살아왔다. 지금 정부가 들어와서 과거사법이 통과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라며 “당시의 충격 때문에 이렇게 늙도록 세상을 마음 놓고 살아보지 못했다. 우리의 빼앗긴 청춘에 대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서산개척단은 1961년, 보건사회부가 사회명량화의 일환으로 전국의 무의무탁한 우범자, 출감자, 윤락여성들을 정착 시켜 국유폐염전을 농경지로 전환한다는 목적을 내걸고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인에게 조직의 운영을 맡겨 그에 의한 인권유린과 비리를 방조했으며, 정부기록으로만 17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납치되어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국가폭력 피해생존자인 정영철 서산개척단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국회 정문 앞에서 927일 동안 농성을 벌이고 해단하는 최승우·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20대 국회의 끝자락에서 국회 지붕 위에 올라가 개정안 통과를 끌어낸 최 씨는 “오랫동안 농성을 하면서 공중만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라며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면서 “과거사법 통과를 위해 내디뎠던 첫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느꼈다”라며 “앞으로 더 한 발자국씩 나아가 대한민국에 국가폭력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라고 밝혔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는 “모두가 개정안 통과를 축하하며 기뻐하는 이 순간, 저는 마치 가슴속에 모래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만 같다. 그럼에도 저는 이 모래알갱이가 먼지가 될 때까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은 바로 과거사 사건의 피해당사자로서 다른 아픔들을 마주하는 일이다”라며 다른 국가폭력의 피해 사건들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사법 통과 이후를 걱정했다. 한 씨는 “과거사법이 통과했다고 해서 대충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국가폭력 사건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미흡한 법안을 21대 국회의원들이 앞으로 더 노력해서 위원회를 마련해야 하고 정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라고 21대 국회에 당부했다.

 

특히 한 씨는 형제복지원의 근거인 ‘내무부 훈령 410호’에 따라 운영된 전국 부랑아 시설 36개 시설에 대한 전수조사도 줄곧 요구해왔다. 따라서 형제복지원, 선감학원을 단일 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가 아닌 국가폭력에 의한 시설의 구조적 문제로 보고,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한 체계가 위원회에서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국회 앞에 마련된 형제복지원 농성장을 927일 만에 해체했다. 피해생존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오늘) 형제복지원 농성장을 해체하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진실을 향한 걸음은 멈추지 않겠다”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할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준비에 매진하려 한다. 이번 과거사법에 빠진 명예회복과 배·보상의 문제는 21대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길을 열어가겠다”라고 앞으로의 다짐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과거사법 국회 통과에 대한 환영의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진화위가 10년 만에 다시 문을 열고 2기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라며 “개인적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기회가 생긴 것에 감회가 깊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987년,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으로서 진상조사 작업에 참여했지만, 당시 시설이 폐쇄된 이후여서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전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또한 21일, 성명을 통해 “과거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과거사법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조항이 포함되지 못한 점은 아쉬우나,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길이 10년 만에 다시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덧붙였다.

 

최승우 씨와 한종선 씨가 927일만에 국회 앞 농성장을 철거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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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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