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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난소를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6월03일 19시53분 ]

사람들은 자녀를 두지 않고 부부만으로 가정을 이어가겠다고 하면 대단하고 특별한 결정이라도 한 것처럼 반응한다. ⓒ다리아

 

- 어머니는 나를 걱정하는 걸까, 나의 자궁을 걱정하는 걸까

 

“니들 아이 생기길 기도하면서 성경 쓴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시어머니를 앞에 두고도 한숨이 푹 나왔다. 내가 한숨을 쉬자, 어머니는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이를 꼭 낳으라는 뜻이 아니라는 어머니의 말은 정말 나를 걱정해서일까. 내가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임신이 안 될까 봐 걱정하시는 것이 아닐까. 지난 1월의 일이다. 결혼한 지 5년, 어머니는 아직도 손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2018년 여름, 어머니에게 직장을 그만둔 이유를 설명하면서 오른쪽 난소에 혹이 생긴 것을 털어놨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혹이 생긴 것이 두 번째인 것을 어머니는 모른다. 처음 양쪽에 생긴 혹들을 수술로 없앴다는 것도 어머니는 모른다. 결혼하기 전의 일이었다. 내 얘기를 듣고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부터 내 난소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의 기도 주제가 되었다.

 

어머니에게 내 혹에 대해 말하고 한 달쯤 뒤,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사하기 며칠 전, 어머니와 시동생이 이사할 집을 축복(하느님께 복을 비는 것)해주기 위해 왔다. 셋이 둘러앉아 어머니의 주도로 기도하던 중, 집에 대한 내용이 이어지다 갑자기 “다리아의 난소의 혹이 없어지길…” 나는 슬쩍 눈을 들어 내 앞에 있는 시동생을 봤다. 나는 저 멀리 우주 속으로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었다.

 

2019년 3월 어머니는 자궁에 좋다는 익모초 환 3봉지를 내미셨다. 어머니는 남대문 시장까지 가서 직접 사셨다고 했다. 어머니가 익모초 환을 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결혼하고 얼마 뒤에도 어머니는 익모초 환으로 임신하길 압박해왔다. 성의를 생각해서 몇 번 먹었으나, 먹을 때마다 아니 익모초 환을 볼 때마다 기분이 찜찜했다. 익모초 환은 1년 넘게 주방에 있는 수납장 안에 방치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처음에 주신 환도 다 먹지 못했었다. 어머니는 정말로 나를 걱정해서 환을 사 오셨을까. 내 안에는 어머니의 성의를 의심하는 질문이 자꾸 맴돈다.

 

어머니에게 난소에 혹이 있는 것을 털어놓은 이유는 그만큼 내 몸과 마음이 힘들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이었다. 난소에 혹이 있다고 임신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원하는 마음을 한풀 꺾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머니가 올해도 여전히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았을 때, 어머니에게 내 몸은 그저 자신에게 손주를 안겨줄 매개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내 난소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못 낳을까 봐 걱정한 것이다.

 

- 시어머니, 친정엄마, 아빠, 고모, 남편의 사촌 누나까지… “아이 언제 낳니?”

 

나에게 아이를 바라는 이는 시어머니뿐만이 아니다.

 

2013년 1월 난소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을 때, 의사에게 수술 설명을 듣는 자리에 보호자로 아빠가 같이 있었다. 아빠가 “수술해도 아이 낳을 수 있지요?”라고 물었다. 순간 뒷목이 빳빳해지면서 가슴 속이 싸늘해졌다.

 

진료기록을 보니 내 진단명은 ‘양측난소낭종’이다. 진료기록에 발생 가능한 합병증으로 배란장애 및 생리불순이 기록되어 있다. 결혼할 때 이 사실을 시어머니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에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임신하지 못할까 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고, 남편이 될 사람에게 나와 결혼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나까지도 내 수술 이력이 신경 쓰였다.

 

결혼할 때 서로의 의료기록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고 고민이 깊어졌다. 이런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댁에 수술 이력을 말하지 않는 것이 내 문제를 숨기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고민을 털어놨더니 남편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가볍고 산뜻한 남편의 반응에 나도 더는 이 문제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이 나에게 임신을 비롯해 많은 요구를 하는 것과 달리, 남편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반면, 시어머니, 친정엄마, 고모, 남편의 사촌 누나 등은 자녀 계획을 묻거나, 아이를 낳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혹은 아이를 바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시어머니는 익모초 환으로 임신의 요구를 드러냈다. ⓒ다리아

 

- “여자라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지!”

 

2017년 여름, 오른쪽 난소에 낭종이 또 생겼다. 3cm로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절망했다. 낭종이 더 커지질 않길 바라면서도 언젠가는 또 같은 수술을 해야 할 날이 오겠거니 마음먹고 있었다. 시무룩해져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같이 걱정하면서도 이때부터 더는 내게 아이를 가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이 잘 걸린다고 하는 병명을 대며 석류즙을 먹으라는 등 건강식품을 권했다. 뜻밖의 수확이랄까. 낭종 소식을 듣고 엄마는 내 임신을 단념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잘 쉬어서인지, 2년 뒤에는 낭종이 없어졌다. 기쁜 마음에, 병원을 나오자마자 엄마에게 전화했다. “혹이 사라졌어!” 바로 이어진 “그럼 이제 아이를 낳으면 되겠네”라는 엄마의 말에 좋았던 기분이 와르르 무너졌다. 괜히 말했다고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말해왔는데도, 엄마는 몸 상태 때문에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진료기록에 나온 수술 뒤에 있을 수 있는 합병증, 배란 장애와 생리 불순은 없었다. 그렇더라도 내가 임신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고, 확인하고 싶지도 않다. 한때는 나도 자궁을 써야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심지어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원하는 것 같다고 여기는 시기도 있었다. 여자라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통념에 어릴 적부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사회 선생님은 아이를 셋 이상 낳지 않으면 졸업한 뒤에 찾아오지 말라고 수업 때마다 강조했다. 자녀를 많이 낳아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제자만이 자신에게 인사하러 올 자격이 있다는 뜻이었다. 미사 강론 중에 어떤 신부님은 요즘 젊은 부부들이 편하게 살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며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다. 

 

출산율 저하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래 ‘출산이 곧 애국’이라는 통념은 출산 장려를 위한 홍보에 자주 쓰였다. “출산율이 줄어 대한민국도 줄어든다”, “2050년이 되면 생산가능 인구 1.4명당 부양노인 인구 1명”, “자녀는 국력 - 출산으로 가정도 나라도 지켜주세요” 불과 3년 전까지도 이런 공익광고가 나왔다. (‘애국심으로 아이 낳으라’는 출산강요 캠페인, 2017년 6월 1일, 한겨레)

 

2016년에 화제가 되었던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잊을 수 없다. 당시 행정자치부는 저출산을 극복하자며 전국 243개 지자체별로 20~44세 여성의 인구수를 바탕으로 ‘가임기 여성 수’ 지도를 만들어 공개했다. 지도에서 여성 수가 많은 지역일수록 더 진한 분홍색으로 표시했고, 시도별로 한 자릿수까지 가임기 여성 수가 나와 있으며, 많은 지역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다. 공개되자마자 ‘저출산을 여성의 문제로 만든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본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출산=애국’이라는 인식은 지속해서 비판받았지만, 저출산을 개인과 여성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여성에게만 부담을 지운다고 해서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이라고 써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16년 논란이 되었던 ‘대한민국 출산지도’ ⓒ행정자치부

 

2019년 9월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정갑윤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은 당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게 “아직 미혼인 것으로 아는데, 대한민국의 제일 큰 문제는 출산을 안 하는 것이다.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 달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논란이 되었고, 비판 여론도 컸다. 그러나 2020년 2월 연예인 부부가 쌍둥이를 낳았다는 기사에 “애국자이십니다”라는 제목이 붙는다. 그보다 한 달 전 지역 언론에는 “출산은 구국이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이 실렸다.

 

뉴스를 볼 것까지 없이, 내 상황만 봐도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까진 지배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결혼 여부를 묻고, 결혼했다고 답하면 이어서 자녀가 있는지 묻는다. 아이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아직’ 없군요.”라고 말한다. 때에 따라 그냥 넘길 때도 있지만, 나는 “아직 없는 게 아니라 계속 없을 거예요”라고 덧붙인다.

 

보통은 거기서 끝나지만, 아이를 셋 이상 낳은 이를 두고 애국자라고 칭찬하던 어떤 이는 한 발자국 더 나갔다. “왜 애를 안 낳아요?” 결혼을 하면 으레 아이를 낳는 것이 통상적이고, 불임이 아닌 이상 자발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겠다고 하면 대단하고 특별한 결정이라도 한 것처럼 반응한다.         

 

-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택한 우리 부부의 삶

 

부부만으로 이뤄진 가정을 이어가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많지만, 나와 남편의 몸과 건강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2년 반 정도 일을 쉬었는데, 결코 경제적으로 넉넉해서가 아니었다. 일을 그만둘 무렵 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남편이 받는 월급은 두 사람이 한 달을 먹고살 정도다. 꼭 맞벌이를 해야 한다. 남편은 노동 시간이 길고 노동 강도가 높은 제조업에서 일한다. 아침 7시에 나가서, 일찍 오면 저녁 7시쯤 집에 도착한다. 그러나 야근이 잦아 그보다 늦을 때가 허다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온 그의 내복에는 한겨울에도 소금기가 배어 있다. 아이를 돌보고 싶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육아는 내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내 체력으로는 일과 육아를 결코 같이할 수 없다. 게다가 남편은 허리가 안 좋아서 당장 내일이라도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남들은 힘들어도 참으면서 아이랑 같이 사는데 왜 너희만 못하냐고 따진다면, 나는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나는 그냥 살고 싶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 어떤 이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편하게 살려고 하는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비난한다. 편한 삶을 원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이가 없어도 남편과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피곤에 절어 있다. 그저 일하고 먹고 자고 겨우 집안을 정리하며 그다지 편하지도 않게 산다. 남편과 나는 불안한 몸으로 겨우 일상을 유지하며 사는데, 이 일상에 아이의 자리까지 두기는 버겁다.

 

순간 울컥할 때가 있다. 남편과 나는 둘만으로도 사는 게 이미 벅찬데, 아이까지 기르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로 다가온다. 왜 사람들은, 사회는 우리 인생에 어마어마하게 영향을 끼칠 출생을 쉽게 요구하는 걸까.

 

요즘은 지자체마다 출산장려정책의 하나로 자녀 수에 비례해 보조금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 정부뿐 아니라 종교기관, 기업에서도 다자녀 출산을 장려하고 지원한다.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첫째를 낳으면 출산장려금 100만 원, 다섯째를 낳으면 1000만 원을 준다고 한다. 온 나라가 한마음으로 아이를 낳으라고 떠밀지만, 별반 소용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OECD 회원 나라 가운데 가장 낮았다. 사회의 인식이나 정부의 정책 방향과 달리,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고, 점점 늘고 있다. 

 

아프면서 내 관심은 자연스레 내 몸으로 향한다. 몸을 잘 돌보는 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몸을 돌보는 것은 마음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몸과 마음을 돌보며, 여유롭게 편하게 살고 싶다. 이런 바람이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나만 아는 이기적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난 애국자가 되지 않겠다. 그러니 누구도 내 난소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글쓴이 소개
다리아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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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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