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08월12일wed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획연재 > 질병과 함께 춤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아직 성공하지 못한, 수면장애인의 ‘조용한 집’ 구하기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6월10일 15시07분 ]

나는 소위 집순이였다. 부모님이랑 함께 사는 것에 특별한 불만도 없었다. 부모님 집은 서울에 있었고 나는 진학 등의 목적으로 이주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인터넷에서 얘기하는 소위 ‘서울 권력’을 누리고 살았다.

 

그러다가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으로 독립하고 30대 중반이 되었다. 다들 일상을 꾸려나가는 힘이 있는데 나는 부모님에게 너무 의존적인 삶을 살아온 나머지 온실 속의 화초 같았다. 이렇게 나의 첫 독립 시도는 혼자 살아보고 싶어서가 아닌 비혼 여성으로 혼자 잘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시작되었다. 첫 시도 당시에는 나의 질병을 고려하지 않은 그 당위성이 어떤 파국을 불러일으킬지 생각하지 못했다.

 

2012년 나이 30대 후반이 되어서 첫 독립이 이루어졌다. 부모님은 반대했다. 서울에 집이 있는데 굳이 집을 나가서 새집을 얻을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경증이라고 해도 장애가 있으므로 위험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살다가 갑자기 나이 들어 혼자 살 게 될 상황이 닥치면 패닉에 빠질 것 같았다. 마침 당시 직장은 부모님 집에서 왕복 3시간 거리에 있었다. 나는 몸이 고되고 힘들다는 이유를 강력하게 들며 혼자 집을 보러 다녔고 건강상 몸이 안 좋으니 공기 좋은 곳에 살겠다며 강서구 한 산동네의 집을 계약했다.

질병인으로서 혼자 잘 살 수 있는 집을 미리 발견해 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독립을 감행했다. 이 많고 많은 집 중에 금세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진 박현진

 

-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독립, 그리고 찾아온 고통

 

하지만 수면장애를 가진 나로서는 며칠 안 가 윗집 남자가 새벽 2시에서 3시에 퇴근해 쿵쿵거리며 돌아다니는 소리가 너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자다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면 잠에서 깨서 한동안 잠들지 못하였고 간신히 잠든다 해도 다시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새벽 6시가 되면 폐휴지를 줍는 노인들이 우리 집 옆에서 페트병을 발로 내리찍는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윗집 남자에게 쪽지도 붙여놓고 새벽 6시에 집 밖에 나가 작업하는 노인분들에게 간청도 드려봤지만 환경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한 달 정도 지나자 세수할 때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 세수하면 항상 등이 젖었다. 집주인에게 말했으나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여름철이 되어 비가 오자 작은 방 천장에서도 물이 떨어졌다. 방에 대야를 갖다 놓고 생활해야 했다. 집주인은 위층 집주인하고 수리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면서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면서 3개월이 지나갔다. 화장실에서 시작된 누수는 방까지 확장됐다. 이제는 방에 대야를 갖다 놓아야 할 정도가 됐다. 누수와 지속되는 새벽 소음으로 인한 수면 부족으로 몸이 점점 아파졌다. 잠을 지속적으로 자지 못하자 주말이면 부모님 집에 가서 이틀 동안 죽은 듯이 잠만 자다가 월요일에 간신히 출근하는 날들이 지속했다. 몸 상태가 극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자궁근종 수술 후 재발한 지 3년째였는데 수면 부족으로 인해 통증이 날로 심해졌다. 집주인과 세상에 대한 분노는 나의 몸과 마음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는 7개월 만에 부모님 집으로 복귀했다.

 

- 수면장애인으로서 조용한 공간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
 
부모님 집에 들어와서 한동안 백수로 살면서 우울함에 시달렸다. 너무 짧게 살다가 독립에 실패했다는 패배감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 질병의 심각성을 그제야 명확히 인식한 탓이었다. 소리민감증으로 인한 수면장애가 이렇게 뿌리 깊은 줄 몰랐다. 부모님 집은 서울에서 이제 몇 안 남은 단독주택이었고 1층과 2층 공간이 분리되어 부모님이 새벽에 일어나셔서 활동하셔도 내가 어느 정도 잠을 잘 수가 있었다. 하지만 서울 대부분의 집은 공동주택이었다. 그리고 벽식구조인 집들은 진동과 소음을 야기했다. 나의 수면장애를 어느 정도 아는 친구들은 그냥 부모님 집에서 나오지 말고 계속 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내 질병 문제가 드러나자 더욱 빨리 내게 맞는 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집은 부모님이 아들에게 주시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비혼여성인 나에게 그 큰 집은 물려주기 아깝고 결혼해서 4인 가족을 이루고 있는 아들에게 맞는 집이라고 생각하셨다. 티브이에서나 나오는 재산싸움을 할 여력도, 이유도 없었다. 나는 아무 집에서나 잘 자고 잘 살 수 있는 몸을 가진 게 아니므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맞는, 잠을 어느 정도 잘 수 있으면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나는 그 후 열심히 다시 독립을 준비하며 집들을 둘러봤는데 소음이 없는 공간을 찾으려 할수록 섣불리 계약할 수가 없었다. 빌라 같은 공동주택은 이미 그 소음을 충분히 겪어서 제외했다. 당시 잠을 못 자 ‘층간소음 피해자 카페’에 가입했는데 한번 귀가` 트인 사람은 공동주택에서는 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소리에 시달리며 매일 위층과 아래층에 소음보복으로 복수극을 펼치면서 죽지 못해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악다구니치며 살 자신도, 에너지도 없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공동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을 가야겠지 하면서 한 층에 한 가구씩 사는 다가구 꼭대기 층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카페에서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소리에 대한 공포는 점점 나를 짓눌렀다. 소리에 민감해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듣게 된 것을 ‘귀가 트였다’라고 표현하는데 한번 귀가 트이면 아랫집, 윗집의 말소리를 시작으로 화장실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심지어 서랍장 여닫는 소리까지 들리고 그 소리에 점점 스트레스받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례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카페에 올라왔다. 꼭대기 층이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아래층에서 울리는 소리도 윗집 못지않다고 했고 나도 이미 아래층 소음을 경험해본 후였다. 그래서 더더욱 집을 보러 가서도 결정하지 못하였다. 집이 마음에 들어서 가보면 교회가 바로 앞에 있다든가, 아래층에서 개를 키워 개 짖는 소리가 심하게 난다든가 하여 그런 집들은 분명 잠을 못 잘 것이라는 생각에 지레짐작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람이 적은 돈으로 얻은 집은 문제를 일으켰고 나는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세 번째 이사한 집의 지붕. 이사 첫날부터 지붕의 일부가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사진 박현진

 

- 돈이 없는데도 넓은 공간을 구해야 하는 부조화

 

예산도 물론 문제였다. 서울의 월세는 내가 첫 번째 독립 실패 후 가파르게 올라서 투룸은 월세가 60~70만 원에 육박했다. 그렇다면 보통 그보다는 월세를 적게 내는 원룸을 구하기 나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냉장고 소리를 들으며 잘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투룸을 구해 냉장고를 방 바깥인 거실에 두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독립 실패 후 몸이 완전히 망가져 출퇴근할 수 없는 몸이 되었고 그나마 재택근무 일을 구해 생계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었기에 월세를 그렇게 많이 내는 집은 구할 수 없었다. 그러니 부동산에 갈 때마다 항상 부동산 중개사는 항상 혀를 찼다. 그 돈으로 원룸 이상의 집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부동산에 갈 때마다 “혼자 살면 원룸 구하면 되지 왜 투룸을 구하려 해?”라는 얘기에 차마 냉장고 소리를 들으며 자지 못한다는 얘기는 하지 못하고 다른 핑계를 대며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나마 생각해 낸 것이 옥탑방이었다. 옥탑방은 보통 불법 증축을 하게 되므로 방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산이 워낙 적다 보니 보러 간 옥탑방마다 시설이 매우 엉망이었고 그나마 나은 집은 옆 건물 옥탑방에 남자가 살고 있는데 내 방이 뻔히 보이는 구조여서 포기했다. 옥탑방 사는 지인이 옥탑방에 살아도 아래층 집 주인댁 소리가 고스란히 다 올라온다는 얘기에 절망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나 지치고 있었다. ‘소리가 안 나는 집’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돈이 충분하다면 그런 집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없는 돈에 나는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책에 괴로웠다.
 
그러다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래층 한 가구, 위층 한 가구 사는 단독주택형 다가구였다. 밑에 층에 80대 여성노인 한 분이 살고 계시다 했고 세입자 말로는 매우 조용하시다고 했다. 집은 매우 낡고 추워 보였지만 나는 무엇보다 소리 안 나는 것이 중요하고 잠을 잘 자는 것이 중요했기에 두 번째 집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 집은 아래층 사시는 여성노인분께서 저녁 7시에 주무시고 새벽 2시에 일어나는 패턴을 갖고 계셨다. 새벽에 쾅쾅대는 소리에 매일 수면제를 먹고 살던 나는 3개월 만에 그 집을 나와야 했다. 그래서 결국 세 번째 집은 위 아래층도 없는 단독 독채를 가면 괜찮겠지 싶어서 선택했는데 70년대에 지어진 집이라 녹물이 나오고 보일러 고장 등 하자가 끊이지 않아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결국 포기해야 했다. 나의 세 번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 말할 수 없는 내 질병에 대한 수치심과 고립감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자책하였다. ‘서울에 부모님 집이 없다면 이렇게 부모님 집에 다시 들어가기보다는 더 버텨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나약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나는 왜 이리 잠을 못 자는 사람이 되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웬만큼 어느 공간에서도 잘 사는데’라며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임대주택에 들어가 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집을 잘 볼 줄 몰라서 그런 것이니 다음에는 집을 같이 보러 가자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친구네 임대아파트에 하루 자러 갔다가 위·아래·옆의 티브이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말소리, 화장실 소리를 밤새 들으며 한숨도 못 잤던 나는 임대아파트에 가서도 살 수 없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런 설명을 할 순 없다. 빛 잘 들어오고 시설 좋고 하자가 절대 생길 거 같지 않은 집을 나도 볼 줄 알고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집들은 소음이 발생하고 나는 그런 집에서 살 수 없다.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큼의 소리가 들리는지 이야기하는 게 나는 싫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이해하는 듯하지만 곧 너무나 질린 얼굴이 되곤 한다. “위층 소음이 아니고 아래층에서도 소음이 올라온다고? 아래층에서도 소리가 올라올 수가 있나?” 그럴 때면 나는 어색하게 웃고 입을 다물게 된다.

 

나는 사실 나 자신에게 너무나 지쳐있다. 예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점점 들리기 시작하고 잠을 원래도 못 잤지만 점점 더 조각잠을 자고 있다. 이제는 부모님 집에서조차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나는 일반 귀마개로는 소리를 막을 수 없어 오래 쓰면 귀 건강에 안 좋다는 실리콘 귀마개를 귀에 넣고 잔다. 간절히 원할수록 내가 원하는 안전한 공간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다. 잠을 웬만큼 자고 몸에 통증이 없고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영위되는 어떤 날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밤새 통증과 소리에 시달려 잠을 못 잔 날은 고립감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계속 극단적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나는 또 다른 공간찾기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다. 귀가 트인 누군가가 1년에 무려 4번의 이사를 감행한 후 자신에게 맞는 공간을 찾았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오길 바라고 있다.

 

언젠가 이런 마당을 가진 집에서 질병을 돌보며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을 위안한다. 이런 집 사진들을 계속 보는 이유는 극단적 생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사진 박현진

 

글쓴이 소개

박현진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올려 0 내려 0
박현진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우리에게 더 많은 ‘질병 서사’가 필요한 이유
‘질병 맞을 준비’를 하는 게, 정말 가능해?
일상의 일부가 된 통증, 그 시간을 살다
진실을 배우는 연극, 저항을 사유하다
출퇴근에만 왕복 3~4시간, 망가지는 몸과 마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프린트하기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댓글, 욕설과 혐오를 담은 댓글, 광고 등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으니 댓글 작성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출퇴근에만 왕복 3~4시간, 망가지는 몸과 마음 (2020-06-24 15:18:25)
내 난소를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2020-06-03 19:5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