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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에만 왕복 3~4시간, 망가지는 몸과 마음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6월24일 15시18분 ]

- 내겐 하루 9시간의 수면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타고난 수면시간이 있다고 한다.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려면 몇 시간을 자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9시간 이상 자야 편안하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9시간을 잘 수는 없었다.

 

이미 사람들로 꽉 찬 버스를 보면 가슴이 턱턱 막힌다. 버스에 타야 한다는 절실함 앞에 졸음도 달아난다. 지하철은 더 심하다. 플랫폼이 줄 선 사람들로 붐벼 지나가기 힘들다. 줄이 반대쪽 열차 대기 선까지 이어져 있다. 드디어 열차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빨려 들어간다. 양쪽으로 열려 있는 문 위쪽을 한 손으로 밀며 필사적으로 버티는 사람을 보면서 멈칫. 다음 열차를 타야 한다. 어느 날은 그 필사적인 사람이 나다. 사람들 사이에 짓눌려 쩔쩔매는 모습이, 내 인생과 다르지 않다. 

 

왜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시간에 퇴근할까? 장거리 출퇴근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픽사베이


신도림역, 2호선으로 갈아타려는 사람의 머리가 빼곡하다. 사방이 사람으로 둘러싸여 있어,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느릿하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왜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시간에 퇴근할까? 도대체 왜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상황이 생길까? 이 질문에 누가 대답할 수 있을까? 답답함에 질식할 것 같다. 평생 이 지긋지긋한 지하철 1호선을 못 벗어나면 어쩌나. 내가 이곳에서 사라지는 것 말고는 여길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 서울에 살지 않는 것이, 가난한 게 죄구나.

 

사무실 책상에 앉자마자 집에 가고 싶어진다. 모니터를 보는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카페인에 약한 체질이지만, 정신을 차리려고 커피를 마신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쯤. 밥을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 식도염이 있어 늦게 먹으면 자면서도 속이 부대낀다. 하지만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다. 한 시간만 일찍 저녁밥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냉장고에서 반찬 한두 가지를 통으로 꺼내놓고 먹는다. 씻고 집안일 몇 가지를 하면 밤 11~12시. 피곤한데도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질 낮은 잠을 5~6시간 정도 자고 다음 날 출근. 어제와 같은 반복. 덜어내지 못한 피로가 차곡차곡 몸에 쌓였다. 식도염, 질염, 방광염으로 종종 병원에 다녔다. 나중에는 난소에 혹이 다시 생겼고, 자궁 내막이 두껍고, 폴립이 있고, 발음하기 어려운 감염균 4~5가지와 골반염 진단을 받았다. 

 

-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다시 만난 일상

 

직장 생활 13년 가운데 10여 년은 도시를 넘나들며 살았다. 아침에는 인천에서 서울로, 저녁에는 서울에서 인천으로. 왕복 3~4시간. 몸은 서 있어도 마음은 바닥까지 떨어졌던 우울한 날들. 결국, 아침저녁으로 빼곡한 사람들 틈에서 내가 사라지기로 했다. 2년 반 정도 쉬면서 몸을 보살폈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여전히 집은 인천에, 직장은 서울에. 장거리 출퇴근의 고통을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절망하던 차에, 코로나19로 뜻밖의 상황을 맞았다.

 

하루 3~4시간을 길에서 보내지 않는다. 대신 나는 늦잠을 잔다, 아침마다 따뜻한 물을 음미하면서 마신다,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는다, 햇볕에 이불을 넌다, 산에 간다, 파스타를 만든다, 상추를 씻는다, 30분을 걸어 생협에서 장을 본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다, 스트레칭한다, 바닥을 쓴다.

 

재택근무로 일상에 여유가 생겼다. 업무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줄었다. 불편함도 있다. 사무실처럼 집에는 프린터 같은 장비가 갖춰있지 않아 애먹을 때가 있다. 동료들과 글로만 대화하니 답답하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에서 해방된 기쁨이 크다. 장거리 출퇴근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출근 거리가 짧을수록, 환승 횟수가 적을수록 대중교통 행복지수가 높다고 2013년 서울연구원은 보고한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출근 거리가 15km 이상이면 고혈압일 가능성이 높고, 24km 이상이면 지방 과다와 비만, 운동 부족일 위험성이 높다고 했다. 나의 출퇴근 거리는 28.8km다.

 

“장거리 통근은 우울증, 불안감, 사회적 고립감, 적대감 증가 및 인지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거리 출퇴근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수면의 질이 더 낮고, 더 많은 피로를 느끼며, 목과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출퇴근 거리 길수록 인생 짧다”, 2016년 2월 18일자, 넥스트데일리)

 

한국의 평균 통근·통학 시간은 58분이다. OECD 회원 나라 가운데 가장 길다. ‘2015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통근에 1시간 이상 쓰는 사람은 423만 명이 넘는다. 통근 시간이 긴 주된 이유는 사는 곳과 일터가 다른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집은 인천에 있지만,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다니면 통근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집값이 오르면서 서울에 직장을 둔 채 경기와 인천으로 거주지를 옮긴 사람도 많다. 2000~2015년 사이 인천과 경기의 인구는 각 17%와 39%가량 늘었다.

 

- 소득과 반비례하는 통근 시간

 

한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서울에 혼자 사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하곤 했다. 꼼수를 부려서라도 출퇴근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인천에 부모님과 사는 사람과 결혼하면서, 조금이라도 서울 가까이 살고 싶어 지하철역 부근에 신혼집을 구했다. 회사까지 지하철 3번 환승하고 1시간 30분 걸렸다. 내가 살았던 서울에 가장 가까운 집이었다. 반전세로 겨우 얻었다. 서울로 이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근 시간은 소득과 반비례한다. 소득이 높은 사람은 서울 중심에 살고, 소득이 적은 나와 같은 사람은 서울 외곽에 산다. 회사 주변에 살려면, 평생 일해도 갚지 못할 돈을 대출받아야 한다. 물론 대출이 가능할 때 이야기다. 아니면 건강을 담보로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인천에 직장을 구하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다녔던 회사 7곳 가운데 1곳만이 내가 사는 도시에 있었다.
 
장거리 출퇴근은 노동자의 건강권, 부동산 가격 상승, 수도권 중심의 산업발달, 소득 불균형 등 이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정부는 노동자가 노동시간이나 업무 장소를 선택,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를 권장하고, 이 제도를 도입하는 회사를 지원한다. 유연근무제는 코로나19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구속력이 없어 일부 대기업 말고는 거의 시행하지 않았다. 유연근무제의 한 유형인 재택근무제는 코로나19로 강제 도입됐다. 3월 중순 정부는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중소기업에 재택근무 비용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한시적 대응이다.

 

나뿐만 아니라 재택근무를 경험한 대부분은 ‘출퇴근에 드는 시간, 비용,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 재택근무를 하길 원한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맞지 않은 사람도 있고, 일의 특성상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다리아의 홈오피스. 장거리 출퇴근은 내 인생에서 피할 수 없고, 답도 없는 문제인 줄 알았다. 내게는 재택근무가 답이었다. ⓒ다리아

 

- 재택근무할 수 없는 남편의 노동, 그저 다치거나 죽지 않기만을 바랄 뿐

 

남편은 제조업에서 일한다. 산재 사고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있는 지역에 그의 일터가 있다. 일하면서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자잘한 상처가 자주 나서 늘 방수밴드와 연고를 준비해 둔다. 남편은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저녁 8시쯤 집에 온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빼면 그는 하루 9~10시간 정도 일한다. 소금기 밴 티셔츠, 양말에 엉겨 붙은 아주 작은 쇳조각들, 긁히거나 데인 상처, 잦은 야근을 보며 일이 매우 고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OECD 회원 나라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 1위, 매년 2,000명가량이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 현실에서 나는 그저 그가 다치거나 죽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코로나19 확산에도 그의 삶은 아침에 마스크 챙기기 말고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거나 무기한 무급휴직에 처한 사람도 있는데, 일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까. 그에 비하면 나는 재택근무로 십수 년 만에 장거리 출퇴근에서 벗어났으니 운이 좋다고 좋아해야 할까.

 

장거리 출퇴근은 내 인생에서 피할 수 없고, 답도 없는 문제인 줄 알았다. 내게는 재택근무가 답이다. 남편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에게 절실한 답은 노동시간 단축일 것이다. 저마다 자신의 몸과 처한 상황에 맞게 노동환경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아프면 쉬기’라는 너무도 당연한 명제가 사회적으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아파도 쉴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는 전혀 다른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동 현실을 보면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는 듯하다.
 
스웨덴에선 장거리 출퇴근자의 경우,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한다고 한다. 독일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집에서 일할 권리를 노동법으로 정하려고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인터넷 요금 등 재택근무 때 필요한 서비스나 물품을 지원하는 회사도 있다. 
 
재택근무가 이 사회에 보편화되길 바란다. 장거리 출퇴근자의 고통을 더는 것뿐만이 아니다. 중증장애인 등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거나 움직임이 불편한 이들의 일할 기회가 늘 것이다. 코로나19로 얻은 기회가 여기서 끝나지 않기를. 다행히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동료들과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해, 재택근무를 유지하기로 했다. 사무실에는 주 1~2회 나간다. 내일은 집에서 일하는 날이다. 9시간 잘 수 있다.  


* 참고 자료
-
한국인이 놓치고 사는 이 '숫자'만 바꿔도 인생이 바뀝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세바시 강연 유튜브
- ‘대중교통 서비스 개선을 위한 서울시 출근통행의 질 평가’, 서울연구원, 2013
- ‘한국의 사회동향 2018’, 통계청 
-
직장인 62.3%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했다”, 2020년 5월 4일, 잡코리아
- ‘아프면 쉬기’ 꼭 필요하지만…직장인 65퍼센트, 현실적으론 못 쉴 것!, 2020년 6월 9일, 사람인

 

글쓴이 소개

다리아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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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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