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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재순의 아버지 “힘없는 노동자가 이기는 것 보여주겠다”
[인터뷰] 고 김재순 장애인 노동자의 아버지
장애 숨겨야 일할 수 있던 아버지와 아들, 대물림된 산재 사고
등록일 [ 2020년06월26일 15시36분 ]

고 김재순 장애인 노동자의 아버지 김무영(가명) 씨가 전남 광주 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정리하고 있다. 김재순의 영정사진 앞에는 방문객들이 두고간 음료와 과자들이 놓여있다. 사진 이가연
 

고 김재순의 아버지 김무영(가명)은 매일 아침 7시, 전남 광주 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출근하듯 도착해 초에 불을 켜고 하루를 시작한다. 김무영은 지난 5월 29일부터 이곳에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업주의 책임을 묻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천안 아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사망 소식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광주로 와서 둘째 아들의 원룸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김무영은 지난 5월, 아들을 잃었다. 그는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일요일 저녁, 둘째 아들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첫째 아들 재순이의 사망 소식이었다. 당장 광주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차편이 없어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첫차를 타고 아침이 되어서야 광주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보니까 둘째가 이미 화장을 해버렸어요. 경황이 없어서 연락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김재순은 지난 5월 22일, 홀로 합성수지 파쇄기에 올라가 폐기물을 제거하다 미끄러져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사인은 ‘다발성 분쇄손상’.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고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의 진상조사 결과, 사고 당시 적어도 2인 1조로 작업해야 했다. 그러나 김재순은 지적장애가 있음에도 비상 정지 리모컨 하나 없이 고위험 작업을 단독으로 수행했다. 게다가 작업 전 사전 조사나 작업계획서도 없었고 관리감독자가 유해위험요인을 제거하는 의무를 준수하지도 않았다. 

 

이미 화장까지 마친 상황에서 김무영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동은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업주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사업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김무영은 인터넷으로 공장을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대표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길래 제가 ‘여보시오. 만일 재순이처럼 당신 아들이 그렇게 죽어갔다면 그러들랑 좋겠냐’고 했더니 그제야 알려주더라고요.” 

 

김무영은 가까스로 연락처를 알아내 조선우드 대표를 만났지만, 대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책임을 부인했다. “(대표가 말하길) 재순이는 허드렛일하는 게 원래 일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파쇄기 위로 올라가서 죽었으니까 자기 과실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49재 이야기를 꺼내는데… 장례식도 못 치렀는데 뭔 49재냐고요.”

 

5월 15일, 고 김재순 장애인 노동자가 상부(호퍼)에서 분쇄기를 가동시켜 점검하고 있고, 사수의 역할을 한 배부장이 아래서 굴착기로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고 김재순 산재사망 사고 진상조사 2차 중간보고서’ 중 갈무리.
 

- 그저 주어진 일 했을 뿐인데… 지나치게 성실했던 아들 

 

사업주의 주장처럼 김재순은 정말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던 걸까? 대책위가 1차 진상조사를 통해 그가 해당 작업을 일상적으로 해온 사실을 밝혀내 사업주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사업주는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대책위는 지난 14일, 2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동안 그가 일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했다. 파쇄기가 작동할 때 그가 상부인 호퍼 위에 올라가거나, 그곳에서 리모컨 없이 막대기로 스위치를 조작하는 작업은 언제든 몸의 균형을 잃어 추락할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위험한 회전 칼날 위에서도 늘 해오던 일처럼 익숙하고 성실하게 작업하고 있었다.

 

그는 일하는 동안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을 만큼 성실했다. 이런 그의 지나친 성실함과 적극성은 그의 장애 때문일 수도 있다. 중증 지적장애인인 그는 중학교 2학년 무렵 장애판정을 받았다. 그는 평소 업무를 능수능란하게 잘한다는 칭찬을 받곤 했지만, 스스로 돈을 계산하거나 경제생활에 대한 인지도는 낮았다. 회사는 그의 이런 장애를 아는 것처럼, 김재순을 대신해 회사 가까이에 있는 원룸과 계약을 맺고선 그를 그곳에 살게 했다. 보증금과 월세는 매달 최저임금에 가까운 그의 급여에서 빠져나갔다.  

 

- 그때 재순이를 데리고 갈 걸… 사무치게 후회되는 마지막 통화 

 

김무영은 아들과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김재순이 5살이 되던 해까지는 함께 살았지만,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김재순의 동생 둘은 보육시설에서 자랐고 김재순은 삼촌(김무영의 동생)과 함께 시골에서 살았다. 어렸을 적부터 경운기 타기를 좋아했던 그는 농사일하던 삼촌으로부터 각종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김재순은 자립의 욕구가 강했다. 삼촌과 건설 일을 하던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광주에서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을 하면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8년, 그는 우연히 조선우드를 알게 되어 입사한다. 그러나 일이 너무 고되어 1년 2개월(2018년 2월 9일~2019년 4월 30일) 만에 퇴사하고 이후 건설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지적장애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결국 퇴사 3개월 만에 다시 조선우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김무영은 지금도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를 곱씹으며 후회하고 있다. “작년 6월에 제가 전화로 경기도로 올라와서 아빠랑 같이 지내자고 했더니, 재순이가 ‘자기 걱정하지 말고 아빠 건강 잘 챙기세요. 저 열심히 살게요’라고 했어요. 그랬을 때 차라리 광주에 내려와서 재순이를 데리고 갈 걸….” 당시 김무영은 회사에서 저녁 8시에 출근해 아침 8시에 퇴근하는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다. 

 

김재순의 아버지 김무영(가명)의 손. 아들과 마찬가지로 김무영은 2002년, 제재소에서 일하던 중 분쇄기에 걸린 나무를 빼내려다 왼쪽 손이 끼어 돌아가는 산재사고를 당해 손에 장애를 입게 됐다. 사진 이가연
 

- 장애 숨겨야 일할 수 있던 아버지와 아들, 대물림된 산재사고

 

아들의 죽음에 김무영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또한 산재노동자여서가 아닐까. 김무영은 2002년, 톱밥을 제조하는 제재소에서 일하던 중에 분쇄기에 걸린 나무를 빼내려다 왼쪽 손이 끼어 돌아가는 사고를 당했다. 4번의 수술 끝에 그는 지체장애 3급(장애등급제 폐지 전 기준) 판정을 받았다.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채 공장을 운영하던 사업주는 치료를 마친 그에게 산재보험금의 일부를 달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산업재해로 장애인이 된 뒤 김무영의 인생도 달라졌다. 사고 이후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이상하게도 장애를 밝히면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장애인의 취업을 돕는다는 장애인고용공단에도 문의전화를 했지만, 오히려 ‘장애인은 비장애인만큼의 급여를 받지 못하니 장애를 밝히지 말고 취직을 하는 게 더 이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 뒤로 그는 자신의 장애를 감추고 취직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재순은 장애를 밝히지 않고 조선우드에 취직했다. 

 

“저와 재순이가 연락이 닿지 않았을 당시, 누구 하나 재순이에게 장애인연금 같은 걸 신청하라고 조언해주지 않았어요. 재순이는 지적장애가 있다 보니 장애인고용공단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도 전혀 몰랐어요. 사실 주민센터나 복지계가 재순이를 찾아내서 신청하라고 알려줘야 옳은 복지정책이잖아요. 본인이 가서 신청하지 않는 이상 ‘나 몰라라’ 하는 거죠.” 

 

김재순이 일하다 목숨을 잃은 조선우드 공장. 사진 이가연
 

- ‘김무영의 싸움’… 힘없는 노동자가 이기는 것 보여주겠다

 

김무영은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러 사고가 났던 공장에 갔다가 처참한 업무환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공장에서는 파리가 끓고 폐기물 냄새가 심했다. 휴게공간도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아 아들에게 쉬는 시간이 있었다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곳에서 김무영은 ‘박 이사’라는 사람을 만났다. 힘들어하는 그에게 박 이사는 아들이 장애가 있는 것 같아 위험한 일은 안 시켰다며 평소 잘해줬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김 씨는 그가 아들의 장애를 알면서도 그런 위험한 일을 단독으로 시킨 사실에 분노했다. “자기네들이 잘해줬던 이야기만 하는 것에 화가 나요. 사실 재순이가 그만큼 열심히 일안하고 농땡이 부렸으면 그렇게 해줘요? 일말의 죄책감이나 유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고 유족 알기를 뭐로 아는 거죠.”

 

대책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의 재활용업체 수는 5,972개이며, 이 중 10인 미만의 사업장이 4,404개로 73.7%를 차지한다. 조선우드가 위치한 광주의 경우, 총 114개의 재활용업체 중 10인 미만 사업장이 87개(76.3%)로 전국 평균보다 높은 비중을 보인다. 영세한 10인 미만의 재활용업체일수록, 장비에 대한 시설 투자를 꺼리고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10인 미만 사업장인 조선우드도 마찬가지였다. 김재순이 죽기 전까지 올라가 일했던 수지 파쇄기도 중고제품이었으며, 파쇄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매번 폐기물이 걸릴 때마다 그가 직접 기계에 올라가 빼내야 했다.  

 

아들이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지 벌써 1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고용노동청과 검·경찰은 사고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사업주는 여전히 그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김무영은 매일같이 고용노동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순수성을 쉽게 의심받는 ‘유가족’으로서의 위치를 잘 알고 있어 앞으로의 나날이 두렵다. “가장 두려운 건… 보상 문제까지 마무리되면 ‘아들 목숨 갖고 산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세월호 때도 그렇고 그동안 봐온바 그랬으니까. 솔직히 저 가진 것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더 걱정돼요.” 

 

오랜 시간 분향소를 지키느라 등에는 바늘로 쑤시는 듯한 고통이 항상 올라온다. 그 고통을 파스 몇 장으로 누르며 김무영은 세상에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국회에 가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더 이상 산업현장에서 일하다가 죽어가는 젊은 노동자들이 없게끔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제정되었지만, 실제로는 김용균 고인의 이름만 빌린 허울 좋은 법이잖아요. 알맹이는 쏙 빼버리고 노동자나 그의 가족들이 바라는 내용은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죠. 제발 노동자와 그 가족이 원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꼭 법으로 제정되어서 산재사고를 일으킨 사업주는 영원히 재기할 수 없도록 엄하게 다루면 좋겠어요.” 

 

처음 김무영은 아들의 죽음에 분노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억울하게 죽어간 아들의 싸움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김무영 자신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산재노동자로서 죽어간 아들의 삶이 산재노동자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에 포개진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 ‘지는 싸움에서 도망치지 않고 이길 힘’을 얻었다.  

 

“많이 지치고 힘들어요. 그런데 어차피 이 일은 이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고,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거부하기는 싫어요. 성실하게 일하다가 안전장치 미설치로 인해 사망사고가 난 건데 어떤 부모가 분개하지 않겠어요. 저도 인제 악에 받쳐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힘없는 노동자도 이길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줄 겁니다.”

 

조선우드 공장 정문 앞에 김재순을 추모하는 꽃들이 시든 채 놓여있다. 사진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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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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