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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는 공공의료를 원한다
[이슈페이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등록일 [ 2020년06월26일 18시24분 ]

정부가 슬그머니 원격의료제도라는 카드를 꺼냈다. 전염병의 상황에서 병원 방문을 줄여, 병원이 전염의 통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되었던 전화 처방이나 대리 처방의 한시적 시행이 그 목표도, 내용도 다른 제도로 ‘합의 없이’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기기를 통해서 비대면 진료를 활성화한다는 말은 겉으로는 허울 좋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왜 내가 시민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건강권과 의료제공이 통신 회사들의 돈벌이 수단이 되어야 하는지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다. 몸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이골난 존재들이야말로 여성들일 것이다.

 

통신 회사들은 나의 의료-개인 정보를 철통같이 잘 지켜줄 것인가? 나의 산부인과 의료 정보가 유출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수많은 개인 정보 유출에 있어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있었던가? 임신중지를 했다는 걸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여성들은 폭력의 피해를 감내하고, 경찰에 고발당하고, 협박당해왔다. 임신 중지에 대한 사회적 낙인, 특정한 질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없애기 위한 투쟁은 계속해서 이어지겠지만, 개인의 의료 정보 유출은 한 개인의 사회적 삶에 엄청난 타격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러한 정보를 기업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9월 28일은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을 할 권리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이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여성들은 낙태 비범죄화 투쟁을 위해 20여 년 전부터 매년 9월 28일에 모여 투쟁해왔다. 이를 알리는 ‘28 SEPTEMBER’의 웹자보. http://www.september28.org/

 

‘분만취약지역’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말 그대로 그 지역에 분만을 담당할 산부인과가 부족하다는 것이며, 이는 해당 지역의 여성들의 재생산건강 역시 취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전히 많은 의료적 자원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많은 지역에선 의료 자원이 부족하다. 정부는 시민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계속해서 이러한 자원들을 만들어내고, 보급해낼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손쉽게 ‘비대면 진료 확대’라는 방식으로 면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누구의 건강에 기여할 것인가?

 

재생산건강은 ‘원격 의료’가 아니고 ‘대면 진료’가 오히려 더욱더 장려되어야 하는 영역이 아니던가?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산부인과 방문을 어려워한다. 산부인과 진료 자체에 대한 ‘개인의 거부감’을 탓할 생각은 말았으면 좋겠다. 왜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교육하는 성교육을 받은 사람이 있었던가?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돌보고자 하는 ‘몸 인식’을 갖지 못하게 하는 사회 속에서, ‘나의 몸을 위해’ 병원을 방문하고 검진받는 적극적 건강 증진 행위가 저절로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 산부인과에서 내진이 필요한지, 내진을 통해서 의사는 어떤 정보들을 얻어서 이것이 나의 건강에 어떻게 도움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의료진을 만난 경험도 적다. 더구나 ‘출산’이 아닌 이유로 산부인과를 드나든다고 수군거리는 사회적 낙인도 여전하다. 재생산건강의 증진을 위해서는 더 많이 병원을 가고, 검진을 받고, 조기에 질환을 예방할 기회를 확충해야 한다. 정기적인 팹스미어(pap smear) 검사로 자궁경부암을 얼마나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지, 생리통은 ‘여성이라면 겪을 수 있는 통증’이라는 사회문화적인 규범 속에서 검사도 한번 받지 않고 극심한 생리통을 얼마나 오래 견디고 있는지, 재생산건강에 관심을 가져본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임신중지는 반드시 공공의료가 필요하다. 임신중지를 공공의료로서 논의한다는 것은 임신 중지를 보험 적용, 즉 보편적 건강 서비스로서 급여화한다는 의미이다. 영국, 캐나다 등 공공의료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임신중지 역시 재생산건강의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로써 제공하고 있다.

 

낙태죄폐지 운동을 하다 보면 임신중지와 관련한 경험들, 사례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한국에서 임신중지는 불법이었으나 계속해서 이루어졌으며, 소위 ‘부르는 것이 값’인 형태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임신중지 관련 이슈가 화제가 될 때나 코로나19와 같이 의료 접근성이 열악해지는 상황이면 임신중지 비용 역시 불안한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기도 한다. 초기 임신중지에 약 백만 원에 이르거나, 이를 넘는 수술비를 전해 들을 때면 머릿속이 하얘질 때가 많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은 어떻게 이런 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체되는 시간 동안 발생하는 건강상의 위험은 또다시 여성의 몫이란 말인가? 온라인에 넘쳐나는 성형 광고들은 쌍꺼풀 수술도 46만 원, 39만 원이라고 알려주는데, 대체 임신중지는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비싼 비용을 받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인공임신중절 시술이 오랫동안 시행되는 동안 국가는 이를 의료법 제45조(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고지) 및 제45조의2(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현황조사 등)의 조항에 근거하여 얼마나 많은 경제적 부담을 여성이 경험하는지 조사한 바 있는가?

 

공공의료제도는 의료인 개인의 사익 추구가 아닌 건강 보험 재원을 바탕으로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적정한 의료 행위를 찾아 나가는 것을 통해 모두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공공의료제도 안에서 임신중지에는 근거기반 의학(EBM, Evidence-Based Medicine)에 따라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물적 임신중지(medical abortion)가 도입될 수밖에 없다. 형법이 여성을 범죄화하고, 수많은 사회적인 낙인들이 이들을 짓누르는 동안 여성들은 엄청난 비용을 병원에 지불하면서도 소비자로서의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임신중지를 하러 병원에 가서 유착 방지 주사니, 영양제니,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이게 의료인 개인의 영리를 위한 것인지 정말 내 몸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인지 고민할 시간도, 정보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엉겁결에 선택하기 일쑤였다. 이런 것이 정말 필요한 의료 행위인지, 정말 필요하다면 국가가 보험 적용을 해야 하는지, 이런 부분들은 의료 전문가들과 보건 정책 전문가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와 토론을 해서 정확한 정보를 여성에게 제공하고, 시민의 재생산건강을 도모해야 할 책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공공의료제도 속에서 가능해야 한다.

 

지난 4월 10일 국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년을 맞이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낙태죄 폐지 운동은 단순히 임신중지를 할 권리 하나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과 재생산에 대한 국가의 통제에 대한 투쟁임을 보여왔다. 아들을 낳지 못해서 시집살이를 했다는 엄마의 고백으로부터, 가난해서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말에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는 가족계획사업의 증언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복대로 임신한 배를 감고 교복을 입었다는 학교에 떠도는 소문에서, 이주여성이 산부인과를 찾자 본인 동의도 없이 임신 중지를 시행했다는 뉴스에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출산을 하거나 가족을 꾸릴 권리는 없다는 듯이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서 우리는 이 사회가 우리의 몸과 성을 대하는 촘촘한 억압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역사를 통해서 낙태죄는 단순히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것을 규율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개인의 성과 재생산을 통제하고, 규율하고자 하는 도구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성을 둘러싼 싸움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며, 국가가 우리의 성과 재생산을 통제해온 역사를 넘어 이를 권리로, 자긍심으로, 정의로서 전환하는 투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열망은 실질적인 보건의료 제도를 둘러싼 변화를 만들어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임신중지의 허용을 넘어 무상의 안전한 임신 중지로, 나아가 공공의료로서의 성과 재생산건강을 논의해야 한다. CT나 MRI를 몇 개 찍었냐는 자본의 기준으로 의료인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의료기관을 평가하는 기준에 ‘차별 실태 조사’를 넣어서 차별적인 언행과 행위를 하는 의료 기관들이 도태되고, 인권적이고 성평등한 관점으로 개인을 존엄하게 대우하는 의료인, 의료기관들이 선진적 모델이 될 수 있는 제도를 국가가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그럴 때 수많은 존재들이 병원에 가서 미리 ‘차별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며, 공공의료재원 확충을 통해 공공의료기관 및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의료 제공자들이 과중한 업무에 찌들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소수자를 위한 의료프로토콜을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공공의료를 고민하길 바란다.

 

캐나다에서 임신중지 약물이 도입된 지 1년 후에 산부인과 의사들이 주도적으로 보건정책을 바꾸었다는 사례를 접했다. 미프진(RU-486)이 캐나다에 처음 도입될 때 여러 제도적인 제한을 두었으나, 후에 의사들이 임신중지 약물을 사용해본 임상 경험들을 주도적으로 나누고, 충분한 안정성이 확보되었음을 확인하고, 약물적 임신중지에 대한 제도적 제한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약물 사용의 장벽을 낮춘 것이다. 의료인들이 임상의로서 적극적으로 경험을 나눌 수 있고, 토론하고, 이를 정책까지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캐나다의 공공의료 기반 속에서 이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 비마이너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이 글을 게재합니다. 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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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share.srhr@gmail.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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