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08월12일wed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조미경의 장애 그리고 페미니즘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몸에 대한 통제, 그 환상 넘어
[칼럼] 조미경의 장애 그리고 페미니즘
등록일 [ 2020년06월30일 12시59분 ]

내일 만날 수 있을까

 

“내일 만나요~!”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동료들과 나누는 일상적인 이 대화는 언제부터인가 그냥 인사가 아니라 ‘부디 아무 탈 없이 내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은 말이 되었다.


나는 작은 충격에도 뼈가 잘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장애를 가졌다. 모든 장애가 그렇듯 장애 유형은 같아도 장애 정도에 따라서 장애로 인한 경험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데, 나는 골형성부전증 중에서도 장애 정도가 심한 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리가 골절되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골절을 경험하였다. 말 그대로 뼈가 두 동강 나는 큰 골절은 성인이 되면서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오래 앉아있거나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갈비뼈나 휘어진 옆구리에 실금이 가는 작은 골절의 횟수는 오히려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온몸 곳곳에 골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서 점점 더 휘어지고 변형되어가는 몸은 앉아있기 어려울 정도의 통증을 수시로 유발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듣기 불편한 말 중 하나는 골절되었다고 할 때 “에구 어쩌다가… 조심하지”이다. 걱정되는 마음과 어떤 위로를 전할지 몰라서 건네는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골절의 원인이 나의 부주의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뿐더러 내 장애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골절로 인한 통증과 힘듦은 누구보다도 본인인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늘 긴장하고 조심한다. 그럼에도 자세를 바꾸다가, 기침을 하다가,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 없던 행동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골절로 이어지는 것을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골절이 두려워 아무런 움직임 없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 괜찮을까?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나는 골절이 나의 일상임을 받아들이고 내가 하고 싶은 활동들을 하면서 살고 싶다.

 

어둠 속에 초록, 주황의 빛들이 사선으로 퍼져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

 

언제 골절될지 모르는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나는 일반학교는 물론 장애인만 다닌다는 특수학교에서조차도 입학을 거부당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부터 시작하여 열세네 살까지 특수학교 여러 곳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듯 찾아다녔지만 매번 입학 불가 판정을 받았다. 찾아간 특수학교들은 ‘학교 안에서 갑자기 골절이 되었을 때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골절이 장애이기 때문에 절대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하며 입학시킬 순 없다’는 늘 똑같은 답변을 들었다. 당시에도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중증장애를 가진 몸은 당연히 제외되었고 어느 누구도 이를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예측 가능의 질서에 순응할 수 없는 몸은 쉽게 사회에 ‘없는 존재’가 되었고, 전혀 원하지 않았지만 기약 없이 외부와 단절되고 고립된 삶을 살아야 했다. 가고 싶던 학교도, 마음을 나눌 친구도 모두가 나와는 연관이 없는 것이 되었다. 너무도 억울했지만 사람들은 나에게 이 모든 것이 ‘잘못된 너의 몸’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잘못된 나의 몸을 바꾸기 위해 아주 튼튼한, 절대 부러지지 않는 강철의 통뼈를 가진 사이보그가 되는 꿈을 종종 꾸었다.   

 

‘건강한 몸’이 자원이 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는 사회에서 ‘아픈 몸’, ‘장애가 있는 몸’은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일상에서 밀려나기 쉽다. 그리고 이는 곧 일상을 함께했던 관계 또한 멀어지거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포함하여 예측할 수 없는 질병이나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단순히 통증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이 힘들게 일구어 놓은 일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장애 혹은 아픈 상태라도 사회와 관계들이 단절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혼자만의 의지로 가능하지 않다. 나는 다행히도 나의 장애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고마운 동료들이 있어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몸이 안정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운 좋은 개인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 보장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어떠한 장애나 질병, 아픔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인간의 몸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일 것이다.

 

이런 환상은 의학과 자본이 만나 실제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매일 엄청난 양의 의학 정보와 건강을 매개로 하는 수많은 상품들은 장애, 질병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예방과 치료가 필요하고, 건강하고 정상적인 몸은 관리하고 노력하면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몸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아픈 몸은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하였거나 자본을 가지지 못한 개인의 문제가 된다.


물론 매일 통증에 시달리는 나도 내가 좀 덜 아팠으면 좋겠고, 장애도 지금보다 더 심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좀 덜 아프기 위해 그리고 장애가 더 심해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은 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장애나 통증보다 ‘몸에 대해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예측 불가능한 나의 장애는 늘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장애가 없고 건강한 몸을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된 몸’을 가진 내가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미션이다.

 

예측불허, 스릴과 배움의 연속

 

만성질환을 가진 여성학자 수전 웬델은 몸을 통제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환상을 비판하며 장애가 있고 아픈 몸들의 경험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사회정의와 문화적 변화를 통해 상당한 양의 장애가 없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많은 고통과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중략) 만일 장애를 가치 있는 가능성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장애인이 비장애인은 가지지 못하고 접근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을 갖는다는 점이 명백해지고 이러한 지식에는 고통받는 몸으로 사는 방법에 관한 것이 있고,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실제적이고 중요한 지식이다. (중략) 그 지식은 우리 문화를 확장시키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 그린비, 2013, 96쪽)

 

누구인들 내일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몸에 대한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장애가 있든 없든, 아픈 몸이든 아프지 않은 몸이든, 있는 그대로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예측 불가능한 불안정한 몸들의 진정한 해방은 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불안정한 상태가 불안감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톱니바퀴 모양 속 동그라미 안에 구급차, 진단 차트, 심장, 치과, 병원 가방, 청진기, 약, 휠체어 탄 사람 등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있으며, 이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듯 그려져 있다. 사진 픽사베이

나의 몸은 앞으로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예측할 수 없기에 스릴 있고, 예상치 못한 배움의 연속일 것이다. 몸의 변화는 이전에 해왔던 활동들을 하나, 둘 놓아야 하는 순간을 직면하게 만들고 이는 우울로 이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놓아야 되는 것들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롭게 맞이하게 되는 몸의 감각과 변화된 생활들이 주는 지식과 지혜에 집중하고 이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난 원래 모험을 좋아한다. 세계여행이나 무중력 우주여행, 번지점프, 스쿠버다이빙, 행글라이더, 스피드와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놀이기구 등은 언제 골절될지 모르는 장애 때문에 로망(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이 되었지만, 대신 앞으로 예측불허 스릴과 모험 가득한 나의 몸을 탐험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물론 탐험은 늘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좌절과 우울, 두려움, 깨달음, 희열, 환희… 예측했던 또는 예측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수없이 줄타기할 것이고 혼란스러울 것이고 그래서 의미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며 다른 몸들의 탐험과 줄타기의 순간들이 궁금해진다.

 

* 이 글의 내용 중 일부는 『어쩌면 이상한 몸』(장애여성공감 지음, 오월의 봄, 2018)에 실린 「통증: 진화하는 장애,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조미경 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조미경의 장애 그리고 페미니즘


장애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장애여성운동 현장에 몸을 담고 있다. 중증의 골형성부전증으로 익숙하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통증과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일상을 좌충우돌 살아가는 중이다.

올려 0 내려 0
조미경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서로의 존재를 일깨우는 다른 몸들의 이야기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프린트하기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댓글, 욕설과 혐오를 담은 댓글, 광고 등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으니 댓글 작성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서로의 존재를 일깨우는 다른 몸들의 이야기 (2020-05-15 14:0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