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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연극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등록일 [ 2020년07월20일 21시00분 ]

커다란 빔프로젝터 스크린을 배경으로 낮게 올라온 검은색 단상 위를 비추는 조명에 누운 안희제. 엉덩이가 바닥에 닿지 않게 하려는 듯 양쪽 다리를 굽혀서 무릎을 올린 상태로, 인상을 쓰며 오른손으로 왼쪽 팔뚝을 잡고 있다. 사진 김덕중

 

현재 온라인 관람이 진행 중인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8/31)의 준비는 아픈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연습 과정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그것으로 세상에 무엇을 전달할지 고민했고, 서로의 삶에 들어가려 애쓰면서 다른 아픈 이의 삶을 조금씩 상상해 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6개의 삶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서 함께 이야기를 써나가는 공저자가 되었다. 공저자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해주었고, 받았을까. 우리가 함께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요가 매트

 

연극을 준비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질병의 환대를 경험했다. 나는 초반 연습에서 두 번이나 빠졌는데, 그러면서도 별로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첫 연습에 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당일에 메일을 드렸을 때, 수시로 상태가 변하는 아픈 몸을 이해해 주는 답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연습에 가서도 아픈 몸은 어색하거나 거슬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요가 매트에서 몸을 풀 때는 내 몸이 어디가 뭉쳤고 아픈지 관찰했다. 한 배우는 재활과 관리 과정에서 오랫동안 배운 운동으로 다른 이들의 몸풀기를 도와주었고, 근육이 뭉쳐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근육을 풀어주기도 했다.

 

몸풀기가 끝난 후에도 요가 매트 하나쯤은 바닥에 놓여 있어서, 누구든 원할 때 누워서 쉴 자리가 되었다. 넓은 마룻바닥 구석에 펼쳐진 요가 매트에서는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방석

 

연습 때는 자기 몸이 편한 대로 언제든 앉거나, 눕거나, 걷거나, 쉴 수 있었고, 심지어 잠시 잠들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자주 빠지고, 자주 아픈 사람이었다. 그래서 걸핏하면 요가 매트나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방석을 가져다주었다. 때로는 내 염증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때로는 누운 내 머리가 조금 더 편할 수 있도록.

 

그런 배려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 봤다. 누구도 나를 ‘젊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건강하다고 속단하지 않았고,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닌지 장난으로라도 묻지 않았다. 동료들은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다만 서로 말없이 방석을 주고받았고, 아픈 동료의 곁에서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연습이 끝나고 첫 리허설을 앞두고 있을 때, 내 염증은 여느 때와 같이 어느새 사라졌다. 생기는 시기와 이유도, 사라지는 시기와 이유도 모르는 염증. 하지만 염증이 없어도 나는 딱딱한 데보다는 푹신한 데 앉는 것이 낫다. 연출자는 모두에게 방석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은지 묻고, 보기에 어색하지 않도록 모든 의자에 방석을 놓았다. 앉은 채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자리에서, 연극 내내 방석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5초, 40%의 조명

 

배우들은 무대에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갑자기 증상이 나타날까 봐 걱정했다. 연극 직전까지 근육통이 생기거나 몸이 저린 사람도 있었고, 나는 두통과 복통이 자주 생겼다. 긴장은 몸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다. 서로 응원하고, 대화를 나누고, 웃으며 이야기해도 이런 무대에 서 본 적 없는 우리는 마음을 편히 먹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몸도 쉽게 편해지지 않았다.

 

연극 전날 처음으로 무대에서 리허설을 진행했고, 무대 조명도 처음으로 경험했다. 조명은 생각보다 뜨겁고 밝았다. 조명 때문에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조명이 동그랗게 비추는 곳에 발을 딛고 고개를 들었더니 객석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눈이 부셨다. 시야의 위쪽에 하얗게 반짝이는 안개가 낀 것 같았다.

 

이런 조명을 처음 겪기에 우리는 모두 눈이 부시다고 말했고, 한 배우는 조명을 줄일 수 없냐고 물었다. 그는 빛이 갑자기 강하게 들어오면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대를 준비하던 스태프들은 처음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방법을 찾았다. 조명을 천천히 넣고, 조명의 강도를 낮추었다. 조명이 40%의 밝기로, 5초 동안 서서히 켜졌다. 우린 무대에 오를 수 있었고, 조명 아래서 빛날 수 있었다.

 

연습실의 마룻바닥에 하늘색 요가 매트 2개와 보라색 요가 매트 3개가 놓여 있다. 왼쪽의 하늘색 요가 매트 위에 앉아서 양손으로 오른쪽 발목을 잡고 있는 안희제. 연습실의 붙박이장 옆으로는 에어컨과 선풍기, 스피커, 정육면체의 의자 4개가 놓여 있다. 제공 다른몸들

 

아파도 미안하지 않으려면

 

두 번째 날의 연극까지 끝난 후, 배우들과 연출자가 함께한 토크쇼에서 연출자는 이번 연극 이전에 자신도 연극배우를 건강한 모습으로만 상상했었다고 말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일 이어지는 연습에 성실하게 참여할 수 있는 건강한 몸. 그래서 (정작 두 번 빠진 나는 잘 몰랐지만) 결석에 태연하게 반응하는 데에도 큰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나부터 ‘아픔’을 별도로 다루어질 하나의 요소로 생각했을 뿐 연극의 인물이 언제나 자연스레 아플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인물의 기본값을 건강한 사람으로 설정해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극은 달랐다. 배우가 모두 아픈 사람들이기에, 아픈 몸이 기준이었다. 무대에서 갑자기 통증이 오면 어쩌나 걱정하는 배우들에게 연출자는 아프면 아픈 대로 자연스럽게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준이 바뀌면서, 조금 늦게 도착하거나 일찍 돌아가기도 하고, 결석도 하는 연습실이 생겼다. 그곳에서 우리는 언제든 쉴 수 있었고, 자신의 몸을 감추기보다 잘 드러내고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연극 때 배치된 문자 통역은 배우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때 사람들에게 대사를 전달하는 보조 수단이 되기도 했다. 조정된 조명도 여전히 무대를 빛내기 충분했고, 푹신한 방석이 깔린 의자는 1시간 넘게 앉아 있어도 편했다.

 

연습에 빠질 때도, 누워서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을 때도, 무대에서 아픈 연기를 하다가 정말 아파도 내가 당황하지 않거나 미안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래도 괜찮다고 해 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아픈 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아파도 움직일 수 있고 세상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해 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아픈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었기 때문이었고, 연극 속의 인물들도 아픈 인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픈 몸이 기준이 되어야만 아파도 미안하지 않을 수 있다. 요가 매트, 방석, 그리고 5초 동안 들어오는 40%의 조명이 있다면, 연극을 준비하면서도 아파도 미안하지 않을 수 있다. 함께 이야기하며 질병 서사의 공저자가 되는 일은 세상의 기준을 나의 몸, 우리의 몸으로 바꾸는 일이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이 연극을 준비하며 내가 경험한 건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 세상이 온 사방에서 생겨나고, 연결되고, 넓어지길 바란다. 더 많은 이들이 아파도 미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시민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 출연: 나드, 다리아, 목우, 안희제, 쟤, 홍수영
○ 연출: 허혜경
○ 기획: 조한진희

 

# 연극 공연 후 토크쇼
○ 토크쇼1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시민건강연구소)
최원영 (행동하는간호사회)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
○ 토크쇼2
6명의 배우들과 연출자
○ 주최/주관/협력: 다른몸들, 인권연극제, 장애인문화예술판

 

# 온라인관람 : 1만 원 (8월 31일까지 무제한 관람 가능)
https://www.socialfunch.org/dontbesorry

 

* 연극공연과 토크쇼 1, 2 영상 모두 문자통역과 수어통역이 제공됩니다.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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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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