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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맞을 준비’를 하는 게, 정말 가능해?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7월22일 20시14분 ]

-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혹

 

한 달 뒤에 꼭 오라는 의사의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한 달을 훌쩍 넘겼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혹이 사라져주면 좋겠지만 한 달 만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찜찜하다. 아무래도 조만간 검사받으러 가야겠다.

 

난소에 혹이 생겼다. 세 번째다. 두 번째 생긴 혹은 저절로 없어졌고, 처음 발견한 혹은 수술로 없앴다.

 

2013년 1월 몇 달간 배꼽 왼쪽 부분이 부풀어 오른 것을 방치하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갔다. 왼쪽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도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통증이나 아무 불편함이 없어서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과를 찾아 CT를 찍었는데, 막상 문제는 난소에 있었다. 산부인과로 옮겨 초음파를 받았는데, 난소가 너무 커져서 꼬일 수 있다며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다급한 말에 내 병이나 수술에 관해 알아볼 겨를 없이 바로 입원했다.

 

입원은 토요일, 수술은 월요일이었다. 하루의 여유가 있었지만, 일요일에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수술에 그저 당황했고, 걱정했고, 불안했고 그러다 슬퍼졌다. 친구에게 전화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수술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울기 시작하면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았다.

 

한 사람이 맞닿은 무릎을 두 손으로 감싸고 앉아 있는 모습 ⓒ 픽사베이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돌아온 뒤,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간호사가 가져다 놓은 가습기를 아빠가 도로 가져가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아빠는 어딘가에서 가습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목이 너무 말라 아빠를 말리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다시 잠에 빠졌다. 

 

의사는 낭종이 양쪽 난소에 모두 있어 없앴다고 했다. “좌측 난소는 3~40퍼센트 정도, 우측 난소는 6~70퍼센트는 정도 남기고 자름”이라고 의무기록에 나와 있다. 수술 전에는 혹이 왼쪽에만 있다고 했는데, 막상 수술에 들어가니 오른쪽 난소에도 혹이 있다는 말을 믿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어떻게 초음파에서 그 큰 혹을 못 볼 수 있지?’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따질 기력이 없었다.

 

수술을 받은 몸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원래도 좋지 않았던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고, 체질도 바뀌었다. 퇴원한 뒤 얼마 동안은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이 힘에 부쳤다. 좋아하던 카페라테를 마시면 심장이 벌렁거렸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원래 수술이 몸을 힘들게 하고 기력을 떨어뜨리는 일인지 모르겠으나, 다시는 받고 싶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면역력이 떨어진 것이다. 컨디션이 조금만 떨어져도 식도염, 질염, 방광염에 걸려서 고생하기 일쑤다.

 

몸이 불안하니, 마음도 그랬다. 진단받고 갑자기 입원과 수술을 겪게 되었던지라 마음을 돌아볼 여력이 없어서였을까. 집으로 돌아온 뒤에 내 감정은 병과 병으로 둘러싸인 것 같은 내 상황만을 향해 몰려갔다.

 

주먹만 한 혹을 두 개나 갖고 있었는데도 몰랐던 나에게 화가 났다. 예민한 성격 탓일까. 아니면 만병의 원인, 스트레스 때문이었나.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지긋지긋한 가족 관계, 가기 싫어서 아침마다 울음을 삼켜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녔던 회사, 몸을 돌보지 않은 생활습관이 문제였을까. 하지만 난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초음파에서는 보지 못했다며 사전에 말도 없이 맘대로 난소를 자른 의사에게도 화가 났다. 혹시 실수로 난소를 자르고 둘러댄 것은 아닐까. 수술한 배가 계속 아프고, 불안한 정서에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빠가 나를 대학병원에 데려갔다. 어렵게 예약을 잡은 것에 비해 진료는 싱거웠다. 수술 후에 배가 아플 수 있고, 큰 혹에 가려서 다른 쪽 혹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여전히 찜찜했다.    

 

참다못해 남자친구(지금의 남편) 앞에서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나 내 안의 불안과 화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진짜 가버리긴 한 걸까.    

 

올해 같은 곳에 세 번째로 낭종이 생기자 답답한 마음에 자꾸 이것저것 검색해본다. 밀가루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설이 있다. 유제품을 되도록 안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밀가루도 줄여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것도 가설일 뿐이다.

 

한 전문의가 인터뷰한 기사에는 배란 횟수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며 그 방법으로 출산과 모유 수유를 말한다. 난소에 혹 또는 암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임신해야 한다는 말인가. 출산할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그러나 배란을 자주 하는 게 문제라는 말에는 신경이 쓰인다. 낭종 제거 수술 뒤, 내 생리 일정은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23일 또는 이보다 더 빠른 주기로 생리가 돌아오는데, 지난해는 생리를 15번 했다. 얼마 남지도 않은 난소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호르몬이 문제라고 짐작할 뿐, 왜 이렇게 배란을 자주하고, 자꾸 혹을 만드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어떻게 하면 혹이 생기지 않는지 알 수 있다면 그대로 따를 텐데 뭘 해야 나아질지 알 수 없으니 불안과 걱정만 커진다. 옆에서 날 지켜보던 남편이 ‘불안은 낭종이 내게 내린 저주’라고 했다.
 

포털 검색창에 ‘난소낭종’을 넣었을 때 뜨는 자동 검색어를 캡처한 화면. 난소난종 수술시기, 난소난종의 증상, 난소낭종 복강경 수술, 난소난종에 좋은 음식 등 난소난종에 관한 각종 정보가 관련 검색어로 떠 있다.


- ‘질병 맞을 준비’를 하는 게, 가능해?

 

만약 또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페미니즘 저널 ‘일다’ 시민교실에서 진행한 “잘 아프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몇 가지 것들 : 질병과 함께 춤을”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질병과 건강에 관해 다른 시각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질병춤’ 모임에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질병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니 애초에 질병을 맞을 준비라는 게 가능할까. 난 여전히 이렇게 불안한데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내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아파도 돼. 혹이 생긴 건 오롯이 네 탓이 아니야. 병이 네 모든 것을 뒤덮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마. 나는 지금 질병과 나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과정에 있다. 그렇다고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적어도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무수한 사람들이 질병을 겪어왔는데도, 왜 질병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여전히 불안과 공포를 벗어나지 않는가.

 

“질병에 대한 인간의 막연한 두려움은 질병 세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상상해봄으로써 상쇄될 수 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조한진희, 동녘, 2019)

 

그 질병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관한 정보를 알면 그 병을 이해하는 것일까? 나는 ‘난소낭종’에 관해 자주 검색하지만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관한 정보를 얻어도 불안은 여전하다. 오히려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질병 세계는 단순히 이런 정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의 목소리로 채워져야 하며, 이런 목소리를 들어야 내 불안이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이번 낭종은 3.7센치다. 두 번째는 3센치에서 멈추다가 사라졌다. 더 커져서 또 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혹이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양쪽에 두고 오늘도 마음이 시소를 탄다. 나 스스로 저주를 풀어낼 수 있길.     

 

글쓴이 소개
은주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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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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