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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창의 냄새
[칼럼] 변재원의 뒤틀린 몸과 사회
등록일 [ 2020년07월27일 17시49분 ]

또 욕창이 생겼다. 나는 앞으로 두 달간 유혈사태를 마주해야만 한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늘 찝찝함과 불쾌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팬티에 끈적이는 고름과 피가 묻을 수도 있겠다.

 

내 엉덩이는 정상성의 미학을 상실한 지 오래다. 약한 피부 위로 드러난 몇 겹의 욕창 흔적들이 피부 곳곳에 너덜거리고 거뭇한 상처로 남아 있다. 새로 피어난 이번 욕창은 나의 약한 피부 어느 틈인가를 파고들어 오목한 구멍을 냈다. 아마 욕창 증세가 다소 회복되고 나서도 피부의 흔적은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욕창의 발병 기전은 단순하다. 욕창은 다른 질병에 비해 발병 원인에 이견이 없는 편이다. 욕창의 시작은 늘 특정 신체 부위가 지속적인 압박을 받는 것부터 비롯된다. 지속적인 피부 압박으로 혈액순환 장애가 발생하고, 잇따라 산소와 영양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피부 손상으로 이어진다. 피부가 억눌려 질식할 때 욕창이 생긴다.

 

욕창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피부가 충분히 호흡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압박을 견디지 않도록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피부가 한 곳에 눌리지만 않으면 대부분의 욕창은 예방할 수 있다. 사실, 스스로 욕창 발병 과정을 설명하면서도 ‘대체 왜 그거 하나 관리 못 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탈하다. 예방법이 너무도 간단해서 좀처럼 발병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 나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한평생 욕창과의 사투를 벌인다. 대체 왜.

 

검은 배경에 하얀색 동그라미 구멍이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생각건대, 첫 번째 원인은 감각 마비로 인한 통증 무감각으로부터 비롯한다. 척수 신경이 손상된 지체장애인 대부분은 운동 기능과 감각 신경이 마비된다. 그로 인해 누군가 허벅지를 꼬집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장애인이 마비된 신체 일부에 대해 아프거나 뻐근한 척 시늉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감각된 통증 때문이 아닌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왼발의 감각신경이 손상되었음에도, 뻐근하거나 아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아픈 척 시늉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짜 통증과 피로를 표현하는 ‘예외적 시늉’ 증세마저도, 다른 일에 집중하는 순간 몸 상태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마비된 내 다리가 딱딱한 의자에 짓눌리고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해 혈액순환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만다. 아픈 다리가 어떤 경우에도 아프지 않는 이 역설 때문에 더 아픈 몸이 되고 만다. 신체 위험성을 수신하는 통증 신호가 없으니 욕창이 피어나기 전 몸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번째 원인은 종잇장처럼 찢어질 수 있는 신체, 더 정확히는 앙상한 하체 근육에서 비롯된다. 나의 욕창은 늘 마비된 왼쪽 하체 엉덩이에서 발생한다. 하체 마비로 인해 다리와 엉덩이의 근육이 빠져버렸고 금세 앙상해졌다. 피부까지 종잇장처럼 얇아지고 약해졌다. 약한 다리, 근육, 피부를 안고 사는 나에게 욕창 발생은 필연적이다. 단지 내 정신이 ‘자주 일어서는 노력’을 할 것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욕창을 예방할 수 없다.

 

세 번째 원인은 균형을 잃어버린 몸에서 비롯된다. 힘을 잃은 엉덩이 쪽으로 비뚤게 기울어진 척추로 인해 가장 약한 다리가 가장 무거운 몸을 지탱하는 자세가 되었다. 가장 약한 곳이 가장 무거운 것을 감당하게 만든 기울어진 몸의 무게 중심이 욕창 발생을 촉진한다.

 

결국 아픔을 느낄 수 없는 다리, 근육 없이 앙상한 다리, 그 다리를 향해 휘어버린 척추로 인해 발생하는 욕창은 ‘관리의 부재’로 발생하는 우연적인 무신경함이 아니라, 내 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결과인 셈이다.

 

욕창을 마주하는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지점은 단지 욕창이 생겼다는 사실이 아니라, 욕창을 지닌 나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다. 중증장애인인 나에게만 새겨진 낙인이라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 내 또래의 20대 비장애인 친구 중 누구에게도 ‘욕창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욕창이 무엇인지 모르는 대부분의 친구는 내가 욕창이 생겼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안타까움과 탄식을 표현한다. 이내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조부모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또래 집단 속에서 나는 유일하게 ‘노인의 몸을 지닌 사람’으로 타자화된다. 욕창을 앓는 환자들은 질환의 문제를 넘어 ‘활력과 능력을 상실’한 정체성으로 타자화되어 사회적으로 배제된다. 대부분의 피부병 질환은 그 자체로 무능력한 몸을 의미하지 않으나, 욕창은 신체적 무능력함과 나약함이라는 낙인의 역할을 한다.

 

욕창 부위가 커지는 동안 내 신체를 바라보는 나의 정신은 끊임없이 쪼그라든다. 왠지 몸에서는 알 수 없는 악취가 나는 것만 같고, 누구도 주변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의 욕창을 바라보는 동안 스스로 고립되는 느낌을 받는다. 욕창을 들키고 싶지 않은 불안한 나의 마음이 내 몸을 고립시킨다. 욕창을 지닌 상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꿈꾸기도 어려워진다. 사랑하는 누군가 나의 하반신을 어루만지더라도 내가 욕창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까 깜짝 놀라 손길을 뿌리치게 된다. 욕창 발병 시기에는 연인과 대부분의 성적 관계를 거부하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은 대부분 당신 생에 단 한 번도 앓아본 적 없는 욕창을 나를 통해 처음 마주한다. 피부질환쯤이야 아무렇지 않다며 괜찮다는 의연한 격려와 다짐이 이내 흔들리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욕창 주변의 허약한 피하조직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면서 장애를 지닌 내 신체의 이질성을 마주한다. 이내 앙상하게 마비된 내 다리를 쳐다보며 신체적 취약성을 인식하게 되고, 이내 내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무능력함을 이해하게 된다. 나의 욕창을 마주하는 이들은 피하 조직의 구멍을 계기로 나의 장애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내 욕창을 마주하는 연인의 숨길 수 없는 안타까움과 당황스러운 눈빛을 볼 때면 뻥 뚫린 작은 구멍 하나가 내 모든 몸을 까발리는 느낌이다. 벌거벗겨진 느낌이다.

 

욕창의 존재는 늘 내가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마주하게 한다. 내 신체적 장애는 욕창의 계기가 되고, 사람들의 시선은 욕창의 사회적 의미가 되고, 감정적 두려움은 나의 욕창을 해석한다. 욕창을 달고 산다는 것의 의미는 나의 신체적/사회적/감정적 불완전성을 늘 마주한다는 것과 같다.

 

욕창 증세의 악화는 두렵지 않다. 그보다 욕창을 지닌 내가 타인에게 ‘냄새나는 존재’로 인식되거나 활력 없는 존재로 비추어질 것 같아 두렵다. 다시 욕창을 마주하는 지금, 욕창의 고통은 두렵지 않은데, 사랑하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을까 봐 그것이 두렵다.

 

변재원의 뒤틀린 몸과 사회

 

초보 활동가. 투쟁의 현장에서는 활동가들에게 먹물 같다고, 인터뷰 현장에서는 시민들에게 말이 험하다고 놀림당하기 일쑤. 뒤틀린 몸과 말을 끝까지 지키는 활동가가 되기를 소박한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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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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