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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똥, 눈물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등록일 [ 2020년08월04일 15시27분 ]

‘내 피, 똥, 눈물 / 내 마지막 똥을 다 / 가져가’

 

언제였나, 배를 붙들고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난데없이 어느 노래의 가사가 저렇게 변형되어 머릿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날따라 똥을 하도 많이 싸서 모든 게 똥으로 들렸나.

 

‘피, 땀, 눈물’이라는 노래가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땀’을 ‘똥’으로 바꾼 결과물은 내 일상의 어느 단면을 묘사하기에 너무도 적절했다. 항문이나 똥에 관한 이야기를 평소에 할 기회는 별로 없는데, 그러다 보니 화장실에서 겪는 고통을 나누기도 쉽지 않다.

 

사람들은 더럽거나 부끄럽다는 이유로 항문과 똥의 고통을 감추거나 유머로만 소비하는데, 이는 염증성 장 질환 환자들의 일상 중 꽤 큰 부분에 대한 공감을 막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항문 주위 농양’을 말하기 민망해서 ‘둔부에 염증이 생겼다’고 말하고 다녔던 나부터 내 항문과 똥을 이야기해 보자.

 

하얀색 변기 위에는 물내림 버튼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휴지걸이가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악!’

 

잠이 덜 깨서 눈을 아직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던 나는 난데없이 비명을 지른다. 나는 누워 있다가 일어날 때 상체를 일으키면서 엉덩이에 힘을 주어 바닥에 몸을 지지하는데, 이때 그만 항문 근처의 염증이 바닥에 꾹 눌려 버렸다. 피부 아래에 똬리를 튼 염증은 피부를 연약하게 만든다. 염증을 누르면 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단말마의 비명으로 시작한 아침, 꾸역꾸역 자리에서 일어나 배를 붙들고 화장실로 비틀비틀, 하지만 빠르게 걷는다. 정신없이 변기에 앉다가 또 한 번,

 

‘악!’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 조금은 예상했는지 아까보다는 빠르게 힘을 주어 소리가 터져 나오는 걸 막는다. 온몸의 근육이 수축한다. 염증이 꾹 눌리지 않도록 앉은 자세를 조심스레, 미세하게 조정한다. 자리가 잘 잡히면 비로소 긴장을 조금씩 푼다. 긴장이 풀리면서 항문이 벌어지면,

 

‘으!’

 

이건 예상하고 좀 더 참았다. 물론 예상했어도 고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항문 근처의 염증이 아니고 항문의 상처다. 내 항문에는 항상 상처가 있는데, 이는 크론병 환자 대부분의 경험이다. 항문을 오므리고는 똥을 쌀 방법이 없는데, 항문을 벌리면 상처도 벌어져서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경험한다.

 

크론병은 소화 기능을 떨어뜨려서, 복통이 있을 때 종종 화장실에 가야 한다. 그럴 때마다 항문의 상처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변기에 앉아서 상처가 한번 쭉 벌어지고, 그 상태에 조금 적응하고 나면, 드디어 똥을 쌀 수 있다.

 

‘악!’

 

하지만 방심은 금물. 똥은 상처를 긁으며 항문으로 나온다. 게다가 힘을 줘야 나온다. 힘을 주면 상처가 벌어지면서 아프고, 똥이 상처를 긁어서 더 아프다. 혼자 있는 게 확실할 때는 아픈 소리를 좀 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통증을 죽어라 참아야 한다. 집은 지은 지 오래되어 방음이 안 되므로, 아침에 잘못 비명을 질렀다가는 가족이 모두 잠에서 깰 것이다. 공중화장실에서는 누가 언제 화장실에 있을지 모르니 당연히 비명을 참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규칙은 나에게 아주 깊게 새겨져 있다. 그렇게 양팔로 배를 압박하고 눈과 입을 질끈 감은 채 통증을 참아내면, 통증의 시간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너무 따가워서 휴지를 대기도 힘든 항문과 눈에 맺힌 눈물이다. 반쯤 혼이 나가서 그렇게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휴지를 뜯는다. 조금 두껍게 접는다.

 

‘오늘도...’

 

피. 피로 된 점이 네 개쯤 둥그런 모양으로 찍혀 있다. 피가 속옷에 묻지 않도록 휴지를 다시 조금 뜯어서 피를 닦는다. 문지르면 아주 따갑기에, 휴지를 대고 꾹 누른다. 아까보다 옅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처에 계속 피가 맺혀 있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한 번씩 꾹 눌러서 지혈하길 반복하다 보면, 문득 생각이 든다. ‘내 항문에 이만큼의 휴지를 쓸 가치가 있을까?’

 

피가 아예 안 묻을 때까지 할 수는 없다. 다만 피가 아주 조금 묻어나오면, 그제야 비로소 조금 안도하며 벽을 오른손으로 짚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그렇게 아주 잠깐 찾아온 무방비 상태에서 염증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통증이 벌어져 있던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도록, 입을 닫을 새도 없이 눈만 질끈 감고 목구멍으로 다시 소리를 삼킨다.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린다. 숨을 한 번 크게 삼켰다가 뱉고 화장실을 나온다.

 

그렇게 다른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로 푹신한 의자에 몸을 전부 기대고 반쯤 눕는다. 10분쯤, 어쩌면 20분쯤 뒤에 나는 다시 일어나서 화장실로 간다. 그리고 이 전체 과정을 세 번쯤 더 반복한다.

 

그 와중에 몇 번은 운이 좋으면 갑자기 항문이 안 아프기도 한데, 여전히 피는 묻어나올 때가 있다. 다만, 이때는 핏자국이 좀 다르다. 점 몇 개가 찍히는 것이 아니고, 중간이 조금 흥건하다. 수술 후 남은 구멍에서 나왔거나, 변과 함께 흘러나온 피일 것이다. 장내 출혈일까. 그 통증에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 원래 안 아픈 것인지, 혈변을 본다고 복통이 심하지는 않다. 복통이 심할 때는 종종 혈변이 나오지만.

 

이게 크론병과 살아가는 내가 일주일에 적어도 3일의 아침마다 치러야 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이 의식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때로는 ‘모닝 똥’이 너무 쉽게 끝나면 (당연히 행복하지만) 허무하기까지 하다. 다만 내가 이 의식에서 제일 불만스러운 점은, 역시 예측 불가능성이다. 최소한 몸 상태나 식단 조절 수준에 대응해서 피가 나오거나 안 나오길 바라는데, 아주 드물게 푹 쉰 뒤 잠을 잘 자고 일어났더니 피가 흥건히 나오는 날도 많다. 반면 몸을 혹사하고도 그런 의식을 치르지 않는 날도 있다. 아픈데 피는 안 나오거나, 안 아픈데 피는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기준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매번 무방비로 당한다.

 

아, 내 피, 똥, 눈물.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를 피, 똥, 눈물. 그 얄팍한 핏자국을 선사하는 작은 상처로 눈에 고이는 눈물을 인식할 때면 나 자신이 어딘가 모르게 아주 초라하게 느껴진다. 피가 쏟아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로 눈물씩이나 보이다니. 감춰진 일상에서 나는 그렇게 똥을 싸고, 피와 눈물을 흘리고, 약해지고, 다소 안쓰러워진다. 이렇게 산 지 6년째, 건강한 사람들의 똥은 정말 편안할지 궁금하다. 내가 건강했던 시절의 감각은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 흩어져 사라졌다.

 

항문과 똥은 생각보다 아주 다양하다. 그러니 누군가 화장실 때문에 약속에 늦는다면, 그를 놀리거나 추궁하기보다는 일단 기다려 달라. 그의 피, 똥, 눈물을 다 가져가 줄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질병과 통증을 새로운 시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책 『난치의 상상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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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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