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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더 많은 ‘질병 서사’가 필요한 이유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8월06일 14시52분 ]

서로의 질병 경험을 나누며 받은 공감과 위로는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사진 제공 박현진

 

나는 한때 스스로 ‘모임중독러’라고 칭하고 다녔다. 마음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모임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풀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스스럼없이 인사하며 친해질 수 있었고 모임 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물론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갈 때는 허전함이 몰려왔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모임들에 나갔다. 그때도 수면장애가 있었고 체력도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하루 8시간 출퇴근 노동이 아니고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자궁근종을 줄이기 위해 몸 안에 호르몬 기구를 넣고 나서 상황이 달라졌다. 염증이 심해지면서 밤에 거의 한 시간에 한 번꼴로 깼다. 극심한 수면장애와 통증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약속을 잡아도 당일날 컨디션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2년을 방에 고립된 채로 누워서 보냈다. 방에 누워서 지낸 날들은 고독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독을 느낄 새도 없이 통증과 싸우거나 아니면 통증을 그냥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다

 

그러다가 2015년 ‘일다’에서 질병워크숍을 진행한 조한진희님께서 질병워크숍 참여자들과 후속모임을 진행한다고 했다. 서로의 질병 경험이 중심이 되는 모임이라며 나에게도 참석 의사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2년 동안 사람을 거의 못 만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아픈 몸으로 꾸준히 모임에 참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립된 채 더 이상 살아갈 수도 없어서 참여하겠다고 했다.

 

첫 모임에 나갔을 때 약간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서로의 질병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바로 경청하게 되고 공감하게 됐다. 어떤 경험이든 직접 그 경험을 한 사람만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질병은 단순히 자신의 몸이 아픈 것만이 아닌 자신을 둘러싼 세계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즉, 타인과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 또한 완전히 달라진다. 타인과 맺는 관계가 축소될 뿐만 아니라 내 자신도 스스로 미워하게 된다. 그 와중에서 상처를 많이 받게 되는데 그 내면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가족들은 이미 2년 동안 누워있었던 내게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친구들에게는 내가 아픈 얘기만 하는 지겨운 사람이 될까 봐 거의 내 이야기를 못하고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지냈다. 자신을 미워하고 자책하고 자기돌봄을 포기하게 되는 그 모든 과정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어그러지며 홀로 고립돼 왔던 시간들. 그 와중에 분노하게 되는 ‘3분 의료 진료’의 현실. 야근이 당연시되며 주 52시간도 적다고 아우성쳐대는 한국에서 노동할 수 없는 몸으로 겪는 경제 사정. 아픈 몸으로 혼자 독립해 살아가는 과정 등등. 이런 경험들을 나누다 보니 단순히 신세 한탄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구조의 문제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상대방의 몸을 그려주고 있다. 사진 혜영

 

다른 사람의 질병 경험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고 연대의 힘을 기르다

 

경험을 나누다 보니 자기 탓을 하는 습관을 바꾸게 되었다. ‘내가 왜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었을까’, ‘왜 내가 운동을 소홀히 했을까’, ‘왜 규칙적으로 밤에 안 자고 몸을 방치했을까’하는 자책은 사실 사회구조가 내게 강요한 자책임을 알게 됐다.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장보고 요리까지 해 먹는 슬로우푸드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 자신의 몸을 상세하게 오래도록 상담하고 의견을 나눌 수 없는 의료 현실 등을 알게 되었다. 그 대화를 바탕으로 자신의 질병 경험을 언어화하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각자가 앓는 질병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이를테면 류머티즘 관절염이란 질병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질병을 가진 사람이 어떤 세계 속에 살고 있는지는 몰랐다. 변기뚜껑을 내리면 다시 올릴 수 없어 항상 변기뚜껑을 올려놔야하고 통증 때문에 발을 오므려 걸어 다녀야 하는 현실. 류머티즘 음성인자 판정을 받지 못하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현실 등을 알게 됐다. 근위축증의 경우는 엑스레이를 찍어도 뼈가 겹쳐져 있어 장기가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약 처방을 정확하게 받을 수 없고 변형된 몸에 최대한 통증이 가지 않게 옷도 골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조현병의 경우는 의사들이 정신과 약 처방을 많이 하다 보니 항상 멍하고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그래서 더욱 사람들에게 낙인찍히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서로의 얘기들을 충분히 경청하고 연극을 통해 자신의 질병 서사를 살펴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연극워크숍 때는 서로가 서로의 서사를 더 잘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의 내면의 소리를 연극 진행하는 강사보다 더 잘 알고 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주며 서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종이에 누워 자신의 몸 형체를 그린 후 각자의 몸에 해주고 싶은 말을 포스트잇으로 덧붙였는데 각각의 몸 부위에 위로의 말을 붙여주니 몸의 그 부위가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각자의 질병 서사를 언어화하여 글을 쓸 때도 이미 구성원 각각의 질병 서사와 그에 따른 세계의 변화, 고충을 알고 있으니 본인 자신보다 더 세밀하게 글을 합평해줄 수 있었다. 그래서 합평을 하고 수정을 할수록 구성원들 덕분에 더 자신의 얘기를 끄집어낼 수 있었고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서로에게 받은 공감과 위로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는 방향을 바꿔주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내 아픈 몸을 창피해하지 않고 밝힐 수 있게 해주었고 나의 가난과 질병을 무조건 내 탓으로만 돌리며 자책하는 대신, 이 사회에 더 많은 질병인들의 서사를 소리높여 얘기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연대의 중요성과 의미는 이미 많이 들었고 알고 있었지만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직접 몸으로 체화한 이 연대는 나에게 목소리를 돌려주었다. ‘아프다’라고 내 몸의 상태를 밝히는 목소리를. 나는 이 힘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얻었으면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질병 경험을 얘기했으면 한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 “나 혼자 잘 산다고 행복하지 않잖아요. 옆에 있는 사람도 잘살아야 나도 행복하지” 아픈 사람들이 숨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다 같이 해낼 때 좀더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몸에 해주고 싶은 말을 적고 있다. 사진 혜영

 

글쓴이 소개

 

박현진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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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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