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09월21일mon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기고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익숙하지 않은 질문들로 연대하기
[이슈페이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등록일 [ 2020년08월10일 19시49분 ]

하얀 모자를 쓰고 머리가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한 사람이 하얀색 종이에 “Black lives matter”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흑인에 대한 잔혹한 경찰 폭력은 조지 플로이드를 사망하게 했다.1)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경찰 폭력과 사회 부정의에 투쟁하는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아래 BLM)’라는 대중 운동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적인 공분 속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여러 연대의 움직임이 일었으며, 인종주의와 그를 기반으로 한 구조적인 사회 부정의를 성찰해 볼 수 있는 논의의 장이 활성화되었다.

 

한국은 단일민족주의 신화를 신봉하는 국가로서 “영토적 귀속성, 순혈주의, 단일 언어주의”를 기반으로 한국인을 정의하며, 동시에 이는 빠른 경제 발전과 사회적 변화를 이끈 통합된 국민 정체성을 설명한다.2) 한국 사회에서 “유색인종 한국인이 다른 유색인종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양상”3)으로 나타나는 인종 차별은 많은 사회구성원이 인종차별이야말로 인류가 절대 해서 안 되는 행위라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규범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4) 한국 사회에서 인종의 문제는 ‘선주민과 이주민’이 아닌 ‘한국인과 이주민’의 구도로 상정되며, 이주민은 이질성 그 자체를 상징한다. 여전히 이주민을 이질적 대상으로 상정한 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동화의 대상인가, 아닌가’, ‘필요한가, 아닌가’라는 질문들이 계속된다.  

 

한국 사회의 인종에 대한 논의의 빈곤함을 되짚는 것은, 인종 문제나 인종을 기반으로 한 사회 부정의 문제에 대한 더 큰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다인종·다민족(multiracial/multi-ethnicity) 사회와 그 사회가 가지는 원칙과 제도가 경험되지 않았다는 바꿀 수 없는 전제 안에서 우리가 BLM 운동이 제기하는 어떤 지점들을 어떻게 풍부한 사회적 논의로 바꾸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요청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어떤 틀 속에서 ‘익숙하게’ 수용하는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질문은 무엇인지, 인식론적 한계를 살피고, 단순 병렬시킬 수 없는 각기 다른 사회의 구조를 섬세하게 바라봄으로써 연대의 기반을 다지고자 함이다.

 

- BLM 운동을 익숙한 방식으로 읽을 때 삭제되는 맥락들

 

BLM 운동에서 야기되는 ‘시위의 방식’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기시감이 있다. BLM 운동이 열어준 논의의 장에서 어떤 이들은 시위와 폭동을 구분 짓고, 다른 이들의 사유재산권을 대변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한국의 ‘촛불 집회’ 모습이 비폭력/평화 시위의 전형으로 미국인들에게 예시화되지 않도록, ‘촛불 집회를 경험한 국가의 시민’의 위치에 자신을 기입하고, 촛불시위 당시 한국의 집회 방식에 대한 맥락을 증언하기도 한다. 사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시위의 방식에 대한 논의보다, ‘성공한 사회적 변화를 빠르게 이끌어낸 한국인’의 위치에 개인을 동일시하고, 발화하는 행위가 더욱더 기시감이 있기도 하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의 이슈에 대해서 대표성을 가지고 발화하는 행위에 큰 장벽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축적된 사회적 경험을 느낄 수 있다. 다인종·다민족 사회에서 살아갈 때 끊임없이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과정이 한국인이 한국을 말할 때는 요구되지 않는다.

 

피/가해의 양분된 구도에 행위자의 이름을 바꾸어 넣는 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가시화하는가. 어떤 이들은 자신이 다인종 사회에서 한국인, 아시아계 인종으로 경험한 인종 차별을 흑인이 경험하는 소수자성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또 다른 이들은 한국인은 피해자가 아니며, 오히려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 내에서 얼마나 흑인을 차별하는지, 그 가해자성을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1992년 발생한 LA 폭동(The Los Angeles Riots)5)을 연구한 존 리(John Lie)와 낸시 에이벨만(Nancy Abelmann)은 해당 사태에 대한 직접적 요인은 지역 경찰들의 인종 차별적인 폭력에 대한 중첩적 경험이지만, 이를 코리안 아메리칸과 흑인 커뮤니티의 갈등, 즉 소수인종집단 간의 갈등과 충돌로서 재현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인종 구조와 합법화된 차별과 폭력, 이를 기반으로 구축된 사회와 경제 구조에 대한 논의를 비가시화하는 경로임을 지적한다.

 

종이상자를 오려낸 듯한 갈색 골판지 종이에 주먹을 꽉 쥔 그림과 그 위에 BLM(Black lives matter)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 BLM 운동이 제기하는 익숙하지 않은 질문들

 

상이한 사회구조적인 요소들을 병렬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경험되지 않음’의 전제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들과 우리는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감옥 폐지론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을 수용할수록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내는 교정-산업 속에서 급증하는 수감자의 숫자와 수감자의 대부분이 유색인종, 흑인이라는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은 감옥산업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의 폐지를 요구하는 운동과 이어졌다. BLM 운동에서 ‘경찰 예산을 철회하라(defund the police)’는 슬로건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논의될 수 있는지 더 큰 고민이 필요하다. 수감 시스템과 경찰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 및 개혁의 요구는 한국 사회의 여러 지점에서 사법 권력의 강화를 계속해서 요청하는 운동적 요구와는 그저 배치될 뿐일까?

 

엄벌주의와 경찰 개입을 강화하는 요청은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성차별적 구조들과 젠더 폭력을 다루어내는 것에 어떤 효용과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지 질문해 볼 수 있다. 추지현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엄벌주의는 성폭력을 중심으로 대두되었으며, 국회 역시도 국민의 ‘법 감정’ 반영을 자원으로 엄벌주의 입법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성범죄에 대한 엄벌주의적 경향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나 피해자의 실질적 권리 확장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입법 과정, 법 해석, 처벌 부과의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왜곡된 통념과 ‘전형적’인 피해자인지의 여부에 기반하여 보호가치가 있는 피해자와 엄벌의 대상을 선별해왔음을 논증한다.6)

 

BLM 운동은 미국 사회 전반을 지탱하는 구조적인 인종주의를 철폐하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재생산 권리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며, 피임약과 임신중지 등에 있어서 여성의 ‘선택권’ 수사에 보이지 않게 내재해 있는 인종적 함의를 성찰하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최초로 피임약과 출산조절 대중화 운동을 이끈 백인 페미니스트 마가렛 생어는 사실상 플랜드페어런트후드(가족계획연맹)를 상징하는 존재인데, 그 이름이 뉴욕 지부의 클리닉에서 퇴출되었다.7) ‘열등한 인종의 출산을 제한하겠다’는 인종주의적인 논리 속에서 이루어진 이민법 반대, 장애인에 대한 불임 시술 및 ‘열등한 존재’들의 시설화를 찬성해온 생어의 행보에 대한 청산인 것이다.

 

BLM 운동은 ‘내 몸은 나의 선택(My body, My choice)’이라는 슬로건, 프라이버시 권리를 기반으로 형성된 미국의 재생산권리 담론에 대해 인종, 빈곤, 우생학의 문제를 다시금 환기하였다. 이는 낙태죄 폐지 이후 실질적으로 개인이 임신 중지를 할 수 있는, 또는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법적·정책적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하는 지점이 아닐까? 선택할 권리(Right to choose)의 확보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은 누군가에게는 자유와 권리를 의미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비-선택의 선택지들 속에서, ‘선택할 수 없음’을 가시화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한국 사회가 단일민족적 구성, 동질화된 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 속 일국일민주의(one nation, one blood)라는 정치적 레토릭 안에서 수많은 ‘혼혈’ 아동을 국가사업으로 해외 입양을 통해 이동시킨 결과물이며,8) 국내에서 노동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주 노동자의 시민권 진입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제도에 따른 결과이고, 연 0.9%의 난민 인정률9), 결혼 이주 여성들까지도 내국인 남성 파트너로부터 이혼하거나, 분리될 경우 안정적인 신분을 확보하고 살아갈 경로를 만들어내지 않는 정책적 기만의 결과이다. 한국 사회의 인종 문제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지점까지도 더욱 인종주의적으로 구성된 구조적 기반 안에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BLM 운동이 제기하는 익숙하지 않은 질문들은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를 가시화할 뿐만 아니라,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사회 부정의를 깊게 성찰하게 한다. 익숙하지 않음을 풍부한 사회적 논의로 확장하려는 노력은 BLM 운동이 제기하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더 큰 연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                      *

 

1. 2020년 5월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조이 플로이드는 20불짜리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인상착의가 동일하다고 판단되어 체포되었다. 경찰관 데릭 쇼빅은 체포 과정에서 이미 수갑을 차고 있었고, 다른 경찰들에 의해 팔과 다리가 제압되어 있던 조이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7분간 압박하였고, 조지 플로이드가 의식을 잃은 이후에도 4분간 이를 지속했다.
2. 김현미, “인종주의 확산과 ‘국가없음’”, 『UN인종차별특별보고관 방한 대응시민사회단체 공동사무국』, 2014 한국사회 인종차별실태 보고대회」, 2014.8.12. 6.
3. 김현미, 같은 글.
4. 김현미는 인종주의에 따른 전쟁, 대량 학살, 혁명 등을 축적된 역사로 경험한 서구 사회에서 외형적 인종이라는 지표로 개인이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장 야만적인 폭력’으로 여기고, 인종으로 구분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믿음이 강력하지만, 오히려 여전히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를 말하는 것이 축적된 집단적 상흔을 되살리는 행위로서 장벽을 가지게 되는 지점을 되짚는다.
5. 김현희(2016)는 “1990년대 LA 다문화 사회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는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Rodeny King)의 구타와 살인에 가담한 백인경관들이 역시 백인들로 이루어진 배심원 재판에서 무죄로 방면되자 LA 지역 유색인종들의 경제적 소외와 그때까지 쌓여 있던 인종갈등, 특히 지역 경찰들의 인종차별적 폭력에 대한 불만이 중첩되어 폭발한 사건이다(Johnson, Jr. and Farrell, Jr. 1993; Abelmann and Lie 1995)”와 같이 요약한다. 김현희(2016). “1992년 LA사태의 기억과 코리안 아메리칸의 인종 정체성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비교문화연구』, 22(2), 225-258
6. 추지현(2017), 사법민주화와 엄벌주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 논문.
7. Nikita Stewart, ‘Planned Parenthood in N.Y. Disavows Margaret Sanger Over Eugenics’, <The New York Times>, July 21, 2020 https://www.nytimes.com/2020/07/21/nyregion/planned-parenthood-margaret-sanger-eugenics.html
8. 전홍기혜 외(2019), 『아이들 파는 나라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관한 보고서』, 오월의 봄.
9. 김종철 기자, ‘난민 인정은 하늘의 별 따기… 지난 해 신청자의 0.9%만 허용’, <한겨레>, 2019.06.15. http://m.hani.co.kr/arti/society/rights/898027.html


* 비마이너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이 글을 게재합니다. 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올려 0 내려 0
이유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share.srhr@gmail.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투쟁하는 비/인간의 퀴어한 미래와 재생산 정의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프린트하기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댓글, 욕설과 혐오를 담은 댓글, 광고 등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으니 댓글 작성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투쟁하는 비/인간의 퀴어한 미래와 재생산 정의 (2020-08-20 16:32:01)
콘돔이 찢어졌을 때, 안전하게 진찰 받을 수 있다면? (2020-07-27 19:3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