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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나의 일상도 일상이라 말하기
[비평]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등록일 [ 2020년08월11일 19시35분 ]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한 장면. 무대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다리는 어깨너비보다 넓게 벌려 서 있으며, 두 팔은 하늘을 향해 뻗은 채 두 손을 맞잡고 있다. 무대 왼편에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사진 김덕중

 

'잘 아플 권리'와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조한진희는 질병에 걸리는 경험을 ‘핏물 한 컵이 부어지면서 그 물의 밀도가 변하고 그에 따라 생태계가 바뀌는 일’1)이라고 표현했다. 질병은 한 사람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여 그의 생활 전반에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프기 시작하면 사람은 자신이 몸을 통제하기보다 오히려 존재 전체가 몸에 끌려가는 경험을 한다. 아픈 몸을 연구하는 전희경의 말처럼, 질병을 겪으면서 ‘소유물이자 수단이었던 몸은 낯선 3인칭이 된다.’ 하지만 아픈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다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몸과의 긴밀한 ‘밀당’ 속에 새로운 일상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다.2)


아픈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늘 치밀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 해내야 하는 일은 있으니 적당한 치료나 영양제 복용으로 몸을 살살 얼러본다. 여기서 핵심은 수학적이고 물리적인 계산이 아니다. 오히려 몸과의 ‘케미’를 섬세하게 고려하며 몸과의 대화를 통해 일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어렵게 만들어낸 그들의 일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일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회는 그것을 일시적이거나 ‘비정상적인’ 비일상으로 위치 짓고,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의 일상이 자신의 일상을 침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의 강박적인 바람에도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글쓰기와 그림 등을 통해 계속 새로운 생활을 이 세상에 삽입시켜왔다. 그리고 올해 여름, 그들은 드디어 직접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출연자 여섯 명(수영, 목우, 다리아, 쟤, 희제, 나드)은 아픈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일상과 영위해야 할 일상을 ‘미안해하지 않고’ 고스란히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연극을 보러 가던 날 나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관절염 때문에 가끔 골반에 열이 나곤 하는데, 이 정도면 연극 내내 서 있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 바로 내가 몸에 요구해야 하는 순간이다. “나 두 시간만 숨 좀 쉬자.” 그날은 다행히 몸도 연극에 흠뻑 빠져들어 잠잠했다.


연극에서 ‘나드’는 의사의 외출 자제 명령에도 “더이상 이렇게 살 순 없다”며 국카스텐의 콘서트를 즐기고 무사 귀가한다. 나드가 콘서트에 가는 순간 나는 그녀가 걱정되지 않았다. 첫날 토크쇼에서 간호사 최원영이 말했듯, ‘의학적이지 않은 것들이 삶의 정수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나의 골반도 콘서트나 연극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이 문장을 쓰고 있는데, 방금 골반이 나한테 물었다. “죽을래?”


연극의 첫 무대를 장식해준 ‘수영’의 몸도 수영에게 “죽을래?”라고 물었을지도 모른다. 일상을 살다가도 ‘삽시간에 다른 몸이 되는’ 수영은 자신이 한 시간이 넘는 연극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근육병이 있는 수영을 연극 무대로 초청해준 건 다름 아닌 함께 무대를 만드는, 수영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었다. 연출가는 연극판에서는 흔한 장시간 노동이나 몰아치기 연습을 포기했고, 동료 배우들은 서로의 몸에 귀를 기울였다.


서로에게 물어야 할 것들이 많은 더딘 연습 과정이었다. 사실 수영이 일상적으로 누리고 싶었던 관계는 이런 관계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친구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이 있는 일상을 원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부담스럽다’거나 ‘불편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하지만 수영이 원하는 친구는 완벽하게 그녀를 이해해주는 친구가 아니다. 때론 그녀의 아픔을 불편해하더라도, 그녀에게 다시 돌아와 차 한 잔씩 할 수 있는 관계면 족하다. 오늘도 그녀는 서툴고 불편하게 자신의 새로운 컨디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수영은 서로에게 서툴더라도 만남을 포기하지 않는 지속적인 관계가 필요할 뿐이다.


‘그저 평범한 삶’. 소박해 보이지만 장애인이나 아픈 사람에게는 이보다 원대한 꿈도 없다. 하지만 계속 몸과의 협상에 부대끼다 보면, 꿈이란 녀석은 어느새 단단한 명사형의 모습을 버리고 젤리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 동사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덜 아픈 삶, 덜 차별 받는 삶, 아파도 하고 싶은 일에 참여하는 삶……. 무엇보다 아픔과 차별이 있으나 나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꿈은 끊임없이 그 형태를 바꾸어 간다.


그렇기에 아픈 사람에게는 자신의 몸과 상황에 따라 스스로 한 결정을 존중받을 권리가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다리아’의 난소에 혹이 생기자 가족들은 다리아가 아니라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그녀의 난소를 걱정했다. 가족에게 ‘출산 없는 결혼생활’을 선택한 다리아의 선택은 재고되어야 할 젊은 세대의 철없는 이기심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다리아는 피해가지 않고, 자신의 삶과 일상을 자신에게 맞게 구성할 권리를 당당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한 장면. 한 사람이 머리에 두건을 두른 채 두 손으로 머리 뒤쪽을 만지고 있다. 사진 김덕중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또 하나의 권리는 바로 노동권이다. 유방암 4기 판정을 받은 ‘쟤’가 취업을 준비하자, 사람들은 “아프면 집에서 치료받고 쉬지 뭐하러 일을 하”냐고 신경질적으로 묻는다. 하지만 쟤는 ‘당장 암으로 죽는다는 두려움보다 스스로 하루하루 먹고살 수 없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되 자신의 몸에 적합한 근무환경을 찾으려는 자연스러운 바람은, 그녀가 아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희귀하고 원대한 꿈이 되어버린다. 쟤의 무대는 암세포가 자신의 일상을 무의 상태로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끝으로 나드는 통증으로 인해 불안의 낮, 고통과 부르짖음의 밤을 보낸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가끔 가고 싶은 공연에 가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살기로 했다. 그러자 그녀가 보낸 고통의 시간은 그녀만의 작품으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공연 마지막을 장식한 나드의 화려한 춤은 아픈 사람들이 그간 한 땀 한 땀 수놓고 여러 겹으로 덧댄 시간들의 현시 같다. 의사들의 말을 따라 열심히 몸을 관리하고, 삶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오가는 시간. 통증을 참아가면서도 사람들 속에 섞이고 요구되는 역할을 차질없이 해내려 발버둥 쳤던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들로 인해 저렇게 아름다운 하나의 ‘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네볼 수 있는 ‘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여섯 명의 배우들은 자기 몸의 독특함과 그 몸과 동거하는 삶을 무대 한가득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들은 몸의 독특함이 친구와 사귀고 노동하고 아름다움을 즐길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사실 그들의 몸은 연극 연습 시간을 다 견뎌낼 수 없거나, 무대의 밝은 조명에 현기증을 느끼는 몸들이다. 하지만 구성원 모두는 몸의 다양성을 최대한 고려해보기로 하며 연습에 임했고, 결과적으로 여섯 명 모두의 이야기가 무대에 펼쳐질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오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이 연극은 골반에 열이 올라 선 채로 일하는 나의 새로운 업무 스타일을 지지해주는 하나의 손짓이다. 오늘 우리가 보내는 손짓이 더 다양한 스타일의 몸을 이 사회로 불러낼 수 있기를, 그래서 아프고 다른 몸들이 일군 그들의 시간을 여럿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예매 바로가기 https://www.socialfunch.org/dontbesorry

 

*                  *                  *          

 

1)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동녘, 2019, 30~31쪽.
2) 전희경, 「젊고 아픈 사람들의 시간」, 『세벽 세 시의 몸들에게: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 봄날의책, 2020, 193쪽, 200쪽.

 

* 참고: 문영민, 「너는 내가 아닌데, 나의 아픔을 어떻게 전달할까」, 연극人n

 

필자 소개

 

U(유) _ 20대까지 경증 장애인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으로 살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찾아온 몸의 변화를 계기로 장애와 질병의 세계에 입문한 뇌병변 장애인. 그 이후 아픈 몸과 다른 몸의 이야기들을 나름의 문체로 풀어보고자 바둥거리고 있는 인문학도. ‘질병과 함께 춤을’ 써클에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비치는 깍두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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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유)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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