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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의 탈시설, 4년의 자립생활을 기억하며
20대 청년이 60대 노인이 되어야 시설 문을 나섰다
자유를 꿈꿨던 고 최현창 님을 추모하며
등록일 [ 2020년08월14일 15시51분 ]

* 이 글은 고인의 장례 과정에서 여러 활동가들이 쓴 추모글을 노진영 활동가가 정리하였습니다.

 

고 최현창 님의 삶

 

- 1956년 서울동대문구 출생 (추정)
- 1981년 대구시립희망원 입소
- 1986년 청암재단 청구재활원 전원입소
- 2017년 다릿돌자립생활센터 자립주택 입주(탈시설)
- 2017년 질라라비장애인야간학교 입학
- 2019년 탈시설장애인자조모임 <피플 피플> 활동
- 2019년 7월 (장애등급제 폐지 직후) 활동지원서비스 시간확대 요구 이의신청 접수
- 2020년 7월 질라라비 학생회장 출마
- 2020년 8월 1일 불의의 사고로 영면

 

2020년 8월 1일 대구에서 한 분의 탈시설 장애인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올해 64세가 되신 최현창 님이다. 현창 님은 2017년 61세의 나이에 탈시설하여 4년여 짧은 시간 자립을 준비하시다 교통사고라는 불의의 사고로 영면에 드셨다. 평소 걷기를 좋아하는 현창 님은 하루에도 수차례 자립주택 인근을 1시간씩 산책하곤 했으며, 사고 당일에도 아침 일찍 산책에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하셨다. 발달장애인인 현창 님이 사용하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은 월 150시간으로 하루 4시간 정도 가사지원서비스를 받는 게 고작이었으며 평소 외출 시 안전을 위한 이동지원은 생각할 수 없었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예견된 사고였다’는 생각이 들어 현창 님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연금공단에서 활동지원서비스 심사를 받을 때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설명하며 일상생활에서의 기본적인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충분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필요함을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종합조사표 심사기준에 따라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어쩔 수 없음에 결국 또 한 명의 장애인이 안전한 자립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고 최현창 씨.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대 청년은 60대 노인이 되어서야 시설 문을 나서게 되고…

 

1981년 26살 청년의 나이에 대구시립희망원 입소로 시작된 현창 님의 시설 생활은 1986년 청구재활원 전원으로 이어져 2017년 탈시설하기까지 35년 넘게 지속되었다. 시설의 기록에 의하면 1956년 서울 동대문구 출생으로 추정되는 현창 님은 어머니가 나가버리라고 하는 말에 가출을 하였으며 이후 대구 시내를 배회하며 걸인행각을 하다가 파출소에 단속되어 대구시립희망원으로 보내진 것으로 되어있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는 현창 님이 어떻게 대구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름조차 ‘최현철’로 잘못 기록이 되어 있는 카드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시설에 있기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대구시립희망원에 계신 1981년에서 1986년까지 5년 사이에 현창 님은 짧게는 20여 일 길게는 2년 정도 계시다가 3번을 도주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이후 거리를 배회하는 현창 님을 단속한 파출소는 3번 모두 시설로 돌려보냈다.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잘 알려진 70~80년대 부랑인 강제수용은 비단 형제복지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후 현창 님은 1986년 청구재활원으로 전원 입소되어 30년을 머물게 되었다. 30년, 강산이 바뀌어도 세 번은 바뀔 시간 동안 현창 님의 삶에 대한 기록은 너무나 단출했으며, 탈시설하여 자립주택에 입주할 때 그의 짐도 라면상자 몇 개가 전부였다.

 

한걸음, 한걸음 세상 속으로

 

탈시설 이후 현창 님은 못다 한 공부를 위해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 입학하였으며, 탈시설 자조모임, 보치아 자조모임 등 여러 소모임에도 참가하고 교회에도 다니며 다시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현창 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패션이 늘 멋졌다고 기억한다. 키가 크고 날씬하신 현창 님이 야구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때로는 근사한 중절모를 쓴 중년의 신사가 되기도 하셨으며, 본인이 원하는 버튼과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을 코팅하여 달고 다니며 본인을 표현하기를 좋아하셨다. 현창 님의 장례를 모두 치르고 고인이 머물던 방을 정리하러 간 활동가들은 두 개의 옷장 가득 걸려있는 현창 님의 옷을 보고 시설 밖에서의 4년을 더듬어 기억했다. 채 입지 못한 옷들과 한 번도 신지 못한 구두를 보며 왜 이렇게 일찍 떠나셨는지 다시 한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고 최현창 씨의 옷장.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폐성향이 있는 현창 님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셨지만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도 많으셨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묵묵히 사람들에게 자신의 애정을 표현한 사람, 그래서 현창 님을 따뜻하고 좋은 시람이라고 기억한다. 본인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탈시설 4년째인 올해 그는 다니고 있는 야학 학생회장에 출마했다. 출마 유세에서 그는 수줍어하면서도 참 간결하게 그리고 또렷하게 본인의 의사를 표현했다.

 

"안녕하세요, (기호) 5번 최현창입니다. (제가 회장이 되면 학생들에게) 커피 나눠주기, 연필 나눠주기 (하겠습니다.) 뽑아주세요“

 

야학의 선거포스터를 본인이 살고 있는 자립주택 아파트 주차장에도 붙여놓은 것을 보면 학생회장에 출마한 것이 정말 뿌듯하셨나 보다.

 

고 최현창 씨의 2020년 7월 질라라비 학생회장 출마 포스터.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혼자 사는 집을 꿈꾸다

 

현창 님은 다른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자립주택에 거주하며 자립을 준비하고 계셨다. 30평대의 아파트였지만 각자의 활동지원사까지 모두 6명이 북적북적할 때가 많았다. 자립주택의 생활에 대해 “못 살아, 방이 좁아, (너무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해”라며 누구보다 지금의 탈시설 지원의 문제점을 잘 알고 표현하셨다. 임대아파트 공고 우편물이 올 때마다 이걸 신청해야 한다며 우편물을 들고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다릿돌센터) 사무실을 찾아오셨고, 아파트 홍보 전단지를 발견하면 꼭꼭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나중에 이사 갈 집이라고 보여주시기도 했다. 혼자 사는 집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은다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고 저금통을 보여주기도 한 현창 님은 지금의 초라한 탈시설 지원체계를 넘어선 자유를 요구하셨다.

 

고 최현창 씨가 살던 장애인자립주택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무연고자의 죽음

 

청천벽력 같은 현창 님의 사고소식을 접한 다릿돌센터를 비롯한 장애인지역공동체 활동가들은 무연고자로 알고 있던 고인의 가는 길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상주를 자처하고 장례를 준비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난관은 산 넘어 산이었다. 사망진단서조차 뗄 수 없어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경찰서에서 받은 사망진단서 사본을 제출하고 현창 님과 우리의 관계를 계속 설명해야 했다. 현창 님의 경우, 사고사이기 때문에 우선 경찰서에서 연고자 확인을 해서 무연고자임이 확인되어야 구청으로 권한을 넘기고 그러면 우리가 장례주관자 신청을 해서 장례를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었다.


문제는 토요일 오전에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주말 동안 연고자 확인을 할 수 없으며 월요일이 되어야 연고자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연고자가 나오면 연고자가 시신에 관한 권한을 포기해줘야 우리가 장례를 끝까지 치를 수 있었다. 3일장으로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토요일 빈소를 차리고 일요일 추모행사를 가졌다. 장례식과 추모행사에 다릿돌센터에서 함께 자립을 준비하던 탈시설 동료와 야학 동료, 교사, 활동지원사, 탈시설한 시설의 직원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고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누었다. 십시일반 모아 주신 힘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린다.


월요일 아침 연고자 확인 결과, 네 명의 형제분들이 있음이 확인되어 장례절차는 연기되었다. 그러나 평생을 외롭게 살다 가신 현창 님에게 과연 ‘연고자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인지 아닌지 형제분들의 시신포기의사를 확인하고 화요일 발인하여 화장터를 거쳐 시립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으로 장례절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선거를 마치고 투표소 앞에서의 고 최현창 씨.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삶, 그 발걸음을 남길 수 있도록

 

현창 님의 죽음과 장례를 치르며 우리는 다시 한번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 앞에 놓인 수많은 과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자립주택 환경, 무연고자일 경우 평생 모은 돈을 본인의 장례비로도 쓰지 못하는 현실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건 아직도 시설에 있는 분들이 너무 늦지 않게 하루빨리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사회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삶의 발걸음을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현창 님 당신이 남긴 발걸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고 최현창 씨는 유골함은 대구시립공원묘지에 안치되었다.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작별인사

_ 2020년 8월 2일 현창님에게

 

현창님!

 

저 수진이에요. 현창님 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수진이에요. 제 목소리 들리시죠? 할 말이 많아서 현창님 불러봐요. 어젠 유난히 길고 쓸쓸했던 하루였어요. 여전히 지금도. 현창님이 저희 곁을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어제 아침, 정신없이 달려간 병원 응급실에서 처음 만난 이는 경찰이었고. 현창님과 제가 어떤 관계인지 설명해야 했어요. 그리고 만난 이는 진영이었어요. 이미 두 눈이 퉁퉁 부어 말을 잇지 못한 채 떨고 있었어요. 그리고 나서 현창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를 받았어요.

 

응급실 한 켠에 외롭게 혼자 누워있던 현창님을 마주하고, 진영과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현창님 보내고 싶지 않았고. 믿기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현창님 손을 못잡아드린 것 너무 죄송해요. 피가 잔뜩 묻어있는 옷소매를 보고 너무 놀랐었어요. 미안함과 허망함이 뒤섞인 하루가 지나고 또다시 새날의 새벽이네요.

 

사람들이 현창님 잘 보내드려야 하니 마음을 단단하게 하자고. 좋은 추억 많이 기억하자고 얘기했어요. 현창님과 좋은 추억. 너무 많죠. 제 사진첩엔 유독 현창님 사진이 많아요. 사진이 많다는 건. 그만큼 할 이야기도 많다는 거잖아요. 현창님과 추억했던 순간들을 눈에 담았어요.

 

작년엔 부산을 두 번이나 다녀왔네요. 기억하세요? 첫 번째 부산여행 때, 높은 전망대에 오르는 게 싫어서 까페에서 같이 차 마시고, ‘인생사진’이라는 네 컷 스티커 사진도 둘이 찍었더라구요. 출력된 사진 보고 우리 엄청 웃었죠. 노란 형광색 잠바를 입고 계셨는데, 사진배경을 노란색으로 고르셔서 우리 사진이 온통 노란빛에 얼굴만 동동 뜨게 나와서 너무 재밌다고 한참을 웃었던 그 순간이 기억나더라구요.

 

두 번째 부산여행은 ‘피플피플’ 자조모임 동료들과 피플퍼스트대회에 참여하고 차이나타운 맛집에도 갔었어요. 차이나타운을 거닐며 현창님은 저에게 “나, 여기서 찍어줘요”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어요. 빨갛게 물든 차이나타운 곳곳에서 중절모와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남겼죠.

 

순간, 찰나의 기쁨과 행복한 순간을 남기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현창님이 따듯한 분이라고 생각했던 건, 동료들을,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들이었어요. 탈시설 당사자 자조모임 ‘피플피플’ 모임이 있는 날엔, 늘 일찍 오셔서 동료들을 기다리셨어요. 그리고 모임다과를 준비하는 저에게 슬며시 다가와서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담고, 알맞게 물을 부어서 쟁반에 담아 동료들에게 나눠주셨어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셨지만, 동료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을 즐기기도 하셨어요. 드러내진 않았지만 묵묵히 사람들에게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현창님을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해요.

 

현창님!

 

이제. 현창님과 진짜 작별할 시간이에요. 그런데 가볍게 보내드리고 싶어요. 시설에서 40년. 지역에서 오롯이 혼자 3년. 무겝게만 느껴지는 당신의 삶이 제 마음도 무겁게 합니다.

 

65년 삶이 무거웠으니, 그 어딘가로 가실 때에는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해 달라고 기도할게요. 현창님 기쁘게, 가볍게, 떠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현창님. 함께했던 많은 순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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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영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지원1팀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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