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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김주영 영정을 송도에 보냈습니까?
홍 기자의 뉴스톡톡 ⑥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분명했던 고 김주영 활동가의 삶
등록일 [ 2012년11월02일 15시28분 ]

▲고 김주영 활동가가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미술모임에서 그린 '사과'

 

화재로 모두 사라진 줄 알았던 고인의 유품이 하나 남았습니다. 지금 강동역 대기실에서는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미술모임에서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작품의 이름은 ‘사과’이고 그린 이의 이름은 ‘고(故) 김주영’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인 ‘고(故)’ 자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리게 파고듭니다.

 

전시장에는 미술모임에 참여한 그녀가 ‘사과’를 그리는 장면을 찍은 사진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탄 그녀는 입을 붓에 물고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26일 새벽 2시께 입에 터치펜을 물고 119를 부르던 모습이 연상되어 차마 계속 보기 힘들었습니다. 눈앞의 시뻘건 불길과 시커먼 연기 속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을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고인은 1979년 6월 14일 전남 담양의 한 가정에서 2녀 1남 중 장녀로,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1988년 2월 삼육재활학교 고등부를 졸업했지만 장애가 있는 그녀를 반기는 곳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자립생활이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활동보조제도 자체가 없던 2005년에 가족의 짐이 되는 삶도, 시설에서 한평생 보호받는 삶도 거부하고 자립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그녀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에서 영상교육을 받으며 수료작으로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 이야기를 다룬 ‘외출 혹은 탈출’을 연출했습니다.

 

이 작품은 KBS1TV 열린채널에 방송되고, 그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에서 수여하는 작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영상교육을 진행한 다큐인 박종필 감독의 제의로 2006년 1월부터 2007년 9월까지 영상운동단체 다큐인에서 상근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또한 2006년 10월부터 2007년 9월까지 RTV에서 방영된 ‘나는 장애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다큐인 박종필 감독은 “당시 대다수의 장애인분은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했기에 성격이 소극적이었는데 주영 활동가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라면서 “옳고 그름에 대해 명확했고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박 감독은 “당시 주영 활동가는 건강이 좋지 않아 몸이 힘들었지만 치료를 받으면서도 일을 계속했다”라면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영상 수업을 마친 뒤 영상을 더 해보겠다는 욕망이 강해 다큐인으로 들어왔고 RTV에서 방영된 ‘나는 장애인이다’를 기획 단계부터 함께한 활동가”라고 소개했습니다.

 

▲미술 모임에서 그림을 그리는 고 김주영 활동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분명했던 고인은 영상 활동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온몸을 던졌습니다. 혼자서는 살림은 물론 식사나 용변, 옷 갈아입고 휠체어에서 내리기도 어려운 중증의 장애여성으로서 누구보다 활동보조인의 손길이 절실했기에, 그녀는 2006년부터 시작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활동보조제도화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투쟁, 장애인이동권 투쟁,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등 투쟁의 현장에 그녀는 항상 있었습니다.

 

또한 고인은 자립생활운동가로서 서울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광주 한마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했습니다.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상근 활동을 한 그녀는 광주 한마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가를 모집한다는 제안을 받자, 혼자서 광주에 내려가 1년간 상근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광주에서 서울로 돌아온 뒤 그녀는 다시 2009년 11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했습니다.

 

바쁜 활동 중에서도 고인은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2007년 3월에는 한양사이버대에 편입해 2009년 2월에 전자계산학 전공 학사자격을 취득하고, 2011년 3월에는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위해 다시 한양사이버대에 입학했습니다.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대희 소장은 지난 29일 늦은 3시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고인과의 일화를 소개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여수 엑스포를 구경하고 싶었던 그녀는 박 소장이 서울 일정으로 비워둔 집에서 2박 3일 동안 엑스포 구경을 한 뒤 와인 잔 두 개를 선물로 남겨놓고 갔습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박 소장은 와인 잔을 써보기 위해 와인을 사서 그 잔으로 아내와 함께 와인을 마셨습니다. 박 소장은 아직 그때 산 와인이 남아 있는데 그녀가 떠났다며 애통해했습니다.

 

자립생활을 위해 활동보조를 간절히 원했던 고인은 활동보조제도가 시작된 2007년에 월 80시간, 2008년에 월 100시간, 이후에는 독거특례로 월 180시간을 받았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시에서 추가로 월 180시간을 받아 월 360시간의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4시간 활동보조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녀의 자립생활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고인은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3시간 뒤인 지난달 26일 새벽 2시께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질식사했습니다. 그녀가 119로 직접 신고했음에도 활동보조인이 없어 다섯 걸음 정도에 불과한 집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대로 받을 수 있는 활동보조 시간을 받던 중증장애인 중 한 명이었지만, 정작 불길과 연기에 휩싸인 그 시간에 활동보조인은 그녀 곁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24시간 활동보조를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일 유엔 에스캅 장관급 회의가 열리는 송도 컨벤시아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활동가 100여 명이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5시간이 넘게 복지부 장관의 사과와 면담, 24시간 활동보조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임채민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녀의 죽음에 대해 그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며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천 세계장애대회는 누구를 위해 열리는 것입니까? 그녀는 죽기 전날 한 활동가와 통화하며 송도로 가는 셔틀버스를 어떻게 타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높으신 누구처럼 치적 쌓기 또는 사교의 장이 아니라 장애인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그녀는 송도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간 것은 그녀의 영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1백여 명의 김주영이 복지부 장관의 사과와 24시간 활동보조를 외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고인이 그린 사과 그림 한 점만이 세상에 쓸쓸히 남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1일 송도 컨벤시아 1층 로비에 펼쳐진 고 김주영 활동가의 영정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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