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2월08일sun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단 하루도 의미 없는 날은 없었다
"이 투쟁은 장애인운동의 역사에서 하나의 큰 고개"
"진보 장애인운동의 조직화도 더 많이 확장되길"
등록일 [ 2013년08월21일 21시23분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이 1주년을 맞았습니다. 이에 비마이너는 지난 농성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글과 사진으로 되돌아보고 공동행동이 요구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가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현장 좌담회를 통해 이번 농성의 의미와 성과, 전망 등을 살펴봅니다.

 

① 광화문 농성 1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② 광화문 농성장 현장 좌담회
③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어디까지 왔나?
④ 사진으로 보는 광화문 농성 1년

 

□ 때, 곳 : 2013년 8월 15일 늦은 5시 30분, 광화문역 농성장
□ 함께한 이들
   - 박경석(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 이형숙(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 남병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 김윤영(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 조현수(사회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 사진·정리 : 조은별 기자

▲1년여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역 농성에 대한 좌담회가 지난 15일 농성장에서 열렸다.

왜 그들은 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나?
 
현수 : 안녕하세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1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과정과 성과, 앞으로의 방향 등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모든 분들이 편하게 가감 없이 평가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지난해 8월 21일 광화문역에서 농성을 시작했잖아요. 그 당시 상황들은 어땠나요? 왜 농성할 수밖에 없었나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경석 : 장애등급제는 당시 재심사하면서 대거 급수가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었어요. 그래서 2010년에 국민연금공단을 점거하면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과 12년의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 요구안에도 장애등급제 폐지가 들어갔고요. 지속적인 투쟁의 흐름이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왜 굳이 8월이었냐고 묻는다면 대선에 대한 전략적인 투쟁을 계획한 거죠.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대응을 위해 대선주자들이 중요한 주제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말이죠.

윤영 : 부양의무제는 2010년에 장애아동 아버지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아들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걸 비관해 목숨을 끊으신 이후로 조계사에서 부양의무제 폐지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의원 대부분이 부양의무자 기준 축소를 얘기했지만, 결국 연말에 새누리당에서 날치기로 무산됐어요.

또 농성하기 바로 전에 거제시청에서 이씨 할머니가 돌아가셨죠. 사위 소득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에서 탈락되서. 자료 하나만으로 사람을 탈락시키는 거죠. 결국 그게 자살로 이어진 거고…. 이런 상황에서 농성에 들어갔기 때문에 조금 더 결연한 마음이 들었어요. 농성 들어가는 날 생각나는 건 비가 아주 많이 왔다는 거?

현수 : 그렇다면 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라는 두 가지 이슈가 함께 갈 수밖에 없나요?

병준 : 모든 투쟁은 역사적으로 볼 때 살기 힘들면 저항하는 건 필연적이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당사자들의 선택이에요. 거기서 우리는 무기한 농성이라는 전략을 선택한 거죠. 근 몇 년간의 평가와 총선을 거치고 지난해 활동가대회에서의 결의를 통해 8월부터 총력투쟁을 하기로 했던 거예요. 대선 때 가장 중요한 민중의 이슈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가지고 투쟁하자. 사회적 변화를 가져가자. 이렇게 합의한 거죠.

어쨌든 이 두 가지가 핵심일 수밖에 없던 건 요구안을 갑자기 선택한 게 아니라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제기됐어요. 그 이전부터 있던 제도지만 우리가 그때부터 부딪혔죠.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힘이 없었고 저항의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는데 2010년부터 사람이 계속 죽었어요. 장애등급제로 죽네사네 했고 활동보조가 끊겼죠. 앞서 말한 것처럼 장애아동 부모가 자살하고, 수급탈락으로 이씨 할머니가 죽고. 사회복지통합관리망(사통망)이 만들어지면서 제도가 엄격해졌잖아요. 행정편의를 위한 제도지만 그 때문에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 것 같아요.

현수 : 그럼 농성 장소로 왜 굳이 광화문을 선택했나요?

경석 : 장기농성이라면 일단 버틸 수 있어야 하는데, 청와대와 가깝고 화장실 쓰기 쉽기에 선택한 거죠. 농성하면서 겪었던 노하우로 가장 좋은 곳을 찾았어요. 정부청사도 가깝고.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

윤영 : 그날 경찰은 적당히 봐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막으려고 했지만 우리가 그것을 이긴거예요. 그날(지난해 8월 21일) 12시간 가까이 싸웠는데, 경찰이 정말 필사적으로 막았고, 광화문 역사 내부를 1미터 간격으로 통제하는 등 시민에게 어마어마한 불편을 주면서까지 막았는데, 결국에는 그 자리를 우리가 지킨 거죠.

경석 : 낮 1시쯤 농성장 주위에 도착해서 미리 농성장을 살펴보는데 그때부터 경찰이 막더라고요. 집회를 시작해야 하는데 집회를 할 수가 없었어요. 집회 순서는 있는데 발언할 사람도 없고, 집회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윤영 : 그날 집회는 중간에 끝났어요.

경석 : 각자 알아서 농성장으로 내려오는 전술이었으니까. 나중에 영상 보니까 각자 알아서 잘 싸우더라고. 하여튼 교보문고 방향도 막히고 여기 끊기고 저기 끊겨서 토막토막 싸움했었어요.

윤영 : 그때 광주 지역 동지들과 시청역에서 지하철 타고 광화문역에 오는 것이 목표였는데 경찰들이 막아서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엘리베이터에 못 타게 했거든요. 그 때 시민들이랑 함께 항의해서 타고 내려갈 수 있었어요. 시민들이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어요. 휠체어를 탄 장애인만 못 가게 하는 사실에 많은 시민이 분노하더라고요.

병준 : 광화문역사 안에 있던 우리도 농성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어요. 낮 1시부터 새벽 1시까지 12시간 동안 광화문역에 갇혀 있었고, 극단적인 인권침해 상황까지 갔음에도 우리가 버텼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농성 1년 동안 단 하루도 의미 없는 날은 없었다.

현수 : 오늘로 농성이 360일째인데요. 지난 360일을 돌이켜보건대 단 하루도 의미 없는 시간이나 순간들이 없었던 것 같아요. 360일, 1년 가까운 기간에서 일상적으로 무슨 활동이나 프로그램이 있었나요?

병준 : 360일 넘는 기간 동안 농성장을 지킨 사람이 하루 평균 10~20명이에요. 집회 있을 때마다 몇 배는 더 많은 사람이 오고 농성장이 침탈당할 기미가 보이면 몇십 배는 되는 사람들이 왔고요. 

농성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나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지역 단위들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도 매일매일 사수를 책임지고 있는 단체나 담당자가 로테이션하고 있어요. 이 정도의 조직력은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구는 10년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매우 안정적이고 체계적이게 잘 운영되고 있죠. 특히 지역에서 많은 주체가 올라와 며칠씩 농성에 참여하니까요.

현수 : 대선 전후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관련해서 변화된 지점들이 어떤 게 있나요?

경석 : 장애등급제는 명분상으로는 크게 변화됐어요. 폐지하지 않겠다던 것들을 폐지까지 이끌어냈죠. 그렇지만 어떻게 투쟁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겠죠. 지금의 결과물로 폐지하겠다고 해서 성과라고 하기는 좀 애매해요. 성과라고 하면 전에는 폐지하지 않겠다고 하는 걸 폐지하겠다고 한 정도죠. 대통령이 선거공약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넣은 것도 변화죠. 그렇지만 권리보장법이 제정된 것도 아니고 등급제가 폐지된 것도 아니기에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는 지켜봐야 해요.

윤영 :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은 진보진영에 아주 중요하고 통일적인 의견이었어요. 그런데 총·대선을 지나면서 의견이 갈린 거예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너무 심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실행에서의 염려를 담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타났어요. 특히 대선 정국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투쟁을 했는데 각 진보진영 선거캠프에서 폐지 요구를 받은 당도 있고 안 받은 당도 있지만, 안철수 씨측과 당시 민주통합당은 받지 않았어요. 다들 거절보다는 얘기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더라고요. 빈곤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는 하지만, 이걸 어떻게 한다는 건 얘기하지 않았어요.

복지를 총·대선 내내 이야기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부분은 두드러지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거의 사라졌죠. 기초법의 중요 이슈가 법 개정이라고 돼버리니까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마치 작은 쟁점처럼 됐는데 이건 대단한 착시효과예요. 사실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없이는 어떤 식으로 개정된다 해도 제대로 개정될 수 없어요.

병준 : 일단 장애인계라고 불리는 것 문제예요.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해 장애인계가 말로는 동의하지만 행동은 전장연 밖에 안 하거든요. 부양의무자 기준 문제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만 행동은 아주 일부 활동가들만 하고요. 

장애인계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추상적으로는 동의하겠지만, 이걸 장애인운동의 과제로서 얘기하고 있는 곳은 전장연 밖에 없어요. 이 부분은 장애인계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일 수 있어요. 행동하지 않는 진보는 의미가 없어요.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기득권 중심의 장애인운동이 되느냐 이걸 가르는 것이 부양의무자 기준이에요.

대선장애인연대에서 요구안 만들었을 때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반대하지 않았지만, 부양의무제 폐지를 내걸자고 했을 때는 다들 우려했고 많은 단체가 적합하지 않다고 반대했어요. 전장연이 끝까지 주장해 요구안에는 넣었죠. 이후 장애등급제 폐지와 권리보장법 제정은 답을 받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은 주요 대선후보들의 동의를 받지 못했어요. 일명 빅3는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죠. 

현수 :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라는 두 가지 이슈에 대해 시민의 반응이 변한 것이 느껴지나요? 혹시 반응이 어떤가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이형숙 공동집행위원장.
형숙 : 제가 느낀 건 변화는 있지만 오히려 두드러지게 변화한 것은 반대와 찬성이 두드러진 거예요. 찬성한다는 것은 천막농성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지지하고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반대하는 이들은 예산 얘기를 하며 돈 달라고 하는 거 아니냐고 매도해버리죠.

장애등급제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당사자들도 의외로 많아요. ‘나 몇 급인데 등급 없애버리면 더 안 좋은 것 아니냐.’라면서 농성장에 와서 저를 설득하려는 장애인들이 많았어요. 거의 한 시간 가까이씩. 그래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이 공감하시더라고요. 또 비장애인들이 공감하면서 얘기하고 가고. 장애등급제는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권리보장법에 관한 내용을 확실히 알려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현수 : 농성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을 기억해본다면 어떤 순간이 있을까요?
 
형숙 : 전 파주남매 사건이 가장 힘들었어요. 장례를 주도적으로 치른 게 처음이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가서 함께 싸우자고 제안한 게 힘들었지만, 그 이후 활동보조시간 확대라는 성과를 얻고나서 꼭 해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어요.

또 지역이 경기도다 보니까 광화문 농성장이 부담되는 건 사실이에요. 서울 지역 동지들이 가장 힘들다는 걸 물론 알지만, 경기 지역은 수도권이라 같이하지만 지역이라고 느끼다 보니까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다른 지역들은 더 심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100일, 200일, 300일 이렇게 다가오면서 일상이 된 것 같아요. 100일 행사할 때  1000일 행사를 이야기했는데 그전에는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경석 : 아시아태평양장애포럼(APDF) 회장을 맡고 나서 유엔 에스캅회의 장소에서 아주 빡세게까지는 투쟁하지 말고 잘 해보자고 마음도 있었는데 그때 김주영 동지가 죽었어요. 그 일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직접 연결되니까 그를 만나러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회의장 로비를 점거하는 등 압박하고 알릴 수는 있었지만, 복지부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고 얘기해요.

김주영 동지가 죽고서 파주남매 사건이 또 생겨서 낮에는 인천에서 투쟁하고 밤에는 다시 서울 장례식장에 왔다갔다하니까 힘들어서 죽겠더라고요. 김주영 동지 장례식장에 안철수 씨가 새벽에 온다고 해서 갑자기 서울로 떠난 적도 있고요.

병준
: 사람마다 힘든 건 다르겠지만, 멀리서 바라본다면 우리가 농성하고 있는데 과연 뭘 하고 있나 생각해봐요. 노동자들이 가장 열심히 싸우는 방법은 생산을 멈추는 것이고, 외국에서는 자본의 흐름을 멈추겠다고 고속도로에 타이어 쌓고 막아요. 우리는 그런 걸 하는 건 아니잖아요. 서명받고 있다고 공무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박근혜 업무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농성하는 게 과연 누구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피해를 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사회에 알리고 있는 것뿐이지. 예전에 한진중공업 김진숙 동지가 크레인에서 내려와서 경찰 조사받을 때 죄명이 주거침입이었어요. 그래서 법정에서는 ‘크레인이 주거공간이냐 아니냐.’ 이런 걸로 다퉜거든요. 굉장히 웃긴 일인데 우리가 너무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워낙 경직되고 행정중심 논리에 절어 있어서 법적으로 큰 죄를 지었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게 문제죠. 투쟁을 지속할 것인가의 문제를 논의할 때도 마치 우리가 대단한 죄를 지는 것 같이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우리는 그냥 서명받고 있는 거잖아요. 가장 힘든 건 우리 스스로 농성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에요. 우리의 조직력으로 충분히 농성할 수 있고 충분히 문제를 알릴 수 있는데. 우리가 농성하고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음이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제로 보이는 거예요. 우리가 농성으로 알리고 있지 않는다면 이 문제가 사회에 제대로 이해될까요. 농성의 가장 큰 적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우리 스스로의 주입된 논리예요. 

연대와 신뢰 ‘서로 항상 걱정하는 동고동락의 사이’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현수 활동가.
현수 : 다른 장기투쟁사업장과의 연대를 계속 해왔잖아요. 최근에 민주노총 새 지도부와 간담회를 하기도 했고요. 연대 활동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요?

병준 : 기대치에 따라 다른데, 우리가 철도 민영화 문제에 얼마나 열심히 싸웠느냐고 물으면 미안해지고, 강정마을도 그렇죠. 그러나 우리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위안이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 간에는 분명히 신뢰가 있어요. 우리가 가지 못하고 그쪽에서도 잘 오지 않아도 서로 믿고, 추궁하지도 않고. 서로 자신의 투쟁을 잘하는 게 신뢰가 되는 거고요. 장애인문제에 대한 진보진영의 관심은 과거보다 늘었고 이해도도 높아졌어요. 우리는 우리의 투쟁을 많이 알리고 있고 그들은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형숙
: 우리가 쌍용자동차와 재능 농성에 잘 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의 연대는 분명히 있어요. 쌍용차 동지들이 송전탑에서 내려올 때, 항상 성공한 것만 봤었거든요. 희망버스도 그랬고요. 그 날 송전탑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울고, 밑에 있는 사람들도 울고 다들 많이 울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같이할 거고… 서로 항상 걱정하는 동고동락의 사이인 것 같아요.

윤영 : 우리가 농성을 지속하면서 알게 모르게 노동자대회 등 큰 대회에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라는 구호가 계속 들어갔어요. 이런 얘기가 계속되면서 규모가 확장되고 알려지는 것 같아요.

경석 : 이제껏 민주노총 위원장이랑 간담회를 한 역사는 없었어요. 잠깐 면담하는 정도는 있었지만 간담회 형태로 진행한 게 처음이거든요. 그런 형식으로 본다면 많이 달라진 거죠. 지금 진행 중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100만인 서명운동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는데 지도부는 당연히 ‘하겠다’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공장에 서명받으러 간다든지, 이런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현수 :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는 어디까지 왔나요? 이제 어떻게 나아갈 건가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

병준
: 역사적인 위치에 있죠. 이 투쟁은 장애인운동의 역사에서는 하나의 큰 고개인 거예요. 산맥을 넘는 역사적인 시기로 전과 후가 다를 정도로요. 자립생활운동에서 활동보조서비스가 시행되기 전과 후 다른 것처럼 말이죠. 장애인권리보장법도 마찬가지예요.

윤영 :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라는 이슈 자체가 의도적으로 외면당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면밀하게 대응하는 것과 동시에 이슈화를 시켜야죠.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람들의 낙인감과 수치심에 기반을 둔 복지제도잖아요. 복지제도에 대해 빈곤층을 불신하고 있고 사람을 서로 치사하게 만들고 비열하게 만드는 이런 복지제도는 너무 나쁘고, 이렇게 만든 국가도 정말 나빠요.

요즘 우려되는 건 시민의 복지의식이 세금공제인 것처럼 여겨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납세한 만큼 얼마의 복지를 받을 수 있나.’ 이게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은 빈곤층이나 근로무능력층, 근로능력과 관계없이 현재 소득수준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과 대립하는 관계로 갈 수도 있어요. 

기초법 개정안을 보면 건강보험공단 재정과 의료급여 재정을 합치겠다고 하고 있어요. 의료급여를 건강보험공단 재정으로 하겠다고 하는 거죠.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당연히 반대하고 있고요. 이런 식으로 갈라지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이 왜 수급을 받아야 하는지 더 논란이 될 거같아요. 부양의무제가 폐지되도록 더 싸워야 하는 거겠죠.
 
형숙 : 우리가 무기한 농성이라고 타이틀을 걸었지만 사실 처음에 무기한이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대선 끝나고 혹은 봄 정도로 농성을 끝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끝장을 보지 않으면 접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는 집행부가 접자고 해도 중증장애인 활동가 동지들이 반대할 것 같아요. 함께 투쟁할 수 있는 동지들과 함께 바라보는 방향이 같아져서 농성 지속 여부에 관한 건 결정된 것 같아요.

물론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여러 이슈를 만들어 내겠지만, 농성이 1~2년 지날수록 왜 해야 하는지 확실한 철학이 있어야 해요. 장애등급 1~3급은 내년에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함께하는 동지 중에는 ‘많이 변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하며 만족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우리는 만족할 수 없고 확실하게 어떻게 바꿔야 하는 지 알려나가는 게 이제는 중요하죠.

경석
: 복지라는 것이 우파정부에서 만들어진 정책이잖아요. 노동자들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서 복지를 내놓은 건데 노동자를 사회적으로 흡수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얘기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우파든 좌파든 간에 싸우면 싸울수록 바뀔 거예요.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시대가 올 거고요. 투쟁의 영역은 무궁무진하고 그걸 잘 기획해서 확대하면 좋겠어요. 진보 장애인운동의 조직화도 더 많이 확장하고요. 

 


현수 : 마지막으로 비마이너 독자분들께 한말씀 하신다면?

형숙 : 우리는 승리할 수 있고 끝까지 투쟁할 거예요. 많은 분도 지켜만 보지 말고 농성장에 찾아 함께해주세요.

경석 : 이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입니다. 민생과 복지를 얘기하려면 이 정도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게 당연하죠. 요즘 복지부가 우리에게 예의를 논하는데 이게 바로 예의 아닌가요. 

윤영 : 서명지에 ‘농성 그만하라’라며 테러한 분도 있고 중생보위 회의장 들어갔다가 예의 없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굉장히 모욕적이었어요. 그렇지만 싸우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상황을 피하기가 어려우니까 마음도 건강하게 싸울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현수 : 두 시간 반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로 채워진 것 같아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올려 0 내려 0
조은별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광화문 농성장, 진지를 구축하는 전방
"광화문역 농성은 혁명적 투쟁의 거점"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장애등급제 폐지,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2013-08-22 05:55:19)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 구멍 숭숭 (2013-08-21 17:10:05)
(사)장애인지역공동체 활동지원사모집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휠체어 탄 장애인이 왜 노숙하냐고요?
문재인 정부는 2026년까지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

탈시설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9명, 어떻게...
우생학, 우리 시대에는 사라졌을까
무엇이 독일 나치의 장애인 학살을 허락...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