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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언어기본법, 어떤 내용으로 채워지나?
수화언어권공대위, 입법 발의 공청회 열어농아인들 기대 높으나 표준화 등 문제점도 지적돼
등록일 [ 2013년10월02일 18시22분 ]

▲수화언어 및 농문화 기본법 공청회가 2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수화언어 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의 주최로 열렸다.


수화언어기본법 입법 발의를 앞두고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농아인들의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으나 용어 정의, 표준화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수화언어 및 농문화 기본법 공청회가 2일 이른 10시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수화언어 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수화언어권공대위) 등의 주최로 열렸다.

 

수화언어권공대위는 18대 대선에서 수화언어 관련 입법을 추진한 정의당 정진후 의원과 함께 입법 발의를 준비하면서 이번 공청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공청회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안세준 고문의 기조발제로 시작됐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안세준 고문
안 고문은 “영화 ‘도가니’를 통해 특수학교 교사 중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가 6%밖에 안 된다는 통계가 나왔음에도 영화를 통해 드러난 농학생들의 교육권과 의사소통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라고 지적하면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안은 2010년 발의하려고 했으나 폐기된 법안을 참고로 했으며, 변화하고 있는 장애인계의 패러다임, 장애인차별금지법 내용도 반영하려고 했다”라고 소개했다.

 

안 고문은 “또한 수화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외국의 법률과 국제장애인권리협약도 참고했으며, 특히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서 언어로서 수화, 교육에서의 농문화의 전수기능, 교육자로서 당사자의 참여기회 확대, 농문화의 지원 육성과 같은 내용을 눈여겨봤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입법 발의 안이 청각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보장에 큰 비중을 두었다는 것이다.

 

법안은 총 5장 24조로 구성되어 있다. 1장 1조 법안의 목적에서는 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언어임을 밝히고, 이를 위하여 수화언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해 농인 등 수화언어 사용자들의 수화언어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2조 기본이념에서는 ‘농인은 제1언어로 수화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국가와 국민은 농인 등 수화언어 사용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지원하여야 하며 농정체성과 농문화의 지원 및 육성에 힘쓰는 것은 물론 더불어 사회·문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깊이 인식하여 수화언어 발전에 힘쓰고 이를 보전·계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법안의 용어를 정의한 3조는 수화언어, 농인이라는 개념 외에 ‘청인’에 대한 개념도 정의했다. 이에 대해 안 고문은 “청인은 농인에 대비되는 용어이기도 하지만, 농인의 문화 독자성 확보를 위해서는 청인의 문화에 억압되어 있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로 청인이라는 개념을 정의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외에 수화언어 사용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수화언어에 반하는 의료적 조치나 교육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강조해 인공와우 시술이나 구화교육에서 발생할 수 있는 권리 침해를 막고자 했다.

 

또한 수화언어의 교육과 보급, 농문화 육성에 필요한 연구 및 관련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수화언어문화원을 설치해 운영하도록 했으며, 비장애인이 수화언어를 쉽게 습득하게 하기 위해 일반 학교 교과 과정에서도 수화교육을 하도록 명시했다.  
 
안 고문은 “이번 법 제정은 보조수단 정도로 생각했던 수화를 독자적인 언어로, 대한민국 공용어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라면서 “농문화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청인 중심의 억압적 구조를 탈피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구조를 변화시켜 농인들의 올바른 시민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은혜교회 강주해 목사는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청각장애인도 수어가 있기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어는 음성언어와 다르다.”라며 “수화는 시각 언어이고 손을 사용하는 언어로 3차원적 언어다. 음성언어는 들을 수 있고 입 모양으로도 알 수 있지만, 수어는 손으로 표현하고 눈으로 보고 읽는 언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 목사는 통합교육에서 농학생이 차별받는 현실과 의사소통 문제로 취업에서 차별받아 결국 낮은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농아인의 현실에 대해 토로하며 “이번 법 제정이 말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농아인이 차별받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복지대학교 허일 교수는 이번 법안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복지대학교 허일 교수
허 교수는 “농학교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고 있으나 현재 농학교는 망해가고 있다. 특수학교 교사들에게 수화통역자격증을 요구하면서 농학생을 안 받는 현실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25개의 특수학교 중 대부분은 현재 지적장애인, 발달장애인 학교로 이미 바뀌었고 이 중 순수 청각장애인 학생만 받는 곳은 3~5곳밖에 안 된다. 수화, 농학교, 농문화에 대한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법안에서 ‘어떤 수화’를 보호하고 육성하려는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라고도 지적했다.

 

허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는 수화는 두 가지가 있다고 전했다. 하나는 한국어식 수화(Signed Korean)며, 다른 하나는 한국수화(Korean Sign Language)이다.

 

전자는 한국어 어순에 따라 한국어 단어를 수화로 바꿔 나열하는 것이며, 후자는 한국 농인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허 교수는 “청인 중 99%는 한국어식 수화를 사용하고 있는데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한국어식 수화가 아닌 ‘한국 수화’"라면서 "그런데 법에서 말하는 수화가 한국 수화가 아닌 한국어식 수화라면 이 법은 수화를 죽이는 법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 교수는 “500개~1000개 정도의 수화 단어만 외우면 바로 수화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퍼질 것"이라며 "그러나 이러한 한국어식 수화는 한국 농인들의 언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14조의 '수화언어사용자의 교육에 있어 장애 발생 초기부터 수화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에서 ‘장애 발생 초기부터’라는 부분도 지적됐다. 이 부분이 수화 언어 대상자를 좁게 보는 것과 수화가 마치 결함 있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 의미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농인들은 청각장애, 언어장애가 있어 수화를 쓰는 게 아니라 볼 수 있고 유능하기에 시각적 의사소통 수단인 수화를 쓰는 것"이라며 "따라서 인공와우 수술과 보청기 사용의 대척점에 수화가 있는 게 아니라 그와 관계없이 수화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끔 대상자를 넓게 보았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13조 수화언어의 표준화에 대해서도 허 교수는 “실제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정리해서 하는 게 가장 수화언어다운데 왜 굳이 표준화하려는지 모르겠다”라며 “표준화를 잘못하면 한국수화를 죽이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농아인협회 김현철 과장
한국농아인협회 김현철 과장은 이러한 허 교수의 비판에 대해 “수화가 위기다, 농학교가 위기라고 했는데 왜 위기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며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지 않아 수화로 교육한 곳이 없었기에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수화언어기본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2009년 국립국어원과 함께 진행한 조사에 의하면 농인 중 80%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언어는 수화라고 응답했으며 수화를 언어로 생각한다고 답했다.”라고 밝혔다. 

 

김 과장은 현재 한국농아인협회가 준비하고 있는 수화언어기본법을 소개했다. 수화언어기본법과 관련해선 지난 8월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우선 발의한 바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현재 정부안을 마련 중이다.

 

김 과장은 “표준화와 관련해선 과연 표준화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내부 논의가 있어서 삭제했으며, 한국수화에 대한 연구와 보급에 중점을 맞추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라며 “새롭게 생성되는 언어, 전문용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재생산을 위해 표준화도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표준화라는 언어가 주는 불편함이 문제라면 수화의 보급과 연구에 힘쓰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김 과장은 “한국농아인협회가 꾸린 한국수화언어기본법제정추진연대에서도 조만간 수화언어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면서 “이상민 의원, 정진후 의원 안에서 누락된 것은 무엇인지 검토한 후 농아인 당사자의 감수성을 담아 법안을 발의하도록 하겠다”라고 전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50여 명의 농아인 당사자들이 참여해 수화언어기본법 제정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청각장애 아동이 겪고 있는 사례를 통해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와 장애에 대한 근본적 사회적 인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
박김 사무국장은 “지적장애, 지체장애의 경우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는 데 반해 청각장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청각장애 아동 부모는 아이를 청각장애인으로 키우고 싶어하지 않는다”라며 “그래서 보청기나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통합학교에 아이를 보낸다. 그 학교에서 아이는 청각장애가 없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이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에 대한 인식 없이 지내고, 종종 잘 들리지 않는 소리에 늦게 반응하거나 엉뚱한 답을 함으로써 그 안에서 ‘사오정’이라고 불린다.”라고 설명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그런데 청각장애가 있을 때 왜 내 아이를 장애인으로 키우고 싶다고 할 수 없는가. 그것은 바로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낙인 때문”이라면서 “청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수화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청인들도 자연스럽게 수화를 배운다면 이러한 모습은 분명히 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 교수의 지적에 대해 박김 사무국장은 “특수학교 교사들에게 수화통역자격증을 강화했기에 농학교의 위기가 온 것이 아니다. 만약 특수학교에 단 한 명의 청각장애인이라도 있다면 모든 선생님이 기본적인 수화가 가능하고 수화자격증도 갖고 있어야 한다.”라며 “그러한 기본적 바탕에서 이 법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강미영 간사 또한 수화언어 표준화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표하며 “수화 전문용어에 대한 사전을 만들어 내는 작업, 수화에 대한 실태조사와 체계적 연구를 바탕으로 공통으로 쓸 수 있는 수화언어에 대한 정의는 필요하겠지만, 수화언어심의회라는 닫힌 기관에서 수화언어를 표준화하면 인위적인 수화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위험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강 간사는 “21조에 농인 등 가족을 위한 지원체계 마련은 의미 있다고 본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 좌혜경 정책실장은 “표준화 작업은 일방적으로 표준화시키자는 게 아니라 전문용어 혹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좌 정책실장은 “수화통역센터는 수화교육 지원만이 아니라 일선에서 수화 보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을 때 별개의 센터를 만드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판단에 현재 시군구마다 있는 수화통역센터를 재정비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생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15조 수화언어의 보급과 관련해 정부의 의지에 대해 물었다.

 

법안 15조는 국가가 중등교육법 23조에 따른 교육과정에 의해 수화교육을 시행하여야 하며, 수화언어를 배우려는 자를 위해 교육과정과 교재를 개발하고 관련 교원을 양성하는 등 수화언어의 보급에 필요한 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강미영 간사는 “교육 보급에 대한 사항은 교육부의 소관이지만, 언어를 교육하는 문제와도 연관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교육부 법령들과 이어서 고민이 필요하다”라며 “꼭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허일 교수는 “창의적 체험활동은 현재 학교 교장이 재량을 가지고 있는데 일반 학교 교장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현재 농학교에서도 수화 과목은 없다.”라고 밝혀 일반 학교에 수화를 보급하는 데 난항이 있을 것임을 내비쳤다.

 

이날 토론회에는 50여 명의 농아인 당사자들이 참여해 수화언어기본법 제정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한편, 수화언어권공대위는 10월 8일 늦은 2시 정부청사 후문에서 수화언어와 농교육 개선, 장애인 평생교육 문제에 대해 집회를 열고, 같은 날 저녁에는 송경동 시인 등을 초청해 현장수업을 할 예정이다.

 

또한 9일 오전에는 한글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 주변에서 수화 언어 법 제정을 요구하며 ‘수화도 언어’임을 공표할 계획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농인이 수화로 질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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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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