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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의 죽음…“왜 이렇게 늦게 왔소?”
어이없는 참사, 구청장 조문이 어렵나?
모두의 목소리에 안녕하지 못한 모든 이의 삶이 묻어나길…
등록일 [ 2013년12월18일 12시23분 ]

“(삐릭) 화재로 중증 지체장애인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는 휴대전화 SNS 알림음에 실려 도착한 이 문장을 접한 건 세계 인권선언 65주년 다음 날인 11일 저녁이었습니다.

 

황망한 마음에 부랴부랴 기사를 찾아보았고 전날인 10일 화재로 86세 노모와 함께 생활하던 중증 지체장애인 한 분이 15분 만에 진화된 화재에 질식해 돌아가셨다는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기사를 통해 사건을 처음 공유했던 권익문제연구소 베테랑 활동가와 다음날 오전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15분 만에 진화된 화재에 목숨 잃어

 

다음날 오전, 베테랑 활동가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에 갔지만 이미 그는 장례식장에 가 있었습니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해 겨우 그를 만났고 비로소 유가족들을 뵐 수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은 유가족 외에 단 한 사람의 조문객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신문기사만으로 장례식장을 수소문해 유가족을 만나며 발 빠르게 움직이는, 그는 역시 베테랑 활동가였습니다.

 

“활동보조서비스만 이용하고 있었더라도…안타까운 죽음이다.”

 

이렇게 단신으로 보도되었고 그렇게 잊힐 사건이었습니다. 속속 장애인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장례식장에 모였습니다.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는지, 시간은 얼마나 됐는지, 그래서 우리는 뭘 해야 하는지 등등… 어떤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으레 나누게 되는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분석하지 말자.”

 

베테랑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일단 받아들이고 재발방지를 위한 ‘방안’ 같은 이야기는 유가족과 함께한 이들의 마음을 모은 뒤에 같이 생각해보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순간 허를 찔린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나 원인이 무엇인지 재발 방지를 위한 요구를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 구청과 시청 등을 상대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등등에 생각이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성, 그랬습니다. 실무자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았음에도 어느새 또 실무자처럼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베테랑 활동가의 말에 ‘툭’하고 무엇인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 뒤로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어떠실까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일 아파트에 홀로 있다가 화재로 숨진 박아무개 씨에 대해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관할 구청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12일 광주 북구청사 구청장실을 점거했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내년도 예산과 관련한 구청의 업무로 담당부서 공무원들이 조금 늦게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공무원에게 구청장이 직접 조문하고 유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구청장실로 찾아가려는 우리를 만류하던 그가 “구청장님 위치가 확인이 안 된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을 때 장례식장을 나와 구청장실로 향했습니다. 구청장의 하루 일정은 홈페이지 등에 올라가고 실제로 그날도 구청장을 기다리며 인근의 행사에 참여하는 구청장 일정을 휴대전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이없는 참사, 구청장 조문이 어렵나?

 

“구청장님이 전부 다 조문을 가야 하느냐?“

 

구청에 도착해 어수선한 가운데 구청장실 앞에서 만난 어느 공무원분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느닷없이 구청장실로 들이닥친 활동가들의 모습에 당혹스럽고 불편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소란스러워서 잠시 지켜보고 있던 다른 부서 공무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출직인 구청장이 지역 구민의 어이없는 참사 앞에 조문하는 것조차 대단한 일처럼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소?”

 

구청장실 앞에서 만났던 어느 공무원이 했던 말과 함께 지금도 가슴에 남는, 아들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어머님께서 우리를 만났을 때 하셨던 말씀입니다. 우리는 늦었고 행정은 그보다 더 늦었으며 제도는 여전히 그대로 결점을 안고 변함없는 순간임을 느끼게 했던 날이었습니다.

 

구청장은 장례식장으로 가 조문하고 유가족과 만났습니다. 86세 노모의 주거 문제와 장례를 치르는 문제를 책임지겠다고 했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다음 날, 유가족과 함께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유가족 외에 망자를 누인 관조차 들어줄 사람이 없던, 온전히 ‘가족’에게만 짐 지운 삶과 죽음의 외롭고 무거운 이 사회의 현실을 마주하는 듯했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절묘하게도 며칠 뒤 인터넷과 언론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어느 대자보로 떠들썩합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활동보조 시간도 타고 나갈 저상버스도 부족해서 서울로 떠난 뒤 화마에 떠나간 고 김주영 활동가와 늙으신 어머니마저 안 계시던 작은 아파트에서 화재로 돌아가신 어느 중증장애인이 살았던 ‘인권의 도시’에서….

 

‘툭’ 하고 던져진 ‘안녕들 하십니까?’ 한 마디에 뭔가 와르르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역시 지나가고 말 신드롬일 ‘안녕들 하십니까?’…

 

그 뜨거움이 식기 전에 안녕하지 못한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도 함께 울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목소리들 속에 밀양과 강정, 철도노조와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이 묻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모두의 목소리에 안녕하지 못한 다른 모든 이들의 삶이 묻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겨울 안녕하지 못한 모든 이들과 함께, 화마 속에 허망하게 떠나가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도연 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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